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작가 마법사의 회귀 - 3
스펜서 영지는 아들렌 왕국의 최서단에 있다. 수도까지 거리로 치면 마차로는 대략 한 달 정도의 거리.
물론 그렇다 해서 론이 한 달 내내 주구장창 마차를 타고 가는 것은 아니다.
마도 왕국인 만큼 지역 간 이동을 도와주는 워프게이트가 많이 보급되어 있었는데, 론 또한 이를 이용할 계획이었다. 회귀 전에도 그랬고.
그리고 그런 그가 향하는 곳은 상업도시 수에즈. 왕국 서부의 무역거점지이었다.
단순 거리만 놓고 보면 더 가까운 워프게이트 지점이 있긴 했지만, 거기는 비용이 너무 비쌌다. 가뜩이나 용병도 필요없어 고용하지 않았는데 무리할 이유가 없었던 것이다.
반면 수에즈는 애초부터 서부의 거점지로 계획한 도시였기에 귀족뿐 아니라 평민들도 사용할 수 있게끔 워프게이트의 비용이 상당히 저렴했다.
그 때문에 론은 시간이 좀 더 들더라도 수에즈로 가는 것이었는데, 오늘로 3일 차였다.
“슬슬 좀이 쑤시네.”
마차 안이라고 해서 특별한 차이는 없었다.
저택에 있을 때와 동일하게 오전에는 마나 연공을 했고, 오후에는 마법 연습을 했다.
다만 그 장소가 마차라는 제한된 공간이었을 뿐.
“그러고 보니 이걸 잊고 있었네.”
대부분의 시간 흐름이 회귀 전과 다를 바 없이 흘러가고 있었기에 너무 무관심했다. 그래도 아버지가 챙겨준 것인데 말이다.
론이 마차 안 구석에 휑하니 놓인 목함을 집어 들었다.
“음? 다른 거라고?”
느껴지는 오묘한 기운에 그가 고개를 갸웃했다.
딸각. 안에는 예상한 대로 누런 종이 편지와 그 아래로 붉은 목걸이가 보였다. 회귀 전과 다를 바 없는.
목걸이에서 흘러나오는 묘한 기운.
생각해보면 과거에는 이 목걸이를 잃어버리긴 했다.
유적관리단 말단이던 시절 변경 유적에 파견 나갔다가, 몬스터의 습격으로 몸이 만신창이가 난 적이 있었다. 그리고 그때 이 목걸이도 부서졌었다.
당시에는 몰랐는데 지금 보니 확실히 특수한 목걸이긴 했다.
론이 목걸이를 목에 걸며 예의 편지를 꺼내 읽었다.
‘내 아들 론. 아카데미 잘 갔다 오너라. 잘하리라 믿는다.
추신. 목걸이는 몇 년 전 수에즈 도시에 갔다가 마나석 주제에 붉은색을 띠는 게 제법 귀해 보여서 샀다. 네게 잘 어울릴 거 같구나.’
피식.
어째 본 내용보다 긴 추신 글에 론의 입에서 웃음이 새 나왔다.
‘이번에는 그래도 학기 중에 꼭 편지는 써드려야겠군.’
문득 돌아오고 나서 든 생각인데, 아버지가 이렇게 굳이 편지를 쓴 이유가 그 때문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건 그렇고.”
론이 목걸이를 유심히 관찰했다.
그가 보기에 이것은 그저 색깔이 특이한 마나석이 아니었다.
마나의 기운 속에 무언가 일렁거리는 느낌. 그렇다. 마치 불꽃이 일렁거리는 것과도 비슷했다. 아니, 거의 흡사했다.
“설마 이게 정령석이었다고?”
불꽃을 일으키려는 그 자체.
그리고 마법진도 없는 걸 보면 아티펙트일 수도 없었다. 하나하나 논리적으로 파헤치니 자연스럽게 정답지가 좁혀졌다.
아카데미에 있을 적 수업 중에 정령석을 다룬 적이 있었다. 이는 대륙의 지붕이라 일컬어지는 코넬리아 산의 꼭대기에서나 겨우 채석되는 것이라 했는데, 그때의 것과 지금의 것은 좀 다른 느낌이었다.
신기했다.
이전과는 다른 시각으로 보게 된 것도 신기하지만, 이러한 사실들 자체가 더욱 회귀를 실감나게 했다.
“하···!”
그러한 감탄 속에 문득 한 생각이 떠오른다.
그렇다면 자신이 과거와는 다른 행보를 보인다면 어떻게 될까.
미래는 바뀌는 걸까.
회귀 전 경험한 것과는 다른,
새로운 세상일까?
목걸이에서 시작된 작은 의문이 커다란 상념으로 이끌었다.
콰앙.
허나 이윽고 들린 격렬한 타격음. 그것이 상념에 잠긴 론을 단번에 끄집어냈다.
***
모든 일에는 시기가 있다.
봄 여름 가을, 싹을 틔우고 열매를 맺게 하고 추수를 하면, 겨울에는 잠잠하다. 쉬는 것이다.
늘 추수의 기쁨을 누릴 순 없는 것이고, 그래서 수고를 들이고 또 그 수고의 보상을 받아 쉬는 게 사람 사는 생리였다.
이는 도적이라 해서 다르지 않았다.
곡식의 추수가 끝나는 늦가을.
이때가 되면 도적들은 기다렸단 듯이 벌레처럼 전국적으로 기승을 부린다.
그리고 아들렌 왕국의 최서단. 험한 산맥으로 둘러싸여 무역 없이 농사만 짓는 변방과 거점도시 수에즈 사이의 슬리푸스 산지는 그들에게 꽤 괜찮은 서식지였다.
“이야~! 행렬 보소. 길다 길어! 형님! 진상품 입장합니다요~!”
“마차들이 실한 게 꽤 든든하게 챙겨오는 거 같습니다. 저 중에 어디 몸 좋은 처자라도 있으면 좋을 텐데 말야. 스읍. 햐아···.”
“어이, 괜한 소란 피우면 우리만 곤란해. 시답잖은 소리 말고, 칼잽이들나 확인해.”
마차들의 행렬이 훤히 내려다보이는 바위 위. 거친 복장의 사내들이 시덥잖은 얘기를 나누며 상행단의 용병들을 주시했다.
어디에나, 심지어 지옥 입구에도 있다는 용병 길드지만 변방 시골의 그것은 수준이 매우 낮았다. 그저 그 나이대에 무기를 좀 더 다뤄봤을 사내들이 전부인 것이다.
“오늘은 좀 두둑이 챙기겠군. 용병이랍시고 나온 것들 멀뚱멀뚱 대는 거 봐라. 쯧쯧···. 슬슬 마중 나가자. 연장 챙겨!”
“예!”
랄프의 명령에 모두가 한 소리로 대답했다.
최근 추수기가 끝나며 곡물상의 통행이 잦아졌는데, 그럴수록 랄프들의 행적은 점점 노련해져 갔다.
물론 처음은 아니었기에 사상자 혹은 귀족을 건드려 이목을 받는 짓 따위는 안 했다. 그저 적절한 폭력과 입담으로 통행자들의 주머니를 큰 분쟁 없이 열게 할 뿐이었다.
그리고 그런 수법 중 첫 번째는 기선제압.
행렬 쪽 무리에서 자신들을 알아볼 만한 거리에 이르자 랄프는 전력으로 질주해 나갔다. 마나까지 호흡하며 신체를 움직이니 과연 압도적인 속력이다.
다다다다.
그 엄청난 속도에 선두에서 마차를 끌던 마부가 놀라 소리쳤다.
“도.도적입ㄴ···.”
콰앙!
강렬한 소음이 마부의 외침을 집어삼켰다.
히이잉. 놀란 말들이 앞발을 치켜올리며 당황한다.
“후우···.”
랄프가 있는 힘껏 쳐낸 짐마차의 옆 목판이 박살 나 버렸다.
“자! 자! 여러분들, 정지!”
“멈춰!”
뒤이어 따라오던 부하들이 말을 이었다.
이에 반강제적으로 행렬이 멈췄고, 적지 않은 사람들이 상황 파악을 위해 마차 밖으로 얼굴을 내밀었다. 누가 봐도 마나를 다루는 도적의 무위에 멀뚱대는 용병들은 덤이었고.
“잠시 통행료 좀 걷겠습니다.”
잠시간의 정적.
“우, 우리는 수에즈 도시로 가는 것이오! 여기는 빈 산지인데 통행료라니 그게 무슨 말이요! 비키시오!”
한 상인이 결심한 듯 떨리는 목소리로 외친다.
“퉷! 거 씨발 거 머리도 좋은 분들이 말귀를 못 알아들으시네.”
커다란 덩치의 도적이 목에서 뚜둑뚜둑 관절 소리를 내며 손에 들고 있던 몽둥이로 선두에 있던 마차를 쾅 쳐 버렸다.
흩날리는 나뭇조각들.
범인의 수준이 아니다.
당장 본 것만 해도 마나를 다루는 도적이 둘. 보고 있던 용병들은 그저 침만 삼킬 뿐이다.
“우리가! 관리하는 길에서 통행료 좀 걷겠다는데, 뭔 놈의 말이 많아! 불만 있는 새끼 당장 나와!!”
분노가 가득 담긴 일갈을 터뜨리자 예의 상인은 어디 갔는지 일대가 조용해졌다.
“화 푸십시오. 형님. 몰라서 그런 거지요.”
옆에 있던 가느다란 체구의 사내가 흉포한 이를 진정시킨다. 그리고는 보기 좋은 미소와 함께 마차들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양손을 맞잡고 비벼대는 게 웬만한 상인 저리 가라 할 정도다.
“크흠흠. 여러분 여정길에 고생이 많으십니다. 그런데 이 길은 저희가 특별히 관리하는 길이라서 말입죠.”
아까와는 비교될 정도로 차분한 어조와 존대는 상인들의 귀를 열기에 충분했다.
“50실버. 50실버만 내고 가십쇼. 그러면 여러분들도 해피, 우리도 해피. 오케이?”
가느다란 체구의 사내가 할 말을 다 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인다.
‘채찍과 당근은 줬고, 그럼 이제 누가 먼저 낚이려나.’
그들이 곧잘 해오던 수법이었다.
위협적인 무력으로 겁을 주고, 나름 이성적이라고 착각할 만한 협상으로 유도.
‘마나를 다루는 도적들이오.’
‘돈 좀 쥐여주고 그냥 지나가는게 나을 듯 싶소만.’
‘괜한 반항 부려 다 잃는 것보단 그게 낫지 않겠소?’
그리고 이를 도와주기라도 하듯 용병들이 제 고용주들을 설득하기 시작했다.
‘딱 한 명, 한 명만 걸리면 되는데.’
누군가 물꼬가 되어줄 이 한 명만 나오면 그다음부터는 줄줄이 나오는 게 약자들의 심리였다.
그렇게 간절히 첫 번째 먹잇감을 기다리던 중 그들은 멀리서 다가오는 한 인영을 발견했다.
“휘유.”
야비하게 입을 털던 사내가 휘파람을 불었다. 몰래 고개를 뒤돌려 동료들을 향해 익살스러운 미소를 짓는 건 덤이었다.
“으응?”
그런데 무언가 이상했다.
처음에는 덩치가 작길래 왜소한 노인인가 싶었다. 하지만 곧 있어 자신들이 잘못 봤음을 깨달았다.
“꼬맹이라고?”
이제껏 야비한 미소로 유들유들하던 사내의 볼살이 떨린다.
“혹시 귀한 집 아드님이신지요?”
“귀한 집이긴 하지.”
“뭐···.”
우웅.
쐐애애액.
순식간이었다.
반응은커녕 무언가 생각할 겨를도 없이 발생한 돌발 상황.
퍽.
“흡···! 스르르···. 극···.”
사람을 수십 번 죽여 본 그는 뒤에서 들려온 소리가 무엇인지 잘 알고 있었다.
녹슨 마차의 바퀴처럼 뻑뻑해진 고개가 돌아갔다.
털썩.
그들의 두목 랄프가 심장에 구멍이 뚫린 채 쓰러졌다.
“뭐, 뭐 하는 놈이야···.”
“놈? 네깟 놈에게 그리 불릴 사람은 아니지.”
“뭐?”
“론 스펜서다.”
우웅.
론의 손에서 다시 마법진이 펼쳐진다.
“헉!”
허나 이번에는 알았음에도 야비한 사내는 반응하지 못했다.
쐐애액.
쐐애액.
쐐애액.
론의 손에서 뿜어진 파이어 애로우가 더 빨랐기 때문이다.
털썩.
턱.
투욱.
“하아, 하아···. 하아.”
다중 마법까지는 아니었지만, 발현 난이도를 최고로 높여서 연발로 사용했더니 꽤 무리가 갔다. 론이 호흡을 고르며 생각했다.
‘고리를 늘리긴 해야겠네.’
근 한 달간 수련했지만, 막상 현장에 돌입하니 힘 조절이 되지 않았다. 하나뿐인 서클고리가 연료 고갈이라며 심장에 화풀이하는 것 같았다.
그렇게 시간이 좀 지나고 론도 여유가 생길 무렵 행상인들도 하나둘 모습을 드러냈다.
“도적들은 다 죽었습니다. 그만 출발하시죠.”
“아이고! 귀한 가문의 도련님,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나으리!”
사람들의 환호를 뒤로 하고, 론은 시체가 된 도적들의 품을 뒤졌다. 도적들은 다들 돈주머니 하나씩은 가지고 있었는데, 그는 주저 없이 모두 수거했다.
행렬의 선두는 이제 막 말을 진정시키고 출발하려 할 때 그 마부에게 론이 다가갔다.
“수리비로 쓰십시오.”
“예?”
“그럼.”
“아이고! 감사합니다, 나으리! 감사합니다!”
그 자리에 더 있으면 피곤해질 것 같아 론은 자신의 마차가 있는 곳으로 다시 거슬러 올라갔다.
용병들이 감사해 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떨떠름한 표정을 지었지만 그가 신경 쓸 바는 아니었다.
“도련님! 괜찮으십니까?!”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어서 이어서 가시죠.”
“아, 예예!”
중년 마부 나트람의 얼굴이 잔뜩 상기돼 있었다.
일전에 론이 마차를 박차고 나갈 때 꽤나 기겁했던 것이다. 하인의 본분이 주인의 시중을 드는 것이라지만, 기본적으로 위협적인 상황에서 주인을 지킬 의무도 있었다.
그랬기에 처음에 론이 상황 좀 보고 와야겠다는 말을 했을 때, 나트람은 도적들을 조우했던 것보다 더욱 놀랐었다.
“정말 고생 많으셨습니다.”
마차에 오르고 마부석에서 나트람이 뭐라 뭐라 말을 붙여왔지만, 론은 들리지 않았다.
“후우···.”
‘이게 맞는 건가.’
론이 손으로 얼굴을 쓸어내렸다.
과거에는 이러지 않았었다.
아무렇지 않게 통행료를 냈었다. 딱히 부끄럽지도 않았고 오히려 도적들과의 조우를 무사히 넘겼다는 사실에 안도했었던 거로 기억한다.
그래, 그 기억이 뭐 어쨌길래.
순간의 충동이 탄탄대로의 익숙한 길에서 벗어나게 했다.
‘괜찮은 삶이라 그러지 않았었나.’
“하아···.”
고개를 젖히고 눈을 감았다.
그랬다.
그것은 만족과 원 없이 산 인생이 아니었다. 지독히도 둔한 마법사의 비루한 인생이었다.
마지막까지 스스로는 행복했다며 자위하는 그런 비참한.
다그닥 다그닥.
론의 무거운 회고에도 마차는 거침없이 달려만 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