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0화
그래미 어워드.
1959년 시작된 음악 시상식으로, 세계에서 가장 권위 있는 음악 시상식으로 평가 받고 있다.
그래미어워드에는 각 장르별 상을 포함해 수십 가지의 상이 있다.
하지만, 그중 가장 높게 평가받는 세 개의 상을 흔히들 ‘본상’이라고 칭한다.
‘올해의 앨범상’, ‘올해의 레코드상’, ‘올해의 노래상’.
‘더 넥스트 슈퍼스타’의 파이널 라운드 미션은 이 세 개의 본상과 ‘베스트 신인상’ 중 하나의 상을 타라는 조건인 것이다.
“당장 내년에 열리는 그래미에서 수상하라는 겁니까?”
늘 밝은 분위기의 메튜마저 심각한 얼굴이 되어서 물었다.
“그렇게 쓰여있지 않나요?”
리키 헨더슨은 짐짓 잘 모르겠다는 듯 시치미를 떼고 있었다.
이미 주어진 공지에 대해서는 추가적인 질문을 받지 않겠다는 태도였다.
“8월...... 시간이 별로 없어.”
왼쪽 상단 화면 속 존 메이슨이 염려 가득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그 작은 소리를 캐치 해낸 리키가 신이 나서 말했다.
“맞습니다, 존 메이슨. 2024 그래미어워드는 내년 2월에 열리지만, 곡은 8월까지 준비해야 하죠.”
매년 그래미 어워드 후보에 오르는 곡은, 그 전년도 8월31일까지 발매된 곡 중에서 선정된다.
“그래서 앨범 제작을......”
지금부터 두 달 남짓 남은 제한 시간 안에 새로운 앨범을 만드는 것은 불가능이 가까웠다.
주최 측은 파이널 라운드 미션까지 감안하고 바로 직전 본선 9라운드 미션을 앨범 제작으로 내세웠던 것.
이번 데뷔 앨범으로 노미네이트 된다면 그야말로 다행이었다.
다만, 만약 이번 앨범이 그러지 못한다면?
그래미 어워드의 개최가 내년 2월이라고 해도, 그래미에서 수상할 곡을 만드는 것은 촉박했다.
하지만, 내년 2월 그래미 어워드에 노미네이트 되기 위해서는 8월이 끝나기 전 새 곡을 발표해야 했다.
실질적으로 새로운 곡을 만들어 발표하기까지 참가자들에게 남은 시간은 단 두 달이라는 소리였다.
“아무도 수상하지 못한다면.”
그때, 가만히 있던 성현이 나섰다.
게임 ‘메이크 유어 스타’를 통해 이미 이 미션을 수행해본 적이 있었다.
그런 성현도 게임 속에서 한 번도 성공하지 못했던 파이널 라운드였다.
마지막 라운드 미션이 그래미 어워드 본상 수상이라니.
이 파이널 미션이 가장 어이없는 이유이자, 게임 속 원하는 엔딩을 보기 힘들었던 이유였다.
“우리 8명 중 아무도 그래미 본상을 얻지 못한다면, 우승자는 어떻게 되는 거죠?”
8명 중 한 명도 그래미에서 수상하지 못할 가능성이 압도적으로 높았다.
전 세계적으로 날고 긴다는 스타들도 평생 그래미에 노미네이트 되지 못한 사람들이 수두룩했으니까.
그리고 게임에서도 숱하게 일어났던 일이었다.
성현은 만에 하나를 위해 이 자리에서 짚고 넘어가야만 했다.
그 질문에 리키는 어깨를 들썩이며 덤덤하게 답했다.
“이번 ‘더 넥스트 슈퍼스타’의 우승자는 없게 되는 겁니다.”
주최 측은 우승자 없는 오디션이라는 불명예스러운 타이틀을 얻게 되어도 상관없다는 태도를 보였다.
이 역시 게임 속과 같은 조건이었다.
성현은 씁쓸한 마음에 침묵했다.
“대신, 같은 파트의 참가자 중 본상 수상 개수가 똑같은 자가 나온다면, 그때는 모두를 우승으로 인정. 각각 1000만 달러의 상금을 지급합니다. 어때요, 괜찮은 조건이죠?”
괜찮기는 무슨.
저렇게 웃으면서 말하는 리키도 그럴 일이 절대 없을 거란 걸 잘 알고 있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한 가지 더 공지하겠습니다. 미션 내용을 보시면 아시겠지만, 이번 미션은 개인전입니다. 언제나 그랬듯, 협업을 하시는 건 자유지만요.”
애초에 가수 참가자와 프로듀서 참가자의 우승자를 각각 뽑는다고 했던 오디션이었다.
어떤 식으로 프로듀서와 가수 참가자의 우승자를 가려낼 것인지 의견이 분분했었다.
그런데 이번에 밝혀진 사실, 그래미 어워드 본상으로 그걸 가려내겠다니.
“혹시 질문 더 있으신가요?”
리키의 말에 모두가 말이 없었다.
“그럼, 행운을 빕니다. 아디오스.”
리키는 그런 참가자들을 확인하고 가차 없이 통화를 종료했다.
‘더 넥스트 슈퍼스타’ 파이널 라운드가 시작되었다.
***
한 달이란 시간은 금방 흘러갔다.
데뷔 무대가 엊그제 같은데, 어느덧 본격적인 여름이 시작되는 7월이 되었다.
6월 한 달은 천소울에게 굉장히 뜨거운 기간이었다.
성현과 함께 발매한 앨범 [ The Soul ]은 발매 직후 음원 차트에 줄을 세웠다.
타이틀 곡 ‘사랑 시’는 3주 차가 될 때까지 1위를 유지했다.
한 달이 지난 지금도 10위권 밖으로 떨어지지 않은 상태였다.
방송가에서도 단연 천소울은 가장 핫한 블루칩이었다.
제의 들어온 광고가 100개가 넘었다.
그 많은 광고를 검토하고, 한 달 사이 찍은 것도 다섯 개가 넘었다.
앞으로 대기 중인 광고도 여러 개였다.
길거리나 카페, 식당을 포함해서 어떤 가게든 천소울의 노래가 안 들리는 곳이 없었다.
TV를 틀면 과장 조금 보태서 한 채널 걸러 한 채널에 천소울이 등장했다.
예능 프로에 출연을 하거나, 광고로 나오거나.
천소울은 한국에서뿐만 아니라 아시아 전체적으로 엄청난 인기를 구가했다.
천소울의 음원은 아시아 20여 개국 음원 사이트 정상에 올랐다.
세계 이곳저곳에서 초청이 오는 상황이지만, 스케줄이 너무 바빠 아직 보류해 놓은 상태였다.
아직 오디션이 완전히 끝나지 않은 탓도 있었다.
그리고 성탄 엔터와 함께 아예 아시아 투어를 계획 중이었다.
유럽과 아메리카 시장 역시 열띤 반응을 보였다.
아시아에서처럼 정상까지는 아니지만, ‘더 넥스트 슈퍼서트’ 덕에 훌륭한 인지도를 선점했다.
특히 서구 지역에서는 음원보다 뮤직비디오가 크게 흥행했다.
서양인들에게 익숙하지 않은 발라드임에도 불구하고, 천소울의 뮤비는 한 달 사이 1억 뷰가 넘는 조회수를 기록했다.
2억에 거의 가까워진 조회수는 연일 화제였다.
천소울의 앨범은 그야말로 K-발라드의 새 역사를 쓰고 있었다.
천소울은 그야말로 ‘슈퍼스타’라는 말이 어울리는 남자가 되었다.
아직 ‘더 넥스트 슈퍼스타’ 오디션은 안 끝났지만, 이미 슈퍼스타가 된 것은 부정할 수 없었다.
그리고 한 달 새에 그에게 일어난 큰 변화가 하나 더 있었다.
“소울씨! 여기!”
임하나가 개인 승용차를 타고 성탄 엔터 건물 앞에서 기다리다, 천소울을 맞이했다.
무표정으로 성탄 엔터 건물을 나서던 천소울이 임하나를 발견하고 얼굴빛이 밝아졌다.
“늦었는데 뭐하러 기다렸습니까. 내일 보면 되지.”
차에 오른 천소울은 여전히 조금은 딱딱하지만, 어딘가 말랑말랑해진 목소리였다.
“언제 또 볼지 모르는데, 많이 봐둬야죠.”
차를 출발시키며 임하나가 한 대수롭지 않은 말에, 막 안전벨트를 하려던 천소울이 멈칫했다.
천소울은 표정을 굳히며 대꾸 없이 안전벨트를 마저 채웠다.
“어디로 갑니까?”
그런 그의 귀는 누가 칠해놓은 것처럼 새빨개져 있었다.
지난주, 임하나가 한국에 돌아왔다.
하지만 스케줄 상 또 며칠 뒤 나가야 했다.
그녀는 현재 한국보다는 영국에서의 스케줄이 많았다.
영국 프로듀서와 함께 영국 감성에 맞는 곡을 발매했기에, 한국에서보다 영국에서 더 인기를 끌었다.
여기에는 예전에 아델의 픽을 받은 가수라는 명성이 빛을 발하고 있었다.
“저 한국 얼마나 힘들게 돌아온지 몰라요? 이제 겨우 세 번째로 얼굴 보는구만. 사람이 기다릴 수도 있죠.”
어찌나 슈퍼스타가 되셨는지 얼굴 보기 힘들다며 덧붙이는 임하나의 말에 천소울이 피식 웃었다.
한참을 창밖만 보던 천소울이 최대한 자연스럽게 물었다.
“왜요, 더 보고 싶나 보죠?”
“당연하죠! ......헙.”
천소울의 덤덤한 말에 임하나는 저도 모르게 큰 소리로 대답하고 말았다.
아씨...... 혼자 궁시렁거리며 핸들을 돌리는 임하나의 모습을 슬쩍 본 천소울이 툭 뱉었다.
“저도 마찬가집니다.”
“무, 뭐라고요......?”
“못 들었으면 말고.”
임하나는 그렇게 되묻고는 얼굴이 새빨개져서 입을 다물었다.
천소울 역시 만족스럽다는 듯이 웃으며 창밖으로 고개를 돌렸다.
옆에서 운전하는 임하나를 슬쩍슬쩍 쳐다보면서.
둘 다 연애 한 번 못해본 초짜라 조심스럽지만, 두 사람의 성격치고 나름대로 순탄하게 만남을 이어가고 있었다.
두 사람은 차에서 커피를 마시며 데이트 아닌 데이트를 했다.
벌써 스타의 자리에 오른 만큼, 바깥에서 만나는 건 조심스러웠다.
임하나는 그렇다 치고, 천소울의 얼굴이 어찌나 유명한지.
성현이 파파라치를 걱정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두 사람이 한창 대화하고 있는데,
징징-
임하나의 핸드폰이 계속 울렸다.
“하, 진짜... 사람 못 쉬게 하네.”
존 메이슨이 얼른 오라고 성화하는 내용의 메시지였다.
“존 메이슨이 곡 완성됐다고 빨리 오라고 보채고 난리예요. 이 곡이면 무조건 그래미 갈 수 있다고 벌써 방방 뛰고 있다니까요.”
임하나는 지난 앨범 미션을 같이 한 존 메이슨과 한 곡 더 싱글 낼 생각이었다.
파이널 라운드를 저격한 그래미 노미네이트를 위한 준비였다.
그렇게 투덜거리던 임하나가 홱 고개를 돌렸다.
“그나저나 소울씨는요? 모건 쪽에서도 계속 연락 온다면서요.”
임하나는 걱정스러운 듯 조심스럽게 물었다.
천소울은 바쁜 스케줄 소화하면서 곡 작업은 하고 있지 않았다.
그에게 컨택이 들어오는 곡은 국내 외를 막론하고 매일매일 쏟아지고 있었다.
천소울은 다 거절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역시, 성현 씨 때문?”
천소울이 아무런 대답도 안 하자, 임하나는 이미 알고 있다는 듯 물었다.
천소울은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참, 성현 씨는 도대체 언제 연락 주려고 소울씨를 이렇게 애태우나.”
성현은 파이널 라운드 발표 이후 딱히 연락해오지 않았다.
당연히 스케줄 상 일주일에도 몇 번이나 봤지만, 그 외 사적으로 곡 이야기를 한 적도 없었다.
다른 가수 참가자에게 컨택했다는 소문도 없는데......
“곧. 곧 연락이 오겠지.”
하지만 천소울은 성현이 그래미를 위해 아무것도 안 할 거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렇기에 유명 프로듀서의 제안도 다 거절하고 있었다.
“그렇지. 성현 씨라면, 또 무슨 계획이 다 있겠죠.”
임하나도 성현을 향한 믿음이 굳건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살짝 걱정되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그래미를 위해선 8월까지 곡을 내야 하는데, 두 달이 채 안 남은 지금까지 아무 말이 없으니.
“나도 성현 씨를 믿지만... 그래도 뭐 차선책이라도 두는 게 낫지 않겠어요?”
천소울은 임하나의 말에 잠시 생각하더니 이내 고개 절레절레 흔들었다.
“아니. 차선은 없어요. 난 음악에 언제나 최선이고, 내 최선은 이성현 그 프로듀서니까.”
그 말을 끝으로, 술이라도 되는 것처럼 남은 쓴 커피를 원샷 해 버렸다.
***
“많이 기다렸죠?”
어제 임하나와 대화한 것이 거짓말 같았다.
성현이 어젯밤 자신에게 오늘 사무실로 좀 와달라고 연락했다.
그 결과, 성현이 언제나처럼 자신만만한 얼굴로 천소울 앞에 앉아있는 것이다.
성현은 뭔가 빽빽하게 쓰인 종이 몇 장을 천소울 앞에 내밀었다.
천소울은 종이를 살피는 대신, 이게 뭐냐는 듯 성현을 바라봤다.
성현은 씨익 웃으며 말했다.
“까짓것 한 번 해봅시다. 그래미 어워드. 이번에도 내가 천소울 씨를 주인공으로 만들어줄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