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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작가 마법사의 회귀-23화 (23/115)

남작가 마법사의 회귀 - 23

전설 및 고대 서적들을 살펴보면 재미난 이야기들이 많다.

래비아탄의 어금니를 뽑았다는 전설의 낚시꾼, 천 톤이 넘는 금을 캤다는 희대의 광부, 수많은 왕국과 제국을 상대로도 굳건하던 라울 성벽을 단 하루 만에 무너뜨린 소수 민족 카이루트 부족, 대륙을 호령하는 대상인이 됐다는 정령사 등등.

그런데 그런 이야기들 속에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게 또 마법사다. 상식을 뛰어넘는 능력은 뭇사람들의 마음을 빼앗기 충분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런 마법사들 중에는 그들의 치명적 단점이라 여겨지는 개인 근접전의 스폐셜리스트도 있었다.

바로 워록.

이는 마검사와 다르다.

검술의 묘리를 이해하고 무학을 갈고 닦아 힘을 극대화 시키는 게 아니라, 신체 능력과 근접 마법만으로 상대를 제압하는 이들이다.

마법에 관심이 있는 자라면 누구나 다 알만한 이야기. 허나 마법사라면 누구나 허황되다 여기는 이야기가 현실로 빠져나온 듯했다.

크루딘.

물론 전설 속 워록에 비하면, 그리고 마검사에 비하면 턱없이 부족하다. 하지만 이제껏 론이 봐 온 그라면 왠지 가능할 것 같았다. 기대도 됐고.

“재밌군요. 크루딘. 자신 있습니까?”

“어이, 방금까지 못 봤어? 준비해.”

론이 목을 돌리고 몸을 풀며 앞으로 나아갔다.

사티넬은 마법 파훼의 후유증으로 이미 뒤에서 쉬고 있는 상태. 론과 크루딘은 서로를 보며 자리를 벌렸다.

어둑한 밤.

살랑이는 바람들 사이로 유독 크게 들려오는 나뭇잎 소리. 그것이 신호였다.

콰아아앙.

쾅!

퍼엉.

수십 차례의 합이 오갔다.

먼지와 모래 잔해가 이를 증거하듯 공간을 가득 채웠다.

허나 승부의 신은 냉정했고, 결국 한 사람이 주저앉았다.

“끄으응···. 젠장. 하아···.”

“후우···. 후우···. 다음부터는 3서클까지 허용하는 거로 하죠.”

“그럼 더 못 이기잖아!”

“그만큼 크루딘, 당신이 강하다는 겁니다. 애초에 2서클에서는 밀도와 궤도 변환이 불가능한데, 당신은 하고 있지 않습니까. 후우···. 후우···. 그 자체가 너무 사기입니다.”

론도 숨이 찼다.

끝내 2서클 선에서 제압하기 위해 꽤나 많은 마나를 퍼부었고, 상당한 컨트롤을 해야 했다. 전과는 다른 엄청난 서클을 얻었음에도 골이 아파져 올 지경이다.

“대련은 이쯤에서 마무리하죠.”

“으으···. 크루딘님한테 맞은 팔이 아직도 욱신거리네요.”

옆에서 지켜보고 있던 사티넬이 울상을 지었다. 어스 마법 특유의 단단함과 크루딘의 속력까지 더해졌으니 꽤나 아프리라.

“어이, 사티넬. 약한 소리 하지 말라고. 내가 졌으면 너한테 배는 넘게 원소 화살을 맞았을걸?”

“그건 그렇긴 하네요. 킥킥.”

아카데미에서 늘 하던 마법 대련을 밖에서 하니 신선했다. 실전과는 물론 달랐지만, 그래도 그들에게 환기하는 계기가 되었다.

환한 조명은커녕 인공물 하나 없는 공간. 산 중턱의 평지에 달빛만이 그윽히 자리 잡았다. 야산이 주는 특유의 정취였다.

각자 휴식을 취한 뒤 그들은 적당한 자리를 잡고 마나 호흡에 들어갔다. 끊임없는 노력, 끊임없는 연구, 끊임없는 도전만이 앞으로 이끌 뿐이다.

마나 호흡은 날이 새고, 해가 뜰 때까지 이어졌다. 늘 그래왔듯이.

떠오르는 일출을 앞으로 두 개의 그림자가 보인다. 크루딘과 사티넬이었다.

“평소보다 좀 늦던데, 설마 잤던 건 아니지 론?”

“뭐 잘 수도 있지요.”

“에? 정말이에요?”

“저게 정말이겠어? 사티넬. 저 독한 게 퍽이나 잤겠다.”

“그렇겠죠? 히힛.”

“그만 내려가죠.”

**

오전에는 푹 쉬었다.

일찍 일어나 명상 혹은 수련을 할 수도 있지만 자유로운 시간을 갖기로 했다.

점심 즈음으로 해서 1층에 가니 먼저 내려와 있는 사티넬이 보였다. 카운터에 있는 샌디와 뭐라 뭐라 얘기하는데, 들어보니 죄다 빵에 대한 것이었다.

어떻게 빵에도 치즈를 넣을 생각을 했냐.

마늘 바게트는 혁명이다.

어제 후식으로 먹은 치즈 크레이프 케이크는 너무 환상적이었다. 등등

“일찍 일어났군요. 사티넬.”

“웅, 이러나셔써용?”

그새 뭔가를 입에 집어넣었나 보다. 뒤돌아선 사티넬의 양 볼이 빵빵했다.

“···. 같이 점심 먹으러 갈 수 있겠습니까?”

우물우물.

꿀꺽!

“넵! 당연하죠! 간식 먹는 배랑 끼니 채우는 배랑 다르잖아요!”

“그, 그렇습니까.”

“네, 당연하죠!”

사티넬과 샌디가 동시에 대답하는데 론은 그저 떨떠름할 뿐이었다.

“아! 그 크루딘님은 곧 올 거예요, 아까 바람 쐬러 나갔다 온다고 하고 갔거든요.”

“그럼 뭐 기다리죠.”

테이블에 앉아 기다리고 있지나 어디선가 시선이 느껴졌다.

고개를 돌리니 빵 진열대 끝으로 갈색 머리카락이 조금 보인다. 이샤라고 했던 꼬마다. 마주치고 싶지 않은 건가 싶어 론이 다시 고개를 돌렸는데, 또다시 느껴지는 시선.

“······”

다시 고개를 돌렸다.

다시 숨는 이샤.

이번에는 론이 고개를 돌리는 척하다가 도로 획! 꺾었다.

“흐익!”

“이샤라고 했던가? 꼬마야, 왜.”

“응? 이샤 들어왔었네. 론님, 이샤가 마법에 관심이 많대요.”

의외로 사티넬이 이샤와 얘기를 나눈 건지 대신 설명했다.

“혹시 괜찮으면 마법 수련하는 거 봐도 되냐고 물어보던데. 론님은 어떻게 생각하세요?”

“뭐 소문만 내고 다니지 않는다면 상관은 없습니다. 마법에 관심이 있었구나. 꼬맹아.”

그제야 이샤가 론과 눈을 마주쳤다.

“워터.”

퐁.

론의 손끝에서 조그만 마법진이 생기더니, 이내 새끼손가락만 한 물방울이 튀어나왔다. 그리고 론은 그것을 그대로 날렸다. 목적지는.

촤악.

“엑!”

진열대 뒤에 숨어있던 이샤의 머리 위로 물방울이 떨어졌다.

“흐에에에엥!”

“아구, 이샤 괜찮아. 마법사님이 장난치신 거야.”

이샤가 카운터에 있던 샌디에게 달려갔다.

피식.

어째 꼬마들을 보고 있으면 가문의 동생 레비아가 떠오른다.

‘리키가 레비아와 또래인 거 같으니, 이샤라는 저 애는 대략 7살쯤 되려나.’

“론님!”

왜 이샤를 울렸냐고 채근하는 눈빛이다.

“······”

딱히 나쁜 의도가 없었던지라 론은 그저 어깨만 으쓱일 뿐이었다.

여러모로 자리가 불편해질 때쯤 크루딘이 돌아왔다. 그 옆에 리키도 있는 걸 보면 어딜 같이 갔다 왔나 보다.

“오! 론, 일어났네. 그럼 점심 먹으러 가자!”

“예, 그러죠.”

“네, 가요.”

“다녀오세요.”

식사하러 나가는 론의 일행을 두고 리키가 배웅했다.

“그래~ 이따 보자고.”

“리키랑 어디 갔다 왔습니까?”

“아아, 그냥 어제 게티아 도시 외곽만 돌아다녔잖아. 오전에 심심하기도 해서 리키 저 녀석, 빵 배달하는 거 따라가면서 안내 좀 받았지 뭐.”

“그럼 오늘 점심 먹을 곳은 크루딘, 당신이 안내하면 되겠군요.”

“으응? 이게 그렇게 되나?”

“네, 해주세요! 헤헤.”

딱히 리키에게 레스토랑을 추천은 건 아니었지만, 크루딘이 거리를 걸으며 가게들을 살폈다.

“저기로 갈까?”

사람들로 꽤 북적이는 식당.

역시 처음일 땐 아무래도 사람이 많은 곳이 제일 나으리라.

[ 디나스띠 라 뀌진 ]

간판에는 고대 대륙어가 씌어져 있다. 직역하면 대충 ‘왕실의 주방’ 정도. 고급스러워 보이고 싶은 가게주인들이 곧잘하는 방식이다.

그곳에 들어가 적당히 주문하고 기다리니 곧 웨이터가 가지고 나왔다.

“와아! 이게 바로 감자그라탕!”

게티아에 오고 나서는 거의 끼니마다 새로운 메뉴를 보는 것 같다.

식사하며 론의 일행들은 이러저러한 얘기들을 시작했다. 유적, 탐방, 몬스터, 마법, 아카데미 등등.

**

비주류.

어떤 조직이나 단체 내에서 소수파를 이르는 말이다. 때문에 딱히 좋은 어감은 아니다.

게다가 그렇게 지칭되는 이들이 만약 비주류 이전에 주류였다면 그 반감은 말할 수도 없을 것이고 말이다.

하지만 인류의 역사가 늘 그래왔듯 흥하는 때가 있으면 망하는 때도 있는 법. 아들렌 왕국을 넘어 대륙에서 수백 년간 그 전통을 이어온 마탑 또한 그러했다.

어느 순간 줄어들기 시작한 그들의 입지는 오늘날에 와서는 겨우 명맥을 이어나가는 정도가 되어버렸다. 그리고 그러한 마탑의 지부가 이곳 게티아에 존재했다.

“라포르님 들으셨습니까?”

“응, 조용히.”

평소처럼 식사를 하던 라포르 일행은 우연치 않게 옆자리의 얘기를 듣게 됐다. 다른 이들의 담화를 몰래 듣는 건 귀족의 자세도 예의도 아니었지만, 들려오는 것까지 뭐라 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라포르가 테이블 위에 있던 손의 검지를 들어 올렸다. 잠자코 있으란 얘기였다.

딱히 자신들을 비난하는 내용은 없었다. 다만 확실한 건 뒤에서 얘기하는 저 세 명이 마법 아카데미 학생이라는 것. 그것으로 충분했다.

“디먼.”

“예, 라포르님.”

“남아서 저들이 왜 여기 왔는지 확인해 봐.”

“예, 알겠습니다.”

분명 론 일행과 비슷한 또래였음에도 불구하고, 상하 체계가 확실했다. 흡사 가문 내 귀족과 이를 따르는 하인과도 비슷한 관계.

라포르는 냅킨으로 입가를 닦고는 뒤도 안 돌아본 채 레스토랑을 나섰다. 그러자 디먼을 제외한 다른 이들도 서둘러 따라갔다.

그들이 향하는 곳.

지오르 마탑의 게티아 지부였다.

***

슈우욱.

“와아!”

“오~”

슈우우욱.

“오···.”

“와~”

마법진에서 원소 화살이 발사될 때마다 추임새마냥 소리가 끊이질 않는다. 거기에 또르르 돌아가는 꼬마들의 고개까지.

월! 월!

‘아, 개도 있군···.’

점심 식사를 마치고 론의 일행은 어젯밤 수련을 했던 산으로 향했다. 도심 구경이야 거기서 거기였고 무엇보다 매 순간, 서로가 서로를 앞질러 나가려 하고 있음을 다들 잘 알고 있었다.

때문에 몸이 근질거려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런데 너희 계속 있어도 되는 거니?”

“깁스 아저씨가 오늘은 오후 배달 없대요! 계속 있을 수 있어요!”

론의 질문에 리키가 즉각 답을 해왔다.

“······”

킥킥킥. 당황한 론의 표정을 봤는지 사티넬이 웃음을 터뜨렸다.

“어이 꼬맹이들. 이 대마법사님이 재밌는 걸 보여주지.”

“와아! 보여주세요! 보여주세요!”

“보여주세요!”

이샤가 양 주먹을 쥐며 잔뜩 기대에 차올랐다.

“파이어.”

우우우웅.

손끝에 펼쳐진 마법진에서 붉은 불길이 뿜어져 나왔다. 마치 의지를 가진 듯 크루딘의 주변을 휘돌았는데, 아이들 눈에는 그저 신기할 따름이었다.

“오와아!”

“헤에!”

끄흐응···끙···.

다리가 짧은 웰시코기 티버가 갑작스런 불길에 놀랐는지 낑낑거렸다.

“티버. 괜찮아, 괜찮아.”

이샤가 티버의 등을 쓰다듬으며 진정시켰다.

잠시 후 모두가 크루딘에게 집중하자 그는 이내 미소를 지으며 마나 컨트롤에 변화를 주기 시작했다.

휙 휙 휙.

조금씩 사납게 움직이던 불길. 그것이 이내 위로 치솟았다. 그리고는 마치 적을 향해 돌진하듯 불길이 크루딘에게 내리꽂혔다.

화르르륵!

하지만 크루딘은 무얼 하는 건지 여유롭게 입만 벌리고 있을 뿐이다.

“어, 어?! 안대애!!”

“헤엥!”

끝내 불길이 크루딘의 입속으로 들어가는 것까지 본 아이들은 비명을 내질렀다.

“마, 마법사님?”

간신히 눈을 뜬 리키가 믿기지 않는다는 듯이 물었다.

허나 들려오는 대답은 없었다.

그저 고요한 정적뿐.

“흑흑···. 흑···.”

쪼그만 손으로 여전히 눈을 가리고 있던 이샤가 결국 울음을 터뜨렸다.

꺼어억.

“?!”

“거, 좀 뜨끈하구만.”

크루딘이 한껏 트림을 하며 배를 통통 두드렸다.

그는 각도를 잘 맞춰서 아이들의 위치에서 보면 정말 입으로 들어가는 것처럼 상황을 꾸몄다. 실상은 그저 입 옆으로 지나면서 사라진 것이지만 말이다.

“쯧쯧쯧···.”

론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쿡.

“론님도 아까 하셨으면서 뭘.”

“······”

딱히 틀린 말은 아니었다.

그래서였을까.

아이들의 재미난 반응에 론 또한 마법을 생각하는 사이 무언가 이질적인 소리가 들려왔다.

스륵. 스르륵.

“음?”

무언가 수풀을 헤치며 내는 소리였다. 뭔가 싶어 론이 뚫어지게 쳐다봤는데 이내 그 기척은 사라졌다.

‘산짐승인가.’

그 후 저녁때까지 그들의 마법 수련은 계속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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