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 같은 프로듀서는 없었다-260화 (260/273)

260화

CY그룹으로부터의 매수 제안.

이미정의 말에 천소울은 크게 놀라 눈이 커져서는 성현을 바라봤다.

그러나 성현은 어느 정도 이미 예상했다는 듯 차분한 표정이었다.

“그동안 더 넥스트 슈퍼스타의 한국 측 참가자들을 관심 있게 모니터링하고 있었어요. 그리고 당연하게도 두 사람의 재능이 단연 돋보이더군요.”

이미정 부회장은 테이블에 놓인 소형 리모컨을 집어 들었다.

그녀가 버튼을 누르자 한쪽 벽면이 열리면서 대형 스크린이 등장했다.

한쪽 벽면 전체를 차치하고 있는 스크린은 화면 분할이 되었다.

다시 버튼을 누르자 화면들이 일제히 켜졌다.

거기에는 성탄 엔터 소속 가수들의 영상이 제각각 떠올라 있었다.

그 가운데에는 단연, 성현과 천소울 그리고 임하나가 차지하고 있었다.

“저희는 최고의 인재들에게 최고의 지원을 해드릴 능력과 자산이 있습니다. 저희 CY 산하로 들어오신다면 성현씨 뿐만 아니라 천소울씨, 임하나씨 그리고 현재 성탄 뮤직 소속 모든 아티스트에게 더 나은 인프라와 환경을 제공해드리겠습니다.”

이미정는 미리 준비한 듯이 또박또박 말을 전했다.

천소울은 혼란스러운 표정으로 그 화면과 성현을 번갈아 보고 있었다.

이 제안에 성현은 어떤 대답을 할까.

천소울은 확신할 수가 없었다.

성현은 모두와 함께 음악을 하겠다고 했다.

하지만, 소속사를 운영하기에는 솔직히 지금 성현의 입장에서 벅찬 것도 사실이었다.

대형 글로벌 오디션 ‘더 넥스트 슈퍼스타’에서 우승 후보로 손꼽히는 그였다.

하루 종일 밤낮 할 거 없이 매달려도 충분하지 않을지도 몰랐다.

그리고 이 매수 제안을 받아들인다고 해도, 성현이 말했던 약속이 무용지물이 되는 것은 아니었으니까.

성현은 그녀의 파격적인 제안에도 어떤 놀란 기색도 없이 차분히 입을 뗐다.

“제안은 고맙지만 거절하겠습니다.”

성현의 너무나 빠른 대답, 그것도 거절.

천소울은 놀라서 성현과 이미정을 봤다.

그런데 이 자리에서 놀란 것은 천소울뿐이었다.

이미정 역시 성현과 마찬가지로 차분한 표정이었다.

그녀 역시, 성현의 행보를 지켜본 사람이었다.

스폰계약 한번 없이 지금의 자리에 올라선 두 사람.

아무래도 거절당할 거라는 계산이 없지는 않았다.

그래도 혹시나, 설마하기는 했다.

천소울은 태연한 표정의 두 사람 사이 혼자서만 표정 관리가 되지 않았다.

그는 지금의 상황을 파악하느라 혼란스러웠다.

“이유를 물어봐도 될까요? 이미 대답이 준비돼 있었던 것 같기도 해서.”

이미정은 느긋하게 기대앉으며 물었다.

그녀의 말에 성현은 어떤 고민도 없이 대답했다.

“자유롭게 음악하고 싶어서요.”

“그 환경을 우리 CY가 만들어 줄 수 있다니까?”

자유로운 음악.

이미정은 자신이 그 뒷받침이 되어줄 자신이 있었다.

그러나 성현은 의견을 굽히지 않았다.

“아니요. 저희들의 힘으로 직접 일궈낸 자유면 좋겠어요. 어떤 상황이든 남의 돈을 받는 순간 이행해야 할 채무가 생기는 거니까요.”

성현의 대답에 이미정은 처음으로 말이 없어졌다.

채무라니.

놀랍도록 날카롭고 계산적인 어투였다.

이제 막 연예계에 입성한 프로듀서 지망생이라고는 도저히 생각할 수 없는 결단력.

얼굴에 티가 나진 않았지만 적지 않게 놀란 이미정이었다.

‘당연히 수락할 거라 생각했는데.’

다른 그룹도 아닌 무려 CY그룹의 제안이었다.

현재 대한민국에서 최고 상한가를 나날이 갱신 중인 거대 그룹.

이미정은 자신이 뒷조사한 성현의 이력을 떠올려 봤다.

클래식 거물의 밑에서 태어나 클래식 전공을 한 그저 그런 도련님이라고 생각했는데.

아무래도 판단 미스였던 모양이었다.

이미정이 조사한 바로, 성현은 당장 사무실도 없다고 했다.

클래식 레이블의 수장인 아버지 이주성의 회사 3층을 빌려 쓰고 있다고 들었다.

그래서 당연히 자신의 제안을 받아들일 거라 예상했었고.

그런데 거절이라니?

그녀는 이 상황이 도리어 유쾌하게 느껴졌다.

‘당돌하네.’

이내 이미정의 입술에 미소가 번졌다.

오랜만에 재밌는 승부사를 만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후회 안 할 자신 있어요?”

이미정, 그녀와 CY 그룹이 가지고 있는 재력과 능력은 엄청났다.

분명 그들의 지원을 받는다면 성탄 엔터의 성장 또한 과속화 될 수 있었다.

“네.”

그리고 성현은 자신의 선택을 후회 없이 만들 자신이 있었다.

‘제법이네.’

이미정은 성현이 가지고 있는 배짱과 패기가 마음에 들었다.

그녀는 미소를 거두지 않고 성현을 빤히 쳐다봤다.

오래도록 행보를 지켜보고 싶은 사람이 생긴 것 같았다.

‘봉준오 감독의 말이 영 틀린 것은 아니네.’

성현을 영입할 것이라는 이미정의 말에 봉준오는 탁월한 선택이라고 했다.

그리고, 그리 만만치는 않을 거라고 덧붙이기도 했다.

그때 당시만 해도, CY 그룹의 제안을 거절할 리 없다고 안일하게 생각하기는 했지만.

“첫 번째 제안도 거절인 건가요?”

“아니요. 일단 자세한 조건을 더 들어보고 결정하겠습니다.”

성현의 침착함에 이미정은 재밌다는 듯 피식 웃음을 터트렸다.

제법, 사업가의 흉내를 낼 줄도 알았다.

“원하시는 자세한 조건, 들려드리도록 하죠.”

그렇게 세 사람은 바로 CAMA와 관련된 회의를 시작했다.

***

CAMA.

CY 아시아 뮤직 어워드.

CY 그룹이 주관하는 국내 및 아시아 최정상급 가수들이 참여하는 시상식이다.

아시아 시상식 중 가장 큰 규모의 음악 시상식.

매년 아시아 각지에서 개최하고는 하는데, 올해는 홍콩에서 개최를 하게 됐다.

CAMA는 출연진들을 세 차례에 나눠서 공개하기로 되어 있었다.

출연진 중에는 BTG를 필두로 국내 최정상 아티스트들이 대거 들어가 있었다.

[CAMA 1차 라인업 공개! BTG, 아이스벨벳, 트리와이스, 하이유......]

[CAMA 2차 라인업 공개! 오마이보이, 아이즈투, ZO, 씨투비, 빅투......]

-BTG! 대상 가즈아!

-아이스벨벳 사랑해 ㅠ 올해도 수고했어!

-엣지 언니들 신인상 가즈아!!

-BTG 5년 연속 대상 수상 가능?

-쌉가능.

그리고 마지막으로 3차 라인업이 공개됐을 때, 그 이전 라인업 공개보다 더욱 화제가 됐다.

[CAMA 3차 라인업 공개! 특별 게스트로 ‘더 넥스트 슈퍼스타’ 이성현, 천소울 참가?!]

[‘더 넥스트 슈퍼스타’ 이성현, 천소울. 홍콩에서 열리는 CAMA에서 스페셜 무대 준비]

[CY 부회장 이미정의 엄청난 섭외력. 홍콩 톱스타 주윤벌, 유덕호, 리웅친 섭외하더니 더 넥스트 슈퍼스타 이성현, 천소울까지 섭외!]

[이성현, 천소울 이번에도 환상의 호흡 보여줄까? CAMA 스페셜 무대 준비 중]

-미친. 소울오빠 CAMA 가는 거 실화?

-이미정 섭외력 개쩌네. 진심 저 정도 능력을 가져야 CY 부회장 자리까지 가는구나.

-더 넥스트 슈퍼스타 위력이 엄청나긴 하구나. 데뷔도 안 한 아티스트가 CAMA 스페셜 무대를 하고.

-이성현 저 사람 본선 8라운드 전체 투표수 1위 한 사람?

-ㅇㅇ 7억표 넘게 받음.

-헐. 대체 얼마나 잘하길래.

-프로듀싱 한 지 2년 됐다는데 사실이면 그냥 천재임. 한때 실음과 다녔던 사람이 말하는 건데 곡을 말도 안 되게 잘 씀.

성현과 천소울이 CAMA에 참가한다는 소식은 빠르게 퍼져나갔다.

언론과 팬들의 반응 역시 뜨거웠다.

국내 언론뿐만 아니라, 두 사람의 참가에 외신들까지 CAMA의 소식을 전할 정도였다.

두 사람이 CAMA에 참여할 거라고 예상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깜짝 발표에 모든 이들이 열광한 것이다.

***

그리고 다가온 공연 날 당일.

레드카펫 위로 수많은 스타들이 입장했다.

국내 톱 가수들과 배우들 그리고 홍콩의 스타 배우들까지.

다들 정장과 드레스를 차려입고 팬들에게 인사하며 등장했다.

포토존에 선 그들은 찬란하게 빛나고 있었다.

차례차례 등장하는 엄청난 라인업.

그 모습에 기다리던 국내와 해외 팬들이 환호성을 내질렀다.

기자들도 사진을 찍느라 정신이 없었다.

그리고 마침내 BTG가 레드카펫에 등장했다.

이전과는 차원이 다른 크기의 환호가 들렸다.

BTG 포토존에 서고 RN은 맴버들과 눈을 맞추며 인사를 했다.

“둘, 셋.”

“안녕하세요, BTG 입니다!”

카메라맨들은 BTG를 찍느라 정신없었다.

인원이 인원이니만큼 BTG 멤버들 한 명 한 명을 카메라에 잘 담기 위한 그들의 노력이었다.

꺄아아!

갑자기 어디선가 BTG 못지않은 환호 소리가 들려왔다.

그 소리에 BTG의 맴버들도 소리가 나는 쪽을 보니 성현과 천소울의 모습이 보였다.

까만 턱시도를 차려입은 성현과 하얀 정장을 훌륭하게 소화한 천소울.

두 사람은 나란히 팬들에게 인사를 건네며 레드카펫을 밝았다.

“성현씨!”

RN이 반가움에 손을 흔들었다.

성현은 멤버들과 하이파이브를 하며 인사를 나눴다.

그 친밀한 모습에 카메라 셔터음이 거셌고, 팬들의 비명 섞인 환호가 울렸다.

“두 분이 앨범 작업 중이라면서요?”

제이가 천소울을 힐끗 보더니 악수를 청하려는데, B가 둘 사이에 껴들었다.

B의 눈이 장난 아니게 반짝이고 있었다.

얼결에 떠밀린 제이가 어이가 없다는 듯 B를 봤지만, 제이는 B의 관심 밖이었다.

“반가워요. B예요. 만나보고 싶었습니다. 목소리 사랑해요.”

B가 천소울을 보자마자 대뜸 말했다.

천소울은 B의 빠른 친화력에 당황해 순간 몸을 뒤로 뺐다.

“저도 만나 뵙게 돼 영광입니다.”

“먼저 들어가 있을게요. 인사하고 와요.”

BTG가 성현에게 인사를 하고 먼저 안쪽 대기실로 들어갔다.

그다음, 성현과 천소울이 포토존에 서서 카메라와 팬들을 향해 인사했다.

“와주신 팬들 여러분께 너무 감사드리고 오늘도 멋진 무대로 보답하겠습니다.”

짧은 인사를 끝낸 성현과 천소울도 포토존을 벗어났다.

***

홍콩의 스타디움 공연장.

5만 5천 명의 관객들이 공연장을 가득 메웠다.

공연을 즐기는 해외 각지의 팬들이 모두 한 마음이 되어 공연을 즐겼다.

2부까지 마치고 광고가 틀어지는 동안 메인 무대에는 오늘 출연하는 가수들의 뮤직비디오가 흘러나왔다.

그중에는 성현과 천소울이 꾸몄던 무대 영상도 있었다.

시상식의 2부까지 모두 종료됐고 3부를 앞둔 상황의 백스테이지.

스탭들은 이리저리 분주했다.

의상과 장비들을 점검하느라 바빴고, 무대 의상과 메이크업을 끝낸 천소울이 무대에 올라가기 전 입을 풀고 있었다.

이성현 역시 마찬가지였다.

물론 이성현은 무대 중간에 등장할 예정이었다.

오디션을 통해 성현도 얼굴이 나간 만큼, 성현의 팬덤 역시 대단했다.

이미정은 성현이 프로듀싱을 하면서 무대에도 오르길 바랐다.

성현은 흔쾌히 그에 응했다.

둘은 바로 무대에 오를 준비를 마쳤다.

“천소울씨 준비하세요!”

스탭의 말에 천소울은 성현과 눈을 맞추고 무대에 올라갔다.

천소울의 등장에 5만 5천의 관객과 가수들의 열띤 호응을 보냈다.

천소울! 천소울!

천소울은 자신을 향해 환호하는 관객들을 보며 천천히 마이크를 들었다.

“What if all the chips were up. And you feel you've hit the road.”

천소울의 첫 소절이 넓디넓은 홍콩 공연장을 가득 메웠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