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8화
“진짜 미쳤어요?!”
임하나가 온 힘을 다해 서자명에게 소리를 질렀다.
서자명은 큰소리에 놀라 귀를 막았다.
이거야말로 재능 낭비였다.
“아님 말지 뭘 그렇게 소릴 질러댑니까!”
생각해보니 억울했다.
서자명도 같이 소리 쳤다.
결국 두 사람 사이에 성현이 중재하고 나섰다.
“하나씨는 우릴 가족처럼 생각하는 분이에요. 자꾸 그런 식으로 몰아가면 서로 어색해지니까 그만하시죠.”
성현이 분위기를 중재한 뒤 다시 자리에 앉았다.
그런데 천소울의 표정은 조금 심란해 보였다.
그리고 임하나를 빤히 보던 천소울은 이내 시선을 거두고 식사를 계속했다.
그러다 순간, 나이프를 바닥에 떨어트리고 말았다.
“여기-”
“여기 나이프 좀 가져다주세요.”
천소울이 웨이터를 부르려는데 임하나가 한발 빨랐다.
천소울이 그런 임하나를 다시 빤히 봤다.
그런데 이미 시선을 돌린 후였다.
임하나는 애써 시선을 피하며 고기를 써는 데 집중했다.
옆얼굴이 따끔했지만, 신경 쓰지 않으려고 했다.
그러지 않으려고 했다.
그러려고 했는데, 자꾸 천소울이 시야에 들어오는 바람에 임하나도 죽을 맛이었다.
천소울은 지긋이 임하나를 바라봤다.
다시 시선을 거두고, 이번에는 빈 와인잔을 채우려는데 와인병이 비어있었다.
빈 와인병을 들어본 천소울이 다시 손을 들었다.
“여기-”
“여기 와인 한 병만 더 가져다주세요. 네, 같은 걸로요.”
이번에도 역시 임하나가 한발 빨랐다.
천소울은 이번에도 자신보다 한발 빠른 임하나를 쳐다봤다.
임하나는 역시 시선을 피하고 딴청을 피웠다.
그리고 이를 지켜보는 멤버들은 자기들끼리 시선을 주고받으며 묘한 미소를 지었다.
***
이틀 후 오후, 인천국제공항.
마스크와 모자를 쓴 성현과 천소울이 임하나 곁에 서 있었다.
임하나는 커다란 캐리어를 두 개나 든 채로 두 사람과 마주 봤다.
성현은 임하나의 얼굴을 살피다가 물었다.
“진짜 다른 멤버들한테 말 안 하고 가도 돼요?”
성현과 천소울만 공항에 나온 채였다.
임하나의 뒤로는 낯익은 스탭들이 정신없이 준비를 서두르고 있었다.
“네. 괜히 연습 방해하기 싫어요.”
걸그룹 데뷔가 초읽기에 들어간 상황이었다.
같이 저녁을 먹은 걸로도 충분했다.
데뷔 준비를 하느라 일 분 일 초가 바쁜 이들에게 괜히 마음 쓰게 하고 싶지 않았다.
“선아가 많이 서운해할 겁니다.”
천소울도 성현과 함께 거들었다.
그 말에 임하나는 자신도 속상하다는 듯이 그리 밝지만은 않은 표정이었다.
그럼에도, 이게 맞았다.
괜히 다른 멤버들이 신경쓰이게 하고 싶지 않았다.
“누군 거짓말하고 싶어서 한 줄 알아요? 괜히 저 때문에 피해 주고 싶지 않아요. 데뷔 진짜 코앞이라며.”
임하나는 일행들에게 저녁 비행기라고 말을 해두었다.
사실은 오전 비행기로 떠나는 거였다.
이 사실을 알고 있는 건 임하나를 제외하고는 성현과 천소울 둘 뿐이었다.
어디까지 멤버들을 방해하고 싶지 않은 하나 나름 대로의 배려였다.
성현은 임하나의 마음이 이해가 안 되는 것은 아니었다.
그래도 섭섭해할 멤버들의 얼굴이 선했다.
성현은 한숨을 내쉬며 임하나에게 손을 내밀었다.
임하나의 선택이었다.
더 이상 왈가왈부해봤자, 떠나는 사람 마음만 불편해질 것이 뻔했다.
“조심히 잘 다녀와요. 힘든 일 있으면 언제든 연락하고.”
임하나가 성현의 손을 붙잡고 악수하며 장난스럽게 말했다.
두 사람이 더 서운해하는 것 같았다.
일부러 더 밝게 웃는 얼굴을 유지하는 임하나의 모습.
“우리 이제 서로 경쟁상대인 거 잊었어요? 절대 연락 안 할 거예요.”
그때, 스탭들이 임하나를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하나씨, 이제 들어가 봐야 할 거 같아요.”
“네, 잠깐만요.”
임하나는 마지막으로 성현과 천소울을 바라봤다.
“말하지 않아도 알아서 잘하겠지만 이번에도 최고의 음악 만들어 주세요. 서로 다시 만났을 때 부끄럽지 않게.”
성현과 악수를 끝낸 임하나는 이번에는 천소울에게 악수를 먼저 건넸다.
성현을 올곧게 올려다보던 것과 달리 시선을 좀처럼 마주치지 못했다.
비껴서 천소울을 힐긋 본 임하나가 목을 가다듬으며 말했다.
“다녀올게요.”
임하나가 겨우 입을 떼서 말하며 손을 빼려 했다.
그런데 천소울이 손에 강하게 힘을 주는 것이 아닌가.
임하나가 놀라서 천소울 올려다보았다.
천소울은 임하나의 시선을 피하지 않았다.
“저한테 뭔가 서운한 게 있었던 것 같은데 뭔진 몰라도 사과하겠습니다.”
천소울의 갑작스러운 사과에 임하나도 놀라고 성현도 놀랐다.
이 상황이 상당히 당황스러웠다.
임하나는 놀라서 눈을 껌뻑이는, 이어지는 천소울 말에 눈이 더 커졌다.
“전 임하나씨와 멀어지고 싶지 않습니다.”
천소울이 너무나 진지한 표정으로 말을 했다.
그런 천소울의 모습에 임하나는 귀까지 빨개져서 억지로 손을 뺐다.
“가, 갈게요.”
임하나는 도망치듯 자리에서 벗어났다.
성현과 천소울은 그런 임하나의 뒷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봤다.
성현이 천소울을 향해 조심스럽게 입을 뗐다.
“뭔진 몰라도 단단히 서운했던 모양이네요.”
성현의 말에 천소울의 표정이 상당히 좋지 못했다.
“역시, 그런 거겠죠?”
성현과 천소울은 깊은 한숨을 쉬며 공항을 벗어났다.
***
성현과 천소울은 공항에서 택시에 올라탔다.
택시는 빠르게 인천공항을 빠져나갔다.
다리를 지나며 성현이 먼저 입을 열었다.
“6개월 동안은 정말 눈코 뜰 새 없이 바쁠 거예요.”
미션 기간까지 주어진 기간은 6개월.
그 안에 10개 곡을 담은 정규앨범을 제작한다는 건 당연히 쉬운 일이 아니었다.
상당히, 그것도 아주 상당히 빠듯한 시간이었다.
“각오 단단히 해두는 게 좋을 겁니다.”
성현은 매 라운드를 준비할 때 항상 열심히 했다.
하지만, 이번 정규앨범은 정말 자신이 가진 모든 걸 쏟아 부울 생각이었다.
“바라던 바입니다.”
그리고 그건 천소울 역시 마찬가지였다.
성현은 굳은 각오를 다짐하는 천소울을 보고 웃었다.
본선 9라운드.
벌써 여기까지 왔다.
여기서 무너질 수는 없었다.
두 사람 모두 이번 미션이 바로 다음 라운드, 그러니까 마지막 라운드로 가기 위한 마지막 관문이란 걸 알고 있었다.
천소울의 대답을 들은 성현은 곧장 휴대폰을 꺼내 심훈영에게 전화를 걸었다.
“대표님. 내일 전체 회의 소집해주세요.”
이제 본격적으로 천소울의 데뷔 앨범 작업 시작될 것이다.
***
회사 내 가장 넓은 대형 회의실이 가득 찼다.
엄숙한 분위기 속 성현이 들어갔다.
그의 등장에 자리에 앉아있던 심훈영, 천소울을 비롯해 여러 스탭들이 부산해졌다.
음악 제작팀, A&R팀, 매니지먼트팀, 크리에이티브팀 등 여러 부서의 직원들이 일제히 일어났다.
성현은 그대로 제일 앞 상석에 가서 모두를 돌아보며 말했다.
“이번 앨범은 더 넥스트 슈퍼스타의 미션이기도 하지만 우리 회사의 이름으로 발표하는 첫 정규 앨범이 될 겁니다.”
그 말에 직원들 몇몇이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팬들이 기대하는 바가 큰 만큼 최고의 퀄리티를 뽑아낼 수 있도록 남은 6개월간 최선을 다해주시길 바랍니다.”
심훈영과 천소울, 나머지 직원들 모두 진지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앨범 컨셉이나 곡 주제가 정해져 있는 건가?”
심훈영의 물음에 성현은 고개를 저었다.
모든 직원들이 알아들을 수 있도록 성현이 다시 한번 설명했다.
“아니요. 10곡이란 조건 이외에 다른 제한 사항은 없습니다.”
“미리 생각해둔 게 있는 거겠지?”
심훈영 말에 성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성현은 천소울을 한 번 보더니 직원들에게 발표했다.
“앨범 컨셉은 소울입니다.”
성현의 손짓에 뒤 대형 스크린이 켜졌다.
프레젠테이션 화면에 영어 Soul이 떠올랐다.
“영혼, 마음을 뜻하는 단어죠. 전 소울을 이번 앨범 컨셉으로 잡을 생각입니다.”
음악의 장르가 아닌, 말 그대로 소울. 영어로는 Soul.
천소울의 이름이기도 했다.
성현은 천소울의 첫 데뷔 앨범이니만큼 천소울이라는 사람 그 자체를 전면에 내세우기로 했다.
“천소울씨가 가지고 있는 영혼, 마음을 앨범에 담고 싶습니다.”
성현의 말에 직원들이 일제히 고개를 끄덕였다.
이내 각자 메모를 시작했다.
그중 직원 하나가 손을 들고는 말했다.
“전 좋은 것 같아요. 소울씨의 여러 감정을 표현하는 곡들을 앨범에 수록할 수도 있고.”
한 직원의 말에 다른 사람들도 서서히 입을 열었다.
“좋네요. 소울씨 이름도 소울인데다가 소울이란 단어가 음악을 상징하는 단어기도 하잖아요.”
직원 몇 명이 긍정적인 반응을 보이며 말했다.
그 말에 다른 직원이 손을 들었다.
“글쎄요. 전 생각이 조금 달라요. 앨범 컨셉 자체가 너무 모호해지지 않을까요?”
우려가 담긴 목소리.
미간을 찌푸리고 있는 직원은 그림이 잘 그려지지 않는다는 의견이었다.
이 말에도 동조하는 직원들이 있었다.
“맞아요. 특히 미국에서는 그냥 소울 음악을 담은 앨범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을 것 같아요.”
한국에서만 히트를 해서는 안됐다.
글로벌 오디션 미션이기에 국제시장에서 얼마만큼 힘이 발휘할지도 세세하게 점검해보아야만 했다.
이런 부분들이 이번 라운드 미션을 더욱 어렵게 만드는 요소이기도 했다.
남녀노소, 인종을 뛰어넘어 전인류의 인기를 얻을 수 있는 앨범.
결국 그런 앨범이야말로 좋은 평가를 받을 수 있었다.
“게다가 소울이라는 컨셉 때문에 비슷한 류의 곡만 만들어질 수도 있을 것 같단 생각이 드네요.”
긍정적인 반응만 있는 건 아니었다.
이와 같은 부정적인 의견을 제시하는 직원들도 있었다.
“우려하시는 점에 대해서 저도 인지하지 못했던 건 아닙니다.”
하지만 성현은 이번 컨셉에 자신감이 있었다.
“컨셉이 조금 모호할지라도 좋은 음악을 담는다면 분명 사랑받는 앨범이 될 수 있을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이번 앨범은 수록곡 자체가 무척 중요해질 겁니다.”
앨범 수록곡이 얼마나 좋은지.
듣는 사람들로 하여금 무언가를 느끼게 할 수 있는 곡들이 될 수 있는지.
성현이 생각하기에 이 두 가지가 가장 중요했다.
성현의 말에 직원들은 고개를 끄덕이며 생각에 잠겼다.
관건은, 좋은 곡들을 수집하는 것이 필요하단 소리였다.
“한 마디로 우리에겐 좋은 곡이 필요해요. 그러나 그렇다고 여기서 말하는 좋은 곡의 기준은 단순히 작곡가의 이름값 때문에 결정되진 않을 겁니다.”
성현의 발언에 직원 하나가 바로 물었다.
“무명 작곡가일지라도 얼마든지 쓰실 의향이 있다는 겁니까?”
“곡만 좋다면요.”
성현의 말에 직원들 조금은 염려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어찌 보면 파격적인 판단이었다.
당장 다음 라운드 진출권이 걸린 상황이었다.
여기서는 네임벨류가 있는 작곡가의 곡을 쓰는 것이 더 안전하기에.
그런데 성현은 쉬운 길을 택하지 않겠다고 선언한 것이다.
둘의 인지도라면, 유명 작곡가의 곡으로 쉽게 앨범을 채울 수도 있었다.
다만 성현의 생각은 조금 달랐다.
오로지 좋은 곡을 고르기 위한 여정.
성현은 굳이 어려운 길을 택하기로 마음먹었다.
네임벨류만으로는 완성할 수 없는 앨범.
성현은 충분한 자신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