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3화
“근데 애덤, 우리 소울이 무대는 별 기대가 안 됐던 모양이지?”
모건이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듯이 살벌하게 스테이크를 썰며 말했다.
그의 손에 들린 번쩍이는 나이프를 본 애덤이 고개를 저었다.
“뭘 또 그렇게 살벌하고 말씀하고 그러세요.”
애덤은 모건의 눈빛에 쫄아서 어색하게 웃었다.
그럼에도 모건은 표정을 풀지 않았다.
두 사람의 실랑이를 나머지 톱스타들이 흥미진진하게 지켜보고 있었다.
“우리 소울이 무대는 자네 성에 차지 못 했나 봐?”
어디 한 번 대답해보라는 듯한 모건의 성화에 애덤이 재빨리 입을 열었다.
“천소울씨 무대야 워낙 좋았는데 굳이 또 말할 필요가 있나요. 이번에 봤던 무대 중엔 제일 좋았어요.”
애덤은 모건에게 진심으로 느껴질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 말했다.
모건은 그 말을 듣고 어느 정도 심기가 누그러졌는지 조용히 와인을 들이켰다.
“진심이야?”
그리고 그때 가만히 듣고 있던 비욘세가 대화에 껴들었다.
모건 가고 비욘세의 등판이었다.
“우리 하나 무대는?”
“......하아.”
애덤은 비욘세까지 끼어들자 피곤하다는 듯 한숨을 내뱉었다.
산 넘어 산이었다.
애초에 이곳에서 민감한 사안을 입에 올린 것부터가 문제일 수도 있었다.
그 반응에 눈썹이 올라간 비욘세.
자기는 진심이라며 말을 이었다.
“농담 아니야. 난 우리 남편이 프로듀싱 해서가 아니라 진심으로 하나씨 무대가 제일 좋았어요. 난 하나가 언젠가 나를 뛰어넘을 수 있는 디바가 될 거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구요.”
비욘세 말에 다른 가수들 조금 놀라서 다시 한번만 더 말해달라고 부탁했다.
정말 저 말이 비욘세의 입에서 나온 게 맞다면 이건 빅뉴스였다.
비욘세.
자신에 대한 프라이드만큼은 누구보다 강한 가수였다.
그런 그녀가 자신의 입으로 자신을 뛰어넘는 가수가 될 수 있다 말하니 믿기지가 않았던 것.
“누가 보면 당신이 프로듀싱 한 줄 알겠어.”
제이지는 못 말린다는 투로 말했다.
어느덧 비욘세가 자신보다 더 하나에게 큰 애정을 보이고 있었다.
제이지가 재밌다는 듯 말하자 사람들 모두 크게 웃었다.
그런데 모건의 시선은 아직도 애덤 리바인을 향해 있었다.
애덤은 웃다가 그 모습에 등줄기로 식은땀이 흐르는 것을 느꼈다.
“그래서 애덤.”
모건이 진지하게 애덤을 불렀다.
“가장 기대되는 참가자가 누군데?”
모건은 애덤에게 끝까지 대답을 들을 심산이었다.
결국 애덤은 졌다는 듯 양손을 들어 보였다.
“이성현 참가자요.”
애덤 리바인의 대답에 모건은 가늘게 떴던 눈을 바로 풀었다.
그에 더해 별일 아니라는 듯 다시 고기를 썰기까지 했다.
그 반응에 허탈한 것은 오히려 애덤이었다.
모건의 살벌한 기세에 테이블에서 멀찌감치 떨어져 있던 애덤이 슬금슬금 제자리를 찾았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죽일 것처럼 묻더니 반응이 왜 그래요?”
애덤은 모건이 예상과 전혀 다른 반응을 보이자 황당해서 물었다.
모건은 어깨를 으쓱하며 와인을 마셨다.
“그 친구라면 인정. 재능이 엄청난 친구야.”
평소 독설가로도 유명한 모건은 칭찬 역시 박했다.
땡그랑.
한 명은 저도 모르게 나이프를 떨어뜨리고 말았다.
모건의 놀라운 반응에 모두가 행동을 멈췄다.
박하기로는 미국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운 그였다.
그런 그가 재능이 있다고 선뜻 인정하자, 밥을 먹던 톱스타들은 모두 놀라 모건을 쳐다봤다.
“모건, 방금 뭐라 했어요?”
켈리는 믿을 수 없어 되묻기까지 했다.
“가수가 벌써 청력이 떨어지면 어쩌나. 코앞에서 말했는데 그걸 못 들어?”
모건은 대수롭지 않게 농담까지 건네며 켈리에게 말했다.
그래도 켈리는 진지했다.
“못 들은 게 아니라 잘못 들은 건가 싶어서 묻는 거예요. 모건 당신이 누굴 쉽게 칭찬하는 사람은 아니잖아요.”
켈리의 말에 모건이 켈리를 쏘아봤다.
그러다 켈리와 마찬가지로 호기심 가득한 표정으로 자신을 보는 다른 가수들을 발견했다.
가수들은 모건과 눈이 마주치자 딴청을 피우며 시선을 돌렸다.
모건은 한숨을 쉬며 입을 닦았다.
그래, 그들의 반응이 영 이해가 가지 않는 것은 아니었다.
“몇 달 전이었나. 심사위원으로 한국에 갔다가 그 친구를 처음 만났지, 아마.”
모건은 시크릿 스테이지에서 처음 봤던 성현을 떠올렸다.
급하게 교체된 참가자라고 전해들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중도하차한 천소울을 대신해 참여했었던 것 같다.
성현의 첫인상은 별거 없었다.
특별할 것 없을 거 같았던 동양인 남자.
프로듀서보다는 가수를 했어야 할 것 같은 준수한 외모.
그 외양을 보고서는 처음에는 겉멋이 든 프로듀서일 뿐이라 생각했다.
나중에 가서는 모건을 가장 놀라게 한 참가자였지만.
모건은 아직도 성현이 자신에게 했던 말을 기억하고 있었다.
“문화엔 옳고 그름이 없고 다름만 있으니까요. 달라서 낯설지라도 그것이 좋은 음악, 진심을 담은 음악이라면 반드시 세계에서도 통할 거라 믿습니다.”
확신에 가득 차 있었던 성현의 대답.
그 말에 모건은 성현의 말에 동의하고 안 하고를 떠나 그 굳은 신념과 믿음이 마음에 들었다.
첫인상을 완전히 뒤집어 버린 강렬한 인상이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모건은 실제로 성현의 곡을 오디션이란 생각을 잊고 즐겼으니까.
모건을 즐기게 만든 경연곡은 성현이 프로듀싱한 그 곡이 유일했다.
‘보통 놈이 아닌 건 확실하지. 뭘 해도 크게 할 녀석이야.’
모건은 문득 성현의 미래가 궁금해졌다.
그가 앞으로 얼마나 더 높이 올라갈 수 있을지.
그리고 과연 그 끝은 어디일지.
“만났는데 뭐요? 그 후를 얘기해줘야죠.”
아련한 추억에 잠겨 있던 모건을 깨운 것은 퍼렐이었다.
퍼렐은 모건이 말이 꺼낸 뒤에 생각에 잠기고 혼자 웃음을 짓고 있자, 답답함에 따지듯 물었다.
“장담하는데 앞으로 삼 년 안에 대박 칠 거야.”
모건은 길게 말하지 않았다.
그의 호언장담에 켈 리가 웃으며 물었다.
“대박친다는 게 무슨 뜻인데요?”
모건은 별일 아니라는 듯이 툭 내뱉었다.
“최소 그래미 메인 상?”
모건의 말에 밥을 먹던 가수들 모두 잠시 일시 정지가 된 듯 말을 멈췄다.
그래미 메인상은 보수적이기로 유명했다.
그리고 지금 룸에 모인 것은 그 사실을 몸소 겪었기에 제일 잘 아는 톱스타들이었다.
그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BTG의 노래가 제아무리 뛰어나도 그들이 메인 상을 받지 못한 가장 큰 걸림돌은 바로 인종이었다.
그런데 같은 아시아인인 성현이 그래미 메인 상을 탈 거라니.
당장 현실적인 걸림돌이 너무나 명확해 보였기 때문이다.
톱스타들은 모건의 벼락같은 말에 한동안 침묵을 지켰다.
그러면서, 모건으로 하여금 이런 말을 뱉게 한 성현이 도대체 어떤 사람일까 하는 궁금증은 더 커져만 갔다.
“뭐, 그럴 수도 있죠. 우리 하나는 이 년 안에 그래미 갈 거니까.”
먼저 침묵을 깬 건 비욘세였다.
비욘세 말에 제이지는 포기했다는 듯 절레절레 고개를 저으며 웃었다.
그에 모건은 질 수 없다는 듯 맞받아쳤다.
“소울인 일 년 안에 갈 거야.”
그리고 그때 이 모든 걸 듣고 있던 애덤이 마지막으로 껴들었다.
“그럼 이성현씨는 육 개월 안에 그래미 메인 상 타겠네요.”
애덤의 말에 가수들 모두 엄청나게 재밌는 농담이라도 들은 듯 웃으며 화제를 돌렸다.
그들 역시 성현의 실력을 잘 알았지만, 1년도 아니고 6개월?
말도 안 되는 소리였다.
하지만 말을 뱉은 애덤의 표정만은 진지했다.
그는 마음속으로 모건을 저 정도로 뒤흔들 사람이라면, 영 가능성이 없는 이야기는 아니라고 생각했다.
***
시간은 빠르게 지나 두 번째 프로듀서 공연 날이 밝았다.
이번 공연 역시 많은 팬들이 몰렸다.
‘더 넥스트 슈퍼스타’ 참가자들을 응원하기 위해 상암 월드컵 경기장을 방문한 관객은 8만 명이라는 기록을 세웠다.
입장이 끝나고, 암전되었던 무대가 서서히 밝아지면서 저번과 같은 얼굴이 등장했다.
“반갑습니다. 저번 주에 뵙고 오늘 또 뵙는 분들도 계실 거고 오늘 처음 뵙는 분들도 계실 것 같습니다. 더 넥스트 슈퍼스타 본선 8라운드 진행을 맡게 된 MC 유재식입니다.”
유재식은 저번 주에 이어 이번 무대 역시 진행을 맡았다.
국민 MC의 등장으로 공연 초반부터 분위기는 뜨겁게 달아올랐다.
그의 등장과 함께 공연의 시작을 알리는 VCR이 대형 스크린에 송출되었다.
‘더 넥스트 슈퍼스타’의 로고가 무대를 환히 밝혔다.
공연장에 설치된 화면에 ‘더 넥스트 슈퍼스타’ 참가자들의 지난 무대가 흘러갔다.
뒤이어 협찬 회사, 소속사 등의 로고들로 편집된 홍보영상이 나왔다.
“그럼 본선 8라운드 룰 설명 이어 하겠습니다.”
더 넥스트 슈퍼스타와 관련된 영상이 종료되자 관객들은 기대에 찬 환호를 질렀다.
유재식은 이어서 본선 8라운드 룰을 다시 한번 설명했다.
투표 방식을 비롯해 룰은 저번주 무대와 똑같았다.
“여러분들도 이미 알고 오셨겠지만, 이번 무대엔 정말 어마무시한 라인업이 준비가 돼 있습니다.”
유재식의 의미심장한 말에 객석이 들썩였다.
다른 점이라면 무대의 주인공들이었다.
지난 공연은 가수 참가자들이었지만, 이번 무대는 프로듀서들의 무대.
그만큼 사실상 무대에 오르는 주인공이 현역 가수들, 그것도 글로벌 톱스타들이란 점이었다.
많은 이들이 이 부분이 주목했다.
혹자는 세상에서 가장 비싼 콘서트를 무료로 볼 수 있는 기회라고 칭하기도 했다.
때문에 저번 공연보다 훨씬 많은 인원이 이번 관객 추첨에 몰렸다.
“그럼 오늘 공연을 함께할 라인업 먼저 살펴보겠습니다!”
유재식 말과 동시에 커다란 화면에 가수들의 사진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사진이 하나둘 올라올수록 객석의 환호성 역시 점차 커졌다.
BTG
애덤 리바인.
해리 스타일스.
숀 메이어.
헬레나 고메즈.
.
.
.
현시대를 주름잡는 슈퍼스타들이 한국에서, 그것도 한 무대에서 공연을 펼치는 것이다.
“첫 무대는 줄리어드 음대 작곡과를 역대 최연소로 졸업한 미국의 레베카 슈가와 마룬6의 보컬 애덤 리바인이 준비했습니다. 박수로 맞이해주세요!”
본선 8라운드, 프로듀서 첫 번째 무대 시작을 알리는 유재식의 멘트.
유재식이 퇴장하고 무대는 다시 암전되었다.
잠시 후 핀 조명 하나가 밝혀지자, 객석에서 사람들의 환호 소리가 들렸다.
무대에 애덤 리바인이 올라온 것이다.
그를 알아본 관중들이 일제히 환호성을 내질렀다.
“I’m hurting, baby. l need your love.”
경쾌한 반주와 함께 애덤 리바인 특유의 가성으로 시작된 노래.
팬들은 모두 환호하며 공연을 즐겼다.
애덤은 숙련된 솜씨로 관중들의 호응을 이끌어 내며 무대를 진행해나갔다.
사람들은 콘서트에 온 것처럼 휴대폰을 꺼내 플래시를 켜서 다 같이 흔들었다.
객석 전체가 별이 뜬 밤하늘처럼 반짝였다.
애덤 리바인은 관중들의 호응에 보답이라도 하는 듯이 시원한 고성으로 답했다.
팬들은 너나 할 것 없이 그의 노래에 흠뻑 빠졌다.
경연장이 아니라 애덤 리바인의 콘서트장이 된 것 같았다.
본선 8라운드 마지막 공연의 오프닝으로 더할 나위 없이 완벽한 무대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