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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작가 마법사의 회귀-14화 (14/115)

남작가 마법사의 회귀 - 14

신분 높은 쓰레기.

막서스는 지금 이도르를 쓰레기라 욕하면서도 은근히 그의 가문에 대해 높였다.

백작가라는 가문 앞에 감히 그럴 수 있냐는 것이다.

소리 내 웃진 않았지만, 씨익 벌어진 그의 입가가 묘하게 뒤틀려있다. 평범한 사고의 소유자는 아니다.

“왕국에 아직도 가문만으로 입을 쳐 불리는 사람이 있었나? 진즉에 영지로 끌려가서 소꿉놀이나 하는 줄 알았는데.”

허나 론은 신경 쓰지 않았다.

아들렌 왕국에서 가문의 위세는 작위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다. 제 영지에서 왕 노릇 할 게 아닌 이상 능력이 뒷받침될 때만 그 작위에 힘이 실린다.

론의 말에 그 답이 있었다.

그리고 가볍게 검지를 들어 올렸다. 모래 덩어리가 위로 솟구친다. 모두가 어어 하며 이를 쳐다보는 사이. 론은 올렸던 검지를 뒤집어 내리꽂았다.

콰아앙!

“커헉!”

강력하게 내리꽂힌 모래.

이도르가 바닥에 쓰러졌다.

저벅저벅.

그런 그의 앞으로 론이 걸어갔다. 그리고는 이도르의 눈높이에 맞춰 쭈그려 앉았다.

“다음부터 마법 보충 수업이 필요하면 말해라. 내가 직접 가르쳐줄 테니.”

우우웅.

이도르의 눈앞에 정사면체의 복합마법진을 만들었다. 입학 인증할 때 대충 만든 가(假)마법진이 아니었다. 완벽한 마법식으로 채워져 있었다. 마나만 공급된다면 당장이라도 3서클 마법이 튀어나올 정도로 말이다.

“허. 허억!”

3서클 중에서도 수준급 마법사만 펼칠 수 있는 정사면체의 복합마법진. 그것을 이제 막 입학한 신입생이 펼친 것이다.

일대가 적막에 휩싸였다.

몰래 기습을 하려던 이도르의 다른 일행도 이를 보고는 그저 침만 삼킬 뿐이었다.

기괴한 미소를 짓던 막서스 또한 더는 입을 벌리지 못했다.

“가시죠.”

“아, 아! 넷!”

멍해 있던 사티넬이 허둥대며 론에게 따라붙었다.

**

우물우물.

“으음, 음. 괜찮네요. 매우면서도 맛있다길래 궁금했었는데. 사티넬도 입맛에 맞아요?”

“넷! 네?!”

사티넬이 화들짝 놀랐다.

“아아, 네네 그렇죠. 네 맛있어요! 매콤하면서도 달콤한 게 한입엑!”

콕. 정신을 어디에 두는 건지 그녀의 포크가 입이 아닌 코로 갔다.

“으윽! 킁! 에엣치! 아으 매워. 뭐야아···.”

옆에 있던 티슈 함에서 몇 장 뽑아내 사티넬에게 건넸다.

“닦으세요.”

“아아, 강사함미당.”

콧물까지 나왔나 보다.

그건 그렇고 아까 이도르와의 일이 꽤나 충격적인 듯 했다. 실은 누가 봐도 충격적일 것이다. 계급이라는 것이 엄연히 존재하는 세상이고, 각 영지에서 그들은 평민들 앞에 왕이나 다름없으니까.

그런데 작은 남작가의 자제가 높디높은 백작가의 자식을 뭉개버렸다. 그것도 아주 매몰차게.

평민들 입장에서는 당연히 충격적이고 말이 안 나올 상황이었다. 허나 아들렌 왕국은 조금 다르다. 평민들은 잘 실감하지 못하겠지만, 왕실을 마주한 귀족들이라면 알고 있다.

왕이 어떻게 귀족들을 어떻게 다스리고, 견제하는지.

철저하게 능력 위주다.

고위 작위의 자제라 할지라도 능력이 안 되면 절대로 왕실 요직에 앉을 수 없다. 가뜩이나 사병 제한과 더불어 영지별 왕국군 배치로 귀족의 입지가 줄어들고 있다. 부처별 회의에서도 발언권은 오롯이 능력에 의거한 ‘직위’에서 나온다.

그리고 그러한 분위기를 조성하는 게 왕실 직속의 감찰부였다. 생각해보면 그래서 막서스가 그리 나섰는지도 모른다. 그의 가문이 대대로 맡아 오던 것을 건너 건너 서라도 들었을 테니까 말이다.

‘그렇다면, 어찌 됐든 발생해야 할 사건은 발생하되 그 사건의 구성 인물들이 좀 바뀔 수 있다는 건가.’

일련의 상황들을 거치며 론은 나름의 결론을 내리고 있었다. 어찌 됐든 자신은 미래를 아는 사람이니까 말이다.

그러면서 다시 한번 사티넬과 크루딘이 참 대단하다고 느꼈다. 미래에 대한 정보도 없이 그들은 의지와 신념만을 가지고 위기를 헤쳐나갔다.

어린 나이에 대륙의 북부에서 내려온 그녀나, 왕국이 넘어가는 상황에서 신념을 가지고 흑마법 세력에 대항했던 그나.

말해줄 건 말해줘야 할 듯 싶었다.

“사티넬.”

“아 네네. 다 닦았어요. 이제 괜찮아요.”

“네, 혹시 왕국에 대해 얼마나 아십니까?”

“왕국이라면 아들렌 왕국이요?”

“네.”

“어···. 일단 마도 왕국이라는 것과 마법선도국이고···그 아카데미에 있는 총장님이 대마도사라는 것···. 정도네요. 헤헤···.”

“잘 알고 계시네요. 그런데 왕국 내부 사정은 다들 모르는 거 같아서요.”

“내부 사정이요?”

사티넬이 눈을 동그랗게 뜨는 게 호기심이 동한 듯 했다.

“평민들에게는 쉬쉬하고 있지만, 아들렌의 국가 운영 방식은 다른 국가들에 비해 상당히 파격적입니다. 그리고 이는 각 지방의 영주, 즉 귀족들에게 상당한 압박과 견제이기에 평민에게 알려지길 매우 꺼리죠. 재능을 높이 사고 능력 위주로 기용한다는 말은 많이 들어봤을 겁니다.”

“네, 북부에서 오는데 그런 얘기 많이 하더라고요. 아들렌은 그래도 능력이 있다면 평민에게도 기회를 많이 준다고.”

사티넬도 들은 게 있기에 고개를 끄덕이며 반응했다.

“네, 맞습니다. 그런데 좀 더 정확히 말하면, 왕국은 그 인재 기용에 있어 귀족과 평민을 가리지 않습니다. 반발하는 건 오로지 귀족뿐입니다. 즉, 이미 요직에 앉아 있는 귀족의 반발만 없다면 국왕은 아무 스스럼 없이 능력 있는 평민으로만 채울 수도 있다는 말입니다. 그리고 때로는 그 평민이 귀족 위에 설 수도 있겠죠. 실제 그런 부서도 좀 있구요.”

“아···. 저 그런데 혹시 반기...음음. 부정적인 태도는 없었나요? 지금 론님이 말씀하신 건 듣기만 해도 너무 파격적이라 귀족들이 가만있지 않을 거 같아서요.”

사티넬이 얘기를 집중해 들으면서도 현실적인 부분에 대해 집었다.

“하하···.”

순간 차분하기만 하던 론의 입에서 헛웃음이 튀어나왔다.

“웃긴 건 이 모든 게 귀족들의 입방정에서 시작됐다는 겁니다. 마법은 고귀한 지성의 산물이니 이에 어울리는 건 귀한 핏줄뿐이라며 국법까지 만들려 했었죠. 허나 언제부턴가 나타난 평민 마법사들은 귀족과 다를 바 없었고, 어느 때는 더 뛰어난 모습을 보였죠.

그것이 마도 왕국으로 자리매김한 아들렌의 시작이었습니다. 국왕은 칙령 선포와 함께 왕실 직속 감찰부를 만들고 인재를 모집했습니다. 그게 바로 아카데미였지요. 압도적인 재능과 지성에 밀린 귀족은 명분을 잃었습니다. 반발한다고 한들 왕실 감찰부의 보기 좋은 먹잇감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감찰부는 철저하게 능력 위주의 차출 집단이거든요.

아무튼 그래서 지금은 왕실 조직의 적지 않은 부분에 평민 출신들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아···.”

조금씩 납득해가는 사티넬을 보며 론이 말을 이어갔다.

“때문에 대세를 아는 귀족들은 어떻게 해서든 능력으로 증명하려고 합니다. 반면 아까 그 이도르는 흐름도 못 읽는 퇴물일 뿐인 거구요.”

“그렇군요.”

사티넬이 고개를 끄덕였다.

평민으로서 왕실의 사정이나 귀족 견제 대한 얘기는 상당히 생소한 것이었다. 허나 그랬기에 더욱 귀한 얘기였다.

“후우···. 뭐 그런데, 사실 이렇게 말하는 이유는 저도 경각심을 갖기 위해섭니다.”

“네? 경각심이요?”

“방금 사고치고 오지 않았습니까.”

“아아! 하, 하하···. 그렇죠.”

정말이었다.

이제껏 도적들을 퇴치하고, 마법 시범을 보이고, 플라델의 미로에 들어가고 하는 것과는 차원이 다른 행보였다. 지금까지의 그 무엇보다 커다란 반향을 불러올 만한 것이었다.

그리고 그마만한 결심이기도 했다.

더 이상 멀뚱거리며 주저하고 싶지 않았다. 누군가는 하루하루 정말 최선을 다해, 목숨을 바쳐 살아가고 있다.

론이 눈에 빛을 내며 사티넬을 쳐다봤다.

“마법 이론 보충 수업 7시부터죠?”

“아 네네.”

“이거 먹고 잠깐 같이 수련이나 할까요?”

“네! 좋아요!”

페퍼치킨이라는 신메뉴의 매콤함이 왠지 모르게 입에 착착 감겼다.

**

첨벙첨벙.

퍼억.

쏴아악.

두 개의 파도가 서로 부딪히며 요란한 소리를 계속 냈다.

“4대 원소 중에서 물은 통제력을 빼앗기 가장 쉬운 원소입니다.”

“허억···. 허억···. 헤에···.”

사티넬이 지속적인 마나 출력으로 숨이 거칠어졌다.

“무리하게 형체를 키우기보단 통제력에 더 힘쓰세요.”

“네엣···! 읍···.”

그 후로 사티넬은 조금 더 버티다 이내 주저앉았다. 스스로 마법을 취소시킨 것이다.

“수고하셨어요. 그래도 이 정도면 클래스 내에서 원소 대결로 질 일은 없을 겁니다.”

“있잖하요오.”

“네?”

“론 님이효오···. 허어···.”

숨이 가쁜지 그녀의 말이 풀어졌다.

피식. 본 실력까지 치면 이미 그 차이가 월등했지만, 그런 자신을 대결 상대로 생각하는 사티넬이 귀여웠다.

“그건 맞긴 하네요.”

그렇게 호흡을 고르며 대련을 복기하는 사이 훈련장에 한 사람이 들어왔다.

“어이~”

크루딘이었다.

그런데 어째 얼굴에 웃음기가 한가득이다. 뭘 듣고 온 게 틀림없었다.

**

“그래서 이도르하고 걔네 무리까지 한 방에 슥삭 해버렸다고?!”

“예···. 뭐, 그런데 다 알고 온 거 아녔습니까.”

“와우~!! 알지. 근데 이게 건너 건너 소문으로 듣는 거랑 당사자한테 직접 듣는 거랑 같겠어? 푸하하하! 론, 이거 다시 봤어. 조용조용한 줄만 알았는데 꽤나 뜨거운 면이 있었네. 크으···!”

팡팡!

크루딘이 론의 등허리를 거칠게 두드렸다.

“뜨겁기는 무슨···.”

“그래서 뒷감당은 괜찮고? 그래도 백작가잖아.”

현실적인 말이었다.

왕국의 형세가 그렇다고는 하나 당사자는 다르게 생각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 당사자가 아직 세상 물정 모르는 애이지 않은가.

론이 크루딘을 쳐다봤다.

아카데미에서 같이 다니는 사람이라곤 여기 있는 둘이 전부. 그런데 그는 딱히 걱정되지 않았다. 자기 하나 정도는 지킬 실력이 되니까 말이다.

‘다만.’

사티넬.

론이 그녀를 쳐다보자 눈을 동그랗게 뜬다. 무슨 일 있냐는 듯이.

“...”

걱정이 좀 되긴 했다.

그나마 다행인 건 그녀와 시간표가 전부 같았다. 다만 굳이 떨어져 있는 시간을 치면 바로 이 시간대. 오후 수업이 끝나고 플라델의 미로에 가기 전인 이 저녁때다.

“사티넬.”

애초에 그녀에 대한 생각이 짧았다.

“제가 보다시피 좀 미친 짓을 해서, 같이 다니면 위험할 수도 있습니다. 몇몇 귀족들의 눈 밖에 날 수도 있구요.”

“네.”

“아카데미 생활이 피곤해질 수 있다는 말입니다. 위험할 거 같으면 저와 떨어져 지내셔도 됩니다. 일단 제가 그들이 보는 앞에서 사티넬을 데려갔었으니, 혹시 모를 앙심에 대비해 당분간 최대한 지켜드리겠습니다.”

론이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생각해보니 제가 너무 사티넬 생각은 안 했네요. 미안합니다.”

“아, 아니에요, 고개 드세요.”

그녀의 얼굴에는 미소가 피어 있었다.

“뭐 처음에는 저도 겁이 난 게 사실이에요. 귀족이란 존재가 평민에게는 왕과 다를 바 없으니까요. 그런데 론님의 얘기를 듣고 좀 달라졌어요. 한번 부딪혀보고 싶어요. 국왕께서도 밀어주신 다면서요!”

“네? 어···.”

휘유.

당황해하는 론의 말을 자르며 크루딘이 크게 휘파람을 불었다.

“누가 보면 아주 기사 서약이라도 하는 줄 알겠네. 어휴! 론, 그냥 이참에 아카데미 때려치우고 기사나 하자. 사티넬, 이 녀석이 좀 재미없고 진지하긴 해도 쓸만하거든. 이렇게 된 거 좀 거둬주자!”

“풉, 하하하.”

크루딘의 장난기 가득한 말에 결국 사티넬이 웃음을 터뜨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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