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작가 마법사의 회귀 - 22
22화
“엥? 여기가 진짜 너네가 지내는 곳이야?”
“네! 좋죠?! 정말 좋아요! 아저씨, 아주머니도 친절하고요, 샌디 누나도 착해요!”
아이들이 지내는 곳은 정확히 말하면 여관이 아니었다.
아, 물론 돈을 받고 손님을 묵게 해주면 그게 여관이긴 하지만, 눈앞의 건물은 여관이라기보다는 그냥 상점이었다.
“티버, 일어나. 손님 왔다구우.”
끄흥···.
이샤가 쪼그려 앉아서 자신만한 덩치의 개를 흔든다. 누런 얼룩무늬의 웰시코기. 목축업이 발달한 남부 지방에서는 목양견으로 흔한 종이다. 다만 나이가 많은 건지 딱히 반응은 없다. 자는 건지.
“...”
“론, 이거 제대로 온 거 맞아?”
“와···. 그런데 빵 냄새가 너무 좋네요···. 왕···.”
무언가 산만했다.
여관이랍시고 안내받은 빵집.
그 앞을 지키는 건지 자는 건지 모를 개 한 마리.
“꼬마야, 우리가 빵 사러 온 게 아니라 여관 찾는 거는 알고 있지?”
론은 되묻지 않을 수가 없었다.
“네! 마법사님! 우리 노을 빵집은 여관도 해요! 2층에 방이 있어요!”
아까 뒤에서 말하는 걸 들은 걸까.
어느새 호칭이 마법사님이다.
일단 그 부분은 차치하더라도 과연 여기가 묵을 만한 곳인가 하고 생각하는데 안에서 누군가 나왔다.
“어, 리키 왔구나! 안 그래도 빵 배달 좀 할 게 생겼는데. 응?”
“아저씨! 여관 찾는 분들이 있어서 데리고 왔어요!”
“오오, 잘했다! 리키! 어서 오십시오. 노을 빵집입니다. 아! 이름이 빵집이긴 한데 여관도 운영하고 있습니다. 하하, 샌디! 투숙 손님 오셨다! 방 안내 좀 해드려!”
“네에!”
다다다다.
론 일행이 황당해하는 사이 샌디라 불린 소녀가 뛰쳐나왔다.
“안녕하세요! 노을 빵집입니다! 투숙하러 오셨다고요? 안내해드릴게요!”
빵집과 투숙.
전혀 매치가 되지 않는 두 단어를 아무렇지도 않게 쓰는 소녀의 분위기에 압도됐다.
묘한 곳이지만 그 구성원들이 자아내는 분위기 속에는 그래도 화기애애함이 있었다. 경계를 좀 걷어도 될 만큼 충분한.
피식. 크루딘이 미소진 얼굴로 쳐다본다. 사티넬도 딱히 싫어하는 것 같지는 않고. 아니 솔직히 그녀는 여관보다는 이 빵집의 빵에 더 관심이 쏠려있는 듯했다.
“네 올라가 보죠. 그럼.”
여관방은 밖에서 보고 예상한 것과 비슷했다. 일반 가정집에 안 쓰는 공간을 여관방으로 개조한 정도.
그런데 내부는 의외로 알찼다.
오히려 가정집이 주는 특유의 아늑함과 개성이 담겨 일반 여관처럼 삭막하지 않았다. 테이블, 카펫, 화분, 거울 등 가구들에도 꽤 신경을 썼고 말이다.
“이렇게 뒤편에는 투숙객 전용 샤워장이 있고요. 식사는 아침과 저녁만 제공인데, 식구들하고 보통 같이 먹어요! 어···. 불편하시면 따로 드셔도 돼요! 혹시 궁금한 거 있으실까요?”
“흠···. 나쁘지 않은 거 같은데. 부릴 하인이 있냐 없냐 차이지. 이 정도면 귀족 전용 여관하고도 그리 차이가 없어.”
“네?”
활기차게 설명하던 샌디가 순간 고개를 갸웃거렸다.
생각해 보니 그랬다.
어린 나이에 각지를 돌며 용병업을 시작하는 사람도 많다지만, 눈앞의 세 명은 그들과는 느낌이 달랐다. 누가 봐도 귀티 나는 외모. 자신감 넘치는 눈빛. 그리고 여유로운 분위기까지.
귀족의 그것이라 하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귀, 귀족 나으리들이신가요? 아고, 몰라봤습니다. 죄송합니다!”
추측이 확신으로 바뀌자 샌디가 고개를 푹 숙였다.
하지만 론이나 크루딘은 이에 그다지 신경 쓰는 성격이 아니었다. 오히려 평민인 사티넬에게 귀족 전용 여관은 불편할 수도 있을 것 같아, 내심 잘 됐다고 생각할 뿐.
“그냥 하던 대로 하십시오. 그게 더 편합니다.”
“네?”
더 얘기해 봐야 서로만 더 불편해질 것을 알기에 론은 그만 말하고는 일행을 돌아봤다.
“크루딘은 괜찮다 하고 사티넬은 어떻습니까, 이 빵집? 아 여관.”
“어···. 저는 좋은 거 같은데요?”
이미 들어올 때 빵 냄새에 반쯤 넘어간 건 알고 있었지만, 혹시나 해서 물어봤는데 역시나였다.
“그럼 여기서 묵는 거로 하죠. 샌디 양이라고 했습니까?”
“네? 아, 네네.”
“이 세 명. 나흘 동안 묵고 처음에 본 큰 방 하나랑···.”
방이 총 세 개였는데, 다인실 하나랑 개인실 두 개였다. 즉 사티넬이 어디가 좋은지 몰라 그녀를 쳐다봤다.
“아, 저요? 그럼 저는 마지막 방이 좋아요.”
“들었죠?”
“네네, 큰 방이랑 세 번째 방. 그리고 4일.”
잠시 손가락을 접었다 폈다 하던 샌디가 이내 계산을 마쳤는지 외쳤다.
“그러면 총 22실버입니다! 침구류는 그대로 쓰시면 되고요. 타올이나 각종 샤워 도구는 샤워장에 있어요. 세탁물도 거기에 두시면 제가 빨아서 방 앞에 둘게요.”
“예, 그리고 굳이 귀족이란 말은 떠벌리고 다니지 말았으면 좋겠군요.”
“아 네네, 그러겠습니다!”
솔직히 소규모라서 오히려 좋았다.
으레 귀족 전용 여관이라 하면 신분 확인부터 해서 여러 기록이 남는다. 불법 이민자 혹은 지명수배자가 아니긴 했지만, ‘나 귀족이요.’ 하고 귀족 전용 건물을 드나들 필요는 없었다.
가뜩이나 성년 이하의 십대들.
괜한 문제의 소지를 흘려 소란을 일으킬 필요는 없었다. 그저 있는 듯 없는 듯 지내다가 유적에만 가면 될 일이다.
그렇게 그들은 숙소를 정하고 게티아 주변을 돌아다녔다. 그래도 나흘간 묵을 것인데, 적당히 마법 수련할 만한 장소를 정해두면 좋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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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게티아에서 보낼 대략적인 계획을 세우고 쉬고 있자니 곧 음식이 나왔다. 그리고 하나둘 노을 빵집 식구들도 앉는다.
“하하, 차린 건 조촐하지만 맛은 좀 신경 썼습니다. 드시지요.”
아무래도 샌디가 주인장에게 무어라 말을 했나 보다. 아까의 호탕함과 자유분방함은 가라앉고 공손해졌다.
사고방식이란 게 큰일을 겪지 않는 이상 바뀌지 않는단 걸 알기에 론도 더 말할 생각은 없었다.
“잘 먹겠습니다.”
“오오! 이 스튜에 올려진 이게 치즈인 겁니까?”
“예, 아무래도 게티아가 치즈를 많이 취급하다 보니 이를 이용한 요리가 많이 발달했습니다. 맛이 꽤 괜찮습니다.”
어느새 론의 말투와 비슷해진 크루딘이 넉살 좋게 주인장에게 말을 걸며 식사를 했다.
사티넬 옆에 앉은 리키와 이샤가 처음에는 좀 움츠러들긴 했지만 한 스푼 두 스푼 먹더니 이내 곧 아무렇지도 않게 먹어댔다. 정말 아이들의 긴장도 풀어줄 만큼 맛은 훌륭했다.
“와아···. 닭고기에 마늘이 들어가서 풍미가 확 사네요. 진짜!”
“이 샐러드 드레싱이 요거트라구요?”
“저 치즈 빵 좀 더 먹을게요. 헤헤”
맛에 일가견이 있는 사티넬이 이리 말할 정도면 맛집인 것은 확실했다.
나흘뿐이긴 해도 여러모로 잘 고른 여관인 듯했다. 음식뿐 아니라 여러모로 신경을 쓰는 게 느껴진다. 갈 때 돈을 좀 더 지불하고 가야겠다고 생각하는 론이었다.
식사가 끝나고 아이들이 정리하는 사이, 론의 일행들은 주인장 내외에게 적당히 말해두고는 게티아 외곽으로 나갔다.
요 며칠 학기도 끝나고 이런저런 일들을 하느라 같이 마법 수련할 일이 적었다. 그리고 크루딘과 사티넬도 이에 공감했는지 도시 외곽의 산 중턱에 오르자 몸을 풀며 알아서 준비했다.
분명 경사가 있는 산을 타고 올라왔는데, 제법 널따란 평지가 있었다.
둘의 눈빛이 의지에 불탄다.
해가 지고 산중의 밤이 빠르게 찾아와 어두웠지만, 이들의 열정까지 덮을 정도는 아니었다.
“먼저 하시겠습니까?”
“좋지. 사티넬. 간만에 한 번 해보자고.”
“네, 좋아요.”
“공방? 아니면 난전?”
“난전은 아직 크루딘님을 못 당해요.”
“큭큭, 이런이런 또 인정을 받아버렸어. 알았어, 사티넬. 공격, 방어 중에 선택권을 줄게.”
“그래도 조심하세요. 방어로 할게요.”
“좋아. 시작하자고 그럼.”
익숙하다는 듯이 둘이 거리를 벌렸다. 학기 초중반의 어리숙한 그들이 아니었다.
4대 기본 원소는 이제 어렵지 않게 다뤘으며, 게다가 사티넬은 론과 크루딘의 자극을 받아 혼자서 3서클의 서적을 보며 수준을 높이고 있었다.
“그럼 준비, 시작!”
론의 외침과 함께 둘도 동시에 마법을 시전했다.
“윈드 애로우!”
“어스!”
크루딘의 국소 부위 흙벽은 상당히 효율적이어서 사티넬도 연습하고 있었는데, 그런 그녀의 시도가 무색하게 크루딘은 바람 마법을 날렸다.
안 그래도 잘 보이지 않는 바람 마법을 국소 부위 흙벽으로 막는 것은 상당히 어렵다.
사각. 사각. 사각. 사각.
하지만 사티넬은 당황하지 않고 침착하게 기본 원소 마법으로 바꿨다. 그리고는 모래를 몸에 두른 채 회전시키며 견뎌냈다. 그녀는 매 순간 모래 사이로 크루딘의 마법진 형성 위치를 놓치지 않았다.
결국 바람은 흙벽을 뚫지 못했다.
“흐음, 그렇다면.”
한 차례 호흡을 단정케 한 크루딘이 손을 내밀었다.
“어스.”
공격권을 쥔 그가 말한 것은 의외도 흙이었다. 이내 마법진 앞으로 모래들이 모여들었다. 조그마한 원 모양.
순간 사티넬은 물론이고 론도 의아했다. 공방 대결에서 그것도 2서클 수준에서 공격자가 어스 마법을 사용한다는 건 효율을 떠나 의미가 없는 행동이었다.
그런데 문제는 그가 크루딘이라는 점. 함부로 단정 지을 수 없는 존재였기에 모두가 숨죽이고 볼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곧 그 의미를 드러냈다.
다다다다.
크루딘은 마법진을 펼친 손, 즉 흙벽을 앞세운 채 그대로 달려 들어갔다.
콰아아앙.
“흐윽···! 윽···. 꺄아아악!”
밀도가 가미 되지 않은 2서클이라 할지라도 면적의 차이와 이를 밀어내는 힘의 차이는 분명히 존재 한다. 그리고 사티넬은 이를 버틸만한 정신력과 마법 수준이 아니었다.
우우웅우웅.
사티넬의 모래가 휘날리고 난 자리에는 크루딘의 마법진만이 고고하게 빛을 발하고 있을 뿐이었다.
“어이, 론. 다음은 너라고. 정신 차려.”
무심한 눈동자로 크루딘이 쳐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