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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같은 프로듀서는 없었다-271화 (271/273)

271화

“한 달 만에 나타나서 한다는 말이 이게 답니까?”

천소울은 어딘지 뾰로통한 얼굴로 되물었다.

“미안해요. 준비하느라 정신이 없어서. 우리 목표가 무려 그래미인데, 뭐 하나 대충할 수는 없잖아요?”

성현은 정말 미안하다는 듯이 천소울을 보며 난처하게 웃었다.

정말 눈코 뜰 새 없이 바빴다.

지금까지 나름 준비한다고 준비해오고 있었는데, 본격적으로 그래미를 노리기 위해서 많은 수고가 필요했다.

“됐습니다. 그래서, 계획이 뭔데요. 곡은 나온 겁니까?”

천소울은 알았다며 넘어가려 했다.

사실 성현도 다 알고 있었기에 웃음이 났다.

천소울이 그동안 모건을 비롯 세계적인 러브콜을 전부 잠정 보류해놨다는 사실을.

저번 주에 모건이 자신에게 전화를 걸어 푸념을 늘어놓은 적이 있었다.

천소울이 자신을 비롯해 해외의 프로듀서들 제안을 다 물리치고 있다고 했다.

아마, 성현 때문에 말이다.

“고마워요.”

성현은 본격적으로 작업을 시작하기에 앞서 꼭 이 말 하고 싶었다.

천소울은 살짝 당황한 눈으로 성현을 바라봤다.

“나 기다려줘서 고맙다고요.”

“고맙다는 그 소리는, 그래미에서 상 받은 다음에 합시다.”

천소울은 괜히 헛기침을 하며 성현이 테이블 위에 올려두었던 종이들을 뒤적거렸다.

“……그땐, 내가 정말 진하게 고마움을 표현할 테니까.”

나지막이 한 마디를 덧붙이는 천소울을 가만히 보던 성현은 휴대폰을 테이블 위에 올렸다.

그리고, 아무 말 없이 재생 버튼을 눌렀다.

틱-틱-틱-틱-

메트로놈 소리가 짧게 울렸다.

“잘 들어요. 내가 오로지 천소울 씨, 당신의 그래미를 위해 만든 곡이니까.”

백 마디 말보다, 이 노래를 한 번 들려주는 것이 이야기가 빠를 테니까.

성현과 천소울이 집중해서 귀를 기울였다.

성현이 준비한 영어 가사의 노래가 흘러나와 사무실을 가득 메웠다.

5분이 지나고, 천소울은 아무 말 없이 그 자리에 그대로 굳어버렸다.

성현은 자신만만한 미소를 지은 채로 천소울을 바라보면서 기다렸다.

“후아.”

천소울은 마른세수를 하며 소파에 깊숙이 몸을 묻었다.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면서 한참 동안 말이 없었다.

성현은 뭐라도 당장 물어보고 싶지만 참고 기다렸다.

충분히 노래를 음미한 다음에 나올 천소울의 첫 마디가 궁금했다.

성현이 온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을 때, 천소울이 고쳐 앉으며 입을 열었다.

“아까 했던 말, 취소해야겠네요.”

“네?”

“그래미에서 상 타면 고마움을 표한다고 했던 말 취소라고요.”

이게 무슨 소리지.

알 수 없는 표정의 천소울이 성현을 똑바로 바라보며 말했다.

“이런 노래를 저를 위해 만들어줬으니, 그래미고 뭐고 일단 고맙습니다.”

그래미고 뭐고 라니.

지금 당장 흥분해서 나온 말이겠지만, 이만한 극찬이 또 어디 있을까.

“마음에 들어요?”

답을 알고 있지만, 그 답을 꼭 듣고 싶을 때가 있다.

“너무나도.”

천소울은 주저 없이 원하는 답을 뱉었다.

“좋아요. 그럼 이 노래로 갑시다. 그래미.”

한 달여 만에 나타난 성현과 천소울은 10분 만에 파이널 라운드에 도전할 곡 선정을 마쳤다.

“이 종이들은 뭡니까?”

천소울은 악보처럼 보이지는 않는 종이들에게 시선이 갔다.

노래가 아닌 이 종이들의 정체에 이제야 관심이 가는 것.

“별거 없어요. 천소울 씨를 그래미에 보낼 수 있는 전략 정도?”

“전략이요?”

천소울은 끝내주는 노래가 나오자 어느 정도 희망이 생겼는지 적극적으로 몸을 빼서 물어왔다.

“진정해요, 진정해. 다 설명드릴게요.”

그답지 않은 적극성에 성현이 웃으며 설명을 시작했다.

“노래에 대한 믿음은 우리 둘 다 있다고 봐요. 하지만, 그래미는 노래에 대한 믿음만으로는 함부로 발을 들일 수 없는 영역이죠.”

그래미 어워드.

세계 최고의 음악 시상식이라고 하지만, 그 이면에는 굉장히 보수적인 성향에서 오는 안 좋은 시선도 분명히 존재했다.

일단, 메인상에서 동양인이 수상을 한 역사가 없다.

BTG가 나오기 전까지는 후보에도 거의 오르지 않을 정도였으니 그 세월이 만만치 않았다.

“그렇기에, 노래 말고도 전략이 필요하다 생각했어요.”

노래가 가장 중요한 건 여전히 유효했다.

하지만 그것 외에도 방해가 될만한 모든 요소를 제거하는 과정이 필요했다.

훌륭한 노래를 만들어냈으니, 이제 남은 일은 단순했다.

많은 이의 귀에 들리게 하는 것도 프로듀서의 몫이었다.

“우선 첫 번째는 뮤직비디오. 우리 성탄 엔터는 이번 천소울 씨의 뮤직비디오에 전에 없을 공을 들일 겁니다.”

성현의 말에 천소울의 눈이 반짝였다.

평소와는 다르게 천소울치고 꽤 격하게 고개를 끄덕이면서 성현의 다음 말을 기다렸다.

“이거 큰일 났는데요. 소울 씨 뮤직비디오 감독을 누가 맡아주기로 했는지 들으면 더 흥분하겠는데?”

“아 정말, 뜸 들이지 말고 바로 말 좀 해주시죠.”

“봉준오. 봉준오 감독이요.”

“......?”

뜸 들이지 말라는 말에 튀어나온 성현의 대답은 가관이었다.

봉준오가 누구인가.

한국을 넘어 세계적인 아카데미를 휩쓴 세계 최고의 영화 감독.

지난번 ‘더 넥스트 슈퍼스타’ 심사위원으로 나와 인연이 없진 않지만, 그가 뮤직비디오를 찍어주다니.

봉준오가 뮤비를 찍었던 것은 벌써 20여 년 전 아득한 이야기였다.

사실상 이제 뮤직비디오는 안 찍는다고 봐도 무방했다.

“아니 잠깐. 진짜입니까?”

천소울이 정신을 차리기 위해 고개를 흔들고 되물었다.

성현은 당연하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게 현실인지, 성현이 장난치는 건지.

천소울은 도무지 감이 안 잡혀 일단 잠자코 성현을 응시했다.

“뮤직비디오는 봉준오 감독님 이름값에 더해, 애초에 천소울 씨가 지닌 최근의 유명세까지 있으니 적어도 초반 이목은 확 잡을 수 있을 거예요. 진짜 중요한 건 그다음.”

“그다음?”

천소울은 어느새 성현의 이야기에 빠져들고 있었다.

“우리는 그래미 이전까지, 단 한 번의 활동도 안 할 겁니다.”

성현의 마지막 히든 카드.

“이건 또 뭔 소리입니까?”

천소울은 도대체 어떤 계획을 세우고 있는 건지 감이 안 잡혔다.

그의 얼굴이 와락 구겨졌다.

거기다 대고 성현은 별거 아니라는 듯 한 마디를 덧붙였다.

“한국인은 한국인이 잘하는 거 해야죠. 우리는, 그래미와 ‘밀당’을 할 겁니다.”

***

천소울이 성현의 곡을 들은 날 이후, 작업은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

“이러니까 연락이 안 됐지.”

요즘 천소울은 매일매일이 놀라움의 연속이었다.

성현이 불과 한 달 사이에 엄청 꼼꼼하게 일을 진행시켜 온 것이다.

먼저, 싱글 앨범 녹음.

천소울만 오케이하면 바로 녹음에 들어갈 수 있을 정도였다.

세션이면, 세션.

엔지니어면, 엔지니어.

성현 외에도 레코딩을 도와줄 모든 전문가가 천소울을 기다리고 있었다.

천소울이 개인적으로 이 노래를 연습한 기간과 녹음까지 합쳐, 걸린 시간은 겨우 단 2주였다.

누가 보면 번갯불에 콩 볶듯이 나왔다고 기함할 만한 기간이었다.

하지만, 결과물은 누가 들어도 혀를 내두를 정도로 완벽했다.

이어서 봉준오 감독과의 뮤직비디오 작업도 7월이 가기 전에 시작되었다.

봉준오는 미리 콘티까지 구상하고 기다리고 있었던 것.

천소울이 녹음한 음원을 들은 봉준오 감독이 새롭게 떠오른 영감을 추가해 수정한 뒤 바로 촬영에 들어갔다.

세트장은 이미 완벽하게 세워져 있었다.

스탭들은 물론, 장비와 유통 계획 등 모든 스케줄이 짜여져 있었다.

천소울은 아무 걱정 없이 큐사인에 맞춰 봉준오와 제작만 하면 되는 수준이었다.

“며칠 전만 해도 우리 녹음실에 있지 않았어요?”

“하하, 신기하죠?”

천소울은 잠시 촬영 현장에 들른 성현에게 툴툴거렸다.

너무 일들이 확확 진행되다 보니까 현실감각이 없어진 기분이었다.

뮤직비디오 촬영에 필요한 시간은 일주일이 채 안 되었다.

영화판에서도 스케줄을 간소화하기로 유명한 봉준오 감독이 메가폰을 잡았다.

뮤직비디오는 그보다 더 빠르게 진행되었다.

명장 앞에서 장르는 아무런 걸림돌이 되지 못했다.

8월 첫째 날, 뮤직비디오 촬영이 끝이 났다.

“컷! 오케이!”

“수고하셨습니다! 전부 감사합니다!”

마지막 컷 사인과 함께, 성현이 가운데로 나서 크게 소리쳤다.

스탭들 전원이 박수를 치며 자축했다.

“수고하셨어요, 감독님.”

성현이 봉 감독에게 꾸벅 인사했다.

“감사합니다. 제가 잘했는지 모르겠네요.”

마지막 촬영을 마친 천소울도 어느새 옆에 와 있었다.

“아니야. 다들 수고했어요. 나도 진짜 오랜만에 뮤직비디오 찍어서 즐거웠어요. 천소울 씨 연기도 너무 좋던데? 다음에 내 영화에 정식으로 캐스팅해야겠어.”

그때, 성탄 엔터 관계자 한 명이 부리나케 현장으로 달려왔다.

“이 PD님. 잠시만 이쪽 와주실 수 있나요? 계약 건 때문에…….”

“아, 네네. 그럼요. 감독님, 잠시 실례 좀.”

성현은 그 말을 듣고 봉준오에게 양해를 구했다.

“어어, 그럼. 다녀와요.”

성현은 이 곡을 쓴 프로듀서이자, 이 싱글 음원을 발매하는 ‘성탄 엔터테인먼트’의 최대주주이기도 했다.

즉, 곡 제작부터 뮤직비디오 제작까지 모든 과정은 전부 성현의 손을 거치고 있었다.

예산 수립부터 계약 체결까지 제 발로 뛰느라 성현도 요즘 정신이 없었다.

“참 대단한 친구예요. 그쵸?”

봉준오가 성현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말했다.

“그럼요. 누구 프로듀서인데요.”

천소울도 같은 모습 바라보며 답했다.

그때, 봉준오가 별 뜻 없이 뱉은 말이 천소울의 눈을 크게 뜨이게 했다.

“7월에 꼭 뮤직비디오를 찍어달라고 처음 봤을 때부터 얼마나 달달 볶던지. 덕분에 올 7월을 위해 반년 전부터 스케줄을 빼놨다니까요. 그 열정이 딱 제 어릴 때 보는 것 같네요.”

…처음 봤을 때?

미국에서 심사위원으로 봉준오를 처음 만났게 약 10개월 전이었다.

그때부터 뮤직비디오 감독을 부탁했다고?

그땐 ‘더 넥스트 슈퍼스타’에서 그래미 관련 미션을 내주지 않았을 시기다.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인가.

천소울은 아무 말도 못 하고 성현이 사라진 방향을 바라봤다.

***

이성현이 만들고, 천소울이 부른 싱글 앨범 수록곡, ‘No Complex’

영어로 작사된 이 곡은, 8월의 마지막 주에 공개됐다.

천소울이 작사에 참여한 중간 랩부분은 자전적인 이야기로 밝혀져 큰 화제가 되었다.

전 세계 음원 시장에 동시 공개된 이 곡은, 너튜브를 통해 공개된 봉준오 감독의 뮤직비디오와 함께 엄청난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음원은 공개 하루 만에 국내 음원 차트 1위에 올랐고, 아시아 전역에서 같은 일이 벌어졌다.

미국과 유럽 시장 반응도 나쁘지 않았다.

해외 뉴스 토픽에는 천소울의 이야기가 나오지 않는 날이 없었다.

그중, 여전히 ‘더 넥스트 슈퍼스타’의 열기가 완전히 식지 않은 미국에서의 반응이 폭발적이었다.

천소울이 영어 노래를 냈다는 소식에 많은 전문가와 팬들이 몰려 호평을 쏟아냈다.

너튜브 뮤직비디오 조회수도 일주일 만에 1억 뷰를 달성했다.

심지어, 빌보드 핫100 차트에도 97위란 순위로 입성했다.

하지만, 이 정도로는 아직 만족할 수 없었다.

성현과 천소울의 목표는 어디까지나 그래미였으니까.

사실 음원 공개 첫날부터, 음원과 뮤직비디오 외에 이성현이 계획한 일이 있었다.

조용히 물밑에서 진행되는 이 계획은, 9월이 끝날 무렵, 완전히 수면 위로 떠올랐다.

전 세계를 뒤흔든 그 이름은 바로.

[ SOUL CHALLENGE. ]

전 세계 가장 많은 유저가 사용하는 동영상 서비스, 너튜브.

천소울의 신곡 ‘No Complex’를 커버하는 ‘소울 챌린지’가 완전히 장악해버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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