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남작가 마법사의 회귀-20화 (20/115)

남작가 마법사의 회귀 - 20

퍼석.

후두두두둑.

응집력을 잃은 흙들이 땅으로 떨어졌다.

“허억···. 허어···. 간당간당이긴 해도···. 허어···. 근데 말이 되나?”

론이 멍한 눈으로 정면을 응시했다.

우우웅우웅.

정사면체의 마법진이 천천히 회전하고 있다. 저기, 그 골렘의 잔해 위에서 말이다.

원격.

복사 개념과 함께 4서클에 포함되는 마나 컨트롤이다.

마법사들은 2서클의 기본원소를 시작으로 서클을 거듭하며 그 범위를 넓혀간다. 그리고 저 원격 컨트롤은 빛에 대한 이해가 수반되어야 한다. 광자화 시킨 마나는 순식간에 공간 이동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여기서 더 나아가 이것의 숙련도가 쌓이고 5서클에 이르러 다중마법까지 완전히 섭렵한다면, 그때부터는 이제 블링크 혹은 텔레포트다. 마나 또는 마법진만 보내는 것이 아니라 실제 몸뚱아리가 이동하는 것이다. 6서클 말이다.

이렇듯 수많은 개념이 얽히고설켜 서로를 밀고 당긴다. 고등 마법은 그렇다.

단순히 ‘나는 불이 좋아. 그러니 불의 마법만 수련해야지!’ 하는 것은 정말이지 미련한 짓이다.

그런 면에서 론은 상당히 유익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아카데미로 인한 것이긴 해도 어찌 됐든 하위 마법까지도 찬찬히 되새기며 고서클 마법 수련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여러모로 자신에게 유리한 상황이 아닐 수 없다. 론이 염려를 내려놓았다.

“그래, 뭐 자연을 두고 내가 사기를 친 것도 아니니. 후우···. 그나저나 그럼 마나 호흡은 어떻게 바뀌었을지 궁금하네.”

깊은 명상과 정령사의 찬가, 그리고 깨달음으로 2서클에 오른 것 맞지만, 그것은 완전히 집중한 마나호흡이 아니었다.

그래서 궁금했다.

그가 자세를 고쳐잡고 호흡에 집중했다.

들숨, 날숨.

들숨, 날숨.

...

어둠뿐인 눈꺼풀 너머로 푸른 기운이 느껴진다. 이제는 익숙했다. 허나 그 푸른 기운은 하나가 아니었다.

둘, 셋···.

계속 수를 늘리더니 이내 다섯 개가 되었다. 그리고 이는 그대로 영맥으로 향했다.

후우우웅.

마치 순풍이 불어오듯 론의 붉은 머리카락이 휘날린다.

밀려오는 마나들.

이전과는 궤를 달리했다.

‘사기 맞네.’

***

여명 어스름.

5시쯤의 도서관은 조용하다.

어둠을 뚫는 건 오로지 태양의 몫이건만, 그리 힘든지 새벽을 밝히던 학생들의 기운도 뺏어갔나 보다.

모두가 숨죽인 도서관 4층.

슈우우욱.

론이 빠져나왔다.

“후우!”

간밤에 미로에서의 성취에 절로 흥이 났다. 조금 일찍 나오긴 했지만 상관없었다. 가끔 멍하게 가만히 있을 시간도 필요하지 않은가. 그것만큼을 뇌를 쉬게 해주는 건 없으니까 말이다.

그런데 무언가 어두웠다.

‘그림자?’

그렇다.

커다란 그림자였다.

자신을 완전히 덮고 주변마저 어둡게 만들 정도로 큰.

그리고 그 그림자 끝에는 그마만한 덩치의 사내, 아니 노마법사가 서 있었다.

“껄껄껄, 너였구나.”

“···”

왠지 기숙사로 돌아가 멍 때릴 시간 따위는 없을 것 같다.

“좀 걸을까?”

거절할 이유도 명분도 떠오르지 않았다.

“예.”

차마 그럴 수도 없었고 말이다.

그는 총장 럼블이었다.

학기가 끝난 아카데미의 새벽.

그 부지는 고요하기 그지없다.

오로지 럼블과 론의 발소리만이 아카데미를 울릴 뿐이다.

‘아니, 근데 마법이라도 쓴 건가?’

럼블은 분명 설렁설렁 걷는데 나아가는 속도가 장난이 아니었다. 그 이유가 덩치로 인한 보폭 때문이란 걸 인식할 때쯤 그가 말했다.

“여기서 총장을 지낸 지도 꽤 됐지, 껄껄껄. 한 30년?”

“그렇군요.”

목소리의 간격을 느낀 걸까.

럼블이 걷는 속도를 맞췄다.

“딱히 후배 양성에 관심은 없었는데 전대 총장이 그리도 부탁했었지. 적임자를 구할 때까지라면서 말야. 해서 잠깐만 앉아 있으려 했는데, 앉혀 놓고 도망갔더군. 껄껄껄.”

럼블 그 또한 7서클에 오른 자였기 때문일까. 그는 초연했다. 지위에 대해 그다지 큰 관심은 없다는 듯이.

아들렌 마법 아카데미 총장.

그 자리가 가지는 위상은 재상(宰相) 바로 아래다.

그도 그럴 게 왕실 각 부처로 나아가기 위한 필수적 교두보가 마법 아카데미였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런 아카데미의 총장은 추천은 물론이고 가문 ‘제명’의 최종 승인자였고.

온갖 부귀영화를 누릴 수 있는 자리. 그럼에도 럼블의 관심사는 그쪽이 아니었다.

“그런데 너는 참 독보적이구나.”

“저···. 말씀이십니까?”

“붉은 머리에 푸른 눈동자라. 어디 보자, 이번 입학 때 유별났던 학생이···.”

허공을 쳐다보며 생각을 더듬던 럼블이 이내 생각이 났는지 고개를 끄덕였다.

“스펜서 가문의 론이군.”

“맞습니다.”

“1서클의 소유자로 정사면체의 복합마법진을 당돌하게 펼쳤다지, 입학 인증에서?”

“하하···. 예, 어찌하다 보니.”

“그리고 한 달도 안 돼서 플라델의 미로에 들어가고.”

“예?”

총장이니 당연히 입학 사항에 대해서는 알 수 있다 생각했지만, 플라델의 미로는 아니었다.

당장 지금도 어떻게 알고 미로 앞에서 기다렸는지 궁금했는데, 럼블은 더 나아가 론이 언제부터 들어갔는지도 알고 있었다.

“어떻게···. 아신 겁니까?”

“껄껄걸. 어떻게 알긴. 플라델, 그 인간이 남기고 간 것 때문이지. 덕분에 신경 쓸 일만 늘었어. 끄응···.”

“남기고 간 것···.”

7서클의 대마도사들. 그들은 대체 어디까지 가능한 걸까.

“로키아 산맥의 영맥은 모든 마법사들이 원하는 마나 스팟이지. 게다가 그 늙은이가 짜놓은 설계는 상당해서 수련 장소로도 너무나 용이하고 말야. 쯧쯧쯧···. 그래서 80 먹은 이 노인네가 그 미로 경비나 서고 있지.”

확실히 그러긴 했다.

그보다 좋은 수련 공간은 전 세계를 뒤져도 없을 것이다. 게다가 부족한 이론을 채워 줄 아카데미 교사진까지 있으니, 아들렌 아카데미가 명문일 수밖에 없는 이유다.

“과거 플라델은 미로를 완성하고 총장실에 미로의 지도를 놓고 갔단다. 경비를 똑바로 서란 게지. 껄껄껄. 뭐 실은 나도 어린 것들의 성장이 제법 볼만해서 대충하지는 않았는데 말야. 너는 정말 특이하구나.”

럼블의 심유한 눈빛이 론을 향했다.

“30년 재임 간 미로의 1서클 진입자는 오로지 평민이었단다. 애초에 그마마한 재능이 있는 귀족들은 가문의 도움을 받아 대부분은 2서클로 입학을 하지. 혹은 2서클에 거의 다다른 상태거나.

그리고 그렇게 재능 있는 아이들은 아카데미에서 닦은 지식과 마나 컨트롤 센스로 미로에 진입한단다. 최소, 2학년에. 나 또한 그랬고 말이야.”

그러면서 럼블이 쓰고 있던 안경을 한 번 들췄다.

“내 재임 기간을 제외하고도 역사상 1학년 진입자들은 얼마 없지. 가문의 형제를 통해 위치와 같은 지식 조건을 충족한다고 해도 진입은 별개야. 인지조차 못 하는 학생들이 수두룩하고, 인지한다 해도 어찌해야 할지 감조차 못 잡는 애들이 대부분이니까. 헌데 너는 진입했구나. 1학년에다 1서클인데 말야. 그런데 또 입학 인증 때는 3서클의 복합마법진을 펼쳤고.”

“...”

론 자신이 생각해도 이상하긴 했다.

“기연인가?”

“예?”

“논리적으로 앞뒤가 맞지 않아. 이를 설명할 수 있는 건 본인 능력 밖의 무언가가 있었다고밖에 결론이 나지 않지. 어떻게 생각하나, 론 학생?”

지극히 타당한 추론.

그래서 수긍할 수밖에 없었다.

“맞습니다. 기연이었습니다. 시작은 둔한 자가 마주해야 하는 삶의 회의(懷疑)였습니다. 그런데 그게 어느샌가 깊은 고찰이 되더군요.”

여러 가지 생각이 들었지만, 론은 적당히 그간의 일들을 엮어 대답했다.

“허어···. 고작 열다섯에 생의 고찰이라!”

“그리고 함께해주는 친구들의 영향도 컸습니다.”

“껄껄걸, 그래서 데려갔던 게구만. 학생들에게 최대한의 자유를 보장해 주기 위해 내 간섭을 최소화하는데도 재밌더군. 이어서 들어간 두 명도 1서클이었어. 번뜩이는 감각과 재능을 소유해 미로에 진입은 성공했지만, 필시 누군가의 조력은 있었을 터.”

정말 그러했다.

사티넬과 크루딘 모두 관을 깨는 천재들이었다. 신체 상태라던가 가정환경의 차이로 가려져 있을 뿐.

“예, 혼자 취할만한 곳은 아니라고 생각했습니다.”

“껄껄걸.”

모든 의문이 해소된 것은 아니었다.

허나 그래도 론의 심성이 나빠 보이진 않았다.

“같이 들어간 이들은 모두 귀족 친구들인가?”

“한 명은 평민입니다.”

“호오?”

“총장님께서도 말씀하시지 않았습니까. 마법을 배우는 데 있어 혈통과 작위는 무의미하다고.”

말은 쉽다.

하지만 이제껏 제 영지에서 상전처럼 살던 이들이 말 한번 듣는다고 바로 바뀌는 게 가능할까. 궁금한 것도 많고, 물어볼 것도 많았다.

하지만 럼블은 참았다.

천재는 이해하는 게 아니다.

그들이 천재라 불리는 이유는 그만큼 그들의 행보가 파격적이고 이해가 안 되는 것이기에 그런 것이다. 그런데 자신의 기준으로 재단하고 가두려는 것은 무지의 극치다.

이런 이들은 오히려 더욱 날개를 펼칠 수 있도록 놔두어야 한다.

“껄껄걸! 재밌는 학생이군.”

럼블의 눈빛은 이미 유해졌다.

재능과 더불어 심성도 나쁘지 않다면 그저 보는 것만으로도 꽤 재밌을 테니까 말이다.

“그래서 미로와 아카데미의 첫 학기는 마음에 들었느냐?”

“예, 충분히.”

럼블이 지긋이 쳐다봤다.

론의 푸른 눈동자는 흔들림 없이 고요하기만 하다.

‘살면서 이런 모습도 보는구먼.’

재능으로 판단할 만한 수준이 아니었다. 그리고 저 고요한 눈동자 너머 자리 잡은 두 개의 마나 서클. 심후했다. 과연 열다섯 1학년이 맞나 싶을 정도로.

“그렇다면 다행이군. 껄껄껄. 그럼 나중에 또 보자꾸나. 이 넓은 아카데미를 전부 경비 서려면 바빠서 말야.”

“예, 다음에 또 뵙겠습니다.”

간단히 묵례하고 고개를 들자 그곳에는 아무도 없었다.

***

럼블과의 만남 때문이었을까.

론이 붙였던 눈을 떴을 때는 이미 해가 높이 떠 있었다.

“이런 날도 있군.”

누가 잡으러 오는 것도, 학기 중도 아니었기에 론은 느긋하게 침상에서 일어났다.

“다들 도서관에서 탐방 준비하려나.”

평소보다 배는 넘게 잤다.

숙면으로 인해 육신의 피로가 가신 것도 있지만, 역시 2서클에 오르고 난 뒤의 몸 상태는 전과는 비교를 달리했다.

“흠흠흥.”

안하던 콧노래까지 하며 준비를 마친 론은 기숙사를 나섰다. 거칠 것도 없이 바로 도서관으로 향하는 발걸음이 경쾌하기만 하다.

2층의 커다란 테이블.

그곳에 한 소녀가 책들을 펼쳐 놓은 채 이것저것 살피며 읽고 있다.

그런 그녀가 갑자기 고개를 든다.

“아, 오셨군요!”

“좀 늦었습니다.”

주위를 둘러보는데.

“와···. 론, 저거 진짜 늦잠 잘 때도 있네.”

한 박자 늦게 크루딘이 목소리를 냈다. 뒤쪽의 책장들 사이로 그의 얼굴이 보였다.

“정말 지금까지 주무신 거예요?”

“네, 뭐···. 잤습니다.”

“아아···. 어? 론님, 뭔가···.”

“뭐 있습니까, 사티넬?”

“혹시, 2서클로 오르신 건가요?”

순간 정적이 흘렀다.

같이 있을 때면 으레 장난을 치던 크루딘도 조용했다. 책장들 사이서 분명 들었을 텐데 말이다.

“어떻게 알았습니까?”

“와! 정말 대단하세요! 론님! 축하드려요!”

“아, 네 감사합니다.”

갑작스런 축하에 론이 떨떠름 해했다.

“하···. 예상은 했지만, 이렇게 빨리 오르다니. 후우! 그래도 축하한다.”

책장 사이에 있던 크루딘이 테이블 쪽으로 왔다.

“쳇, 이제는 아주 물 만난 물고기마냥 나아가겠군.”

잔뜩 투정이 난 크루딘이었지만, 론은 그저 미소를 지었다. 말은 그러할지라도 그의 마음속에 시기 질투 따위는 없음을 알기 때문이다.

‘크루딘. 당신도 이제 곧입니다.’

“뭐, 운이 좋았던 거지요. 그나저나 사티넬은 그게 느껴집니까?”

“그냥···. 평소랑 다르게 좀 크게 느껴져서요? 실은 저도 잘 모르겠어요. 반은 찍은 거 같기도 하고. 힛.”

“그렇군요. 뭐 축하는 그쯤으로 하고 저희도 이제 출발 준비를 해야죠.”

“그래! 아직 우리한텐 마법 수행이 남아있다고!”

론이 없는 사이 그들은 유적 탐방 및 토벌을 두고 꽤 자료 조사를 한 듯했다.

사실 회귀 전 유적관리단에 있으며 파견도 곧잘 나갔던 론에게는 그리 어려운 건 아니다. 하지만 둘은 처음이었다. 사소한 의견, 의논 하나하나가 다 좋은 경험이 될 것이었다.

“챙길 게 많습니까?”

“일단 초심자 용병 세트? 이건 들고 가면 좋을 거 같아. 부싯돌 세트, 간이 삽, 새끼줄, 도축칼 등등 노숙용으로는 이거만 한 게 없다더라고.”

“오오. 그렇군요.”

론이 적당히 반응하자 이에 질세라 사티넬도 말을 이어갔다.

“음음, 저는 동선 위주로 살펴봤거든요. 수도에서 브뤼센 영지까지 가는 길 중에 어디가 괜찮을까 하고···.”

확실히 대륙 북부에서 아들렌까지 횡단한 그녀답게, 사티넬은 일정의 전체적인 면을 보았다.

그렇게 그들은 자신들이 조사한 자료와 지식, 경험을 토대로 하나둘 의견을 내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내 대략적인 청사진이 그려졌다.

올해의 마지막.

그 끝을 장식할 여정이 이제 곧 출발하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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