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작가 마법사의 회귀 - 21
여러 의견이 오갔다.
낭만 넘치게 두 발로 걸어갔다 오자는 얘기(물론 긴 여행을 해 본 사티넬은 기겁을 했다.),
가는 길에 있는 몬스터와 도적들을 모조리 청소해야 된다는 얘기,
각 영지마다 유명한 맛집이 있다는 얘기 등등
모두 타당하고 의미가 있었지만 시일이 문제였다. 방학은 고작 두 달. 그리고 브뤼센 영지에서의 토벌 일정이 어떻게 될지 몰랐다. 즉, 론 일행은 충분히 시간을 확보할 필요가 있었다.
때문에 수많은 의견, 의논들 끝에 탐방은 워프게이트와 상행단을 이용한 최단 루트로 잡혔다.
“후우···. 아무리 생각해도 아쉽단 말이야.”
“뭐가 말입니까. 크루딘?”
“아니, 플라델 대선배님은 세계 순례를 두 발로 직접 하셨을 거 아냐.”
“고, 공간이동을 하면서 가셨을 수도 있지 않을까요? 헤헤···.”
크루딘의 거친 패기에 사티넬 당황했다. 론의 중재가 아니었다면 그의 말에 넘어가 하마터면 도보로 여정을 나서야 했을 테니까 말이다.
“그게 또 그렇게 되나? 흐음. 뭐 그럴 수도 있겠군. 그나저나 진짜 맨몸으로 가도 괜찮은 거 맞아, 론?”
“걱정 마십시오. 저희는 노숙을 하는 게 아니지 않습니까. 남부 거점도시까지는 워프게이트로 이동하고, 그 후에는 상행단에 합류할 건데, 사더라도 거점도시 게티아에서 사야지요. 수도에서 살 필요는 없습니다. 물가도 비싸구요.”
“오케이. 알았다고. 그럼 어때 바로 가는 거다?”
“좋아요!”
“예, 좋습니다.”
론이 2서클에 올랐다는 소식 때문이었을까.
다들 의욕이 넘쳤다.
학기 중 마법 대련을 비롯해 서로 간의 수준 차이는 이미 실감하고 있었다. 허나 그렇다 할지라도 가까이 지내는 친구가 나아가는데, 축하만 하며 가만히 있을 수는 없었던 것이다.
크루딘과 사티넬은 의기투합이라도 한 듯 바로 출발하는 것에 적극 찬성을 표했다.
그렇게 그들의 말대로 여정은 바로 시작되었다.
방학 동안 기숙사를 비워야만 하는 건 아니었기에 론의 일행은 적당히 방 정리를 하고, 챙길 것을 챙겨 수도 워프게이트로 향했다.
“론 스펜서 님, 크루딘 안데르손 님, 사티넬 님. 신청 완료되었습니다. 대기하고 있다가 호명되면 들어가십시오.”
“네!”
“예.”
옆에 있는 사티넬이 신기한 듯 연신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크루딘은 꽤 경험이 있는지 느긋했고.
다시 사는,
반복되는 인생이라지만 신선하다.
새로운 삶을 살고 있다고 해도 무방할 정도. 그렇게 되도록 만들어 준 친구들을 보고 있자니 곧 이름이 호명되었다.
파지직.
워프게이트의 환한 빛 속에서 론이 튀어나왔다.
‘음?’
미로에서의 경험 덕분이었을까.
신체가 마나처럼 광자화 되는 것을 조금은 인식할 수 있었다.
‘실낱같이 희미하긴 해도···.’
둔하기만 했던 과거와는 다른 감각.
“나도 많이 바뀌긴 했군.”
절로 미소가 흘러나왔다.
보통의 4서클과 견주어도 전혀 밀리지 않는 두 개의 서클까지 있으니까 말이다.
“바뀌긴 뭐가 많이 바뀌어? 론, 너 게티아는 처음이라며? 와 봤던 거야?”
한 박자 늦게 나타난 크루딘이 얘기를 반만 듣고는 물어본다.
“그냥 혼잣말입니다. 신경 쓰지 마십시오.”
“그래?”
“오!”
끝으로 나타난 사티넬.
그녀가 양팔을 만져보고, 머리카락을 들춰보며 이것저것 확인한다.
“큭큭큭, 사티넬 완전 내 어릴 적이랑 판박이네. 푸하하하. 어이, 사티넬, 네 몸뚱이는 괜찮다고. 걱정하지 마. 위험한 거였으면 벌써 갈아치웠지. 하하하.”
“헤헤, 그렇긴 하네요. 힛.”
남부의 거점도시 게티아.
아들렌 왕국은 통치의 편의와 거래 및 교류 활성화 등등의 이유로 거점도시를 계속해서 발전시키고 있었는데, 게티아는 그중에서도 연혁이 좀 되는 도시다.
서부의 수에즈 도시보다 훨씬 큰 규모와 인구, 그리고 건물들이 그들의 눈에 들어왔다.
“오오, 어릴 때 몇 번 와보긴 했었는데 이렇게 컸었나?”
“규모로만 치면 왕국 내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들긴 하지요.”
“그런데 뭔가 우유 냄새? 라고 해야 하나···. 흥흥, 좀 냄새나지 않으세요?”
“냄새? 킁킁. 어 그런 거 같기도 하고.”
“하, 사티넬 맞습니다. 정확히 게티아는 아니지만, 인근의 라센 영지의 특산물이 치즈입니다. 꽤 잘 팔리는지라 게티아에 많이 들어오거든요.”
“뭐야···. 론, 너 대체 모르는 게 뭐야. 처음이라며.”
“큼! 아까 도서관에서 여행 서적을 살펴보다 봤습니다.”
뒤이어 게티아의 현 시장이 누구냐부터, 게티아에 주둔 중인 왕국군의 규모는 얼마냐, 치즈로 만든 음식도 맛있냐는 질문 등 여러 말들이 오갔지만, 론은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렸다.
아직 오후라고는 하나 상인길드와 묵을 여관을 서둘러 찾아 할 일을 마쳐야 했다. 특히나 상인길드에서 알아볼 상행단의 승객은 선착순이었다.
‘게티아에 들렀던 것도 오래전이긴 하군.’
분명 회귀 전에 몇 번 왔던 것으로 아는데 어째 기억나는 건물이 하나도 없다.
“어···. 저 혹시 안내자가 필요하신가요?”
“필요하신가요?!”
웬 꼬마들이다.
쪼그만 남자아이 하나와 그보다 더 쪼그만 여자아이 하나.
순간 말할 타이밍을 놓친 론 일행은 그저 쳐다만 봤다.
꼼지락꼼지락.
불안해진 여자아이가 연신 손가락을 움직이더니 이내 오빠로 보이는 쪽으로 붙는다.
“어이, 꼬맹이들아. 어른한테 장난치면 혼난다아! 와아아!!”
“흐잉!”
여자아이가 울먹이며 남자아이의 뒤로 완전히 숨어버렸다.
“크루딘님! 아유!”
“왜애, 장난이었구만.”
솔직히 말하면 안내자는 크게 필요 없다. 처음이나 다를 바 없다곤 해도 대도시는 대도시만의 특징이 있다. 게다가 이곳은 거점도시. 상인길드가 다른 도시보다 배는 큰 곳이다.
즉, 거리에 지나다니는 상행단 마차만 잘 따라가도 상인길드 쯤은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었다.
그런데 눈 앞의 아이들은 어린 나이에 나와 일하는 것 치고는 행색이 꽤 깨끗하다. 허름하지도 않고.
“너희들 혹시 여관에서 먹고 자며 일하는 애들이니?”
“네? 아 네 맞아요!”
혹시나 했는데 맞다.
회귀 전 유적관리단의 말단일 적에 파견을 참 많이 다녔었다. 그러면서 여러 도시를 돌아다녔고 그러다보니 여러 여관들에서 묵곤 했는데, 그 주인장들이 항상 가족들과만 일하는 것은 아니었다.
개중에 같이 일할 가족이 없으면 이렇게 고아들을 데려다 키우며 일을 시키곤 했다. 그리고 그들 중 몇몇은 가끔 이렇게 호객을 하기도 하고 말이다.
“뭐야 론. 뭘 또 혼자 알고 있는 거야? 우리도 좀 알려 줘.”
“그냥 보아하니 어디에서 일하는 아이들 같아서 물어본 겁니다. 일하는 애들치고는 행색이 깔끔하잖습니까.”
“음, 뭐 그렇긴 하네. 근데 그게 왜?”
“노숙할 건 아니지 않습니까. 봐서 나쁘지 않으면 여기 아이들이 묵는 여관에 가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아서 그러지요.”
“아하!”
론과 그 일행들의 대화 속에 여관 얘기가 나오자 아이들의 안색이 밝아졌다.
“정말 좋은 곳이에요! 주인아저씨 요리도 맛있고, 주인아주머니도 아주 깨끗하게 관리하는 곳이에요! 정말이에요!”
“저, 정말이에요···.”
쪼끄만 여자아이가 차마 쳐다는 못보고 고개를 푹 숙인 채 말한다.
“큭큭큭. 재밌는 녀석들이네. 오케이. 그럼 한번 가보자고. 일단 상행단 부터지?”
“예.”
“꼬마야, 그럼 먼저 상인길드부터 안내해 봐. 당연히 어딘지는 알고 있겠지?”
“당연하죠! 이쪽으로 오세요. 가자, 이샤.”
“웅!”
꼬마 둘이 대로변을 앞서갔다.
보폭 차이 때문인지 한참을 뛰어갔다가, 뒤돌아 기다리고. 한참을 뛰어갔다가 기다린다.
“킥킥, 아이들 귀엽네요.”
“그러게 말입니다.”
“그나저나 여기도 마법사가 있을까?”
“비주류 말입니까?”
“응. 정말 큰 도시잖아.”
아들렌이 마도 왕국이라 불리는 만큼 아카데미 외에도 마법 교육기관은 꽤 존재한다.
미미하긴 해도 그 전통을 이어가고 있는 마탑부터 해서 특정 수도원 및 학파에서 마법을 가르치고 있다. 다만, 아들렌 아카데미에 모든 인재가 몰리다 보니 평판이나 실력 면에서 밀릴 수밖에 없지만 말이다.
“당연하지요. 어쩌면 상행단의 호위 용병으로 고용됐을 수도 있습니다.”
“용병 마법사가 그렇게 흔해?”
“예, 평민 마법사들에게 용병 생활은 흔한 겁니다. 아카데미 졸업생들이나 당연하단 듯이 왕실 부처에서 일하지, 다른 마법사들에게 그건 정말 어려운 일입니다.”
“흐음···. 그렇군.”
“맞아요, 실은 저도 아스테리아에서 아들렌까지 오는데 꽤 많은 용병 마법사들을 봤어요.”
“오오! 그래?!”
실제 경험자의 등장에 크루딘의 얼굴에 화색이 돋는다.
“얘기 좀 해줘 봐. 어때? 세계를 누비며 수행을 쌓은 마법사는 뭐가 좀 달라?”
‘그놈의 세계를 누비는 수행.’
론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 그냥 고위 마법사는 아니고요. 대부분 원소 마법을 다루는 이들이었어요.”
“크으. 그렇군. 괜히 더 궁금해지네.”
그렇게 얘기하는 사이 어느새 일행은 상인길드에 도착했다.
“여기예요!”
“도착했어요!”
나란히 얘기하는 아이들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며 상인길드 건물을 쳐다봤다.
“와···.”
수많은 길드 중 상인길드가 가장 부유한 데에는 다 이유가 있었다.
수십 개의 상단들이 정차할 수 있는 커다란 마차장과 그런 상단들의 물품을 보관하는 창고, 상단과 거래하는 소매업자들을 위한 공간 등.
때문에 1층은 굉장히 시끄러웠다.
지금도 연신 소리를 지르며 가격 흥정을 하고 있었다. 마차를 인도하는 직원은 계속해서 뭐라 뭐라 화를 내는 것 같기도 했고.
“일단 올라가죠.”
누가 봐도 1층은 상단과 직접 거래하는 이들의 공간이었다.
“어···. 저희는 어떻게 할까요?”
남자아이가 묻고, 쪼끄만 여자아이는 상인길드 안쪽은 처음인지 연신 살피기 바빴다. 피식. 문득 누구와 비슷하단 생각에 웃음이 새나왔다.
“여기 아이들끼리만 남아 있기도 뭐한데 같이 올라가면 좀 그럴가요?”
“뭐, 난 상관없어. 애들이야 뭐 돌아다니면서 크는거잖아.”
아직 성년도 안 된 크루딘의 말에 웃음이 튀어나올 뻔 했지만, 이를 참고는 론이 아이들에게 말했다.
“너네 편한 대로 하거라. 따라와도 좋고, 거기서 기다려도 되고. 우리는 그럼 올라가죠.”
“네!”
“오케이. 올라가 보자고.”
그런 그들을 보며 남자아이는 여동생 이샤의 손을 꼭 쥔 채 따라왔다. 이런 곳에 따라오는 것도 그들에게는 경험이 되리라.
2층 접수창구에 가니 어렵지 않게 브뤼센 행 상단을 알아볼 수 있었다. 상단의 규모, 용병 채용 여부, 승객 여부 등등을 확인하고, 그중에서 적당한 곳을 골랐다.
중소 규모 상단에 상단 인원은 40명이고, 호위는 10명. 승객 마차의 정원은 8명. 그리고 가장 중요한 출발은 나흘 뒤였다.
보다 안락한 이동을 원한다면 대규모 상단에 합류하는 게 좋지만, 브뤼센이 변경이라 그런지 그곳으로 가는 커다란 상단은 없었다.
“그럼 계약도 했겠다 꼬마야, 네가 묵는다는 여관이나 가보자.”
“아, 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어이어이, 꼬맹이들 아직 그 여관에 묵겠다고는 안 했는데? 헛바람 너무 들이키네. 엉?”
“우리 여관 좋아요오...”
이샤가 다 죽어가는 목소리로 말한다.
“맞아? 앙?”
“흐잉!”
크루딘이 얼굴을 들이밀며 물어보자 결국엔 오빠 뒤로 숨어버렸다.
“장난은 그만 하고 어서 가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