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작가 마법사의 회귀 - 6
“기숙사로 이동하겠습니다. 이쪽으로 오십시오.”
말끔한 경비 제복을 입은 사내가 앞장을 섰다.
“역시 도련님. 합격하실 줄 알았습니다.”
“당연히 합격한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나트람 제 말을 못 믿었군요. 실망입니다.”
“예?! 못 믿었다니요, 절대 아닙니다!”
“흐음···.”
평소엔 하지 않던 농담이라 그런지 나트람은 눈에 띄게 당황했다.
피식.
론이 미소를 감추며 앞장서 나갔다.
“도련님? 도련님!”
“얼른 붙으세요. 농이었으니.”
사실 론은 자격 인증실에 들어설 때부터 인지하고 있었다. 시간적인 차이 외에도 수도에서 아카데미까지 오며 벌인 소소한 변화들. 이로 인해 마주할 미래가 회귀 전과 완전히 같지는 않을 것임을 말이다.
그리고 그 결과가 자격 인증실이었다.
알버트 교수.
그는 회귀 전에는 없었다. 다른 교수가 그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허나 론은 당황하지 않았고 오히려 주도적으로 상황을 헤쳐나갔다.
‘이번 생은 이번 생이니까.’
회귀 전은 참고할 정도면 충분했다. 굳이 얽매일 필요가 없는 것이다.
“여기가 기숙사 동입니다. 우측이 귀족분들의 건물인데, 딱히 호실 배정은 하고 있지 않습니다. 마음에 드는 곳에 짐을 푸시고 제게 호실을 말씀해주시면 등록해드리겠습니다.”
“알겠습니다.”
“그럼 저는 여기서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잘 알고 있는 시스템이었다.
‘흠···. 그런데 내가 꽤 일찍 온 건가.’
회귀 전 자신은 시험 이틀째가 돼서야 아카데미에 왔었다. 일찍 수도에 왔지만 긴장을 해버리는 바람에 늦게 출발했던 것이다. 때문에 자격 인증을 마치고 났을 때에는 이미 기숙사 대부분이 차 있었고, 반강제적으로 방을 배정받았었다.
론이 건물 안으로는 들어가지 않고 천천히 밖을 걸었다.
참고로 아카데미의 기숙사는 산비탈에 그대로 세워져 있다. 그래서 평지에 세워진 직육면체의 건물과는 다르다.
“둘째 도련님 때도 느낀 거지만 이 기숙사 건물은 참 특이한 것 같습니다. 한편으로 이런 형태로 유지한다는 게 신기하기도 하구요.”
“그러게 말입니다.”
엘프와 드워프가 합작이라도 한 듯한 자연 친화적 건물배치는 보는 이로 하여금 신기함과 편안함을 동시에 안겨줬다.
론은 발걸음을 계속 옮겼다.
왠지 모르게 모퉁이 쪽이 끌렸다.
사실 사람이 많은 입구 쪽은 회귀 전에도 한 번 살았기에 그런지 딱히 끌리지가 않았다.
“오오.”
1층의 끝자락 모퉁이.
나쁘지 않았다.
위층이 없어 이웃한 호수라고는 좌측의 방이 전부인 곳. 심지어 옆으로 더 돌아가 보니 출입문도 달려있다. 중앙 복도와 연결된 문까지 하면 총 두 개.
“여기가 괜찮겠군.”
**
“1024호 열쇠입니다.”
경비원에게 열쇠를 받아 나오자 나트람이 아쉬운 듯한 눈빛으로 쳐다본다.
“나트람, 정 아쉬우면 아버지께 말씀드리고 만학도로 준비해서 아카데미에 오십시오.”
“예에?! 하하하, 도련님도 참. 아카데미는 재능이 있는 사람이나 오는 곳이지요. 저는 재능도 관심도 없습니다.”
“그렇습니까.”
“예, 도련님.”
나트람은 말년까지 가문을 위해 봉사한 자다. 그래서인지 그와 아카데미로 오는 동안 내내 마음이 편했다.
“오느라 고생했습니다. 조심히 돌아가세요.”
“예, 돌아가면 가주님께 드릴 말씀이 많아서 벌써부터 흥분이 됩니다.”
“그렇습니까.”
“예, 도적 퇴치부터 해서 평민도 도와주고 입학 인증도 잘 치르시고, 아주 많지요.”
하나하나 까먹지도 않고 다 말하는 게 적잖이 감명을 받았나 보다.
“나트람, 당신은 가문에 도착하기 전까지는 여정이 끝난 게 아닙니다. 긴장 풀지 말고 조심히 돌아가십시오.”
“하하, 예 걱정 감사합니다. 그럼 모쪼록 좋은 성취를 거두시길 기원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나트람이 고개 숙여 인사하고는 들어왔던 길로 그대로 나갔다. 떠나는 그의 모습을 한참을 지켜보다 론은 이내 아카데미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입학식까지는 시간이 남았는데 수업도 급히 해야할 것도 없으니··· 오랜만에 아카데미 산책이나 해볼까.”
아카데미의 한 학년 정원은 약 130명이다.
물론 그렇다 해서 커다란 강당에 130명을 다 밀어 넣고 한 번에 강의하는 것은 아니다. 공통과목의 경우 6개의 반으로 나눠 20명 정도씩 들을 수 있게 해놓았다.
학생들은 그래서 원하는 요일 혹은 원하는 시간대의 것을 신청해 들을 수 있었다.
때문에 총원 400명 정도의 아카데미 임에도 불구하고 그 부지는 꽤 컸다. 각종 강의실과 기숙사, 야외훈련장, 식당, 도서관, 실내재배실 등등. 웬만한 백작 성은 저리 가라 할 정도다.
그렇게 하나하나 살펴보던 론은 어디선가 들려오는 담론에 걸음을 멈췄다.
“하···. 진짜 블레이즈 마법 때문에 미치겠다.”
“왜, 많이 어려워?”
“어려운 수준이 아니야. 마법사한테 갑자기 검을 주고 싸우라는 격이라니까.”
“하하하, 그래도 할만하니까 교육과정에 들어있는 거겠지.”
“아니 절대로. 도대체 어떤 메커니즘으로 블레이즈는 계속 유지되는 건지 모르겠다.”
“흐음···.”
얘기를 주고받던 한 학생이 걸음을 멈추고는 골똘히 생각에 잠겼다.
“정확히 말하면 인페르노 마법처럼 유지 개념이 아니라 복합마법진의 한 면에 복사 개념을 넣어서 발걸음을 뗄 때마다 발동시키는 거야. 그리고 이 복사 개념과 지속 개념, 그리고 마나 부여식 이것들의 연계에 오류가 없어야 문제없이 계속 유지되는 거고.”
“엉? 야, 브랜든. 누가 보면 너 블레이즈 마법 꽤나 쓰는 줄 알겠다.”
“잠깐만 기다려봐.”
“왜, 뭐?”
브랜든이 갑자기 눈을 감고 조그맣게 웅얼거리기 시작했다. 누가 봐도 마법을 시전하려는 자세.
“뭐, 뭐야. 야, 아니지? 에이 설마, 야···.”
마법사에게 시전 준비가 얼마나 중요한지 알기에 옆에 있던 로멘은 결국 입만 뻐끔거리다 말을 잇지 못했다.
“나의 마나가 불의 의지에 동하니 끊임없이 나를 쫓아 담아내라!”
‘졸업생들은 다 집에 간 거 아녔나? 졸업생이라 쳐도 블레이즈는 4서클에서도 최상위 마법인데. 일단 영창은 심상보다는 마법 개념 쪽으로 잘 했고···. 저 정도면 거의 학년 탑인가.’
산책 중 우연히 발견한 이들.
그런데 듣다보니 흥미로운 주제로 토론을 하고 있었다. 그래서 론은 적당한 거리를 두고 멈춰 섰다. 재밌는 구경을 놓칠 수야 없지 않은가.
“미.미친! 야! 너 언제부터! 아니, 와···. 미쳤네. 하···.”
브랜든 옆에 있던 로멘은 놀라서 말도 제대로 못 하였다.
피식.
론의 입가에 미소가 걸렸다.
마법에 문외한 이가 봤다면 쪼끄만 불들이 이어지는 게 무슨 대단한 마법이냐며 소리쳤을 수도 있다.
허나 마법 생도의 관점에서 그것은 불길의 크고 작음의 문제가 아니었다. 상위 마법사로 나아가는 관문과도 같은 개념을 이해하고 체득했냐의 차이였다.
로멘의 반응에 론이 웃은 건 사실이지만 브랜든이란 학생의 성취는 실로 놀라운 것이었다.
아들렌 아카데미 커리큘럼에 있는 3학년 과정의 4서클 마법은 말만 그렇지, 대부분은 3서클을 채 마스터 하기도 전에 졸업한다.
게다가 저 복사 개념은 5서클로 넘어가는 실마리다.
즉 그 누구보다 빠르게 치고 나가는, 소위 말해 천재인 것이다.
“미친 거지? 맞아, 미친 거야. 미친 게 틀림없어.”
로멘이 체념한 듯 무릎을 꿇었다.
그러고는 무슨 보물이라도 찾는 듯 엎드려 브랜든이 지나간 자리를 살폈다.
‘그나저나 그럼 나는 어떻게 하는 게 좋으려나.’
브랜든의 성취를 보고 있자니 론의 생각이 깊어졌다.
자신은 이미 5서클의 벽을 넘은 자였다. 마나만 채워진다면 서클 엮는 거야 어렵지 않았다. 게다가 소모량이 적은 고위 마법쯤은 어느 정도 쓸 수도 있었고 말이다.
그런데 문제는 서너 단계를 넘는 오버 스펠은 마법 사회에서도 상당히 파격적인 것이라 선뜻 내키지는 않았다. 자신은 아직 서클이 하나였다.
“오버 스펠도 적당히 해야겠군.”
주도적으로 사는 것과 관종이 되어 사는 것은 엄연히 다르다. 가진 걸 굳이 다 그대로 드러내며 살 필요는 없었다. 실험용 쥐 마냥 모든 이들의 눈총을 받으며 살 것도 아니니.
“야 씨. 브랜든! 너 신발 벗어 봐! 무슨 수작을 부린 거야!”
“수작은 무슨. 너야말로 이상한 수작 부리지말고 책이나 더 봐.”
“야, 멈춰! 야아!”
‘그나저나 브랜든이라···.’
왠지 브랜든, 그를 한 번 더 볼 것 같았다.
그 뒤 론은 아카데미 부지를 마저 돌고는 기숙사로 돌아왔다.
“아무리 생각해도 개인 출입문이 있는 방을 고르길 잘한 거 같단 말이지.”
번거로이 복도를 지나칠 일 없이 밖에서 바로 방으로 들어간다는 점이 론에게는 상당히 만족스러웠다.
여독을 풀 겸 론은 개인 짐을 정리하고 일찍 잠이 들었다.
**
이튿날이 되자 론이 한 것은 간단했다.
어제 자격인증을 마치고 건네받은 입학 준비물 목록. 그것을 사러 가야 했다.
물론 론은 합격할 걸 알고 있었기에 오는 길에 살 수도 있었지만, 그러면 입학식까지 정말 할 게 없어지기에 남겨두었었다.
정오가 되기 전 한산한 시간.
채비를 마친 론이 기숙사를 나섰다.
“안녕하세요!”
기숙사 동을 막 나오는데 누군가 커다랗게 인사를 한다.
아는 목소리였다.
바로 사티넬.
“합격할 줄 알았습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덕분에 시험을 치를 수 있었어요. 감사해요. 이 말씀 드리려고 기다리고 있었어요.”
“제가 안 나오면 어쩌려고.”
“그 정도는 감수해야죠.”
“그렇습니까.”
“네! 말 편하게 하세요. 이제 적잖이 볼 텐데 평민인 제게 존대해주시면 곤란해지실지도 몰라요.”
“음···.”
사실 론이 평민에게 아무렇지 않게 존대를 하는 이유는 아카데미에서 비롯됐다.
학기 초 학생들의 무리는 자연스레 귀족파와 평민파로 나뉜다. 그간 자신들이 살아온 환경과 계급에 대한 인식 때문에 이는 당연한 현상이었다.
하지만 학년이 지날 때쯤 되면 서로의 마법을 두고 수시로 토론과 공부를 같이 하다 보니 어느새 스스럼없는 관계가 되어버린다. 그 외 곧 있으면 알게 될 아카데미 지침도 있고 말이다.
허나 이를 하나하나 설명할 수 없었기에 론은 그저 미소만 지을 뿐이었다.
“뭐 알아서 되겠지요.”
“네?”
“참, 안 그래도 어떻게 할까 고민하던 게 있었는데 이렇게 만났으니 잘됐네요. 같이 가시죠.”
“네? 어, 어디를?”
론은 딱히 대답하지 않고 걸어갔다.
아카데미 정문에 이르자 입학신청자들의 긴 줄은 여전히 늘어서 있었다.
“줄이 줄어들긴 하는 건가···.”
짧은 감상을 내비치며 그 옆의 마차장으로 갔다.
“라울 거리로 부탁합니다.”
“예 나으리. 타시지요.”
대기하고 있던 마부가 문을 열자 론이 턱짓으로 안을 가리켰다.
“타십시오, 사티넬.”
사티넬이 어리둥절해 하며 마차에 올랐다.
다그닥 다그닥.
“입학 준비물에 대해선 들었습니까?”
“아 네네. 평민의 경우 선배들이 두고 간 것들을 받을 수 있으니 구매하는 걸로 너무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고 들었어요.”
“뭐 맞는 말이긴 한데, 그게 다 정상이라는 보장이 없어서요.”
사실이 그랬다.
적잖케 장난을 치고 기증하는 이들이 있어서 물려받는 평민 중 몇몇은 처음에 꽤나 고생을 한다.
“아···그렇군요.”
그때의 기억 때문일까.
론은 저도 모르게 먼 창밖을 보며 생각에 잠겼다.
“저, 그런데 아무리 지인과 닮았다지만 제게 잘해주시는 특별한 이유가 있으신가요?”
“특별한 이유라···.”
가질만한 의문이었다.
그래서 론은 그런 그녀를 빤히 쳐다봤다.
“특이한 사람을 만났다. 재능이 있어 보인다. 그런데 사람도 꽤 괜찮은 거 같다. 그래서 그냥 잘해주고 싶다. 이 정도로는 부족합니까?”
“넷, 네? 아, 아닙니다!”
사티넬이 얼굴을 붉혔다.
론이 회귀했다고는 하나 어찌 보면 그 또한 새롭게 인생을 개척해 나가고 있는 중이었다.
그런 면에서 사티넬에게 왠지 모를 동질감을 느꼈다.
‘뭐 그런 동료가 있는 건 나쁘지 않으니까.’
라울 거리에 도착한 그들은 학용품과 교복을 구매한 뒤 아카데미로 복귀했다.
입학까지는 이제 이틀.
허나 시간은 생각보다 빠르게 지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