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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같은 프로듀서는 없었다-264화 (264/273)

264화

주선아의 말에 천소울은 충격받은 얼굴이 되었다.

멍하니 아무 말이 없는 천소울을 향해 주선아는 차분히 입을 열었다.

“그러고 보니 쌤, 이 고민 성현 오빠랑도 했죠.”

천소울은 그 얼굴 그대로 고개를 끄덕였다.

영혼이 그 사이에 아주 멀리 어딘가로 가출한 듯한 표정.

천소울에게서 흔히 볼 수 없는 멍청미 가득한 표정을 보고 주선아는 고개를 내저었다.

이 둘은 모쏠이 분명했다.

그것도 우열을 가릴 수 없을 정도로 연애 경험치가 전무한.

주선아는 오히려 신기할 지경이었다.

이번에 성현이 그렇게 굉장한 사랑 노래를 썼다는 것 자체가.

어쩌면 지금까지 생각했던 것보다 더 대단한 천재일지도…….

아무튼, 지금 중요한 건 그게 아니다.

“어휴. 이 화상 두 명이 머리를 맞대고 있으니, 그런 고민을 해결할 수 있을 리가 있나.”

주선아는 다 들리라는 식으로 한숨을 푹푹 내쉬었다.

그 모습에 조금씩 정신이 돌아오고 있는 천소울이 되물었다.

“지금 이게 대체 무슨 말이야.”

여전히 그 목소리는 믿을 수 없다는 듯 힘이 빠져 있었지만 말이다.

뭐기는, 주선아는 이 자리에 다른 멤버들도 있어야 했다고 생각하며 친절하게 말해주었다.

“천소울, 이성현. 이 둘 빼고 우리 다 알아요. 하나 언니가, 오빠 좋아하는 거.”

천소울은 도저히 몰랐다는 듯한 반응이었다.

정말 생각지도 못한 이야기를 들었을 때 사람들의 반응을 총집합 해놓은 것 같았다.

주선아의 말에 천소울은 미간을 좁힌 채로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잠깐, 이것 봐라?’

주선아의 눈이 반짝였다.

천소울의 상태를 보아하니, 촉이 왔다.

주선아는 릴리나 서지현이 있었다면 더 정확하게 말해줄 수 있었을 텐데 안타깝기 그지없었다.

주선아는 멍하니 있는 천소울을 향해, 한 마디를 더 날렸다.

“그리고, 오늘 이 자리에서 하나 더 안 사실이 있어요.”

“뭐, 뭔데.”

이제 주선아 입에서 무슨 말이 나올지 두려울 지경이었다.

뭐, 주선아는 일단 천소울의 고민은 대충 해결될 거라고 생각하며 입을 열었다.

그리고, 그 두려운 말이 주저 없이 흘러나왔다.

“우리 소울 쌤도, 하나 언니를 좋아한다는 사실.”

주선아는 눈을 빛내며 손가락 하나를 척 들었다.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마.”

천소울은 숨도 쉬지 않고 부정했다.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곧바로 영수증 챙기고 자리에서 일어서기까지 했다.

주선아는 재빠르게 자리에서 일어선 천소울을 향해 묘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우리 소울 쌤, 아까 하나 언니 얘기할 때 입꼬리가 아주 올라가서 내려올 생각을 못 하던데.”

그리고는 자리에서 일어서서 천소울 앞에 똑바로 섰다.

천소울은 주선아의 말을 듣고 혼란스러워서 그 자리에 우두커니 멈춰 서 있었다.

“솔직하게 말해봐요.”

“뭘.”

이상했다.

그냥 이 자리를 박차고 나가면 될 것을.

천소울은 제 다리가 얼른 움직이지 않는 게 이해가 안 됐다.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주선아는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우지 않으며 연달아 말했다.

“지난번 미션 때도, 그리고 이번 미션 때도. 하나 언니랑 떨어져 있을 때, 언니 생각 안 났어요? 보고 싶다는 생각, 가슴에 손을 얹고 정말 단 한 번도 안 했어요?”

가슴에 손을 얹고.

천소울은 저도 모르게 얼굴이 붉게 달아오르는 것을 느꼈다.

“거봐요.”

의기양양한 주선아는 천소울에게 으휴, 한숨을 내뱉고는 먼저 걸음을 옮겼다.

이상했다. 오늘 식사 자리에서 술을 한 잔도 안 마셨는데 얼굴에서 열이 가실 줄을 몰랐다.

***

식사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온 천소울은 침대 끝에 멍하니 걸터앉았다.

‘임하나가 나를 좋아한다고?’

방금 주선아로부터 들은 말이 귓가를 맴돌았다.

게다가,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내가… 임하나를 좋아하고 있다고?’

무엇보다 스스로 자각하지 못하고 있었던 마음을, 주선아가 콕 집어 말해 준 게 자못 큰 충격으로 다가왔다.

‘아니야, 아닐 거야.’

천소울은 자기도 모르게 휴대폰을 꺼내 들었다.

그리고 너트뷰를 통해 공개된 임하나의 공연 영상을 하나하나 다시 보기 시작했다.

여러 개의 영상을 넘기다가, 이번 본선 8라운드 때, 서울 상암 월드컵 경기장에서 열창하는 임하나의 모습이 흘러나왔다.

무대 위에서 밝은 에너지와 함께 사랑이라는 감정을 표현하는 임하나.

그 모습을 보자, 공연 날 자신과 눈을 마주쳤을 때가 떠올랐다.

‘설마 이게…….’

그 후, 임하나의 바뀐 태도들이 파노라마처럼 흘러갔다.

천소울은 서서히 깨닫고 있었다.

자신을 보며 예쁜 미소로 밝은 에너지를 전해주던 임하나.

그런 임하나의 미소를 다시 한번,

아니, 임하나라는 사람이 보고 싶다는 감정이 스멀스멀 올라왔다.

천소울은 연락처에 들어가서 임하나의 이름을 검색했다.

그러고서는 문자 창을 열고 고민에 빠졌다.

‘이게 도대체 무슨 마음이지.’

연락하고 싶었지만, 뭐라고 쳐야 할지 감이 오질 않았다.

생각나는 말은 보고싶다, 정도가 전부였다.

하지만 그 말을 지금, 이 타이밍에 하는 게 맞는지 확신이 서질 않았다.

한 번도 이런 말을 주고받은 적이 없었다.

그리고 다시금 두 사람의 상황이 떠올랐다.

보고 싶다 한들, 서로 쉬이 움직일 수 없는 상황.

잠시 고민하던 천소울은 결국 다른 사람의 이름을 검색해 문자를 보냈다.

[ 천소울 : 지금 작업실입니까? ]

문자를 보낸지 얼마 되지 않아, 성현이 거의 바로 답장을 보내왔다.

[ 이성현 : 네. 무슨 일 있어요? ]

[ 천소울 : 지금 당장 가겠습니다. ]

천소울은 그렇게 보낸 후 침대에서 몸을 일으켰다.

그는 성현의 답장이 오기도 전에 곧바로 방을 나섰다.

***

똑똑.

노크 소리와 함께 성현이 바로 문을 열었다.

“무슨 일이에요? 갑자기 이 야밤에?”

천소울은 아무 말 없이 성현의 작업실에 들어섰다.

당황한 표정의 성현이 무슨 일이 있나 싶어서 천소울을 살피고 있었다.

“노래 불러보고 싶습니다.”

성현은 갑작스러운 천소울의 요구에 의아했지만, 곧바로 대응했다.

이미 몰입할 대로 몰입해있는 천소울의 얼굴.

프로듀서로서 이런 순간을 놓치는 건 말이 안 됐다.

“어떤 노래면 될까요.”

“오늘 낮에 들었던 그 노래. 사랑을 주제로 한 발라드 곡이요.”

그 대답에 성현은 살짝 놀랐다.

‘설마 벌써 어떤 해답을 가져온 건가?’

안 그래도 성현도 오늘 낮에 보였던 천소울의 고민을 해결하기 위해 생각이 많던 찰나였다.

“답을 찾은 겁니까?”

“어쩌면요.”

천소울은 평소의 그답지 않게 두루뭉술한 대답을 내놓았다.

그 말에 성현은 바로 그가 하고자 하는 바를 눈치챘다.

“그 답은 노래로 보여줄 거고.”

천소울은 성현의 말에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오케이. 바로 시작하죠. 부스에 들어가 있어요. 사인 줄게요.”

성현은 가수의 이런 순간을 잘 알고 있기에 더 이상 묻지 않고 준비를 서둘렀다.

무언가 삘이 딱 꽂히는 순간.

성현도 작곡할 때, 종종 겪는 일이었다.

그 순간 바로 기록하지 않으면 영원히 잃어버리게 될 그 감이 떠오를 때가 있었다.

성현은 빠르게 반주를 준비했다.

그 사이, 천소울은 녹음 부스에 들어갔다.

지금 이 감정을 혹시라도 놓칠까, 눈을 감고 감정에 집중하는 천소울의 모습.

이윽고 성현이 녹음 부스를 향해 말했다.

“시작할게요.”

천소울은 성현의 신호에 고개를 한번 끄덕였다.

디딩-

감미로운 피아노 소리와 함께 반주가 시작되었다.

전주가 끝나고, 얹어지는 천소울의 목소리.

그의 첫소절을 들은 성현의 눈이 커졌다.

1절이 거의 끝났을 때, 성현의 머리를 스치는 말은 딱 하나였다.

‘됐다.’

자신이 생각한 것, 아니 그 이상의 표현을 가수가 보여주고 있었다.

성현은 길게 물을 생각이 없었다.

짧은 사이 어떤 일이 있던 건지 그건 중요치 않았으니까.

그렇게 K-발라드의 끝을 보여줄 수 있는 노래가, 천소울의 데뷔 정규 앨범에 합류하기로 확정되었다.

***

어느새 시간은 흘러 2022년의 마지막 달인 12월이 되었다.

성탄절을 며칠 앞둔 어느 날, 요하가 서울의 한 공연장에서 쇼케이스를 치렀다.

드디어 성탄 엔터테인먼트에서 첫 데뷔 가수가 나온 것이다.

요하는 성공적으로 데뷔 주자의 스타트를 끊었다.

“감사합니다!”

요하는 쇼케이스 무대에서 미니 앨범에 실린 다섯 곡 모두를 훌륭하게 라이브로 소화했다.

팬들과 전문가들의 호평과 함께 데뷔를 마쳤다.

[성탄 엔터테인먼트 첫 출격! 김요하의 전망은?]

[전문가가 바라본 김요하의 앨범 이모저모]

더 비기너와 함께 낸 이번 프로젝트 앨범은 총 6곡이 담긴 미니 앨범의 형태였다.

김요하는 더 비기너의 더블 보컬로 참여하며, 일부 곡 작사에도 참여한 것으로 밝혀졌다.

김요하의 데뷔 미니 앨범은 더 비기너의 이름값과 함께 큰 관심을 끌었다.

하루 반짝이었지만 음원 차트에서 무려 5위를 찍기도 했다.

가수로서의 첫 발걸음을 훌륭히 내디딘 것이다.

***

해가 바뀐 2023년 1월.

성탄 엔터의 두 번째 가수이자, 첫 번째 그룹 아티스트가 세상에 공개되었다.

성탄 엔터는 숨 돌릴 틈도 없이 다음 데뷔 주자를 낸 것.

그 두 번째 주인공은 바라만 봐도 사랑스러운 성탄소녀들이었다.

서지현, 주선아, 릴리, 문희진 네 명으로 이루어진 팀은 이미 어마어마한 팬덤이 만들어진 상태이니만큼 큰 반향을 일으켰다.

네 사람은 최고의 호흡과 함께 각자의 매력을 마음껏 표출했다.

데뷔 이후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오디션을 통해 이들을 알고 있는 사람들과, 아닌 이들에게도 많은 관심을 받을 수 있었다.

성탄 엔터 최초로 음원 차트 1위도 찍는 기염을 토했다.

“저, 잘못 본 거 아니죠?”

처음 1위를 하는 순간, 조은별의 연락으로 1위를 확인한 주선아가 믿기지 않는다는 듯이 손을 덜덜 떨며 음원 차트를 확인했다.

그 옆에 있던 릴리, 문희진 역시 지금 상황이 얼떨떨한지 조용히 차트를 응시할 뿐이었다.

“앞으로 더 힘내자구요!”

팀의 리더를 맡게된 서지현이 활짝 웃으면서 멤버들을 와락 껴안았다.

네 사람은 그제야 눈물을 터트리며 환하게 웃었다.

그리고 2월의 첫째 주, KBC 공개홀에 옹기종기 모인 가수들.

모두가 무대 위에 서서 1위 발표를 앞두고 긴장한 모습이었다.

모든 안내멘트가 끝이 나고, MC가 1위를 발표했다.

“이번주 대망의 1위는!”

1위 : 성탄소녀들.

공개홀 뒤편의 거대한 스크린에 성탄소녀들의 이름과 타이틀곡이 떠올랐다.

와아아.

꺄아아아.

성탄소녀들은 음원 차트에 이어 음악 방송에서도 1위를 차지한 것이다.

***

그리고 마침내 찾아온 4월의 마지막 주.

성탄 엔터는 요 몇 달 예상보다도 더 바빠진 요하와 성탄소녀들의 스케줄 덕에 정신없이 보냈다.

그런데 오늘은 이상하게 가라앉은 분위기였다.

사무실 곳곳이 긴장으로 가득했다.

그도 그럴 것이 ‘더 넥스트 슈퍼스타’ 본선 9라운드를 위한 앨범 제출까지 며칠 안 남은 상황이었기 때문.

“이거 정말 우리 거 맞죠.”

사무실에 심훈영과 둘만 있던 성현이 앨범 한 장을 들고 물었다.

“그럼. 맞고말고.”

심훈영이 흐뭇한 얼굴로 말했다.

“두 사람이 얼마나 공들인 앨범인데, 그게 우리 거 아니면 누구 거겠어.”

“하아. 진짜 드디어 완성됐구나.”

성현은 그간의 노력을 생각하며 살짝 벅차오른 듯, 고개를 푹 숙였다.

그때,

벌컥-

천소울이 두 사람이 있는 사무실 문을 벌컥 열고 들어왔다.

다급하게 왔는지 그의 옷매무새가 조금 흐트러져 있었다.

“진짜 도착했습니까? 어디 있습니까.”

성현은 그 소리에 고개를 들고, 씩 웃으며 들고 있던 앨범을 들어 보였다.

바로 드디어 완성된 천소울의 정규 앨범이었다.

< THE SOUL >

성현이 들고 있는 앨범 재킷에 선명하게 박혀 있는 글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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