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9화
천소울의 앨범 작업에 대한 회의가 마무리됐다.
“수고하셨습니다!”
직원들이 슬슬 회의를 마치고 일어나려는데 성현은 자리를 지킨 채였다.
직원들 엉덩이를 의자에서 들려다가 성현이 그 자리에 있자 당황해서 다시 자리에 앉았다.
심훈영은 그런 직원들의 모습이 재밌다는 듯 키득거렸다.
성현보다 직원들을 잘 아는 심훈영이기에 더욱 지켜보는 맛이 있었다.
성현은 그러거나 말거나 신경 쓰지 않고 물었다.
“요하랑 걸그룹 데뷔 프로젝트는 어디까지 진행됐죠?”
성현의 질문에 직원들은 놀라서 성현을 바라봤다.
“그것까지 하시게요?”
“네. 전부 우리 회사 가수들 아닌가요?”
성현은 당연하다는 듯이 되물었다.
그 모습에 놀란 것은 직원들이었다.
“그, 그렇죠. 그렇지만 지금 앨범 준비로도 충분히 바쁘실 텐데.....”
“괜찮습니다. 요하 미니 앨범 진행 상황 먼저 보고 시작해주세요.”
성현은 아무렇지 않게 회의를 계속 이어갔다.
제일 먼저 요하 담당 직원이 보고를 시작했다.
“현재 타이틀 곡까진 녹음 다 끝났고 수록곡 하나만 남은 상황입니다. 믹싱 작업은 전문 엔지니어한테 맡길까 했는데 더 비기너 쪽에서 직접 맡겠다고 해서 일단 알겠다고는 했습니다.”
그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성현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
‘동우 형이 직접 하려나.’
“실력 있는 분이니까 맡겨도 될 것 같습니다.”
성현의 말에 직원은 알았다며 보고를 이었다.
“큰 사고 없는 한 계획했던 대로 12월 중순 맞춰서 발매 가능할 것 같습니다.”
12월 중순.
정말 별로 남지 않았다.
성현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물었다.
“걸그룹 쪽은요?”
요하 담당 직원과는 다른 직원이 뒤를 이어 자리에서 일어났다.
직원은 태블릿 PC를 넘기며 보고를 이어갔다.
“메인 피디인 조은별씨가 기대 이상으로 잘해주고 있어서 기대해도 좋을 것 같아요. 현재 곡 리스트도 픽스 됐고 2곡은 녹음까지 끝낸 상태입니다.”
리스트가 픽스되었다는 소식은 조은별에게 직접 들어서 알고 있었다.
조은별을 필두로 서자명, 주영준까지 프로듀싱에 참여했다.
그래서 그런지, 세 사람은 곡을 선정하는데 어려움을 겪었다.
모든 곡이 좋다고 생각했기 때문.
심훈영이 지속적으로 보내주는 노래 파일을 받아본 성현도 그걸 알고 있었다.
“생각보다 곡 선정이 오래 걸려서 걱정했는데. 이제부턴 속도가 좀 붙을 수 있어서 다행이네요.”
성현의 말에 동감하는지 직원도 미소를 띠었다.
“네. 내년 초로 잡았던 데뷔 일정은 맞출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요하가 12월 중순에 데뷔를 하고 거의 바로 뒤이어 걸그룹이 데뷔를 하게 되어있다.
성현은 차질없이 진행되고 있는 것 같아서 마음이 놓였다.
“멤버들 스타일링이나 비쥬얼 컨셉 회의는 아직인가요?”
요하네보다 특히 걸그룹에게 중요한 것 중 하나가 바로 컨셉 회의였다.
걸그룹이지만, 네 명의 개성이 뚜렷한 만큼 각자 다르면서 조화로울 수 있는 스타일링이 필요했다.
수록곡 중에서도 뮤직비디오 제작이 들어가는 곡이 있었다.
곡마다 다른 스타일링과 비주얼 컨셉을 정해야 했기 때문에, 녹음 후에도 멤버들은 한동안 정신 없을 예정이었다.
“그것도 현재 진행 중입니다. SN에 있던 스타일리스트가 최근 회사를 나왔다고 해서 컨택 중에 있는데 조만간 합류하게 될 것 같습니다.”
심훈영에게 스타일리스트를 결정하지 못해 애먹고 있다고 들었다.
다행히 눈에 들어오는 사람이 생긴 모양이었다.
스타일리스트 측에서 긍정적으로 검토하고 있다는 내용을 마지막으로 보고가 끝이 났다.
“그럼 그에 맞춰서 데뷔 무대나 쇼케이스 준비도 해주시고, 되는 대로 저한테도 보고해주시고요.”
“그래. 걱정마라. 어차피 성현이 네 허락 없이는 일 진행 안 하니까.”
성현은 그 뒤로도 여러 가지 안건을 내놓으며 회의를 진행해나갔다.
심훈영과 직원들 사이에서 나왔던 아이디어와 성현의 의견이 조율되었다.
이미 나와 있는 아이디어 자체가 좋았다.
성현은 거기에 추가적으로 의견을 덧붙이는 정도였다.
심훈영이 심혈을 기울여서 직원들을 뽑았다고 들었는데, 실로 유능한 인재들이 많았다.
한국에 돌아와서 성현을 보고 놀랐던 인상이 깊게 남아 있어서 미처 눈치채지 못한 부분이었다.
덕분에 두 프로젝트 모두 생각보다도 훨씬 유려하게 흘러가고 있었다.
‘생각대로 잘 흘러가고 있네.’
성현이 시간을 확인하는데, 어느덧 회의를 시작한 지도 두 시간이 지나가고 있었다.
‘슬슬 곡 작업 시작해야겠네.’
당장 천소울 앨범을 준비하는 것이 급했다.
최소 2곡은 프로듀서 본인의 곡으로 채워야 했다.
거기다 천소울에게 곡을 주겠다고 여기저기서 보내는 후보곡들도 많았다.
성현이 그 곡들을 들어보는 데만 해도 시간이 걸릴 터였다.
“회의는 여기서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다들 수고하셨어요.”
성현이 회의를 마치고 일어나는데 휴대폰이 울렸다.
휴대폰 액정을 확인하는데 모르는 번호였다.
‘누구지?’
성현은 원래 모르는 번호는 잘 받지 않았다.
그래도 기획사를 설립한 후에는 조심하고 있었다.
언제 누구한테 연락이 오게 될지 몰랐으니 말이다.
그리고 이 전화는 특히, 거절하면 안 될 것 같다는 직감이 들었다.
“여보세요?”
성현은 전화가 끊어지기 전에 받았다.
“이성현씨 맞나요?”
전화기 너머로 여자 목소리가 들려왔다.
처음 듣는 낯선 목소리였다.
성현은 회의가 끝났음을 알리면서 자리에서 일어났다.
직원들이 회의실을 나가고 곧 성현만이 남았다.
“네. 맞는데 누구시죠?”
“전 CY 그룹 부회장 이미정이에요.”
‘......이미정?’
성현은 순간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CY는 국내 문화를 주도하는 거대 기업이었다.
그런데 그곳 그룹의 부회장인 이미정이 성현에게 직접 전화를 건 거였다.
“......”
“갑자기 전화해서 놀라셨죠?”
그 말대로였다.
성현의 침묵이 길어지자 이미정은 조금 미안하다는 듯 웃으며 침묵을 깬다.
“네, 아니라고 하면 거짓말이겠네요.”
놀람도 잠시 성현은 침착하게 대답했다.
“그만큼 급해서 그랬어요. 놀라게 한 건 미안해요.”
“조금 놀란 것뿐이지 괜찮습니다. 그런데 급한 일이라면 어떤 일로......?”
CY는 주로 영화나 드라마 산업을 주도하고 있었다.
그런 그녀가 성현에게 전화할 이유는 없었다.
그런데 급한 일로 전화를 했다니.
성현으로서는 무슨 일인지 감조차 잡히지 않았다.
“제안할 게 있어서요. 직접 만나서 얘기 나누고 싶은데, 가능할까요? 천소울씨도 함께요.”
천소울을 함께 거론하는 이미정 부회장의 말.
고민할 필요는 없어 보였다.
“물론입니다.”
성현은 어떤 고민도 없이 이미정의 제안을 수락했다.
그녀가 무슨 제안을 할지 몰라도 이야기를 들어보는 것은 손해가 아니었으니까.
그리고, 지금의 기회를 그냥 놓치면 안 된다는 강력한 예감이 들었다.
***
CY 그룹.
‘문화 공룡’이라 불리며 한국의 문화산업을 주도하고 있는 거대 그룹.
영화, 음악, 방송 등 다방면으로 막대한 영향력을 끼쳤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바로 이미정 부회장이 있었다.
CY 그룹에서 벌어진 문화와 관련된 일들은 대부분 그녀가 주도했다.
최근 몇 년간, 이미정 부회장은 영화계에 집중했다.
과감한 투자가 이루어지면서, 좋은 결과들을 얻을 수 있었다.
‘봉준오 감독의 영화 대부분을 제작해준 곳이 CY 그룹이기도 하고.’
이미 성현과도 안면이 있는, 아카데미를 휩쓴 봉준오 감독.
그는 한국뿐만 아니라 해외 무대에서 좋은 평가를 받고 있었다.
해외 진출로 거장의 반열에 오르기도 했다.
신인 봉준오 감독을 처음 발굴하여 지금까지 지원해준 사람이 바로 CY 그룹의 이미정 부회장이었다.
‘처음엔 의아했지만, 사업을 시작하고 있을 줄이야.’
성현은 어제 했던 봉준오 감독과의 통화를 떠올렸다.
봉준오는 성현의 연락을 아주 기꺼워했다.
“요즘 그쪽으로 관심이 많으시더라고. 국내 엔터 몇 개도 인수했다고 하니까 단순히 호기심은 아닌 것 같아. 성현씨한테 전화한 것 보니 본격적으로 인재 영입에 들어간 것 같네.”
성현은 이미정의 갑작스러운 제안에 봉준오에게 전화를 걸어 의견을 구한 것이다.
봉준오의 말을 들으니 그녀가 왜 자신에게 컨텍을 한 건지 그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인재 영입이라.’
성현이 생각에 잠겨 있는데 멀리서 천소울이 보였다.
“답장 없길래 아직 도착 안 한 줄 알았는데.”
천소울은 CY 그룹 사옥을 올려다보며 말했다.
미리 사옥 앞에 와 있던 성현은 주머니에서 휴대폰을 꺼내 들었다.
천소울에게서 문자와 전화까지 와 있었다.
성현은 미안하다는 듯이 머리를 긁적였다.
“잠깐 생각 좀 하느라 문자 온 줄도 몰랐네요. 들어갈까요?”
성현과 천소울은 회전문을 지나 CY 건물로 들어갔다.
***
두 사람은 곧바로 건물 최상층에 있는 이미정 부회장 사무실로 안내되었다.
천소울은 갑작스러운 미팅에 조금 긴장한 모양새였다.
답지 않게 허리를 꼿꼿하게 세운 채 긴장한 모습이 역력했다.
그리고, 그가 이토록 긴장한 이유,
바로 CY그룹의 이미정 부회장의 존재 때문이었다.
“바쁘실 텐데 와주셔서 고마워요.”
이미정은 성현과 천소울에게 직접 차를 따라주며 말했다.
둘의 등장에 크게 반가워한 그녀는 직원도 물리고 자신이 직접 두 사람을 대접했다.
“왜 부른 건지 대충 예상은 하시죠?”
이미정은 자신의 잔에도 차를 따르며 말했다.
천소울 그게 무슨 소리냐는 듯 이미정과 성현을 번갈아 봤다.
성현은 미동 없이 이미정을 바라볼 뿐이었다.
“연락했다고 들었어요. 봉 감독한테.”
이미정이 성현을 응시하며 물었다.
성현은 선선히 고개를 끄덕였다.
“네. 최근에 엔터 사업을 시작하셨다고.”
“맞아요. K-POP 인기도 있겠다, 나쁘지 않아 보여서요.”
성현의 질문에 이미정은 깊게 미소 지었다.
차를 음미하던 그녀는 찻잔을 내려놓고 소파에 깊숙이 기대앉았다.
“역시 그것 때문에 보자고 하신 건가요?”
만약 단순히 그런 이유로 보자고 한 거면 성현이 이 자리에 길게 있을 필요는 없었다.
인재 영입이든 뭐든 성현에겐 이미 기획사가 있었으니까.
“그것 때문만은 아니에요.”
이미정은 단번에 고개를 저었다.
그 말에 성현은 이제야 조금 흥미로운 듯 이미정의 뒷말을 기다렸다.
“두 사람에게 CAMA 출연을 제안하고 싶어요.”
CAMA, CY asian music award.
아시아 최대 뮤직 어워드로 매년 CY 그룹에서 개최하고 있는 연말 시상식이었다.
이미 해외팬들과 국내팬들에게 인지도가 높아 인기가 상당했다.
이미정은 그곳에 두 사람이 무대를 준비해달라고 부탁한 것이다.
“CAMA라면 올해 홍콩에서 열린다고 들었는데, 맞나요?”
성현은 어느 정도 예상한 범위 내라는 듯이 크게 놀라지 않았다.
성현의 질문에 이미정 부회장은 고개를 주억거렸다.
“당분간 앨범 작업 때문에 바쁠 거란 얘긴 들었지만, 개인적으로 두 사람이 꼭 참가해주면 좋겠어요. 수락만 해주시면 두 사람을 위한 스페셜 무대를 준비할 생각이고 어떤 지원도 아끼지 않을 겁니다.”
옆을 돌아보니 처음 듣는 이야기에 놀란 표정의 천소울이 이미정을 바라보고 있었다.
CAMA 출연이라.
나쁘지 않은 제안이었다.
다만, 6개월 안에 앨범 준비를 해야 하는 만큼, 숙고가 필요했다.
“조금 생각할 시간이 필요할 것 같은데 두 번째 제안도 마저 들을 수 있을까요?”
이미정은 차를 한 모금 마시더니, 잠시 시간의 텀을 두고 입을 뗐다.
“성탄 엔터를 저희 CY 산하 엔터로 인수하고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