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6화
“허업!”
챔스 결승전에서 데뷔 무대가 가능하다.
리키의 확답에 존 메이슨은 눈을 화등잔만 하게 뜨고 놀라서 굳어버렸다.
“뭐? 진짜요?”
“이게 된다고? 왜? 어떻게?”
그의 대답에 놀란 것은 질문을 한 당사자, 존 메이슨만이 아니었다.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메이슨을 놀리던 참가자들 모두가 입을 떡 벌렸다.
“아무 데나, 원하는 곳......”
그제야 모두 지금 이 라운드의 스케일을 실감할 수 있었다.
원하는 곳 어디든지, 라는 말은 마치 마법 같았다.
어마어마한 범위의 크기를 막연하게나마 느낀 참가자들은 하나같이 눈알 돌리는 소리가 빨라졌다.
존 메이슨 역시 자신의 파트너인 임하나와 무어라 빠르게 대화를 나누기 시작했다.
“자자, 여러분. 흥분하지 마시고.”
리키 헨더슨이 다시 주목을 끌었다.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흥분하지 않을 수 있겠느냐만.
다들 합죽이가 되어서 리키를 바라봤다.
오디션 당락을 떠나 일생일대의 기회이기에 모두 한 마디라도 놓칠까 싶어 리키 헨더슨에게 주목했다.
“지금이 이곳 LA시간으로 정확히 오후 6시. 데뷔 무대를 어디서 할지는, 각 팀이 내일 이 시간까지 정해서 말씀해주시면 됩니다.”
“혹시 지금 말해도 됩니까?”
임하나와의 상의를 끝낸 듯한 존 메이슨이 급하게 물었다.
누구에게 쫓기는 사람마냥 그의 표정은 초조했다.
“물론이죠.”
리키의 말이 끝나자마자 존 메이슨은 임하나에게 말하라며 웃으며 손짓했다.
“챔피언스리그 결승 무대. 저희 팀은 그곳으로 하겠습니다.”
임하나의 팀은 방금 데뷔 무대 가능 여부를 확인한 챔스 결승을 재빨리 점 찍었다.
다른 팀이 먼저 말할까, 선수를 치는 것이 낫겠다고 생각한 모양이었다.
챔스 결승전은 그럴만한 가치가 있는 무대였다.
세계 수억 명의 축구팬들이 주목하는 최고의 축구 쇼 중 하나이니까.
오히려 다른 어떤 곳보다 주목도가 높을 수 있었다.
“번복은 불가능합니다. 확정하시겠습니까?”
리키는 고개를 끄덕이더니 마지막으로 확인하듯 물었다.
“Yes.”
“좋습니다. 임하나, 존 메이슨 팀. 데뷔 무대는 챔피언스리그 결승 무대로 확정되었습니다.”
임하나의 단호한 대답과 함께, 챔피언스리그 결승 무대는 임하나 팀에게 돌아갔다.
“이예! 와우!”
존 메이슨은 어지간히 기뻤는지 격하게 환호하며 기쁨을 표출했다.
임하나는 그런 메이슨이 웃겼는지 깔깔거리며 기뻐했다.
역시 축구를 사랑하는 나라 영국 출신다웠다.
성현은 잘됐다고 웃으며 임하나 팀의 화면을 바라봤다.
“저쪽 팀은 결정된 것 같네요.”
성현이 웃으면서 천소울을 돌아봤다.
그런데, 천소울의 표정이 엄청나게 심각했다.
이글이글 불타는 눈동자는 금방이라도 화면 속을 뚫고 들어갈 것 같았다.
‘저번에 보니까 축구 좋아하던데...... 많이 부러운가?’
성현이 안타까운 마음에 천소울에게 뭐라고 말을 붙이려던 찰나,
“다른 팀 중 이 자리에서 또 말씀하실 팀 있나요?”
리키가 화상 통화를 마치기 전에 참가자들에게 물어왔다.
그 말에 아무도 대답하지 않았다.
아마도 다들 열심히 무대 장소에 대해 생각하는 중인 것 같았다.
“좋습니다. 그럼 내일 이 시간까지, 데뷔 무대를 어떤 곳에서 할지 정하시면 언제든 연락 주시면 되겠습니다. 그럼 이만.”
리키의 말을 마지막으로 화상 공지가 끝났다.
수고하셨다는 말과 함께, 스탭들이 다 철수했다.
순식간에 고요한 회의실에 천소울과 성현 둘만이 남았다.
“새삼 느끼지만 정말 평범과는 거리가 먼 오디션인 것 같습니다.”
화상 공지가 끝나고 지금껏 잠자코 있던 천소울이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천소울 씨는 어디서 데뷔하고 싶습니까? 막연히 그런 생각 하지 않나요?”
성현은 먼저 말을 꺼냈다.
이렇게 두 사람이 만난 김에 논의를 할 수 있다면 미리 해두고 싶었다.
“당연히 하죠. 제가 어떤 무대에서 데뷔를 하고, 어떤 무대에 서고... 가수를 꿈꾸는 자라면 당연히 해볼 법한 상상 아닙니까.”
“그렇죠. 프로듀서도 마찬가지예요. 제 노래가 어디에서 처음 불리고, 어떤 가수가 처음 불러주고. 참 많이도 상상했죠.”
이러다가는 괜한 감상에 빠질 것 같았다.
성현은 먼저 빠르게 말했다.
“저는 있긴 있습니다. 데뷔 무대하면 생각나는 무대.”
“아, 그렇습니까? 저도 있긴 합니다만.”
성현의 말에 천소울은 자신 역시 있다며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 말에 성현은 바로 손을 뻗어 테이블 구석에서 종이와 펜을 꺼내왔다.
“오, 그래요? 그럼 각자 종이에 적어서 동시에 공개하도록 할까요? 협의는 일단 두 무대 보고하도록 하죠.”
“좋습니다.”
두 사람은 빠르게 종이에 무대 장소를 적었다.
그리고 동시에 공개했다.
성현과 천소울, 둘은 똑같이 놀란 눈으로 서로를 바라봤다.
“진짜 데뷔 무대로 이거 생각한 거예요? 제가 쓴 거 보고 따라 쓴 거 아니고?”
“성현 씨야말로 저 따라 한 거 아닙니까? 이게 말이 되나......”
두 사람이 종이에 적은 데뷔 무대는 완전히 같은 장소였다.
게다가, 단순히 같아서만이 아니었다.
이들이 종이에 적은 원하는 데뷔 장소는 다른 팀이라면 생각지도 못할 곳이었기 때문.
그들이 적은 곳은 바로,
[ 음악 방송 ]
챔피언스리그도, 해외의 거대한 공연장도 아닌 바로 한국의 공중파 음악 방송이었다.
“천소울 씨가 이런 감성이 있을 줄은 꿈에도 몰랐는데.”
“저야말로 생각지도 못했습니다. 성현 씨라면 또 어떤 크고 화려한, 완벽한 무대를 생각할 줄 알았는데 말이죠.”
조금 전 화상 공지가 끝나기 전, 임하나 팀은 무려 챔피언스리그 결승전 오프닝 무대를 골랐다.
보통 사람이라면 응당 그 정도 스케일을 떠올리기 마련이었다.
그에 비하면, 두 사람이 적은 한국의 음악 방송은 한참 작은 스케일의 무대였다.
물론, 한국의 음악 방송 또한 아무나 설 수 없는 무대이긴 했다.
그렇지만, 객관적으로 따졌을 때 챔스 결승 무대와 비교하는 것은 어불성설이었으니까.
게다가 생에 한 번 있는 데뷔 무대, 그것도 흔쾌히 챔피언스리그 오프닝 무대라는 판을 깔아주겠다는데, 누가 그보다 작은 급 무대를 결정한단 말인가.
이 상황에서 두 사람 모두 거짓말처럼 음악 방송이라고 적은 것이다.
잠시 말이 없던 두 사람.
“......역시, 아무래도 데뷔는 음악 방송이죠.”
“그렇죠. 초등학생 시절 처음 가수가 되고 싶었던 것도, 음악 방송 무대에 오르는 선배 가수들의 모습에 반했기 때문이니까요.”
두 사람은 확실히 한국 출신인가 보다.
성현은 사뭇 놀랐다.
오늘따라 왜인지 천소울이 평소답지 않게 감성적인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
“왜 그렇게 쳐다봅니까?”
“그냥, 음악 방송을 적은 것도 그렇고, 선배 가수들의 모습에 반했다는 말도 그렇고... 천소울 씨 입에서 나오면 다 신기하네요.”
천소울은 저도 모르게 발끈해서 말했다.
“도대체 저를 어떻게 생각하는 겁니까? 저도 다 순수하게 꿈을 꾸던 시절이 있단 말입니다.”
“지금도 안 순수한 건 아닌 거 같습니다.”
그 모습에 성현은 웃으며 대답했다.
“그나저나, 만약 진짜 음악 방송을 한다면, 방송국은 어디로 하고 싶어요?”
“상관없지 않겠습니까. 애초에 방송국 때문에 음악 방송에서 데뷔하고 싶은 게 아닌데.”
“역시, 이번에도 생각이 같네요.”
두 사람의 의견이 ‘음악 방송’으로 점점 좁혀지고 있었다.
하지만, 성현은 은근하게 이 상황이 걱정되었다.
“후회하지 않겠어요? 천소울 씨 인생에 한 번밖에 없을 데뷔 무대인데.”
그도 그럴 것이, 다들 챔스 오프닝 무대나, 아니면 더 그럴듯한 데뷔 무대를 말할 게 뻔했다.
“후회라뇨. 제 선택입니다. 애초에 이번 무대를 통해 오디션 당락이 결정되는 것도 아니고, 어려운 선택은 아닙니다.”
천소울의 말이 옳았다.
이 무대가 전 세계인의 투표를 얻기 위한 것이라면 생각을 달리하겠지만, 이번 라운드로는 당락이 결정되지 않는다.
때문에, 오히려 더 순수하게 원하는 걸 말할 수 있는 기회이기도 했다.
‘그렇지. 다음 최종 라운드 역시, 이번 무대와는 별개라고 볼 수 있으니까. 적어도 나한테는.’
게임 내용을 알고 있는 성현은 벌써 그 음 수까지 고려했다.
그 결과, 이번 데뷔 무대는 음악 방송에서 해도 된다고 판단한 것이다.
여기까지 생각한 성현은 마음을 편하게 먹기로 했다.
“천소울 씨의 무대로 긴 역사를 자랑하는 대한민국 음악 방송계에 새로운 획을 그어버리는 것도 나쁘지 않겠네요.”
“그렇죠. 오히려 한 번뿐인 무대이기에, 꼭 우리나라 음악 방송에서 하길 원합니다.”
“우리나라 팬들한테 무료로 천소울 씨의 데뷔 무대를 전파한다라... 이거, 벌써부터 시청률이 궁금해지는데요?”
“그럼 결정한 겁니까?”
“콜. 시간 끌 것 없이 주최 측에 바로 알리도록 하죠.”
성현이 주최 측에 둘의 결정을 알리려고 자리에서 일어서는데.
“저기 잠깐.”
“네? 할 말 남았나요?”
천소울인 그런 성현을 붙잡고, 잠시 뜸 들이다가 말했다.
“저만 인생에 한 번뿐인 데뷔 무대 가지는 거 아니고, 저만을 위한 무대를 준비하는 것도 아닙니다.”
사뭇 진지한 천소울의 말에 성현은 살짝 당황했다.
그런 성현을 보며 천소울이 말을 이었다.
“우리의 데뷔 무대입니다.”
***
“이거 정말입니까? 네? 제가 잘못 본 거 아니죠?”
성현과 천소울이 공중파 음악 방송을 데뷔 무대로 결정한 날, 지체 없이 주최 측에 이 사실을 알렸다.
“네. 생각이 변하는 일은 없을 것 같습니다.”
‘더 넥스트 슈퍼스타’ 한국 고위 관계자들이 두 사람을 직접 찾아왔다.
눈에 띄게 당황한 관계자들은 어떻게든 두 사람의 마음을 돌리길 원했다.
“아직 시간 많아요. 천천히 다시 한번 생각해봐요. ‘더 넥스트 슈퍼스타’ 측에서 어떤 무대든 컨텍이며 자금이며 다 해주는 거 알죠? 막말로 데뷔 무대를 청와대에서 단독으로 하고 싶다고 해도 시도는 해볼 작자들이라고.”
오호라, 그건 생각 못 했네.
청와대라는 말에 성현은 저도 모르게 살짝 흔들렸지만, 거기까지였다.
“저희는 정했습니다. 원칙대로 신청 받아주시죠.”
“왜요? 왜 이렇게 단호한데? 아니, 진짜 궁금해서 그래.”
관계자는 답답해 미치겠다는 듯 계속 물어왔다.
“그, 뭐냐 누구야. 같은 한국 참가자 임하나 씨는 무려 챔스 결승에서 한다잖아. 네? 그 정도 급에서 하고 싶지 않아요?”
한국 관계자가 이렇게 열 내는 이유는 분명했다.
이 좋은 기회를 이렇게 흘려보내고 싶지 않은 것.
이번 세계적인 오디션 ‘더 넥스트 슈퍼스타’에 무려 한국 참가자 세 명이 살아남았다.
우승을 목전에 두고 서로가 우승 후보로 거론되고 있기까지.
한국 지사 측에서는 한국에서 우승자가 나오는 거에 기대가 부풀어 있을 터였다.
그들 입장에서는 혹시 이번 데뷔 무대로 다른 팀과의 격차가 벌어지진 않을까 걱정되는 것이다.
그것도, 안 그래도 가장 유력한 우승 후보라고 전 세계에서 떠들어대는 성현과 천소울 팀이 말이다.
어마어마한 데뷔 무대를 꾸며준다는 말에 다들 각별히 관심을 기울이고 있었는데, 이게 웬걸.
누구는 챔스 결승에서 데뷔 무대 가진다는데, 누구는 음악 방송이라니.
기가 차서 말이 안 나올 지경이었다.
띠링-
그때, 관계자의 휴대폰이 울렸다.
휴대폰을 확인한 관계자는 더 울상이 되었다.
“이, 이 봐봐요! 메튜는 무려 뉴욕 타임스퀘어 메인 광장에서 데뷔 무대를 한다잖아!”
이 소식을 전한 관계자는 숫제 눈물을 보일 것 같이 표정이 일그러져서 둘에게 외쳤다.
성현은 이 말을 듣고 태연하게 입을 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