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작가 마법사의 회귀 - 2
아들렌 아카데미.
사람들이 흔히 부르는 명칭이다.
아들렌 마도 왕국에 하나뿐인 아카데미이기에 그런 것도 있지만, 무엇보다 설립자가 국왕이었다.
약 300년 전 로이드 4세는 대마도사를 스승으로 두고 많은 가르침을 받았었다. 그러면서 그는 장차 마법이 인간사에 미칠 방대한 영향에 대해 직감했다.
해서 그의 집권기 중 가장 강대했던 시기, 그는 아카데미를 설립했다. 다른 나라를 살펴봐도 마법을 중심으로 한 아카데미는 전무했지만, 그는 밀어붙였다.
초창기에는 말도 많고 부실하다는 평가도 있었다. 하지만 300년이 흐른 지금은 마도 왕국이라는 별칭과 함께 마법 선도국이 되었다.
선도국.
앞에서 다른 나라를 이끈다는 말이다.
과거 마법을 선도하던 마탑은 그 폐쇄적인 특성과 교류의 제한, 규모 등 다양한 측면에서 아카데미에 밀렸고, 시간이 지나자 자연스레 아카데미가 그 자리를 차지했다.
그러면서 각국에는 여러 아카데미가 설립되기 시작했고, 그중에서 아들렌 아카데미는 자연스럽게 명문이 되었다.
아들렌 아카데미의 마법학 커리큘럼은 단순하다.
1학년에는 2서클에 해당하는 마법을, 2학년에는 3서클, 그리고 3학년에는 4서클 마법에 대해 배운다.
라고 공시를 해놓았지만, 사실 이를 그대로 따를 수 있는 자는 극히 소수의 천재뿐이다.
즉 대부분은 3서클을 간신히 터득한 뒤 졸업을 한다. 3서클은 그래도 하나만 잘 파도 오를 수 있지만 4서클부터는 앞선 과목들을 통달해야 도달할 수 있기 때문이다.
허나 이 모든 것으로부터 자유로운 이. 론은 아카데미 입학을 앞두고 다른 것을 신경 쓰고 있었다.
바로 마나연공법.
가문에서 대대로 이어져 온 연공법은 당연히 있었고, 이미 그것을 사용해 론은 마나 서클을 만들었었다.
허나 2서클을 앞두고 론은 생각을 바꿨다.
상위 마법들에 서둘러 익숙해지는 것도 중요했지만, 회귀 전에는 하지 못했던 서클 자체를 건드려보고 싶었다. 더군다나 자신은 아직 서클이 하나였기에 더없이 적기였다.
세상에는 수많은 마나 사용자가 있고, 수많은 학파와 가문이 있기에 마나연공법도 그만큼 다양하다.
그런데 회귀 전 론은 유적관리단에서 흥미로운 유물을 보았었다. 노랫가사 혹은 시와도 같은 문자가 쓰인 기록물, ‘정령사의 찬가’였다.
마법사와 정령사의 구분이 모호하던 먼 고대의 이야기. 당시의 상황을 짐작하며 론은 연구했고 또 심취했다. 오묘한 이치를 담고 있었기 때문이다.
애초에 마나연공법이란 게 무엇인가.
사람이 자연과 교감하고 그 에너지를 쌓는 일련의 과정이다.
그것이 과하고 한쪽으로 치중됐다면 연공 중 문제가 생기겠지만, 론은 이미 경험했었다.
바로 그의 말년에 말이다.
성장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 노년의 그가 엘리멘탈리스트가 된 것. 행운으로 표현할 수도 있겠지만, 그 시작점은 분명히 유물의 기록에서부터였다.
당시 4서클의 수준에서도 상당한 효과를 보았었다.
때문에 1서클, 그 시작부터 연공법을 가다듬는 론은 조금 긴장이 되었다.
‘태초에 어둠을 가르는 빛이 밤과 낮을 구분했고...’
정령사의 찬가를 되뇌며 심상에 빠져들었다.
이는 마치 단순한 교감을 넘어 자연의 근원을 향해 나아가는 여행과도 같았다. 길고 긴.
무아(無我).
정신과 마음이 한 곳에 온전히 집중되자 자기 자신마저 사라졌다. 이는 마치 한계가 사라진 것과도 같았다.
육신을 가진 이로서 지닌 한계, 사람이 언어를 통해 배운 지식과 경험의 한계를 벗어나 통째로.
회귀까지 경험했기 때문일까.
온 만물이 순환하며 공존함을 전과는 또 다르게 인식하고 받아들였다.
“후우웁, 후우···후웁, 후우···.”
단순한 연공법으로 시작한 것이 생각했던 것보다 깊은 명상으로 이어졌는데 곧 마무리가 되어갔다. 론은 심상으로 뻗어진 가지와 열매들을 정리했다.
“후우.”
긴 여행이 마지막 날숨과 함께 끝이 났다.
“오.오빠 괜찮은 거 맞아?”
‘음? 내 방 아니었나?’
문득 드는 생각과 별개로 오랜 잠에서 깨어난 듯 상쾌했다. 단순히 정신만 그런 것이 아니라 들려오는 소리도, 눈에 담기는 세상도 말이다.
그렇다.
생동감이었다.
“이렇게 예뻤나?”
레비아가 더 귀엽게 보였다.
“뭣.뭐래애! 진짜, 재미도 없고, 눈 감고 잠만 자면서!”
“흐음···. 잠만 잔 거 같진 않은데···.”
양 볼을 빵빵하게 부풀린 레비 너머로 에레드 스펜서가 보였다.
진중한 눈빛.
무언가를 알아채기라도 한 걸까.
허나 론에게는 그저 반가울 뿐이었다.
“오셨습니까, 아버지?”
“말괄량이 꼬마가 안 보여서 좀 찾아다녔지.”
“꼬마 아니거든요!”
“으음? 딱히 레비한테 한 말은 아니었는데··· 혹시?”
“아웅!”
에레드가 어느새 장난스러운 눈빛으로 쳐다보자 레비가 방을 뛰쳐나갔다.
그녀가 시야에서 사라지자 에레드는 말했다.
“···. 혹 필요한 거 있으면 말하거라.”
뭔가 알아차린 건 아니었나 보다.
**
비슷한 일상이 지속되었다.
오전에는 대부분 마나 연공과 명상을 하며 시간을 보냈고, 오후에는 마법을 연마했다.
“파이어.”
회귀 전 5서클 엘리멘탈리스트의 경지에 올랐다고 해서 당장 고서클 마법을 연습할 생각 따위는 없었다.
오히려 기초마법의 이해도와 마나의 컨트롤이 뒤로 갈수록 중요함을 알기에 론은 차근차근 나아가는 중이었다. 그렇다해도 그 누구보다 빠를 테니까 말이다.
다만 지금 그가 펼친 마법은 기존과는 조금 달랐다.
쏴아아아.
폭포수가 쏟아지는 강 가장자리에 론이 손을 내민 채 서 있었다.
그가 이러는 이유는 단순했다.
폭포 뒤에 공간이 있기 때문이다.
자신으로부터 거리를 두고 시전하는 원격마법은 회귀 전에도 많이 해봤지만, 지금처럼 인식하지 못한 곳에 마법을 펼쳐 본 적은 없었다.
수백 수천 번을 써봤기에 무의식 중에도 바로 쓸 수 있는 마법인 파이어였지만.
“흠···. 안 되네.”
발현됐다는 느낌이 없었다.
무언가 오류인 것이다.
털썩.
론이 자리에 그대로 내려앉았다.
‘뭐가 필요한 걸까.’
과거라면 전혀 고민도 하지 않았을 문제다. 따지고 보면 이는 마법의 전제 조건인 발현 좌표를 배제한 것이나 다름없기 때문이다.
감각으로 받아들이고 인지해야 하는 부분의 생략.
하지만 론은 계속해서 답을 궁구했다. 어느새부터인가 확장된 감각이 오감 너머의 것을 본능적으로 추구하는 것 같았다. 초감각(超感覺).
“하아···. 안 돼!”
꽤 긴 시간을 숲속에서 할애하였고, 결국 해는 뉘엿뉘엿 넘어가고 있었다.
“쯧.”
휘이익.
퍽. 탁, 데구루루.
홧김에 던진 돌멩이가 폭포를 뚫고 들어가 안에서 구른 듯했다.
“돌멩아, 다음에 들어가는 건 돌이 아니라 불꽃이다.”
아쉬운 맘을 털고 론은 이만 저택을 향해 내려갔다.
한 달. 길지도 짧지도 않은 시간이었지만 그래도 론에게는 유익한 시간이었다.
어렸을 적 몸에 익숙해졌고, 나아가 마나 서클이 전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견고해졌다.
몰래 숲속에서 윈드 애로우를 있는 힘껏 시전했는데, 흡사 3서클의 윈드 스피어와 비슷했다.
가히 비상식적인 성취였다.
천재라도 된 듯 자신감에 치솟았고 론으로 하여금 더욱 매진하게 만들었다.
물론 마지막의 발현 좌표 배제는 다시 생각해도 무리긴 했지만 말이다.
허나 어쩌랴.
이러한 끊임없는 시도가 자신을 발전시킬 것임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기대가 된단 말이지.”
돌아가는 발걸음이 가볍다.
내일은 아카데미 입학을 위해 떠나는 날이다. 여정을 염려해 환송 파티는 어제 이미 치렀다.
컨디션은 최상.
모든 준비는 마쳤다.
**
추수기가 지난 가을의 아침은 서늘하다.
“후우, 후우.”
일찍부터 마차를 준비한 마부가 장갑을 낀 손으로 빨개진 코를 감싸며 추위를 녹인다.
“론, 딴 걱정은 안 하마. 다치지만 말거라. 나머지는 알아서 잘할 거라 믿는다.”
“예, 형님. 감사합니다.”
“조심히 다녀오세요.”
그런 생각을 한 적이 있다.
회귀의 시기가 좀 더 앞당겨졌다면 어머니의 얼굴을 볼 수 있었지 않았을까 하는.
허나 이는 무의미했다.
아버지께서 젊을 적 토벌 임무를 나갔다가 외지에서 만난 게 그의 어머니 로니아였다.
한여름 밤의 꿈처럼 열정이 불타올랐고 에레드는 그 결과를 확인하지도 않은 채 가문으로 복귀했다. 그리고 2년여 시간이 지나서 온 편지는 그녀의 유서가 되었다.
질타를 받아 마땅한 일.
에레드는 가문 안팎으로 들리는 소리를 묵묵히 받아들였고, 로니아의 시신을 수습해 가문의 선산에 묻었다. 그리고 나는 그런 어머니의 이름을 본따 론이 되었다.
서문만 들으면 기구한 인생이 따로 없지만, 아버지와 첫째 어머니는 회귀 전 마지막까지 나를 차별 없이 대해주었다.
그 때문이었을까.
조심히 다녀오라는 평범한 인사말이었지만 론은 마음이 따뜻해졌다.
“네, 어머니.”
“어? 그..그래.”
당황해 말을 더듬는 첫째 어머니를 보며 무던한 미소를 지었다.
“하하, 제법 출가한다고 무게 좀 잡는구나.”
“그러게요.”
론 스스로도 어색했는지 뒷머리를 긁적였다.
“가져가거라.”
에레드가 자신의 손바닥만한 목함을 건넸다.
“이게···.”
사실 뭔지는 알고 있었다.
회귀 전과 똑같았기에.
“뭐 그건 여정 중의 재미로 두고, 잘 갔다 오거라. 뭐 딱히 걱정은 안 되는구나. 그리고 알지?”
“네?”
전생에 이런 대화가 있었나 싶은 순간.
“이왕 사고 칠 거면,”
아.
“제대로.”
“하하하, 그래. 어쭙잖은 건 안 하느니만 못해. 잘 다녀오거라.”
“예, 아버지.”
론이 마차에 오르자 곧이어 채찍 소리와 함께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전국 각지에서도 이와 같은 소리를 내며 아카데미로 모여들고 있을 터였다.
80년의 세월을 산 그였음에도 심지어 회귀하여 한 번 겪었음에도 몇몇 차이들이 그를 두근거리게 만들고 있었다.
‘물론 그 차이가 좀 심하긴 하지만 말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