남작가 마법사의 회귀 - 24
“막 그다음에는요! 불길이 화라라라락! 하고 솟아올랐다가 콰아아앙! 하고 크루딘님의 입으로 빨려 들어갔어요!”
“빨려 들어갔어요! 슈우우웅!”
리키와 이샤가 신나 재잘거린다.
흥에 겨워 손까지 휘두르며 설명하는 것은 덤이었다.
“하하하, 제가 좀 합니다.”
“오오, 정말 대단한 분이셨군요! 전혀 몰랐습니다.”
“하하, 그 정도는 뭐 누워서도 할 수 있지요 하하하.”
빵집 식구들과 크루딘은 꽤 잘 맞았다. 리키와 이샤도 크루딘과 제법 친해졌는지 이제는 편하게 말을 했다.
‘애초에 안 맞는 사람이 있기나 하려나.’
“그나저나 모두 아침은 안 드시는 겁니까?”
“예, 아무래도 끼니 맞추기는 애매할 것 같아서 말입니다.”
“그리구 맛있는 빵도 있잖아요! 헤헤.”
사티넬은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치즈크라상과 마늘바게뜨를 양손에 들며 헤벌쭉했다.
분명 이곳은 타지이고 저들 전부가 초면인데도 불구하고 분위기는 화기애애했다.
‘그래, 권위를 세우고 구분을 지으며 괜한 심력을 소모할 필요는 없지.’
편안했다.
비슷한 하루가 반복되었다.
그리고 어느덧 출발 전날. 내일이면 브뤼센으로 향하는 마르다 상행단이 출발한다.
론 일행은 오후 수련을 뒤로 하고 필요한 물품들을 사러 다녔다.
개인용 짐가방, 긴급치료팩, 위생 도구, 새끼줄, 물통, 노숙용 망토(크루딘이 가장 좋아했다. 드디어 마법 수행을 하는 것 같다나 뭐라나), 육포 등등.
크루딘이 초심자 용병 세트를 말하긴 했지만, 내용물을 살펴본바 부싯돌과 기타 물품들을 끼워 넣어 가격만 덤탱이 씌운 것이었다.
그리고 그 시각,
리키는 배달을 빨리 마치기 위해 서두르고 있었다.
‘오늘 마법사님들도 뭐 좀 사러 갔다 온다 했으니 빨리 가면 늦지 않겠지?’
‘이샤가 꼭 같이 가자고 했는데···.’
‘마법은 도대체 어떻게 펼치는 걸까?’
‘나도···. 배우고 싶다.’
정기 배달이었기에 길 정도는 확실히 꿰고 있는 리키였다. 그 때문이었을까. 저도 모르게 이런저런 생각들을 하고 있었는데, 그만 문제가 터져버렸다.
쿵.
“아고고···.”
“뭐야. 으응? 아니 이런 씨벌탱! 웬 좀만 한 새끼가!”
“아···. 죗, 죄송해요!”
“죄송? 씨벌, 냄새나는 쓰레기를 쳐 묻혀놓고 죄송하면 다야?! 앙?!”
“쓰레기가 아니라 빵인데···.”
노을 빵집은 게티아 도시에서도 꽤 인지도가 있어서 리키는 내심 자부심이 있었다. 게다가 이를 만드는 이가 누구인가. 자신과 제 동생을 거둬준 주인장 내외인데, 이를 두고 쓰레기라고 말하니 리키가 그만 말대꾸를 해버린 것이다.
“이런 싸가지 없는 새끼를 봤나. 지금 내 옷을 더럽혀놓고 뭐? 쓰레기가 아니라 빵이라고? 야이 새끼야.”
우락부락한 덩치의 사내가 리키의 멱살을 움켜잡았다.
“켁! 켁, 큭.”
숨통을 조여왔다.
그리고 거기에 몸뚱이까지 뜨는 바람에 리키는 정신이 아득해졌다.
“큭! 크윽. 죗, 죄송합니다! 정말 죄송합니닥, 켁!”
“죄송? 아니 씨벌 잘못을 저질러 놓고 죄송하면 다야? 하! 이런 줫 같은 경우를 봤나. 그럼 씨발 나도 칼로 찌르고 죄송하다 하면 되는 거네? 그치? 엉?”
“흑, 흐윽··· 흑! 죄송합니다. 정말···. 흑···. 변상해드릴게요.”
“변상? 이 새끼가 돈이면 다 되는 줄 아네? 내 기분 잡친 건? 앙? 어떻게 할거냐고 이 씨벌탱 새끼야!”
“흑, 흐윽.”
“하아···. 재수 줫깥네 진짜. 잘못은 시발 지가 해놓고 울고불고, 세상 불쌍한 척은 다 해! 씨발 내가 개새끼네, 그지? 앙?”
리키는 정신이 멍해졌다.
무슨 말을 해도, 진심으로 사과를 해도 돌아오는 건 욕과 분노뿐.
“큭큭, 하필 걸려도 잭슨한테 걸렸네.”
“아주 홀라당 벗겨 먹겠구먼.”
게티아에서도 성격 더럽기로 소문이 자자한 리걸 용병단. 재판에 회부 되지 않을 정도로만 교묘히 도시민들을 괴롭히는 무리다. 일설에는 뒷배가 있다는 소문도 있을 정도다.
“흑, 흑 죄송해요. 정말 죄송해요, 흑···. 흑···.”
감히 어찌할 수가 없는 상황.
‘살려주세요, 다음부터 안 그럴게요. 제발···.’
소리 없는 기도가 울려 퍼졌다.
리키는 이 기도가 누군가에 닿기를 간절히 소망했다. 그렇지 않으면 세상이 무너질 것만 같았다.
“거기, 잠시. 내가 아는 아이 같군.”
그리 크지 않은 목소리.
하지만 그 소리에 장내의 소란스러움이 사그라들었다.
리키의 고개가 목소리 쪽을 향해 돌아갔다. 눈물로 흐릿해진 시야로 몇몇 사람들이 보인다.
구원자였다.
다만 리키, 그가 아는 얼굴들은 아니었다.
어두운 녹색의 고급스러운 로브, 창백하리만큼 하얀 얼굴, 그리고 무언가 형언할 수 없는 칙칙한 분위기. 게티아 도시에서 이러한 특징의 무리라면 단 하나밖에 없었다.
지오르 마탑의 마법사.
정확히는 그 문하의 수련생들이었다. 마탑 소속의 정식 마법사들은 저러한 로브에 녹색 줄 하나가 어깨를 걸치고 내려오는데, 그게 없는 걸 보면 수련생들이 틀림없었다.
‘저를 아세요···?’
자신을 도와준 이들에게 할 말은 아닌 건 리키도 알았지만, 밀려오는 궁금증마저 모른 채 할 수는 없었다.
리키가 눈물 범벅인 눈동자로 간절히 응시했다.
“이 아이가 실수를 했나 보군. 대신 사과하지.”
“라, 라포르님!”
“깡패들입니다!”
“저희가 당장 치안대에 연락하겠습니다!”
라포르의 사과에 따르던 이들이 놀라 말렸다. 자신들이 믿고 따르는 리더가 고작 거리의 깡패 따위에게 고개를 숙인 것이다.
아무리 마법사가 지성과 인내의 상징이라지만, 화나는 건 화나는 것이다. 이내 그들의 눈빛이 흉흉해졌다.
“크흠!”
“나, 난 일이 있어서 말야.”
“커흠! 맞아, 나도 일이 있는 걸 깜빡하고 있었군!”
수준 낮은 왈패 아니랄까 봐 같이 있던 용병들이 흩어졌다.
아무리 마탑 수련생이라지만 깡패 짓이나 하는 용병들에게 질 실력은 아니었다. 그나마 호각을 이룰 오러 전사들은 이런 식으로 평판을 깎지도 않았고 말이다.
허나 따르는 이들이 말리거나 말거나 라포르는 신경쓰지 않았다.
“새 옷으로 갈아입게.”
라포르가 품에 있던 주머니에서 은화 열 개를 꺼내 건넸다.
10실버.
오러를 사용치 못하는 일반 용병이라면, 생명 수당까지 받아 가며 하루 꼬박 일해야 벌 수 있는 금액이었다.
“아이고, 감사합니다!”
잭슨이 넙죽 돈을 받았다.
‘큭큭, 오늘은 되는 날이군. 애새끼 하나 조지고, 재미 좀 봤어.’
받아서 새보니 10실버가 맞았다.
그의 입가에 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음? 뭐하는 짓이지?”
차가운 중저음.
코앞에서 들리는 소리에 잭슨의 고개가 다시 올라갔다. 잘 못들은 게 아니라는 듯 라포르가 그를 똑바로 쳐다보고 있었다.
“내가 언제 그 더러운 손을 내 몸에 대라 했지?”
“예?”
“방금, 내 손에 불결함이 가득 묻었다. 그리고 방탕과 게으름도. 뭐 하는 짓이지?”
구구구궁.
라포르가 품고 있던 마나를 풀어내자 일반 용병인 잭슨은 감당할 수가 없었다.
“죗, 죄송합니다!”
“죄송? 잘못을 저지르고 말만 하면 다인가? 쉬운 사고 방식이군. 좋아.”
우우웅.
콰악!
“컥!”
라포르의 손에서 펼쳐진 바람의 화살이 잭슨의 복부에 꽂혔다.
“허억! 헉...허억...”
잭슨은 갑작스러운 충격에 정신이 없었다.
“죄송, 죄송합니다! 보, 보상해드리겠습니다!”
내면 깊숙한 곳.
원초적인 생존 욕구가 상황을 해결하기 위해 아무 말이나 뱉어냈다.
하지만 그것이 더 문제였다.
“보상? 돈이면 모든 게 해결이 되나? 내가 느낀 이 불쾌함이 돈으로 해결된다고 생각하나보지?”
“옛, 예?”
후우웅
콰아아앙!
전 보다 더욱 강력한 바람의 일격이 잭슨의 복부를 가격했다.
“커허억! 큭...크르르륵...죄, 죄송...”
잭슨은 끝내 말을 잇지 못했다.
“정말 시덥잖군. 이래서 평것들은 교육이 필요해.”
라포르의 정신 교육에 장내는 고요했다. 그리고는 별일 없었다는 듯이 그가 리키를 쳐다봤다.
딸꾹!
“도, 도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분명 위기에서 벗어났다.
허나 알 수 없는 위화감이 리키를 떨게 만들었다.
어떻게 해야할까 고민하는 사이,
바닥에 굴러다니는 은화들이 보였다.
“돈은 꼭 갚...”
돈이면 다 되는 줄 아냐는 잭슨의 말이 순간 떠오른다.
“죄, 죄송해요. 제가 어떻게 해드려야 할까요···?”
혼비백산한 리키가 말을 더듬었다.
그리고 그런 리키를 바라보며 라포르의 한쪽 입가가 올라갔다.
**
삼켜진 달,
기울어진 그림자,
폐허의 탑,
망령의 마법사.
하나같이 마탑을 지징하는 표현들이다.
과거의 영광이 사라진 지는 이미 오래. 그 자리를 꿰찬 건 마법 아카데미들이었다. 각국의 국왕과 황제는 귀족과 더불어 마탑까지 견제할 수 있는데 눈치 볼 이유가 없었다.
확실한 선례, 아들렌 마도 왕국이 있었으니까 말이다.
귀족의 힘이야 영지와 백성에게 오는 것이기에 직접적인 타격을 받진 않았지만, 마탑은 아니었다.
주변국들로부터의 지원은 날로 끊겨 갔고, 인재라 부를 귀족과 손발이 될 평민들은 다 빼앗겨 버렸다. 결국 말라비틀어진 마탑은 사분오열했다.
그리고 현대에 이르러 남은 곳은 단 세 곳. 그마저도 겨우 명맥을 이어가는 상태일 뿐이었다.
그런 가운데 베킷 자작가에서 가히 천재라 불릴 만한 아이가 태어났다. 베킷 가문이 어디인가. 과거 가장 위세를 떨치던 지오르 마탑의 골수 가문이었다.
라포르 베킷.
누구보다 빠르게 마나에 대한 감을 깨우쳤으며, 열 살에 스스로 첫 서클을 엮었다. 온 가문의 기대가 그에게 실리는 순간이었다.
그리고 라포르 또한 이를 거부하지 않았다.
그는 생각했다.
엄연히 평민을 지배하는 우월한 유전자는 존재한다. 그러한 존재들을 일컬어 우리는 귀족이라 칭한다. 그런데 그런 귀족들의 대표라 할만한 국왕은 언제부턴가 도를 넘었다.
귀족과 왕족의 차이라 해봐야 영토의 크기 차이일 뿐, 이 이상 그 이하도 아니건만. 마법과 재능을 변명 삼아 왕국의 통치체계를 바꿔나갔다. 그리고 그 시작이 마법 아카데미였고.
압박과 족쇄였다.
온 귀족을 말살하고 만인을 왕 아래 두려는 궤계.
이는 지금 이 순간에도 실현되고 있었다. 적지 않은 가문과 마탑이 사라졌다. 그리고 그 빈자리를 채우는 건 다른 귀족 혹은 귀족의 방계도 아니었다. 농사를 짓고 물건을 팔던 평민이었다.
“하향평준화.”
긴 생각에 잠겨 있던 라포르의 입에서 불쾌한 듯 말이 튀어나왔다.
“예?”
갑자기 들린 생소한 단어에 따르던 이들이 되물었다.
“됐다. 그나저나 드디어 오는군.”
왕실의 개가 되어 질서를 어지럽히 자들. 라포르의 눈빛이 차가워졌다. 차라리 무지한 용병이라면 적당히 다그친 후에 계도라도 할 수 있다.
허나 귀족임에도 왕실 편에 서서 이를 옹호하는 자들은 답이 없다.
혈통은 분명히 존재한다.
책임을 지냐 안 지냐의 차이일 뿐.
스스로의 권위를 내려놓고 왕실의 개가 되기로 한 자들에게 자비를 베풀 이유는 없었다. 그리고 그런 그들의 모습이 점점 가까워지기 시작했다.
이목구비 하나하나가 또렷하게 보일 무렵, 라포르가 입을 뗐다.
“그쪽이 마법 아카데미의 개, 아니 학생들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