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 같은 프로듀서는 없었다-256화 (256/273)

256화

짝짝짝-

대기실 문이 열림과 동시에 박수 소리가 들려왔다.

떠들던 사람들이 모두 일순 조용해졌다.

대기실 입구 쪽을 보자, 리키 헨더슨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TOP 4. 믿기지가 않군요. 정말 얼마 안 남았어요.”

“…….”

“…….”

그 말에 대기실에 순간 팽팽한 긴장감이 감돌았다.

리키가 얼마 안 남았다고 하는 것.

그 말에 모두가 바로 알아들을 수 있었다.

바로 ‘더 넥스트 슈퍼스타’의 우승이라는 걸.

“살아남은 8명의 참가자 여러분, 축하드립니다.”

리키는 테이블에 앉아있는 참가자들 쪽으로 다가왔다.

그는 한 명 한 명과 악수를 나누며 축하 인사를 전했다.

성현의 차례, 리키는 의뭉스러운 눈으로 성현을 보더니 씨익 웃었다.

“7억 명을 넘기다니. 이건 정말 제작진도 기대하지 못했던 일입니다.”

성현의 테이블에서 멈춰선 리키.

그는 성현과 한 악수를 풀지 않은 채 말을 이어 갔다.

“정말 자랑스럽습니다. 시청자 수도 최고점을 찍었어요.”

리키는 성현에게 말을 하며 주변 참가자들을 힐끗 보았다.

그는 몸을 숙여 성현에게만 들리게 귓속말했다.

“이미 우린 어느 정도 우승자를 예측하고 있습니다. 프로듀서 중 우승은 이성현씨, 당신이 될 가능성이 높겠죠. 얼마 안 남았습니다. 최선을 다해주세요.”

리키는 그 말을 끝으로 성현의 어깨를 두들긴 후, 무대 앞으로 갔다.

“축하 인사는 이쯤 하기로 하고, 얼마 안 남은 여정의 끝을 봐야겠죠? 본선 9라운드 미션을 발표하겠습니다.”

리키가 들고 있던 리모컨 버튼을 누르자 무대 위 화면에 미션 룰이 떠올랐다.

[ 본선 9라운드 : 데뷔 정규 앨범 발매 ]

- 내용 : TOP 4에 선정된 멤버들은 가수/프로듀서 참가자들로 나뉘어 각각 한 명씩 팀을 이룹니다. 그렇게 총 4팀으로 나뉘어 각각 데뷔 정규 앨범 발매 미션을 진행하게 됩니다.

조건 : 1) 꼭, 가수/프로듀서 참가자가 한팀을 이루게 됩니다.

2) 한 팀을 이루는 데는 일주일의 시간이 주어집니다.

3) 제한 기간 내에 데뷔 정규 앨범을 완성하세요.

4) 정규 앨범에는 총 10개의 곡 구성으로 고정됩니다.

5) 외부 작곡가의 곡을 앨범에 싣는 것은 가능합니다.

6) 단, 2개 이상의 곡은 무조건 프로듀서 참가자의 것이어야 합니다.

7) 기간 내에 앨범을 발표하지 못하면, 그 팀은 탈락하게 됩니다.

제한 기간 : 5월 1일.

데뷔 무대 : 6월 1일.

미션 내용을 읽어 내려가느라 대기실이 조용해졌다.

그러나 이 정적은 오래가지 못했다.

“앨범을 만들라는 건...... 우리 진짜 데뷔하는 거잖아!”

탄성과 함께 튀어나온 레베카의 반응부터.

“6개월이면 조금 빡빡한 거 아닌가.”

“이번 미션도 쉽지 않을 거란 생각은 했는데 정말 상상을 초월하는군.”

다른 참가자들의 염려가 담긴 반응까지 가지각색이었다.

“이것도 팀 작업인 건가?”

미션을 확인한 참가자들은 모두 제각각의 반응을 보였다.

워낙 상상 이상의 미션을 줘왔기에 다들 각오는 하고 있었다.

이번에도 역시 평범한 미션을 줄 거라는 기대는 애초에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앨범을 만들어 데뷔하라는 건 상상하지 못했던 일이었다.

‘더 넥스트 슈퍼스타가 아니면 불가능한 미션이겠지.’

지금까지 그 어떤 오디션에서도 앨범 작업을 미션으로 내건 적은 없었다.

그만큼 생각지도 못한 미션.

참가자들의 동요는 쉽게 사그라들지 않았다.

성현은 이미 게임에서 겪었기에 알고 있었다.

이번 라운드가 앨범 제작 미션이라는 것을.

공지를 확인한 성현은 심장이 거세게 뛰는 걸 느꼈다.

‘드디어 함께 작업할 수 있다니.’

기다리고 기다리던 순간이 찾아왔다.

성현이 ‘더 넥스트 슈퍼스타’에 참가한 뒤로 가장 원하던 그 미션.

다름 아닌 천소울과의 작업이었다.

처음 천소울이 더 넥스트 슈퍼스타에 참가했다는 걸 알았던 그 순간부터 기다려왔던 일.

성현은 그와 함께 작업 할 생각뿐이었다.

‘한 가지 걸리는 게 있다면......’

성현은 자신도 모르게 임하나를 쳐다봤다.

항상 꿈꿔왔던 일이기에 천소울과 함께 하고 싶은 마음은 변하지 않았다.

그건 맞지만, 그렇게 되면 임하나가 혼자 남게 된다.

성현은 마음이 무거워졌다.

‘이걸 어쩐다......’

성현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었다.

공지를 보던 임하나가 먼저 말을 꺼냈다.

“앨범 작업이라니. 와, 진짜 우리 이제 가수 데뷔하는 거네요?”

일부러 쾌활하게 웃는 임하나의 모습.

임하나가 웃으며 말하지만, 그 누구도 임하나를 따라 웃지 못했다.

두 명의 가수와 한 명의 프로듀서.

누군가는 다른 프로듀서와 작업을 해야 한다는 것이 자명했기 때문이다.

“다들 안 설레요? 나만 설레는 건가? 우리 진짜 데뷔한다니까?!”

임하나는 분위기를 띄우려고 더 크게 말했다.

“6개월이면 시간이 긴 건 아니네요. 첫 데뷔 앨범인 만큼 완성도 있는 앨범 내고 싶었는데.”

천소울이 마지못해 그렇게 중얼거렸다.

그도 알고 있었다.

성현이 자신에게 함께 하자고 제안한다면, 임하나만이 남게 된다는 것을.

“만들면 되죠. 제가 그렇게 해줄게요.”

성현은 자신이 말해놓고 아차 싶어서 임하나를 보고 말았다.

세 사람 가운데 침묵이 내려앉았다.

“그만 일어날까요? 공지도 다 끝난 것 같은데.”

임하나가 어색하게 웃으며 일어났다.

천소울과 성현도 그녀를 따라 자리를 정리했다.

“배고프다! 우리 밥 먹고 가요!”

임하나는 조금 처져 있는 두 사람의 팔짱을 끼며 대기실을 나갔다.

***

다음 날, 성현은 성탄 엔터로 향했다.

택시에서 내려 회사 건물로 들어가며, 어젯밤, 임하나로부터 온 메시지를 다시금 확인했다.

-임하나: 내일 성현씨 회사에서 잠깐 얘기 좀 할래요? 할 말이 있어서요.

문자를 읽은 성현은 작게 한숨을 쉬며 휴대폰을 다시 집어넣었다.

‘이번 미션과 관련된 얘기겠지.’

본선 9라운드는 팀 대결.

TOP4에 오른 가수와 프로듀서가 각각 팀을 이뤄야 했다.

그 팀 그대로 미션을 진행하기에, 임하나 역시 이를 신경 쓰지 않고 있을 리는 없었다.

성현은 심란한 마음을 추스르며 건물로 들어갔다.

성현이 회사 회의실로 향하는데, 맞은 편에서 걸어오는 천소울과 마주쳤다.

“아무래도 그 얘기겠죠?”

성현의 물음에 천소울 역시 굳은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두 사람은 함께 회의실로 들어갔다.

“왔어요?”

성현과 천소울이 회의실로 들어가니 임하나의 모습이 보였다.

미리 회의실에 도착해 의자에 앉아 빙글빙글 돌며 장난을 치고 있는 임하나.

“뭐야. 설마 둘이 같이 왔어요?”

임하나는 성현과 천소울을 장난스럽게 흘기며 말했다.

“아닙니다. 우연히 앞에서 만난 겁니다.”

“역시 두 사람은 운명인 거야.”

천소울의 말에도 임하나는 상관없다는 듯이 웃으며 말했다.

피식 웃는 임하나의 모습에 천소울과 성현은 그게 무슨 말인가 싶었다.

두 사람은 주춤거리며 임하나의 맞은편 의자에 앉았다.

“난 삼각관계 만들 생각 없어요.”

갑작스러운 임하나의 발언에 성현이 물었다.

“아까부터 그게 무슨 말이에요?”

“두 사람 사이에 낄 생각 없다구요~”

임하나는 장난스럽게 말하며 휴대폰을 꺼내 두 사람에게 보여줬다.

“제안서?”

임하나가 보여준 건 다름 아닌 영국 프로듀서 참가자 존 메이슨에게 온 제안서였다.

이번 본선 9라운드 미션을 함께 하자는 정식 계약서.

그것을 확인한 성현이 심란하다는 듯이 물었다.

“어떻게 할 생각이에요?”

“어쩌긴요. 영국 가야죠.”

“…….”

“…….”

임하나는 별일 아니라는 듯 다시 휴대폰을 가방에 넣었다.

툭 던지듯 나온 그녀의 영국행 발언에 성현과 천소울은 말이 없어졌다.

“그러니까 나한테 미안해할 거 없이 편하게 작업하세요. 이 말 해주려고 부른 거예요.”

성현과 천소울은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역시 알고 있었구나.’

임하나는 성현이 얼마나 천소울과 작업하길 기대했는지 알고 있었다.

자신 때문에 두 사람이 불편한 분위기가 만들어지는 걸 원치 않았던 것이다.

임하나가 두 사람에게 해줄 수 있는 배려였다.

“고마워요.”

성현은 당장 임하나에게 해줄 수 있는 말은 그것뿐이었다.

여기서 너무 고마워하는 것도 임하나에 대한 배려가 아닌 것 같았다.

가라앉은 성현의 어투에 임하나가 피식 웃었다.

“고마울 거 없어요. 존이면 성현씨 다음으로 실력 좋잖아요. 이번 투표에서도 2등 했고.”

임하나는 전혀 아쉬울 것 없다는 듯 말했다.

존 메이슨.

그는 본선 8라운드에서 성현 다음으로 가장 많은 득표수를 받은 참가자였다.

성현보다는 못하지만, 2등이라면 5억표를 얻은 것이다.

그 역시 만만치 않은 실력자라는 것은 확실했다.

“저 이번에 정말 제대로 준비할 거니까 두 사람 다 긴장해요. 이번만큼은 제가 꼭 1등하고 말거라구요.”

임하나 말에 성현은 문득 떠오르는 장면이 있었다.

저번 대기실에서 임하나가 천소울에게 져서 빠르게 대기실을 나가던 모습.

‘알고는 있었지만 하나씨는 정말 승부욕이 강하구나.’

그리고 성현이라고 대충할 생각은 없었다.

임하나의 마음을 충분히 이해한 성현이 웃으면서 임하나에게 다짐했다.

“저희도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저도 질 생각은 없으니까요.”

“좋네요. 정말 정말 최선을 다해야 해요.”

“네. 하나씨도 정말 정말 최선을 다해주세요.”

임하나는 성현에게 다짐을 받아내고 나서야 의자에서 일어났다.

그녀의 표정은 정말 후련해 보였다.

“그럼 저는 가볼게요.”

재빠르게 자리를 털고 일어나는 그녀의 보습에 당황한 것은 천소울이었다.

“그냥 가게요? 밥이라도 먹고,”

“약속 있어서요.”

지금까지 조용히 있던 천소울이 아쉬운 마음이 들어 말을 꺼냈다.

임하나는 단칼에 거절했다.

회전의자에서 일어나 가방을 챙기는 임하나.

그때, 천소울의 눈에 임하나의 짧은 치마가 눈에 띄었다.

“그 옷을 입고 누굴 만나러 가는 겁니까?”

천소울은 저도 모르게 반사적으로 그렇게 물었다.

“그 옷이 뭔데요?”

임하나의 당찬 대꾸에 천소울은 입을 다물었다.

정말 의아했다.

지금까지 천소울이 저런 말을 한 적이 없었으니까.

임하나의 무대의상도 숱하게 본 천소울이 아닌가.

정말 뜬금없는 참견이었다.

천소울은 자기도 모르게 임하나 다리로 시선이 향하고, 조금 민망해져 시선을 돌렸다.

자신이 생각해도 오늘 스스로의 모습은 조금 이상했다.

“......아닙니다.”

천소울은 아니라며 고개를 저었다.

잠시 그런 천소울을 바라보던 임하나는 한 손을 척 들었다.

“뭐야. 저 진짜 가요. 두 분이서 오붓한 시간 보내세요.”

임하나는 두 사람에게 담백하게 인사를 하고 떠났다.

천소울은 그녀가 떠난 자리를 보며 심란한 표정을 지었다.

무언가 심정이 복잡했다.

하지만 그게 무엇 때문인지 짐작되는 바가 없었다.

성현은 반대로 조금 들뜬 표정이었다.

‘팀도 결정됐겠다, 이제 본격적인 앨범 작업만 남았네.’

성현은 오로지 음악할 생각만이 가득했다.

임하나의 배려로 드디어 꿈에서만 그리던 천소울과의 작업이 성사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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