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 같은 프로듀서는 없었다-265화 (265/273)

265화

< THE SOUL >

하얀색 배경에 SOUL이라는 단어가 적혀있는 앨범 재킷은 단출했다.

“여기, 소울이 네 거.”

심훈영이 천소울에게 앨범을 건넸다.

천소울은 바로 다가가 조심스럽게 앨범을 건네받았다.

성현의 옆에 털썩 앉은 그는 표지와, 뒷면에 적힌 이번 앨범에 실린 트랙을 확인했다.

총 10개의 트랙.

그중에는 이성현이 작곡한 두 곡과 다른 외부 작곡가들로부터 받은 8개의 곡이 수록됐다.

타이틀곡은 이성현 작곡의 < 사랑 시 >였다.

사랑이라는 감정을 마음껏 표현하는 정통 발라드곡이자, 천소울이 가장 공들인 트랙이기도 했다.

타이틀을 논의할 때도 한바탕 소란이 일었다.

워낙 곡들이 좋다 보니, 10곡 모두 타이틀곡으로 해도 좋겠다는 의견이 나온 것이다.

내부적으로 치열한 논의 끝에 < 사랑 시 > 가 타이틀곡으로 선정될 수 있었다.

“하아.”

천소울 역시 성현처럼 벅차오르는 감정을 주체하지 못하고 크게 한숨을 내쉬었다.

똑똑-

사무실 문이 열리더니 직원 한 명이 상자를 들고 들어왔다.

“어, 그래. 고마워.”

건네받은 심훈영은 곧바로 테이블 위에 상자를 올려놓았다.

“여기, 이번 앨범에 들어갈 구성품도 같이 확인해보시고.”

상자 안에 든 것은 이번 앨범 패키지에 함께 들어갈 다양한 구성품들이었다.

샘플 말고 방금 전달받은 따끈따끈한 굿즈들.

이번 앨범 컨셉 사진들, 천소울의 포토 카드, 그리고 특별히 프로듀서 이성현의 포토카드까지 있었다.

팬들에게 추첨을 통해 돌아갈 굿즈까지 상자에 들어있었다.

“이거 참. 제 포토 카드를 하는 게 맞는지 아직도 조금 긴가민가하네요.”

성현은 자신의 포토카드를 보며 어색해 했다.

영 마뜩잖은지 머리를 긁적이는 성현은 슬그머니 눈치를 봤다.

프로듀서 본인의 앨범도 아닌 가수의 앨범에 프로듀서의 포토카드를 넣는 것은 듣도 보도 못했다.

하지만, 성현의 포토카드는 천소울의 제안이었다.

“당연히 들어가는 게 맞지 않겠습니까. 우리 둘의 데뷔 앨범인데.”

천소울은 성현을 쳐다보며 단호하게 말했다.

우리 둘이라니, 성현은 천소울이 이런 말을 하는 것이 아직도 조금 어색했다.

“뭐, 천소울 씨가 그렇다면 그런가 보죠.”

성현은 기분 좋은 미소와 함께 구성품 하나하나를 한참 확인했다.

이제야 조금 실감이 나는 것 같았다.

그토록 꿈꿔왔던 천소울과의 작업물이 눈앞에 생생하게 있는 것을.

“정말 수고 많았습니다. 천소울 씨.”

굿즈를 확인하던 성현이 저도 모르게 천소울에게 말했다.

“제가 할 말입니다. 저보다 성현 씨가 훨씬 고생한 거 잘 알고 있습니다.”

그에 답하듯 천소울도 고맙다는 말을 돌려주었다.

두 사람은 서로에게 고마움을 표했다.

그런데, 안 하던 말을 해서인지, 뭔가 괜히 어색한 분위기가 사무실에 감돌았다.

“나한테는 안 고맙니?”

심훈영이 중간에 나서서 가벼운 농담을 던지자 분위기가 풀어졌다.

“그럴 리가요. 대표님 없었으면 앨범 제작하는 데 한참은 애먹었을 겁니다.”

성현은 깜짝 놀라 진심을 다해 말했다.

이번에 심훈영의 축적된 앨범 제작 경험이 큰 도움이 되었으니까.

성현은 다시 한번 앨범 표지를 내려다보았다.

처음 ‘더 넥스트 슈퍼스타’에 출전했을 때만 생각해도 앨범 작업까지 오게 될 줄은 꿈에도 생각지 못했다.

“그럼, 이 앨범. ‘더 넥스트 슈퍼스타’에 제출하겠습니다.”

한참을 앨범을 내려다보던 성현이 고개를 들고 말했다.

천소울과 심훈영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

2023년 5월 2일, 본선 9라운드 앨범 제출 기한의 바로 다음 날.

성탄 엔터테인먼트 사옥 내 회의실은 오전부터 붐볐다.

“5분 후에 통화 시작됩니다! 스탠바이할게요!”

성탄 엔터 사무실은 다름 아닌, ‘더 넥스트 슈퍼스타’ 스탭들로 가득했다.

오늘은 본선 9라운드의 공지 날이었다.

이번 라운드의 메인인 데뷔 무대 공연과 관련한 공지를 위해, 화상통화가 예정되어 있었다.

각 나라에서 앨범을 준비한 4팀 모두가 모이는 자리였다.

“소울 씨, 괜찮아요? 왠지 표정이 굳었네요.”

성현은 걱정스럽게 천소울의 표정을 살피며 물었다.

오늘은 평소보다 그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어있었다.

“오랜만에 ‘더 넥스트 슈퍼스타’가 진행되는 것 같아서 긴장한 건 아니죠?”

성현은 괜히 농담조로 툭 물어봤다.

“아닙니다. 그냥 컨디션이 살짝.”

천소울은 말끝을 흐렸다.

아침부터 마치 멀미하는 것처럼 속이 좋지 않았다.

그는 사실 엄청나게 긴장 중이었다.

다만, 오디션 때문이 아니라는 게 문제였다.

‘임하나. 얼마 만에 보는 거지.’

영상 통화로나마 임하나를 마주칠 생각에 긴장하는 중이었다.

두 사람은 영상통화는커녕, 둘이 연락한 적도 없었다.

단체 메시지 방에서야 함께이긴 하지만, 거기에서도 딱히 두 사람 간의 대화는 없었다.

천소울은 임하나를 의식하기 시작한 이후, 괜히 더 말을 못 걸게 되기도 했다.

그렇다고 임하나가 먼저 말을 거는 일도 없었다.

“괜찮아요, 괜찮아. TOP4라고 해서 다를 거 없잖아요. 우리 앨범 퀄리티도 절대 어디 가서 꿀릴 리 없고.”

천소울의 마음을 알 리 없는 성현은 계속 쓸데없이 긴장 풀어주기 위해 열심히 노력 중이었다.

“시작합니다! 두 분, 카메라 봐주세요!”

스탭의 말과 함께 마침내 진행이 시작되었다.

입을 다물고 나란히 앉은 두 사람은 카메라를 바라보았다.

팟-

커다란 스크린에 다섯 화면으로 분할된 화면이 떠올랐다.

전 세계 각지에 있는 최후의 4팀의 화상 전화가 연결된 것이다.

중앙에 자리한 PD 리키 헨더슨을 중심으로, 네 팀의 화면이 각각 모퉁이에 자리하고 있었다.

천소울은 무의식적으로 바로 임하나를 찾았다.

웬일인지, 임하나도 바로 천소울을 보는 것 같았다.

“여러분 전부 오랜만에 뵙는 것 같네요. 그동안 잘들 지내셨습니까.”

리키 헨더슨의 자연스러운 진행으로 회의가 시작되었다.

“당연하게도, 네 팀 모두 무사히 앨범을 제작해 보내주셨더군요.”

리키는 그렇게 말하며 네 장의 앨범은 들어 카메라에 비추어 보였다.

4팀이 그 모습을 보고 작게 환호했다.

이들의 앨범은 무사히 주최 측에 넘어간 듯했다.

“저는 개인적으로 이미 전부 들어봤는데, 역시 우리 더 넥스트 슈퍼스타의 마지막 생존자들답습니다. 아주 훌륭했어요.”

4팀 모두 정규 앨범을 제출했다는 것을 확인한 리키가 말을 골랐다.

오늘 화상 회의 진행은 이를 확인하기 위한 자리가 아니었다.

이제 곧 6월 첫째 주에 치러질 네 팀의 데뷔 무대.

그에 관한 공지가 전달될 자리였다.

이를 알고 있는 네 팀은 모두 바짝 긴장한 상태였다.

“이거, 지금은 무슨 말을 해도 긴장을 풀어드리긴 힘들겠군요. 좋습니다. 그럼 바로 공지하도록 하죠. 본선 9라운드의 대미를 장식할, 여러분들의 데뷔 무대입니다!”

리키 헨더슨의 말과 함께 그의 얼굴이 담겨있던 화면이 바뀌었다.

그런데 바뀐 화면을 보면서도 다들 어리둥절할 뿐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리키가 있던 화면에는 장소 대신 한 문장이 적혀있었던 것.

[ Wherever you want. ]

“당신이 원하는 곳 어디든......?”

얼떨떨한 표정으로 그 문장을 읽는 임하나.

“맞습니다, 하나 씨.”

다시 화면에 리키 헨더슨의 얼굴이 담기면서 임하나를 향해 리키가 박수를 쳤다.

임하나의 혼잣말을 캐치한 리키 헨더슨이 추가로 설명을 이어나갔다.

“여러분들이 원하는 어떤 나라의 어떤 무대건, 저희가 데뷔 무대를 치를 수 있도록 해드리겠습니다. 유일한 제한 조건은, 6월 첫째 주에 가능한 무대여야만 한다는 것입니다.”

해석하기 어렵지 않은 말이지만, 감을 잡기 힘들었다.

해당 무대에 대한 기준이 전혀 제시되지 않았기에 더욱 그러했다.

메튜가 가장 먼저 질문을 던졌다.

“원하는 곳 어디든지? 그럼 각 팀마다 데뷔 무대가 다른 겁니까?”

메튜의 말에 리키는 여러 차례 고개를 끄덕였다.

“정확합니다. 주어진 시기 안에, 각 팀이 원하는 무대에서 원하는 시간에 데뷔 무대를 가지면 됩니다.”

그 확언에 연결된 화면에서 참가자들이 크게 놀라는 모습이 찍혔다.

자신들이 어떤 요구를 할 줄 알고 주최 측은 저렇게 단언하는 걸까?

다른 브라질 참가자가 질문했다.

“이번 라운드 탈락은 어떻게 되는 겁니까? 모두 데뷔 무대에 설 수 있는 겁니까?”

오디션 참가자에게는 가장 중요한 질문이었다.

앨범을 제출하기는 했지만, 합격인지 탈락인지 아무런 사전 고지가 없었다.

“예. 이번 라운드 탈락자는 없습니다.”

“진짜? 와우!”

“이거 너무 조건이 좋은 거 아니야?”

리키의 대답에 다들 이 조건만으로 흥분했는지 팀마다 하이파이브를 하며 기쁨을 누렸다.

탈락 없이, 모두 원하는 무대에서 데뷔를 하게 된 것이다.

하지만, 흥분하기에는 아직 일렀다.

리키의 말이 의미하는 게 어떤 건지 정확히 아는 성현은 차분히 상황을 관전했다.

‘그야말로 어떤 곳이든 가능했었지. 과연 현실에서도 가능할까.’

게임 속, 말 그대로 무지막지한 별의별 무대를 다 경험해 본 성현이었다.

과연 현실에서 가능할지가 관건이었다.

성현은 잠시 생각에 잠겨 어떤 장소를 던져 간을 볼까 떠올렸다.

101번의 엔딩 속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장소들이…….

뜻밖에 그 궁금증을 풀어준 것은 임하나의 파트너인 영국 프로듀서 참가자였다.

“저기, 헨더슨?”

리키의 공지가 끝나고 유일하게 쥐죽은 듯이 고요했던 임하나의 팀이었다.

급하게 휴대폰으로 무언갈 찾던 존 메이슨이 스스로도 어이없는지 실소를 터트리며 물어왔다.

“주어진 시기에 챔피언스리그 결승이 포함됩니다. 원하는 곳 어떤 곳이라도 가능하다면, 챔스 결승 무대 오프닝 무대도 가능하다는 겁니까?”

메이슨의 말이 끝나자마자 다른 참가자들의 비웃는 소리가 날아들었다.

“하하. 말도 안 돼.”

“그건 너무하잖아, 메이슨.”

챔스 결승이라는 다소 허무맹랑한 말에 다른 참가자들이 웃음을 터트렸다.

그 반응에 메이슨 역시 자기가 너무 나갔다고 생각했는지 머쓱한 웃음을 지었다.

하지만, 리키 헨더슨은 웃지 않고 대답했다.

“잠시만요.”

그 말과 함께 리키 헨더슨이 잠시 화면에서 벗어났다.

마치, 확인을 해보려는 듯한 뉘앙스를 풍기면서.

그 모습에, 질문을 한 존 메이슨을 포함한 모두가 반신반의한 표정으로 기다렸다.

반쯤은 말도 안 된다는 생각을, 나머지 반은 희망과 기대에 찬 표정이었다.

성현 역시 자신이 생각했던 스케일에 걸맞은 장소 제시에 주최 측의 답변을 긴장하며 기다렸다.

‘원래 게임 속 설정 사이즈 그대로라면, 불가능할 리가 없지.’

성현은 지금까지처럼, 게임 속과 같은 크기의 설정일지 빨리 확인하고 싶었다.

5분도 채 지나지 않아서 돌아온 리키는 속을 알 수 없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리키는 굳은 채로 자신의 모습만을 지켜보는 참가자들을 한번 둘러보고 입을 열었다.

“가능하답니다, 존 메이슨 참가자.”

오, 마이 갓!

분할되어 있는 화면 여기저기서 탄식이 터져 나왔다.

천소울마저 믿을 수 없다는 듯이 눈을 둥그렇게 뜨고 있었다.

성현의 생각대로, 데뷔 무대는 정말 어느 스케일이건 수용이 가능한 모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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