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7화
주말에 오랜만에 집에 있는 성현이 이주성과 점심을 같이 했다.
이주성은 성현이 좋아하는 반찬을 슬그머니 밀어주다가 물었다.
“앨범 작업은 시작했고?”
성현에게 전해 들은 미션 소식.
곧바로 언론에서도 ‘더 넥스트 슈퍼스타’ 본선 9라운드 미션 내용이 발표되었다.
이주성은 이미 꼼꼼히 기사들을 찾아본 후였다.
그리고 성현에게 그동안 들은 이야기를 토대로 아들이 파트너로 누구를 선택할지도 예상하고 있었다.
한국의 천소울.
이주성 역시 아들이 파트너로 생각하고 있는 천소울에게 거는 기대가 컸다.
이번 무대를 보면서 재능이 많은 친구라고 생각하기도 했으니 말이다.
국을 한 숟가락 떠먹던 성현이 멈칫했다.
이주성은 종종 이런 식으로 오디션의 진행 상황을 묻고는 했다.
“아직이요. 주최 측에서 정확한 공지를 줘야지 시작할 수 있어요.”
“그래?”
이주성이 성현의 말을 듣더니 슬그머니 휴대폰을 꺼내들었다.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식사 도중에 어디론가 문자를 보내기까지 했다.
성현은 낯선 아버지의 모습에 저도 모르게 물었다.
“뭐 하세요?”
“어? 아니 그게......”
이주성이 말끝을 조금 흐리더니 쑥스럽다는 듯 볼을 긁적였다.
아들에게 못 말할 일은 아니었다.
다만 조금 남부끄러울 뿐이지.
“너 앨범 작업 아직이라고 말을 해줘야 해. 지인들이 성현이 널 아주 궁금해하거든.”
“아버지 지인들이요?”
성현 조금 놀라서 되물었다.
클래식 업계에 있는 이주성의 지인.
모르긴 몰라도 모두 클래식을 하는 사람들일 것이 분명했다.
당연히 이주성과 마찬가지로 클래식이 대중가요보다 더 우위에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었다.
그런 그들이 대중음악을 하는 성현의 행보에 관심을 갖고 있다니?
놀라울 정도로 신기한 일이었다.
“그래. 더 넥스트 슈퍼스타에서 한 공연도 전부 챙겨보고 너 팬도 많아. 이번에 본선 8라운드 1등한 것도 축하한다고 난리더라니까. 걱정마라. 스포 될만한 말은 일절 안 하니까.”
이주성은 이왕 말이 나온 김에 아들 자랑에 흠뻑 빠진 자신의 진면모를 드러냈다.
그 모습이 낯설었지만, 기분이 나쁘지는 않았다.
그건 그렇고, 이렇게 들어도 믿기지가 않는 내용이긴 했다.
클래식 권위자들이 대중음악 경합에 관심을 갖고 있다니.
성현이 이주성 말에 못 믿겠단 표정을 지었다.
그 모습을 본 이주성이 손수 자신의 단톡방을 열어서 보여주었다.
“못 믿겠냐? 이거 좀 봐라.”
-김교수: 이대표! 성현이가 1등 했어! 축하한다 전해 주고 언제 한번 인사나 좀 시켜줘.
-박교수: 성현이 잘 지내나? 언제 한번 밥이나 먹자고. 우리 딸이 성현이 나이랑 비슷한데.....
-차대표: 이대표, 아들내미가 이렇게 재능이 많았어? 진작 좀 말해주지. 미리 싸인이라도......
.
.
.
성현은 끊임없이 이어지는 단톡방 내용을 보고 나서야 이주성 말을 믿을 수 있었다.
저도 모르게 놀란 성현은 숟가락까지 내려놓고 단톡방을 읽었다.
“......정말이네요.”
“그럼 애비가 거짓말 하겠어?”
이주성은 자랑스럽다는 듯 말하며 휴대폰을 집어넣었다.
성현은 아무리 생각해도 신기하고 얼떨떨했다.
마저 식사를 하는 이주성을 따라 숟가락을 집어 드는데, 한 가지 의문점이 더 들었다.
“근데 다음 라운드 미션이 앨범 작업인 건 다들 어떻게 아신 거예요?”
성현은 혹시 이것도 이주성이 말한 건가 싶어 물었다.
당연히 자신은 아버지에게 앨범 작업이 미션이라고 말을 했으니까.
그런데 성현의 질문에 이주성은 당연한 거 아니냐는 표정이 되었다.
“인터넷에 조금만 검색해도 나와. ‘더 넥스트 슈퍼스타’ 팬카페 들어가도 나오고.”
대수롭지 않은 이주성의 대답에 성현은 화들짝 놀랐다.
“팬카페요?”
놀란 성현이 흥미롭다는 듯 물었다.
이주성은 이번에도 조금 쑥스럽다는 듯 볼을 긁적였다.
머뭇거리던 그가 다시 휴대폰을 꺼내 들었다.
그리고는 휴대폰으로 한 카페를 검색해 보여주었다.
성현은 얼른 그걸 넘겨받아 확인했다.
[더 넥스트 슈퍼스타를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
진짜였다.
“있을 거라고 생각은 했는데, 직접 본 건 처음이네요.”
“가입자 수도 꽤 돼.”
이주성이 자기가 더 뿌듯한 어투로 말했다.
카페 가입자 수를 보여주는데 80만이 조금 넘어있었다.
한국 내 팬들만 친다 해도 꽤 되는 수였다.
성현의 입이 떡하니 벌어졌다.
이주성은 이 정도면 충분히 자랑했다고 생각했는지 휴대폰을 받아들었다.
성현은 아직도 놀란 채로 기계적으로 숟가락을 움직였다.
식사를 계속하던 이주성이 덧붙이듯 말했다.
“앨범 작업 들어가면 대한민국 1티어 프로듀서들이 같이 작업하고 싶다고 여기저기서 연락 올 거야. 그중에 아버지 지인들도 있을 거고.”
성현은 이주성의 뒷말을 가만히 기다렸다.
지인이 연락할 수도 있다.
그 말을 미리 하는 것이 무슨 의중인 건가 싶었기 때문.
‘그치만 아버지라면.’
물론 성현은 이주성의 성격을 누구보다 잘 알았기 때문에 대답이 어느 정도 예상이 됐다.
“봐주지 마.”
단호한 이주성의 대답.
“아버지 지인이라고 눈치 볼 거 없이 꼼꼼하게 따져서 정말 네가 원하는 사람들이랑 작업해.”
그 말에 성현은 역시나 하는 마음에 피식 웃었다.
성현의 예상대로였다.
‘그럼 그렇지.’
아버지가 어떤 사람인데.
성현은 아버지의 성격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옛날부터 이런 지점에 있어서는 칼 같은 사람이었다.
얼마나 그랬는지, 어린 성현의 눈에는 귀신으로 보일 정도였으니까.
이런 아버지의 성격에 어릴 적에 울기도 많이 울었다.
“앨범 작업 들어가면 종종 상황 알려드릴게요. 아버지 지인분들도 궁금해하실 텐데.”
성현은 이주성이 기다리고 있을 말을 건넸다.
든든한 아들의 말에 이주성은 알겠다며 활짝 웃었다.
두 사람은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 식사를 계속했다.
***
식사를 마친 성현이 방으로 돌아왔다.
노곤한 기분에 침대에 잠시 눕는데, 주최 측에서 알람이 도착했다.
[본선 9라운드 팀 매칭이 완료됐습니다.]
이성현 – 천소울
임하나 – 존 메이슨
메튜 – 레베카 슈가
알랭 롱스달 – 루아 블랑코
본선 9라운드의 모든 팀이 확정된 것이다.
임하나의 팀은 원래 알고 있었다.
그리고, 다른 팀들 역시 성현이 예상했던 그대로였다.
‘예상대로 됐네.’
띠링-
그때 알람이 한 번 더 울렸다.
[팀 매칭 완료. 본선 9라운드 지금부터 시작합니다.]
‘이제부터인 건가.’
앨범 작업에 본격적으로 들어갈 시간이 찾아왔다.
6개월. 그 안에 천소울과 최고의 앨범을 만들어야 했다.
‘일단 곡을 먼저......’
성현이 앨범 작업과 관련한 계획을 떠올리는데,
띠링-
다시 알람이 울렸다.
뭐지?
성현은 또 다른 공지가 있나 싶어 휴대폰을 확인했다.
거기에는 임하나로부터 문자가 한 통 와있었다.
문자를 읽은 성현의 눈이 휘둥그레 커졌다.
-임하나: 저 4일 후에 영국으로 떠나게 됐어요.
***
임하나가 단체 메시지방에 소식을 전한 날 저녁.
이탈리안 레스토랑에 성현과 임하나를 비롯해 성탄 엔터 멤버들이 모두 모였다.
인원이 꽤 되었다.
성현은 임하나의 문자를 보고 그녀에게 연락했다.
멤버들을 모두 모아서 저녁이나 하자는 성현의 말에 임하나는 자신이 초대하고 싶다고 의사를 밝혔다.
성현은 곧바로 아버지 지인 찬스를 활용해 그날 저녁 아담한 레스토랑의 한쪽을 전세냈다.
한국에서는 이리저리 얼굴이 많이 알려진 멤버들을 배려하기 위해서였다.
“다들 오늘 와줘서 너무 고마워요. 떠나기 전에 마지막으로 여러분들한테 꼭 제대로 된 저녁 식사 꼭 대접하고 싶었거든요.”
와인잔을 들고 임하나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저녁 초대 부탁에 곧장 달려와 준 멤버들에게 고마움을 표현했다.
“여러분들이 있었기 때문에 오늘 이 자리까지 올 수 있었고 항상 고맙게 생각하고 있어요. 힘들다고 징징댈 때마다 받아주고 할 수 있다고 응원해줘서 너무 고맙고 영국가서도 힘들다고 징징댈 거니까 각오하세요.”
그녀의 이야기를 들은 멤버들이 피식거리며 웃었다.
성격이 그대로 묻어나오는 그녀의 말.
임하나는 이야기를 마무리 짓고 잔을 올리며 외쳤다.
“성탄 뮤직을 위하여!”
“위하여!”
임하나 말에 성현을 비롯한 멤버들 모두 잔을 올려 건배사를 외쳤다.
“언니 영국 생활은 어때요? 거기 비 엄청 자주 와서 우울하다던데.”
주선아가 와인 대신 에이드를 마시며 물었다.
한창 임하나가 영국으로 가서 아쉽다는 이야기를 하다가 이제 다들 기대감에 찬 눈으로 임하나를 보고 있었다.
임하나는 잠시 기억을 더듬으며 말했다.
“음...... 버스킹 때문에 3주 정도 있었는데 난 괜찮았어. 나름 운치도 있고.”
“부럽다. 저도 해외 나가서 음악 해보고 싶어요.”
“해외로 콘서트 가면 되지.”
“콘서트...... 너무 먼 얘기 같아요.”
곧 데뷔를 앞두고 있는 주선아와 걸그룹 멤버들이 한숨을 내쉬었다.
한국도 아닌 해외에서 콘서트를 연다는 건 아직 상상이 안 가는 일이었다.
“데뷔한다는 게 실감이 안 나긴 하지? 나도 실감 안 나. 내가 6개월 뒤에 앨범 낼 거라고 상상이나 했겠어?”
그 모습을 보고 임하나도 감회가 새롭다며 말을 보탰다.
“근데 언니, 중간에 한국 들어오거나 그러진 않아요? 정말 6개월 내내 영국에만 있어요?”
“음...... 아마 그러지 않을까?”
“걱정 안 돼요? 전 혼자 해외 나가면 진짜 외로울 거 같아요.”
서지현이 걱정스러운 어조로 임하나를 걱정했다.
그 말에 임하나가 달싹 입을 떼려던 순간,
“걱정 안 될 거 같은데.”
조용히 와인을 마시던 릴리가 껴들며 묘한 미소를 지었다.
무슨 말을 하려고 그러나 불안한 눈으로 릴리를 보는 임하나.
이어지는 그녀의 말에 화들짝 놀랄 수밖에 없었다.
“하나씨 요새 연애하잖아.”
“네?!”
임하나는 와인잔을 놓칠 뻔했다.
저, 저게 도대체 무슨 소리야.
릴리는 그런 임하나의 반응을 살피며 은근하게 물었다.
“연애 아니면 최소한 썸은 타는 거 같은데.”
“무슨 소리예요. 제가 누구랑 썸을 탄다고.”
임하나는 황당해서 와인을 벌컬벌컥 물처럼 들이켰다.
그러는 동안, 주선아와 릴리는 서로 시선을 교환했다.
“언니. 좋아하는 사람 생겼죠?”
주선아가 미끼를 던지며 물었다.
그 말에 와인을 벌컥 들이키던 임하나는 와인이 목에 걸려 콜록거리고 말았다.
그 모습을 본 멤버들은 다들 짙은 미소를 지었다.
“좋아하는 사람이 어딨다, 그래 내가!”
“아님 말구요. 농담인데 뭘 그렇게 놀래요.”
주선아와 릴리는 눈빛을 교환하며 재밌다는 듯 웃었다.
서지현은 이내 두 사람의 의중을 파악하고 피식 웃더니 팔을 걷어붙였다.
오늘이야말로 이 이야기의 행방을 알아야겠다.
“있는데 언니가 모르는 건 아니구요?”
“......그건 또 뭔 말이야?”
어디서 많이 들어본 말들이었다.
가령 LA의 제이지의 방에서 비욘세가 한 말이라든가......
“그냥 그런 거 있잖아요. 맨날 붙어있어서 몰랐는데 자기도 모르게 마음이 생겼다거나.”
서지현은 누구인지는 말도 안 하고 의뭉스럽게 말을 흐렸다.
그런데 빌런은 따로 있었다.
“뭐? 임하나씨가 천소울이랑 이성현씨 둘 중 하나를 좋아한다고?!”
그때 옆에서 여자들의 대화를 유심히 듣던 서자명.
오바를 하며 큰소리로 외쳤다.
그 말에 멀찍이 떨어져 앉아있던 성현과 천소울이 동시에 고개를 돌렸다.
두 사람이 임하나 쪽을 쳐다보고, 레스토랑은 삽시간에 조용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