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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작가 마법사의 회귀-11화 (11/115)

남작가 마법사의 회귀 - 11

샤아아악.

무채색의 회색빛이 론을 뱉어냈다.

워프 게이트의 공간 전이와는 조금 다른지 소음은 거의 없었다.

주위로 보이는 책장과 벽.

무사히 도서관으로 돌아온 것이다.

“후!”

예기치 못한 상황.

극도로 예민해진 론이 주변 마나에 집중했다. 미로의 입구는 신기할 정도로 주변과 완벽히 동화되어 있었다. 작정하고 찾지 않는 이상 아무도 못 찾을 것 같았다.

심지어 공명시키는 것조차 어려우니까 말이다.

‘그런데 어떻게 여기에 이런 공간이 있을 수 있는 거지?’

여전히 의문투성이였다.

허나 그런 의문보다는 실존이 앞섰다. 론이 서둘러 2층으로 내려갔다.

여전히 태평하게 자고 있는 두 사람.

툭 툭,

툭툭 툭.

크루딘과 사티넬을 거칠게 흔들었다.

“으음, 으···. 으헥?!”

“넷, 네?!”

“쉬잇.”

론이 오른 검지를 입술에 붙이고는 턱짓으로 바깥을 가리켰다.

나가자는 말이었다.

론의 표정이 하도 심각했던지라 크루딘과 사티넬은 거절할 생각도 못 하고 그대로 그를 따라 도서관 밖으로 나왔다.

“왜, 무슨 일이야 론?”

“무슨 일 있으셨어요?”

다들 무슨 큰일이라도 난 줄 알고 걱정을 한다.

“아니 그런 게 아니고, 다들 저 따라서 걸어 보세요.”

한 바퀴.

“어떻습니까?”

“뭐가 어떻긴, 일단 잠이 깨네. 하아암~.”

“그러게요. 날씨도 이제 겨울이 오려나 봐요.”

“아니 그게 아니라 그러니까 이 도서관 건물의 길이 말입니다. 좀 이상하지 않습니까? 다시 한번 돌아보세요.”

론의 생각은 이미 저 멀리까지 나아가 있는데, 허둥지둥 그 시작점을 설명하려니 말이 잘 안 나왔다.

“으응? 론. 나 잠 다 깼다니까? 그리고 도서관이 세워진 지가 벌써 수백 년이라고. 뭐 부실 건축이었다고 지적이라도 하고 싶은 거야?”

“뭐가 잘 못 지어진 거예요?”

“아니, 하···.”

그저 자신이 경험한 대로 알려주려 했던 것인데, 이내 론은 그 방법이 잘못됐음을 깨달았다.

핵심.

그거면 충분했다.

“혹시 황금비율에 대해서 들어본 적 있으세요, 다들?”

“인간이 보기에 가장 안정적이고 균형적인 상태. 그리고 대기 운동을 비롯한 자연 상태에서 찾을 수 있는 수학적 비율. 수치로는 두 개의 길이 대상이 있을 때 1대 1.618 정도.”

“오오, 크루딘님 대단하시네요. 그런데 저도 부모님께 듣긴 했어요. 관엽식물들의 잎 형태처럼 동식물의 형체가 모두 그 황금비율 안에 있다고 하더라고요.”

둘의 대답에 론은 그제야 자신이 제대로 방향을 잡았음을 느꼈다. 그리고 한 편으로는 사티넬의 마법 상식에 놀랐다. 부모님이 마법 그 저변에 대해서도 많이 들려줬었나 보다.

“네 맞습니다. 그리고 거기서 좀 더 나아가면 프렉탈 구조, 피보나치수열, 피보나치 나선 또는 황금 나선이 나오는 거죠.”

생각해보니 프렉탈이니 피보나치니 하는 것은 1학년 산술학 시간에는 안 배우긴 했었다. 허나 어쨌든 다들 이해하는 것 같았기에 론은 계속해서 말을 이어갔다.

“그렇다면 도서관 건물의 밑면은 어떤 거 같아요?”

“아아! 황금비율이네요!”

“그것 때문에 이리 뺑뺑이를 돌린 거였군. 근데 이게 그렇게 놀랄 일이야, 론?”

“더 있습니다. 바로 도서관 내부죠.”

“네?”

“내부?”

갈피를 못 잡는 그들을 위해 론이 두리번거렸다. 매끈한 돌로 포장된 길바닥을 벗어나 흙 땅이 있는 곳으로 갔다.

“잠깐 이것 좀 봐주십시오.”

론이 나뭇가지를 주워다 땅에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커다란 직사각형.

그리고 이를 계속해서 정사각형으로 쪼개 나갔다. 피보나치수열이었으나 설명하려면 한참이었기에 이는 생략해버렸다.

그리고는 그들도 한번은 봤을 모양을 그렸다.

“황금 나선.”

“네 맞습니다. 그리고 다른 말로는 피보나치 나선이라고도 하죠.”

“아, 도서관 계단···.”

“후우.”

드디어 원하는 대답이 나왔다.

“이걸 알고 나니 궁금하더라구요. 그렇다면 저 나선의 시작점에는 무엇이 있을까.”

단순히 건물 밑면이 황금비율인 것을 넘어 내부까지 처음부터 고안되었던 거라면, 당연히 그 시작점이 궁금할 수밖에 없었다.

꿀꺽.

침 삼키는 소리가 선연히 들린다.

이제는 그들도 느낀 것이다.

론이 무언가를 알기에 저렇게 열이 나도록 설명하는 것임을. 모두가 론의 입에 집중했다.

“공간이동 마법이 걸려 있었습니다.”

그리고는 론이 따라와 보라는 듯이 걸음을 옮겼다.

“잠깐!”

크루딘이 떨리는 목소리로 외쳤다.

“왜지?”

“네?”

“누가 봐도 설립자 혹은 관계자가 만들어 놓은 기연이잖아. 왜 굳이 우리에게 알려주는 거지?”

그렇다. 최근 곧잘 친해졌다곤 하나 기연이라는 것은 그리 쉽게 양보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역사만 봐도 각종 유산 및 보물들을 발견해 인생이 달라진 사람들이 꽤나 있었으니까.

그리고 크루딘은 그 누구보다 그런 기연이 절실한 사람이었다. 선천적인 폐병. 마법사로서는 치명적인 단점이다.

때문에 크루딘은 묻지 않을 수가 없었다.

“뭐 현실적으로 독차지할 수 있는 거라면 그랬겠지요.”

“뭐?”

론이 입가에 미소를 지었다.

속으로 음흉한 마음을 품는 것보다 저렇게 솔직하게 얘기하는 걸 보니 역시 사람을 잘못 본 건 아닌 듯 하다.

“잠시뿐이긴 해도 제가 갔다 온 바로는 그렇게 독식할만한 그런 곳은 아니었습니다. 뭐 가 보면 알 겁니다. 아, 참고로 수준이 안되면 못 들어갈 수도 있습니다.”

“수준?”

“가 보면 압니다.”

더 이상의 설명은 필요 없었다.

론이 앞장을 섰고 크루딘과 사티넬이 조용히 따랐다.

정문을 시작으로 계단을 오를 때마다 그들의 표정이 깊어졌다. 그리고 마침내 4층.

수열로 치면 그 시작점 위치에 이르자 이제는 그들도 부인할 수가 없었다. 의도한 듯 세 면이 책장으로 가려졌고, 나머지 한 면은 지나가는 통로다.

“느껴지십니까?”

론의 조그마한 속삭임에 크루딘과 사티넬이 긴장했다. 그가 좀 전에 했던 말.

‘수준이 안되면 못 들어간다.’

책장으로 둘러싸인 그저 평범한 공간. 그런데 도대체 어떤 마법이 걸려 있기에 수준을 본다는 것일까.

크루딘과 사티넬이 두 눈을 감았다. 무엇이건 간에 유관으로 분별할 수 없다면 방법은 하나다.

마나 감응.

론은 그런 둘을 그저 조용히 지켜봤다.

잠시 물러나 고개를 돌리니 주변에는 여전히 고학년 학생들이 공부 중이었다. 딱히 이곳의 유무는 모르는 듯했다.

그리고 얼마나 지났을까.

론도 기다리다 지쳐 책장에 있던 책을 펼쳐 보던 중 반응이 일어났다.

우우웅.

의외로 첫 번째는 사티넬이었다.

익숙한 무채색의 회색빛이 조용히 그녀를 집어삼켰다.

‘오케이, 한 명은 갔고. 과연 크루딘은···.’

곧이어 크루딘도 회색빛에 삼켜졌다.

“둘 다 재능은, 확실하다 이건가.”

저들의 재능과 성품이라면 나이를 떠나 충분히 이 기연을 의논하고 공유할 만했다. 마치 어리광부리는 동생 레비를 보기라도 한 듯 론의 입가에 편안한 미소가 걸렸다.

“아, 생각해보니 나오는 거는 얘기를 안 했네.”

하지만 론은 이내 2층으로 내려갔다. 그 정도쯤은 눈치껏 알아서 나올 듯 싶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확인해 보고 싶은 게 있었고.

‘플라델.’

그곳에서 발견한 유일한 문자.

이는 다분히 의도적이었다.

마치 알아보라는 듯이.

그 때문에 론이 2층으로 내려와 한 것은 아들렌 마법 역사와 아카데미 역사에 관한 책들을 찾아보는 것이었다.

“플라델, 플라델, 플라델···.”

우선은 역사 범위를 한정했다.

아카데미의 역사는 약 300년. 즉 그 이전의 역사는 배제하였다. 틀릴 수도 있지만 일단 기준을 잡고 나아가야 정보가 쌓이고, 돌아와도 이전 정보를 통해 나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다음은 마법 수준.

공간 전이 마법과 던전 구성은 드래곤의 상징이라 할 만큼 고위 마법이다. 즉 최소 6서클의 마법사를 기준으로 찾아보기 시작했다.

그런데 의외로 답은 빨리 나온 듯 했다.

[플라델 카운트.]

‘카운트.’

마도 왕국에서 7서클에 이르면 수여하는 단승 백작위. 카운트 외에 성이 없다는 말은 평민이었다는 얘기다.

시기상으로는 지금으로부터 약 250년 전. 역사서에 따르면 플라델 카운트는 샤허드 제국의 정복 활동에 대항해 끝끝내 아들렌을 지켜낸 대마도사였다.

그것이 가장 주요한 업적으로 기록되어 있었다. 그 밑으로는 당시에 일어난 각각의 전투에 관해 서술되어 있었지만, 미로와는 관련이 없었다.

그리고 이어서 찾아본 건 ‘아카데미를 빛낸 졸업생들’이라는 책이었다. 대마도사라는 엄청난 경지와 생애 이룬 업적 때문인지 쉽게 찾을 수 있었다.

그런데 의외로 그는 수석 졸업생이 아니었다.

‘당대 최고의 마법사도 어린 시절에는 평범했던 건가? 아니면 그도 혹시 기연을 얻은, 아···.’

페이지를 넘기니 자연스레 책이 설명해주었다. 그는 으레 평민들이 그렇듯 서클 없이 입학한 학생 중 한 명이었던 것이다. 오히려 고작 3년이라는 시간으로 어릴 적부터 배워 온 귀족들과 실력을 나란히 했으니 보통이 아닌 재능이었다.

그렇게 시간도 충분히 있겠다 편안히 읽고 있는데, 한 가지 재미있는 점이 있었다.

300년 역사의 아카데미 졸업생 중 학년 탑만 뽑아 놓고 보아도 300명이 넘는다. 때문에 날고 기는 졸업생들 중에서도 당대에 큰 업적을 이룬 자들만 책에 실렸는데, 플라델이 평민으로는 첫 번째였다.

그리고 그 후에 실린 평민 출신 마법사들은 모두 수석으로 졸업을 했고.

‘이게 우연일까?’

혹시 플라델의 미로 때문은 아니었을까.

재능만 있다면 평민들도 더 나아갈 수 있게 해주기 위해 그런 공간을 만든 건 아니었을까.

생각해보면 서클도 없는 평민이 귀족을 앞지르고 수석 졸업생이 된다는 건 상당한 비약이다. 서클이 없다고 치면 1년에 1서클 이상의 성취를 했다는 말이지 않은가.

미친 재능이라고만 여겼던 것에 나름의 비사가 있었던 것 같다.

이후 그의 생애 업적에 대해 적힌 것을 보았다. 전쟁 외에도 양민 구휼에 꽤나 신경을 썼던 기록들이 있었다. 홍수기에 댐을 만들어 마을을 구하고, 가뭄 때는 물을 끌어 올리는 등등.

‘그나저나 플라델님. 이거 의도하지 않게 귀족인 제가 먼저 미로에 들어가 버렸습니다.’

찾아본 자료에서 딱히 위험인물이라 여겨질 만한 건 없었다. 그 때문인지 플라델의 미로에 대한 경계에 옅어졌다.

자주 드나들어도 될 것 같은 느낌 말이다.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데, 저 끝에서 동그랗게 눈을 뜬 사티넬이 잰걸음으로 빠르게 다가온다.

“론님!”

무척이나 흥분했다.

“와! 정말 진짜. 론님도 경험하신 거죠?!”

속삭이는 건지 소리치는 건지 모를 목소리로 그녀가 말했다.

“네, 사티넬이 보기에는 어떤 곳인 거 같나요?”

“하···. 막 그 음···. 대마법사의 놀이공간?”

“네? 놀이공간이요? 풉.”

잔뜩 흥분해 말하는 사티넬의 대답이 너무 생뚱맞았다. 저도 모르게 론의 입에서 웃음이 튀어나왔다.

“아니 막 생각한 대로, 원하는 대로 다 들어 주던걸요?”

“맞아요. 저 같은 경우는 제 생각이 부정적이라 그런지 어스 골렘과 싸우고 나왔는데, 사티넬은 뭘 하고 왔어요?”

“엑? 어스 골렘이요? 저는 제가 살던 아스테리아를 보고 싶다고 했는데, 정말로 데려가 줬어요.”

“음? 그런 것도 가능합니까?”

“뭐 중간에 환상이라는 걸 알긴 했지만 그래도 아무 생각 없이 보면 정말 감쪽같아요.”

성향도, 생각하는 것도 달랐기 때문일까. 같은 공간에서 둘은 전혀 다른 것을 경험했다. 허나 그랬기에 플라델의 미로가 더욱 신기했다.

플라델 카운트.

평민으로 뒤늦게 마법에 입문하였지만, 그 누구보다 빛나는 마법사가 된 자. 대마도사가 되어 왕국을 지켜내고 평민들을 위해 애쓴 자.

그는 평생에 원하고 바란 것을 모두 이루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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