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3화
성현은 천소울이 굉장히 심각한 표정이 되어 말하자 저도 모르게 물었다.
“왜요?”
“세 번째 곡 말입니다.”
천소울의 손끝이 방금 들은 네 곡 중 세 번째 곡을 가리키고 있었다.
“사랑을 주제로 한 발라드요?”
“네.”
천소울은 고개를 끄덕이며 잠시 생각했다.
성현은 생각에 잠긴 천소울을 바라보다가 물었다.
“한 번 더 들려드려요?”
“아닙니다. 됐습니다. 다시 들을 필요 없이 너무 좋아요. 한국식 발라드에 이런 리듬감을 표현한다는 것, 쉽지 않은 일인데 말입니다. 이 곡은 너무 훌륭하게 해냈어요.”
이전 그 어떤 곡보다 좋은 반응이었다.
성현은 그 이야기를 듣고 고개를 끄덕이며 이어 물었다.
“나머지 세 곡은요?”
“음. 딱히 큰 임팩트는 없었습니다. 특히 마지막 곡. 그 곡은 차라리 듣지 않는 게 좋았을 것 같습니다.”
단호한 평에 성현은 살짝 표정 관리가 안 되고 말았다.
천소울은 바로 옆의 성현의 표정을 눈치 못 채고 계속 비판했다.
“뭐, 나쁘지는 않다만, 이전 곡들에 비해 수준이 떨어지는 건 사실이군요.”
단호하게 말하는 천소울의 옆에서 성현은 이렇다 저렇다 말이 없었다.
“그런데, 이 곡들 작곡가는 누구입니까?”
“…….”
성현은 천소울을 빤히 바라보며 대답을 하지 않았다.
대답을 기다리던 천소울은 고요한 성현의 얼굴을 보고, 그제야 뭔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느꼈다.
“설마.”
“네. 접니다. 방금 그 네 곡, 전부 제가 만든 겁니다.”
천소울은 크게 당황했다.
한 곡에 대해 극찬을 하긴 했지만, 당장 악평을 퍼부었던 한 곡이 걸렸다.
희게 질린 얼굴로 천소울이 뭐라 입을 열었다.
“그게 아니라, 제 말은 말입니다, 그…….”
“됐습니다. 작곡가에겐 언제나 비판이 따르기 나름이죠. 감사합니다. 신랄한 비판. 새겨듣겠습니다.”
웃으면서 말하는 성현, 그의 입꼬리는 미미하게 떨리고 있었다.
웃고 있지만, 전혀 웃고 있지 않은 듯한 얼굴이었다.
천소울은 이 이상 더 말하는 건 손해라고 생각하고 방법을 달리했다.
“오우. 근데 그 발라드 말입니다. 유원열, 윤종식, 이석 작곡가 님 전부를 데려와도 못 만들 것 같은…….”
천소울의 혀가, 답지 않게 길어지고 있었다.
고요한 작업실에서 천소울은 반응 없는 성현을 향해 더듬거리며 말을 더 꺼냈다.
“두 남녀의 간드러지는 마음을 피아노 선율로 표현함과 동시에 현악기가 주는 몽환적인…….”
“하하. 알겠습니다, 알겠어. 그만하셔도 됩니다.”
천소울의 끊임없는 노력에 결국 성현은 웃음을 터트리고 말았다.
장난스럽게 얼굴을 굳혔지만, 사실 그리 삐지지도 않았다.
작곡가로서 가수에게 까이는 건 대수롭지 않은 일, 어찌 보면 당연히 겪는 일이었다.
그저, 천소울이 당황한 게 재밌어서 계속 삐진 척 해봤던 것이다.
이런 모습의 천소울을 자주 볼 수 있는 것은 아니었으니까.
“......마음 상한 거 아닙니까? 괜찮습니까?”
이럴 때 보면 천소울도 귀여운 구석이 있었다.
의외로 이럴 때는 한없이 소심해진다.
성현은 아직도 삐져나오는 웃음을 주체못하며 말했다.
“당연히 괜찮죠. 제가 음악의 신도 아니고, 어떻게 매번 모두의 마음에 드는 곡을 쓰겠어요. 한 곡이라도 마음에 들었다면, 진심으로 다행입니다.”
성현은 천소울이 마음에 들어한 세 번째 곡, 사랑을 주제로 한 발라드를 다시 재생했다.
“그래서, 이 사랑 노래는 정말 마음에 드는 겁니까?”
노래가 배경으로 깔리는 가운데, 천소울은 고개를 끄덕였다.
“예. 정말 좋습니다. 정말 좋긴 합니다만......”
천소울이 말끝을 흐렸다.
그 심상치않은 반응에 성현은 당장 노래를 멈췄다.
“무슨 문제라도 있나요? 수정했으면 하는 파트 있어요?”
마음 편하게 말하라는 성현의 질문에도 천소울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 뿐이었다.
“그럼 뭐예요?”
천소울은 또 한참을 뜸을 들였다.
말을 할까 말까 망설이는 듯이 입을 떼었다, 붙였다를 반복하던 천소울이 겨우 입을 열었다.
“사랑...... 이런 사랑의 감정을 제대로 담을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예상 외의 답변이었다.
설마 이런 반응이 돌아올 줄은 몰랐는데.
천소울이 이런 자신감 없는 모습을 보이다니 낯설었다.
천소울은 성현에게 지금 이런 이야기를 하는 것도 낯부끄러운지, 평소보다 훨씬 딱딱한 목소리로 대꾸했다.
긴장한 기색을 감추려는 듯이.
“솔직히 이런 애절한 감정은 자신 있는 편이 아닙니다.”
성현은 천소울을 빤히 바라보다 조심스럽게 물었다.
생각지도 못한 복병이 있을 줄이야.
“설마... 연애 한 번도 못 해본 건 아니죠?”
“…….”
천소울은 고개를 못 들었다.
고개를 푹 숙이고 천소울은 아무런 말이 없었다.
천소울의 주눅 든 모습은 어떠한 대답보다 더 강렬하고 확실했다.
성현은 마지막으로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물어봤다.
“그럼 짝사랑이라도...”
천소울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 얼굴로?!’
성현은 저도 모르게 손으로 입을 틀어막았다.
지금까지 도대체 뭐 하고 살았느냐고 물을 뻔했다.
예상치 못한 난관에 성현은 이마를 손으로 짚었다.
“허... 이건 제가 쉽게 해결해 줄 수 있는 문제가 아닌 것 같은데요.”
프로듀서로서 어느 정도 감정을 잡아주고 만들어주는 것까지는 할 수 있다.
하지만, 이번 앨범은 ‘어느 정도’ 선에서 만족할 수 없었다.
만족해서도 안 되고.
100프로 감정을 담아 100프로 실력을 쏟아부어야만 했다.
“사랑을 글로 배울 수도 없고 말이죠.”
차라리 그럴 수 있다면 이야기가 쉬웠을 것이다.
성현의 말처럼, 사랑이란 감정을 말로 설명하고 이해시키는 데는 분명 한계가 있을 테니까.
그리고, 남들에게 배운 감정을 소화하는 것과 자신이 직접 느낀 감정을 담아내는 것에는 큰 차이가 있을 것이 분명했다.
“압니다. 그래서 고민인 거예요. 곡도 좋고, 분명 제 보컬에도 어울릴 곡인데…….”
그야 당연하다. 이 곡은 성현이 천소울이 불러줬으면 해서 만든 노래니까.
천소울은 자신 역시 답답하다는 듯이 중얼거렸다.
성현은 여기서는 더 해줄 수 있는 말이 없다고 판단했다.
“일단, 이 문제는 제가 더 생각해서 답을 찾아오도록 하겠습니다. 아직 시간은 있으니,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정 안 되면, 이번 곡은 생각도 안 날 더 좋은 곡을 만들어 올 테니.”
천소울을 위한 성현의 사랑 발라드는 큰 호평을 받았다.
분명 그랬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상치 못한 암초와 함께 보류되고 말았다.
***
예상치 못한 암초를 만난 천소울은 주선아와 오랜만에 식사 약속을 잡았다.
주선아가 자신이 본격적으로 데뷔하고 바빠지기 전에 같이 밥이나 먹자고 한 것.
이태원의 고급스러운 레스토랑에 먼저 자리하고 있던 주선아가 천소울이 가게에 들어온 것을 발견했다.
“쌤! 여기요!”
자신을 향해 번쩍 손을 드는 주선아를 발견한 천소울은 곧장 그 자리로 왔다.
“미국 레스토랑과 분위기가 비슷하네.”
천소울은 앉으면서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미국 좀 안다는 듯한 말투에 가만히 있을 주선아가 아니었다.
“오- 소울 쌤- 미국 물 좀 먹어봤다 이거죠?”
“거기 물맛 별거 없어. 한국이 최고야.”
농담인지, 진담인지 알 수 없었다.
표정 변화 하나 없이 진지한 목소리 톤으로 말하는 천소울은 여전했다.
“크큭. 하여튼. 그래, 이게 소울 쌤이지. 이제 진짜 소울 쌤이랑 얘기하는 거 같다.”
그동안 천소울이 계속 해외에 있어 만나지 못했다.
이렇게 두 사람이 만나는 것은 정말 간만이었다.
천소울이 한국에 온 뒤에도 상황은 비슷했다.
주선아도 성탄 엔터에서 연습하는 만큼 얼굴을 본 적 있지만, 둘 다 바빠서 제대로 대화를 나눈 적은 없었다.
오디션에서 처음부터 함께한 인연이 깊은 만큼, 두 사람은 성탄 엔터 내에서도 가까운 사이였다.
두 사람은 다가온 직원에게 간단히 식사 주문을 끝냈다.
직원이 두 사람 테이블에서 멀어지자 천소울이 주저하고 있던 말을 꺼냈다.
“선아 너한테 물어보고 싶은 게 있는데 말이지.”
“오. 쌤이 나한테 물어볼 게 있다고? 뭔데요, 뭔데?”
천소울은 오늘 내내 고민했던 것을 털어놓았다.
언제나 음악에 관한 고민을 최대한 빨리 완벽하게 해결하고 싶어 하는 천소울스러운 행동이었다.
그러기 위해 주선아건 누구건 도움을 줄 수 있을법한 사람에게 솔직해지기로 한 것이다.
“그게 말이지...”
천소울은 처음부터 차근차근 설명하기 시작했다.
성현으로부터 어떤 곡을 받았고, 얼마나 마음에 드는지.
그런데 왜 그 노래가 망설여지는지까지.
그리고,
“프흡. 아... 그런 고민이..픕....”
주선아는 필사적으로 웃음이 새어 나오려는 것을 참았다.
천소울을 아는 누구라도 같은 반응일 것이다.
천하의 천소울이 이런 귀여운 진지한 고민을 하다니.
아마 다른 멤버들에게 말해도 쉽게 믿어주지 않을지도 몰랐다.
“한 번만 더 웃으면, 다시는 독대하지 않을 거다.”
천소울은 자신의 말에 웃음이 터진 주선아를 보고 싸늘하게 말했다.
주선아는 놀라서 그런 천소울에게 알았다며 손바닥을 내밀었다.
“후아. 알았어요. 그럼 잠깐만. 잠깐만 시간 줘요.”
주선아는 겨우 웃음을 진정시키고 말했다.
“그러니까, 소울 쌤은 누구를 좋아해 본 적이 없다, 이거죠?”
주선아의 깔끔한 정리에 천소울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 모습에 주선아는 안타깝다는 듯 나지막이 말했다.
“그럼 우리 하나 언니는 어떡하나.”
갑자기 튀어나온 임하나의 이름.
천소울은 의아하다는 듯 고개를 기울였다.
주선아는 그런 천소울 한심하게 바라보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이건 뭐 내가 해줄 수 있는 말이 없네. 넘어가요, 넘어가.”
저런 눈치로 지금까지 세상을 어찌 살았는지.
주선아는 저도 모르게 혀를 차려다가 참았다.
주선아로서는 지금 화제를 넘기는 게 최선이었다.
“그래, 알았다. 미안해. 괜히 또 앉자마자 음악 얘기해서.”
천소울은 이번에도 고민 해결 못 하는 걸 아쉬워했다.
그러면서도 일단 주선아와는 편하게 밥 먹기로 한 약속이니 넘어가기로 했다.
그 뒤, 둘은 그동안 어떤 음악을 준비했고, 어떤 연습을 했는지.
천소울이 영국과 미국에서 겪었던 일 등, 여러 이야기를 활발하게 나누었다.
“그러니까 말이야. 그때 임하나가 처음 아델 노래를 부를 때, 그때 아델이 지켜보고 있던 거지. 아마 그 사실을 알았더라면, 또 임하나가 어떤 호들갑을 떨었을지. 지금 생각해보면, 못 본 게 나았어.”
천소울이 답지 않게 신이 나서 말하는데, 주선아가 빤히 천소울을 바라봤다.
“뭐야. 왜 그래. 내 얼굴에 뭐 묻었어?”
“흐음-?”
가만히 천소울의 말을 듣고 있던 주선아가 묘한 미소를 지었다.
“소울 쌤이 처음 여기 앉자마자 했던 고민 상담, 답이 나온 것 같은데.”
“정말? 뭔데. 뭐가 됐든 말해주면 고맙겠다.”
주선아는 고개를 끄덕이더니 척하고 손가락을 하나 들어 올리며 말했다.
“임하나.”
천소울은 그 이름에 이전보다 더욱 격하게 고개를 기울였다.
“뭡니까? 그 반응은.”
“내가 못 알아듣는 게 이상한 건가. 아까도 그렇고, 지금 여기서 임하나 이름이 왜 또 나오는 거야.”
그 모습에 주선아는 이제 분통이 터질 지경이었다.
“쌤, 진짜 몰라서 이러는 거 아니죠? 모르는 척하는 거죠?”
“내가 아는 걸 모르는 척하는 것 봤나.”
하긴. 그 잘난 천소울이 쓸데없는 척을 할 리가.
저 말은 또 맞긴 맞았다.
주선아는 고개를 빼서 주변을 괜히 한번 둘러봤다.
“하나 언니가 쌤 좋아하는 거, 진짜 몰라요?”
주선아는 고개를 테이블 쪽으로 숙인 채로 기가 차다는 듯이 말했다.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하는 말에 천소울은 그 자리에서 그대로 굳어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