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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작가 마법사의 회귀-16화 (16/115)

남작가 마법사의 회귀 - 16

어디선가 역한 냄새가 났다.

분명 언젠가 맡아 본 듯한 비릿한 냄새.

그렇다.

이것은 혈향이다.

그런데 그렇다면 그와 더불어 나는 썩은 내는 또 무엇이란 말인가.

불쾌한 자극에 결국 론이 의식을 차렸다.

“으으···.”

감고 있던 눈을 떴다.

까아악. 까악. 까악.

“헉!”

시커먼 까마귀들이 날아다니고 있었다.

폐허가 되어 버린 도시였다.

눈앞을 가득 채우는 충격적인 모습.

론이 헛숨을 들이켰다.

한 차례 천재지변이 훑고 지나가기라도 한 걸까. 커다란 도시는 잿더미가 되어있었다. 건물을 무너지고, 사방에서 썩은 내가 진동을 했다.

그리고 그 썩은 냄새에 몰려든 까마귀 떼.

놈들이 쪼아대는 건.

“윽!”

사람이었다.

남자, 여자, 아이, 어른 할 것 없이 처참하게 도륙되었다. 그리고 간간이 보이는 찢어진 아들렌의 국기. 아들렌의 도시인 것이다.

“누, 누가 이런 짓을···. 우웨엑!”

헛구역질이 나왔다.

론이 정신을 가다듬기도 전에 무언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읏···?”

자신은 그저 쭈그려 토악질하고 있었을 뿐인데, 사위가 움직인다.

‘누구한테 업혀있는 건가?’

다시 확인해 봐도 자신의 발은 그저 땅 위에 붙어있을 뿐이다. 아니 붙어있었는데, 그게 밀려나고 있었다.

“이, 이게 뭐야?”

그 무엇도 할 수 없는 불가항력이 그를 이끌었다.

놀람도 잠시.

이내 잘리고, 뜯기고, 무너져버린 눈앞의 상황에 정신이 멍해졌다. 80년이란 긴 세월을 살았던 그였지만, 이토록 심한 전쟁의 참상은 처음이었다.

얼마나 이동했을까.

행정청으로 보이는 무너진 건물 앞에 수많은 사람의 사체가 걸려 있었다.

그런데 그중 한 명이 생전의 의지를 담기라도 한 듯 눈을 부릅뜬 채 죽어 있었다.

“아···.”

자세히 보고 싶지 않았다.

무엇 하나 할 수 없는 상황이었기에 이런 참혹한 상황을 계속 마주해야 한다는 게 정신적 피로감을 더했다.

허나 마음과는 별개로 몸은 가까이 이동했다. 그리고 그 거리가 1미터에 이르자, 이제는 느껴졌다. 생전에 그가 느꼈을 감정이.

마치 죽어서까지 그 고통을 이어서 받을 것 같았다. 감겨 주고 싶었다. 하지만 자신은 그 무엇도 관여할 수 없었다.

그런데 뒤에서 손이 튀어나왔다.

주름진 손.

그 손이 죽은 이의 눈을 감겨 주었다.

‘다행이ㄷ···.’

상념이 채 이어지기도 전에 주변이 암전되어 갔다.

슈와아악.

“흡···!”

순식간에 다른 장소로 떨어졌다.

이번에는 높디높은 성벽 위.

정신을 차릴 새도 없이 무언가 날아왔다.

쐐애애액.

쐐액.

쐐애애애액.

하늘을 덮는 수많은 화살.

미사여구가 아니었다.

정말로 엄청나게 많은 화살이었고, 이내 영원히 꺼지지 않을 것 같은 태양마저도 덮어버렸다. 밝은 대낮에 갑자기 찾아온 어둠.

전생에도 차마 보지 못한 광경에 론은 넋이 나갔다.

그리고 이제는 그 화살들이 떨어진다.

“안 돼!”

둥 둥 두두둥 둥 두둥 둥 둥.

반투명 하얀 막에 의해 수백, 수천의 화살들이 막혔다. 고개를 돌리니 성루에 마법사들이 줄줄이 포진한 채 마법을 펼치고 있었다.

‘매직 실드!’

그렇다. 상위 마법 혹은 오러가 아니고서야 저런 재래식 무기는 매직 실드로 충분했다. 다만 철통 수비를 위해 그들은 계속 마법진을 유지했다.

‘이렇게 수성(守城)을 하는 건가.’

순조롭게 적의 군세를 막을 것 같았다.

이전에 참상을 봤기 때문일까.

적어도 이 성 만큼은 그러한 참상에서 벗어날 것 같다는 생각에 마음에 안심이 되었다.

척.

갑자기 머리 위로 드리워지는 그림자.

우우웅.

백발이 흩날리는 노년의 마법사였다. 그가 지팡이로 하늘을 가리키며 마나를 쏟아냈다.

쿠구구구구궁!

엄청난 중압감이다.

지진을 방불케 하는 진동에 론이 양손을 벌리며 중심을 잡으려 했다.

“허···. 뭐, 뭐야?”

거대한 마나가 회오리쳤다.

그가 아는 보통의 마법 발현 방식이 아니었다. 뭐라 결론을 내리기도 전에 저 멀리 아득한 상공에 마법진이 펼쳐졌다.

‘미친···. 정십이면체.’

정십이면체의 복합마법진.

5서클까지 올랐던 론이었음에도 정십이면체는 전혀 감이 잡히지 않았다.

허나 마법사의 본능을 거부할 순 없었다. 마법진을 머릿속에 담기 시작했다. 수많은 개념들이 얽히고설켜 수많은 마법식으로 파생됐다. 그리고 그렇게 하여 만들어진 마법진이 열두 개.

삐이이이.

“크윽!”

극심한 현기증이었다.

뇌가 더 이상의 인식과 이해를 거부하는 것 같았다.

“하아···. 하아···. 하아···.”

두통이 지나고, 고개를 들자 이제는 육안으로 보일 정도로 그 마법이 드러났다.

저 하늘 멀리 먼지 혹은 입자 같은 것들이 모이는 곳에 커다란 구체가 떠 있었다. 그리고 그것은 지금도 계속해서 크기를 불려 나가고 있었다.

척!

헌데 노년의 마법사는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남아 있던 왼손도 하늘을 향해 펼쳐졌다.

“아···.”

초극상의 다중마법이었다.

이제는 그저 멍하니 바라봤다.

정십이면체와 정팔면체의 복합마법진이 동시에 펼쳐지고 있었다.

“아···.”

무엇일까 라는 의문 따위는 필요 없었다.

앞선 커다란 구체가 불타오르기 시작했다.

멀리서도 그 열기가 느껴질 무렵 노년의 마법사가 말했다.

[메테오.]

구후우우우웅.

생애 처음 듣는 소리였다.

대기를 찢어발기는 듯한 강력한 파공음을 뿜으며 불덩어리가 떨어졌다. 아무리 상식을 벗어난 게 마법이라지만, 눈앞의 것은 그마저도 완전히 초월해 버렸다.

꽈아아아앙.

“허···.”

적들의 공격을 무(無)로 돌리고, 적당히 퇴군시키는 게 아니었다.

압도적인 차이.

노년의 마법사는 적진 한가운데에 마법을 쓰지 않았다. 저 멀리. 수백 미터 거리에 떨어뜨렸음에도 그 여파는 그들의 코앞까지 전해졌다.

직경 수백 미터에 달하는 구덩이와 그 일대를 휩쓸어버린 잔해. 어떤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감히 가늠하는 것조차 불가능한 힘의 차이.

움직이는 이는 없었다.

고요했다.

그런 가운데 커다란 목소리가 대지를 울렸다.

“물러나라. 그렇지 않으면 다음은 너희다. 그리고 그 다음은 샤허드 제국이다.”

누군가는 말한다.

죽이지 않으면 죽는 곳이 전쟁이라고.

허나 이 마법사는 그런 전쟁을 마치 하찮은 놀이 보듯 종식시켜버렸다.

일신의 힘으로 저 엄청난 제국군을 찍어 눌러버린 것이다.

“플라델!”

“플라델!”

“플라델!”

성내에서 모두가 연호했다.

그가 바로 플라델 카운트였다.

‘오푸스리에로 마법을···.’

슈아아악

또다시 공간이 바뀌었다.

“흣···!”

공간 전이가 아닌 정신계 마법의 극치.

론은 오푸스리에로를 실시간으로 경험하고 있었다.

“후우···. 결국 플라델님은 전대 대마도사 오웬님의 고유마법까지도 섭렵하셨던 거군요.”

사실 오웬이 왕립도서관에 남긴 것은 단순한 마법 아티펙트가 아니었다. 그녀는 오푸스리에로를 어떻게 쓰는지 자신의 기억을 세세히 담았고, 7서클에 이른 자라면 능히 쓸 수 있도록 후대를 위해 안배한 것이었다.

그리고 7서클에 오른 플라델은 이러한 그녀의 유지를 이어받았고 말이다.

오푸스리에로 마법이란 걸 알았기 때문일까.

론은 좀 더 여유롭게 눈앞의 상황을 바라볼 수 있었다.

역사서에 나왔던 대로 보여주고 있었다. 다만 글자와 실제 상황이 주는 괴리감이 너무 커서 놀라울 뿐. 이번에는 비가 억수로 쏟아지는 한 지역이었다.

꽈르릉 꽝!

천둥까지 치고 있었는데, 산 밑으로 보이는 중소도시에 물이 차고 있었다. 저도 모르게 도시를 훑었다. 어디 피할 곳이 없을까 하고.

“아···.”

이곳은 분지(盆地)였다.

높은 지대와 산으로 둘러싸인 평지 말이다. 물이 빠져나갈 만한 낮은 곳이 보이지 않았다.

장대같은 빗줄기 사이로 사람들이 보였다. 다급히 아이를 안고 움직이는 사람들, 지붕 위에서 소리치는 사람들. 무언가에 타고 떠다니는 사람들.

상황은 급박했다.

‘기록에 보면 분명 홍수, 가뭄, 지진 등의 천재지변에 맞서 양민들을 구했다고 했는데···.’

이미 자신은 이 상황에 개입할 수 없음을 하기에 초조히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플라델이 과연 어떻게 할지.

“어어···. 어···.”

그리고 역시나 무언가 일어났다.

론의 신체가 분지의 가운데 쪽으로 날았다. 물에 잠긴 도시가 훤히 보이는 상공.

이제는 익숙한 플라델의 지팡이가 지면을 가리켰다.

우우웅.

소리의 발원지는 바로 밑이 아니었다. 저 멀리.

애초애 길목이었던 곳을 목표로 해서 그는 마법을 펼쳤다.

그리고 펼쳐진 마법진은 정팔면체의 복합마법진.

마치 트럼프 카드의 다이아몬드가 입체도형이라도 된 듯 빙글빙글 돈다.

우우웅.

그런데 하나가 아니었다.

“하나, 둘···. 셋!”

총 세 개.

대마도사의 한계는 어디까지일까.

구구구구궁.

마법진이 펼쳐진 곳의 지대가 조금씩 가라앉는다. 애초에 길목이었던 곳을 목표로 해서 그런지 마법의 효과는 그래도 비교적 빨리 드러났다.

솨아아아.

물길이 만들어지고 물이 빠지기 시작했다. 그 짙은 물줄기가 상공에서도 훤히 보였다.

“허어···. 허어···. 허어···.”

‘음?’

자신이 낸 소리가 아니었기에 순간 고개를 두리번댔는데, 깜빡하고 있었다.

“아.”

플라델도 사람이었던 것이다.

정팔면체의 복합마법진을 세 개씩이나 유지하고 있는데 괜찮을 리가 없지 않은가.

그렇게 플라델이 충분한 배수로를 다 만들었을 때쯤 눈앞의 시야가 어두워졌다.

“그럼 이번엔 어디를 또···.”

새카만 암전.

‘하나, 둘, 셋, 넷···.’

조용히 수를 세며 기다려 보지만 더 이상 보이는 건 없다.

끝인 것이다.

곰곰이 생각하던 론은 이내 담담히 말했다.

“혹시 플라델님께서 남기신 말씀이라던가 아니면 자신에 대한 환상 같은 것도 있습니까?”

이렇게 오푸스리에로 마법까지 남길 정도면 생애 하고 싶은 말 정도는 있을 것 같았다. 그 정도의 환상이나 유서는 플라델 수준에서 어려운 게 아니니까 말이다.

둥, 둥, 둥, 둥.

익히 봐 온 빛이 통로를 밝힌다.

그리고 그 빛 끝에 공동이 보였다.

론이 천천히 걸어갔다.

이전에 어스 골렘과 싸웠을 때처럼 커다란 공동은 아니다. 그저 사람이 만나 대화하기에 충분한 그런 공간.

그 공간에 사람이 보였다.

럼블 총장과는 또다른 느낌의 백발.

허나 론은 그게 누구인지 알고 있었다.

한 걸음 나아가며 론이 말했다.

“만나게 되어 영광입니다. 플라델님.”

플라델은 웃고 있었다.

푸근한 미소.

그가 아카데미의 교장이었다면 많은 학생이 좋아하지 않았을까 싶었다. 실제 아들렌 아카데미 총장 중에는 7서클에 이르지 못한 자들이 대부분 이었으니까 말이다. 7서클 럼블이 재임 중인 당대가 정말 운이 좋은 것이었다.

“반갑습니다. 후배 여러분. 미로를 만든 플라델입니다.”

“네 반갑습니다.”

소통할 수 없는 환상 마법이었음에도 론은 대답했다. 그는 그럴 만한, 그런 대우를 받을 만한 사람이었다.

“후대에도 원소 마법 때문에 재시험을 치르고 있을지 궁금하군요.”

피식.

“네, 여전히 낙제를 받은 학생들은 합격할 때까지 시험을 쳐야 합니다.”

문득 떠오른 전생의 기억에 론이 미소를 지었다.

“저는 워낙에 재능이 출중해 한 번에 합격했지만, 제 친구들은 그러지 못해서 꽤나 고생을 했었지요.”

그러면서 플라델이 눈을 찡긋한다. 가문의 동생 레비아처럼 장난스러운 표정을 짓는 건 덤이었고.

그 얘기를 시작으로 플라델은 자신의 과거를 들려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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