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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작가 마법사의 회귀-13화 (13/115)

남작가 마법사의 회귀 - 13

플라델 카운트.

역사적으로 위대한 마법사인 건 틀림없다. 하지만 그가 남긴 유산을 사용함에 있어 위험 유무 확인은 필수였다.

때문에 론 일행은 며칠간 플라델의 미로에 드나들며 각자가 알게 된 것들에 대해 공유를 했고, 그러면서 몇 가지 사실들을 추려낼 수 있었다.

1. 플라델의 미로는 지극히 개인의 공간이다. 같이 들어간다고 해도 절대 만나지 못한다. 론과 사티넬, 크루딘이 몇 번이나 동시에 들어갔지만 만나는 경우는 단 한 번도 없었다.

(들어가서 불러도 만나지 못한다.)

2. 끝이라고 판명이 되는 곳은 없다. 요구한 바에 따라 통로가 바뀌긴 해도 미로의 끝을 보여준 적은 없었다. 그저 나가는 문만 있을 뿐.

3. 마나 호흡, 마법 수련에는 거의 제한이 없지만. 포션, 마도 공학 물건, 아티펙트 등과 같은 인공적 물품들은 요구해도 나타나지 않는다.

4. 미로는 자정 12시에 열린다. 이를 확인하고 닫히는 시간을 보기 위해 계속 남아있었는데, 강제 방출되는 시간도 있었다. 오전 8시. 아카데미 일정을 고려한 플라델의 안배인 듯 했다.

5. 열흘이 넘는 시간 동안 관찰한 결과, 2학년생은 한 명, 3학년생은 세 명이 사용. 놀랍게도 그중 평민은 두 명. 생각보다 문을 여는 마나 감응 난이도가 높은 듯 했다. 그리고 따로 지인들과 공유하지는 않는 것 같았다.

(실제 2학년생과 론이 마주쳤는데 서로 놀라는 표정을 짓고는 이내 각자 갈 길을 갔다.)

그 외 몇몇 사소한 특징도 있었지만, 이상의 다섯 가지가 대표적이었다.

샤아아악.

회색빛과 함께 론이 미로 안으로 이동했다.

일련의 과정을 통해 테스트는 충분히 하였다. 때문에 론은 미로에 들어서자마자 자리에 앉았다. 처음 왔을 때처럼 어둡다며 당황할 이유도 없었고, 이제는 그 빛이 필요하지도 않았다.

깊고 깊은 산맥의 심처.

영맥(靈脈).

오랜 세월 이 땅을 지내 온 뿌리가 론의 호흡에 공명했다. 그의 들숨과 날숨에 빨대를 꽂듯 이어졌다. 물론 마나를 받아들이는 쪽은 당연히 론이었다.

안 그래도 묵직하고 중후한 영맥의 마나가 정령사의 찬가로 인해 더욱 깊어져 갔다. 이는 마치 영혼 없는 마나로 하여금 태고의 기억을 되살리는 것 같았다.

심장에 걸친 서클에 마나가 모여든다. 서클의 회전이 더욱 경쾌했고 에너지가 넘쳤다.

‘이 정도 페이스면···.’

학기가 끝날 즈음엔 서클을 하나 더 만들 수 있을 것 같았다. 영맥이 가져주는 엄청난 메리트와 더불어 정령사의 찬가 호흡법까지 붙으니 엘릭서 저리 가라 할 수준이었다.

그렇게 론은 조용히 마나 호흡에 집중했다.

딸칵, 딸칵, 딸칵.

간결한 톱니바퀴 소리.

회중시계에 맞춰두었던 알림 침이 시침과 맞닿으며 소리를 냈다.

‘벌써 시간이 다 됐군.’

론이 마나 호흡을 천천히 마무리 지었다.

회중시계가 가리키는 시간은 6시였다. 밤새 해가 뜨도록 마나 연공만 한 것이다.

잠이 올 법도 하건만 정신은 오히려 또렷했다. 마나 유저 대부분이 마나 호흡과 명상을 하고 나면 겪는 자연스러운 현상이었다. 허나 그렇다고 해서 계속 이것만 한다면 도리어 몸이 상한다. 육신도 적절한 휴식을 취해줘야 한다.

“문.”

구구구궁.

벽이 움직이는 소리와 함께 뒤에서 문이 생겨났다.

**

론의 생활 패턴이 조금 바뀌었다.

이유야 당연히 플라델의 미로 때문이었다. 탓이 아니고 당연히 그래야 했다.

더 쓰지 못하는 게 아쉬울 뿐.

자정 무렵부터 6시까지 미로에서 마나 호흡을 한 뒤 일출을 맞으며 기숙사로 돌아온다. 그리고 두 시간 가량 취침. 일어나 아침을 먹고 오전 강의를 들으러 간다.

오후 느즈막까지 이어지는 아카데미 강의가 끝나면 혼자 마법 수련을 하거나 간간이 사티넬, 크루딘과 마법 대결을 했다. 물론 대결하면 리드하는 쪽은 당연히 론이었다.

눈치 볼 교수도 없거니와 사티넬과 크루딘에게 도움을 주고 싶었기 때문이다. 아무튼 그렇게 저녁 일과마저 보내고 나면 하루는 끝이 났다.

생각보다 만만할 거라는 생각과는 달리 꽤나 치열하게 보내고 있었다.

그래도 첫 학기는 순조롭게 지나가는 듯 했다.

“대마도사 오웬은 그렇게 마계의 야욕을 막아내는 한편 자신만의 고유 마법을 후대에 남겼습니다. 그 마법은 현재 아들렌 왕립 도서관에 보관이 되어 있지요. 무엇일까요?”

마법 역사학 교수 보어헨의 질문에 학생들이 손을 들었다.

“좋습니다. 아퀴레스군. 얘기해보세요.”

“마물들의 똥구멍에 불화살을 꽂아버리는 매우 강력한 마법입니다.”

“······”

강의실 곳곳에서 웃음이 터져 나왔다.

통짜 이론인 역사 과목에 나이 지긋한 노교수의 느릿느릿한 말투까지. 안 그래도 지루한 강의 시간이었다. 헌데 아퀴레스의 한 마디로 가뭄에 비 오듯 강의실이 활기를 띠었다.

“아. 퀴. 레. 스!!”

“흐익!!”

같이 웃고 난리 치던 아퀴레스가 놀라 움찔거렸다.

“벌점입니다. 학기말 시험에서 5점 삭감하겠습니다.”

“헉! 교, 교수님 죄송합니다!! 제발···!”

울상을 지으며 사죄를 하는 그였지만 보어헨은 들은 체도 안 했다. 그리고 그런 그를 보며 학생들은 소리 죽여 웃기 바빴고.

“쯧쯧쯧···. 라키엔 양. 뭔지 얘기해보세요.”

“아, 네. ‘오푸스리에로’ 입니다.”

“맞습니다. 오푸스리에로. 시전자의 기억을 담아내는 마법이지요. 이 마법은 가히 혁신적이었습니다. 구전 혹은 책으로만 전해 들어야 했던 옛이야기를 과거 현장에서 동일하게 경험할 수 있게 되었지요.”

라키엔의 대답을 스무스하게 받아내며 보어헨이 강의를 이어갔다.

“오푸스리에로라···.”

이 마법에 대해서는 완전히 잊고 있었다. 원체 고등 마법이기도 했고 고유성이 짙어 연관 지을 생각조차 못 했던 것이다.

한동안 플라델의 미로에서 마나 호흡만 해왔던 터라 론은 새로운 시도 거리가 생겨 흥미가 돋았다.

“자 그럼 오늘 강의는 여기까지입니다. 이제 학기 말이 얼마 안 남았습니다. 곧 시험이라는 얘기지요.”

시간이 참 빠른 것 같다.

어 하는 사이 훌쩍이다.

회귀 전 일들에 대해 낙담도 하고, 전생에는 해보지 않았던 수업 시범도 하고, 엄청난 재능의 친구들도 사귀고, 아카데미의 비밀 공간 플라델의 미로도 찾고.

‘막상 떠올려보니 뭐가 많긴 하네···.’

“그리고 다른 과목 시험도 있으니 미리미리 준비해서 모두 좋은 성적 거두길 바라겠습니다.”

“네에~”

“네, 수고하셨습니다!”

“수고하셨습니다!”

거의 함성을 지르다시피 소리치는 학생들. 어지간히 지루했었나 보다.

썰물 빠지듯 강의실을 빠져나갔다.

“으으···. 론님.”

사티넬도 그중 한 명이었던 것 같고.

“네.”

“오늘 고등 마법관 있는 쪽 식당에서 신메뉴가 나온대요.”

“신메뉴요?”

“네. 그, 훈제한 닭고기를 먹기 좋게 조각낸 다음, 특제 소스로 버무린 거라는데, 그 소스가 엄청 맵고 맛있대요!”

먹는 게 그리 좋은지 다운되어 있던 그녀의 텐션이 살살 치솟는다.

“아직 나오지도 않은 요리가 맵고 맛있는지는 어떻게 아시는 겁니까?”

“아, 제가 거기 식당 아주머니랑 좀 친해졌거든요! 친절하시구 저랑 입맛도 비슷해서 얘기도 잘 통해요! 그런데 신메뉴 시식해보고 너무 맛있었다면서 저한테 얘기해줬어요. 힛.”

간간이 식당 메뉴에 관해 얘기하곤 했는데, 그녀에게 신메뉴는 늘 놓칠 수 없는 핫한 정보였다.

결국 론은 못이기는 척 따라갔다.

실제로 사티넬의 영업에 반은 넘어가 그 매우면서 맛있다는 요리를 먹어보고 싶었다.

고등마법관은 도서관 바로 앞 건물로 아카데미 정문 쪽에 있는 교양 건물동과는 반대였다. 해서 적잖은 건물과 야외 훈련장을 지나가야 한다.

그런데 채 얼마 걷기도 전에 무언가 거슬리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래서 지금 내 부.탁.을 못 들어주겠다는 거네?”

“넷, 네···. 죄송합니다. 저도 할 게 너무 많아서요. 죄송합니다!”

“하···. 이래서 잡것들이란···.”

“정말 죄송합니다!”

“좋아, 그러면 그 바쁘다는 네게 도움을 주지. 친히 내가 마법을 한 수 가르쳐주겠다고. 큭큭큭.”

“네?”

건물 뒤편의 그늘진 곳에 학생들이 꽤나 모여 있었다. 커리큘럼 설명회 때 본 얼굴도 있는 것으로 보아 신입생들인 게 분명했다.

“고마워하라고. 뭐부터 할까? 그래, 아직 시전도 못 할 원소 마법을 차례차례 알려주도록 하지. 어디 한 번 몸소 배워 봐.”

“넷, 네? 그, 그게 무슨 말이신지···?”

“푸하하하!”

“큭큭큭···.”

‘흠···. 아직 정리가 안 됐구나.’

커리큘럼 설명회가 끝나고 총장 럼블이 한번 따끔하게 얘기를 했었다. 아카데미에서 혈통과 계급으로 누르지 말라고.

이를 생각하며 론이 그쪽을 향해 걸음을 빠르게 옮겼다.

무리 진 학생들의 등을 지나치자 그제야 큰 목소리를 내던 주인공의 얼굴이 보였다. 특이하다 할만한 외모는 아니었으나 꽤 길쭉한 귀걸이를 차고 있어 눈길을 끌었다.

‘이도르 래블런.’

기억이 난다.

회귀 전에도 그에 의해 아카데미에 소란이 난 적이 있었다. 이유는 당연히 평민들의 핍박이었다. 교묘한 말투와 조언, 그리고 시범이라는 이름으로 꽤나 여럿을 괴롭히고 다녔었다.

물론 얼마 지나지 않아 이는 사그라들었고, 이도르 또한 전과 같은 행동을 하지 않았다.

다만 지금은 진행 중이었다.

이를 종식시킬 총장은 보이지 않았고.

이도르의 행동이 재밌는지 주변에 있던 몇몇이 크게 웃어 재꼈는데, 깔끔한 교복을 보아하니 그들은 귀족인 게 틀림없었다.

그리고 그와는 반대로 허름하고 빛바랜 옷을 입은 평민들은 위축되어 있었고.

“하아···.”

그동안 눈이 높아졌기 때문일까.

자신의 목표를 향해 미친 듯이 나아가는 사티넬과 크루딘과 비교에 저들은 너무 수준이 떨어졌다. 귀족이라는 분류로 같은 선상에 묶이는 것조차 불쾌했다.

“자, 자. 우선 불꽃놀이부터 하자고. 큭큭큭.”

“뭐 해? 어서 자리 만들라고. 하하하!”

그런 그들 앞으로 론이 똑바로 나아갔다.

과거와는 다른 행보.

허나 이번에는 결코 번민 속에 내디딘 방황이 아니다.

결심이었다.

고작 이런 상황도 타개하지 못하면서 무슨 흑마법이니, 언데드니 하는 것을 논할 수 있겠단 말인가.

“음? 뭐야. 보일, 네 친구냐?”

“그래도 저 친구는 옷을 잘 빨아 입나 본데? 옷이 아주 깨끗해. 하하하!”

“큭큭큭, 너무 깨끗하면 또 어색하니까 손질 좀 해줘야겠네.”

그러거나 말거나 론은 지긋이 이도르를 쳐다봤다.

이도르 래블런.

래블런 백작가의 자식이다.

몇 째인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그저 가문을 위시하며 행패만 부릴 줄 아는 쭉정이라는 것뿐.

“뭔데 눈빛이 이렇게 싸가지 없어. 이도르 래블런이다. 뭐 하는 새끼야, 너.”

보일이라는 평민에게 답이 없자 이도르가 불쾌하단 듯이 제 이름을 밝혔다. 제 소개를 했으니 너도 하라는 얘기였다.

“론 스펜서.”

“스펜서? 스펜서, 스펜서···. 풉, 푸하하하, 설마 그 서쪽 변방의 촌구석 스펜서냐? 하하하”

“어이, 촌뜨기 여긴 래블런 백작가의 귀한 도련님이시라고. 예법을 알면 단정하게 구는 게 좋을 걸? 크하하하.”

“촌구석인 건 잘 모르겠고 서쪽 변방은 맞지.”

딱히 존대할 이유가 없었다.

그리고 그런 론의 말투가 거슬렸는지 이도르는 웃음기를 지웠다.

“싸가지도 없고, 말도 짧고 어디서 배워 처먹은 예의지? 아 예의가 없는 걸 보니 부모도 없나?”

오히려 같은 귀족이었기 때문일까. 그는 럼블의 충고 따위는 완전히 잊어버렸다.

피식.

“부모가 없다라···. 이건 뭐 마법뿐만 아니라 인성, 주둥이 다 개차반이었군.”

“뭐?”

일순간 이도르 일행들의 분위기가 싸악 가라앉았다.

“야, 둘러싸.”

“예.”

이도르의 말에 곁에 있던 이들이 론을 감쌌다.

“론님?!”

사티넬 말리려고 다가왔다.

“어이, 거기까지. 기세 좋고, 멘트 좋았다. 근데 저 상종 못 할 쓰레기들은 내가 치우지.”

갑작스런 목소리에 다들 고개를 돌렸다.

세 학생이 걸어왔다.

자꾸만 늘어나는 불청객에 이도르가 눈썹을 찡그렸다.

“설마 그 쓰레기, 나한테 한 말이냐?”

“그럼 쓰레기가 여기에 니들 말고 더 있냐?”

“하아···. 이것들이 진짜 아카데미에 들어왔다고 아주 대마법사라도 된 줄 아네.”

“어이, 어줍잖케 행동할 거면 지을 거면 지금 물러서라.”

이도르의 말 따위는 가볍게 무시하며 그가 론에게 말했다.

“막서스다. 가문만 믿고 날뛰는 쓰레기들을 내가 제일 경멸해서 말이야.”

‘막서스?’

막서스 진. 전생에 그에 대한 기억이라고는 거의 없다. 그래도 아는 게 있다면 그의 가문 진 자작가. 명문이다. 헌데 그것보다는 냉철한 것으로 더 유명했다. 왕실 직속 감찰부의 요직을 늘 꿰찰 정도로.

‘관련이 있는 건가.’

허나 생각할 시간은 없었다.

“이런 개자식들이! 야! 쳐!”

끝내 이도르가 참지 못하고 무리에게 소리쳤다.

막서스에게서 눈을 떼고 앞을 보니 여섯 명의 학생들이 마법을 펼치려는 듯 손을 내밀었다.

“어스.”

허나 론이 더 빨랐다.

그저 늘어뜨리고 있던 손을 펼쳤을 뿐인데, 이미 마법진이 완성되었다.

반면에 론을 둘러싸고 있던 이들은 아직 마법진을 그려내지 못한 상태.

슈우우욱.

빠르게 흙이 솟아올랐다.

그리고 론이 손을 획하고 움직이자 한 몸이라도 된 듯 따라 움직였다.

퍽! 퍼버벅! 퍽! 퍽!

“컥!”

“커허헉!”

단순한 모래 파도가 아니었다.

강직도.

일전에 크루딘이 했던 것을 론은 더 손쉽게 해버린 것이다.

때문에 이도르 일행은 둔기에라도 맞은 듯 컥컥 소리를 내며 쓰러졌다. 그리고 몇몇은 마법 시전 직전에 파훼를 당해 적잖은 쇼크를 받은 상태였고.

“휘유!”

침을 질질 흘리며 쓰러진 이들의 모습과는 어울리지 않게 막서스가 휘파람을 불었다.

“이건 뭐 나설만했군. 생각보다 대단한 녀석인데? 그래서 과연. 저 신분 높은 쓰레기까지 처리가 가능하실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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