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 같은 프로듀서는 없었다-250화 (250/273)

250화

앨런 퍼스의 무대가 끝이 났다.

열정적인 무대에 객석에 있는 사람들 모두 박수를 보내며 환호했다.

앨런 퍼스 본인도 뜨거운 관객들의 호응에 만족했는지 환하게 웃으면서 무대에서 내려왔다.

“현장에 있는 열기를 전부 전해드리지 못하는 것이 아쉬울 정도로 정말 이곳 상암 월드컵 경기장의 열기가 너무나 뜨겁습니다.”

어느새 콘서트장 내부 공기는 습해져 있었다.

열기가 후끈거린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뜨거웠다.

유재식의 한 마디에 관중들은 더욱 열성적으로 환호했다.

무대에 띄워진 대형 스크린에 유재식이 놀란 표정을 짓는 모습이 잡혔다.

“아, 뜨거운 건 이곳 콘서트장뿐만이 아닌 것 같습니다. 방금 들어온 소식입니다. 현재 더 넥스트 슈퍼스타 본선 8라운드 실시간 투표수가 벌써 3억 건을 돌파했다고 합니다.”

3억 건.

지금 콘서트장에 와 있는 사람들은 물론.

너튜브 라이브에 들와서 무대를 지켜보고 있는 전 세계 사람들의 참여였다.

유재식은 진심으로 깜짝 놀란 표정이었다.

3억 건이라는 투표수에 객석에 있는 사람들 역시 상상을 초월하는 투표 단위에 놀라 입을 떡 벌렸다.

아직 전체 무대의 3분의 1이 끝났을 뿐이었다.

앞으로 얼마나 더 많은 사람들이 투표에 참여할지는 아무도 몰랐다.

“아직 남은 무대가 많으니 시청자 여러분 모두 끝까지 채널 고정해 주시고 실시간 투표 부탁드립니다. 이렇게 된 거 5억 명은 돌파해야죠? 안 그렇습니까?”

유재식 말에 여기저기서 네! 라는 소리가 들려왔다.

유재식은 그런 관중의 반응에 웃으며 큐카드를 들어 보였다.

“개인적으로는 이분이 등판하면 5억 명, 아니 6억 명은 그냥 돌파할 수 있을 거란 생각이 들어요. 누구일 것 같아요, 여러분?”

유재식의 말에 객석에 있는 사람들이 소란스러워졌다.

각자 자신들이 응원하는 참가자들의 이름을 불러댔던 것.

천소울! 메튜! 임하나!

여러 참가자들의 이름이 나왔다.

역시 한국에서 진행되는 공연다웠다.

관객에서 한국인 참가자들의 이름이 가장 많이 튀어나왔다.

“다음 무대를 꾸밀 참가자는 ‘더 넥스트 슈퍼스타’의 가장 뜨거운 감자, 한국의 대표 디바로 거듭나고 있는 임하나씨입니다! 박수로 맞이해주세요!”

유재식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객석은 난리가 났다.

많은 이들이 기다리던 그녀의 등장.

임하나를 외치는 사람들의 목소리로 경기장이 꽉 찼다.

임하나는 밝은 표정으로 두 손을 흔들며 등장했다.

한국인 참가자 임하나가 무대에 오르자 관객들은 더욱 뜨겁게 호응했다.

임하나의 웨이브를 준 머리가 바람에 흩날렸다.

짧은 드레스에 스탠딩 마이크를 잡고 등장한 임하나는 마치 비욘세의 모습을 방불케 했다.

임하나! 임하나! 임하나!

그녀의 등장에 사람들 모두가 임하나의 이름을 외쳤다.

공연장의 분위기는 더욱 고조되었다.

그녀의 뒤로 보이는 트럼과 피아노, 반주 세션이 라이브로 반주를 시작했다.

임하나가 스탠딩 마이크 앞에 서고 감정을 잡았다.

그녀가 고개를 들어 눈빛을 바꾸며 살짝 미소 지었다.

“어느 날부터 너의 미소가 눈에 아른거리고 아침에 일어나면 네 생각이 먼저 나.”

어쿠스틱한 반주에 맞춰 자연스러운 그루브를 타며 노래를 시작하는 임하나.

이를 지켜보고 있던 성현은 직감적으로 느꼈다.

‘뭐가 달라진 거지?’

성현은 유심히 임하나를 지켜봤다.

창법, 그루브한 음색, 자연스러운 바이브가 살아 있는 춤까지.

‘뭔진 모르겠지만 이전의 하나씨랑은 확실히 달라졌어. 표현력이며 표정이며 눈빛까지.’

성현은 단언할 수는 없었다.

자신이 직접 프로듀싱을 한 것이 아니기에.

다만, 어떻게 된 건지 알 수 없었지만, 임하나가 뭔가 달라졌다는 것은 확실한 듯싶었다.

“이런 게 사랑인가? 나는 지금 짝사랑 중인가 봐. you’re my soul.”

임하나는 누군가를 사랑하는 솔직한 마음을 곡으로 표현했다.

‘사랑을 테마로 한 적이 없어서 그런가?’

그러고보면 처음으로 듣는 임하나의 사랑 노래인 것 같았다.

한국에서 오디션을 진행할 때도 없었다.

사랑에 방점을 찍은 곡이.

그녀가 가진 파워풀한 보컬이 도입부부터 강렬하게 터졌다.

폭발적인 가창력에 객석 분위기는 더욱 뜨거워졌다.

임하나는 스탠드에서 마이크를 뽑아들었다.

자유롭게 움직이며 무대를 휘저었다.

그 몸짓 하나하나에 여유로운 그녀의 바이브가 묻어났다.

점점 피치를 올려가는 노래.

이미 그녀의 표정에서는 어떠한 긴장도 찾아볼 수 없었다.

“you’re my soul. 사람들이 물어봐. 뭐가 그렇게 좋아서 입이 귀에 걸려 있냐고.”

임하나는 you’re my soul 이란 가사를 반복했다.

파워풀한 보컬에 댄스까지 완벽하게 춰가며 무대를 휘어잡는 그녀의 모습.

이내 곡의 최고 하이라이트 부분에서 갑자기 노래가 멈췄다.

춤을 추다가 그대로 멈춰선 임하나는 그 자세 그대로 미동도 없었다.

객석은 동시에 조용해졌다.

커다란 심벌즈 소리와 함께, 갑자기 무대로 금색 드레스를 입은 여성이 올라왔다.

관객들 모두 큰 소리로 환호하기 시작했다.

비욘세! 비욘세!

비욘세, 그녀가 무대에 등장한 것이다.

“you’re my soul. I can feel the sun when you’re near.”

비욘세는 어마어마한 성량으로 라이브를 하며 무대 중앙으로 걸어왔다.

그러고는 임하나와 함께 눈을 맞추며 듀엣을 부르기 시작했다.

임하나와 비욘세는 서로 눈빛을 주고받으며 리듬에 맞춰 춤을 췄다.

서로의 특색이 살아 있는 똑같은 춤사위.

그 위에 임하나의 파워풀한 목소리가 얹어졌다.

“you’re my soul. 이젠 고백할래. 널 향한 내 마음. you’re my soul. 그리고 마침내 넌 내 사랑을 받아줄 거야.”

임하나는 손가락을 뻗어 누군가를 가리키듯 노래를 부르면서 미소를 보냈다.

카메라에 잡힌 그 모습에 객석에서는 더욱 환호성이 커졌다.

“우우우- baby it's you-”

코러스들이 화음을 넣어주며 노래는 더욱 클라이막스로 치달았다.

임하나와 비욘세는 서로 양보 없이 고음을 주고받으며 절정의 호흡을 보여주었다.

비욘세를 시작으로 애드립을 주고받은 두 사람.

같은 동작으로 정면을 바라보고 선 채 임하나가 마지막 소절을 내질렀다.

“you’re my soul. 이젠 고백할래. 널 향한 내 마음.”

그때 무대에 폭죽 터지며 마무리를 장식했다.

노래가 끝났을 때 객석에 있는 사람들은 모두 기립박수를 보내왔다.

임하나! 임하나! 임하나!

라이브 댓글창에도 임하나를 연호하는 한국말과 영어가 두서없이 올라왔다.

“감사합니다!”

임하나가 허리를 숙여 인사하고 무대에서 퇴장한 후에도.

박수는 한동안 끊이질 않았다.

***

무대에서 내려온 임하나는 반쯤 정신이 나간 듯했다.

아직도 자신이 제대로 무대를 끝낸 것이 맞는지 어안이 벙벙했다.

임하나는 자신의 앞에서 여유롭게 걸어가던 비욘세를 붙잡았다.

“저 잘했어요? 잘한 거 맞아요?”

“하나, 완벽했어. 완벽한 무대였어.”

무대에서 내려온 비욘세는 임하나를 꽉 안아줬다.

“그 사람이 이 노랠 듣고 꼭 답장을 해주면 좋겠다.”

비욘세의 말에 임하나는 말이 없어졌다.

절로 떠오르는 씁쓸한 미소.

그 눈에는 체념이 깃들어 있었다.

“모를 거예요, 아마. 제 마음.”

임하나가 시무룩해져서 말했다.

그러자 비욘세가 그녀의 얼굴을 두 손으로 잡고 자신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게 했다.

“누굴 좋아하는 감정은 절대로 절대로 슬퍼선 안 돼. 그건 신의 축복이고. 거절당한다 해도 결코 부끄러운 일이 아니야. 난 정말 네가 자랑스러워.”

비욘세가 진심을 다해 말했다.

그 말에 임하나는 조금 감동한 듯 눈물을 훔치며 고개를 푹 숙였다.

제이지의 작업실에서 자신을 붙들고 끊임없이 격려해주던 비욘세가 떠올랐다.

그때 비욘세가 자신을 채근하지 않았더라면, 자신의 감정을 마주 보지 못했을지도 몰랐다.

오늘 같은 무대도 꾸미지 못했을 것이고.

임하나는 그렁그렁한 눈으로 비욘세를 바라봤다.

정말, 한결같이 자신을 응원해준 사람.

“고마워요, 정말. 당신이 없었으면 절대 제 마음도 몰랐을 거고 이렇게 무대에서 고백할 생각은 꿈에도 못 했을 거예요.”

“고맙긴. 너의 첫사랑을 함께할 수 있어서 내가 영광인걸.”

비욘세는 다시 한번 임하나를 꼭 안아주고, 두 사람은 한참을 그렇게 서 있었다.

“그리고 앞으론 절대 어디 가서 기죽지 마. 디바는 항상 당당해야 해.”

비욘세는 엄하게 말을 한 뒤 당당한 걸음걸이로 앞장서 걸었다.

임하나는 그녀의 뒤를 쫓았다.

그녀의 뒷모습은 어느새 비욘세와 같은, 디바로서의 모습이었다.

***

한편, 대기실에서 지켜보던 멤버들.

임하나의 무대를 보고 놀라움을 숨기지 못했다.

그 이유 첫 번째, 당연하게도 비욘세가 등장한 것.

“진짜 꿈에도 몰랐어. 하나 언니 무대 올라갈 때까지만 해도 우리랑 같이 있었잖아.”

서지현은 얼떨떨하게 말했다.

임하나가 덜덜 떨면서 무대로 향할 때만 해도, 제이지와 함께 대기실에 앉아있었는데.

“그러니까. 분명 녹음할 때도 분명 하나씨 혼자 했던 걸로 들었는데.”

“근데 하나 누나 뭔가 달라진 거 같지 않아요?”

그리고 두 번째로 멤버들이 놀란 건 바로 하나의 변화였다.

“맞아요. 제가 하나씨를 잘 알진 못하는데 지금까지 했던 무대는 다 봐왔었거든요. 그런데 그 전에 무대랑은 확실히 달라요.”

요하의 말에 문희진이 자신만 느낀 것이 아니냐며 말을 보탰다.

뭐랄까, 오늘 임하나는 무언가 한 꺼풀 벗어던진 느낌이었다.

단순히 비욘세의 영향이라고 보기에는 두 사람의 음악은 상당히 달랐다.

그 옆에서 묘한 미소를 짓고 있는 주선아 만이 태연자약했다.

“그만큼 진심이 담긴 무대라 그런 거 아닐까요?”

주선아는 이 상황이 재밌어 죽을 것 같았다.

웃으면서 말하는 주선아의 말에 멤버들은 의아한 표정이 되었다.

그 말이 힌트라도 된 듯이 다들 각자 생각에 잠겼다.

그리고 그건 멤버들의 대화를 지켜보던 성현 역시 마찬가지.

‘진심이 담긴 무대라. 그럴 수도 있겠구나. 미국에 있는 동안 부모님을 많이 그리워했으니까.’

성현은 아까 전에 자신이 가졌던 의문이 풀리는 것 같았다.

이걸 깨닫고 보니, 속이 다 시원했다.

사랑 노래라고 해서 반드시 이성을 생각하고 부를 필요는 없었다.

성현이 알기로 임하나는 현재 만나는 사람이 없었다.

요즘 연애를 하고 싶어하기는 했는데......

그렇다고 연애를 하기에 임하나는 바쁜 나날을 보냈다.

계속 옆에 있던 자신이 보기에 아무런 낌새가 없기도 했고.

당연히 임하나 노래 속 사랑의 주인공은 가족일 확률이 가장 높았다.

‘그래서 전과 다른 무대였던 거구나. 가족들에 대한 사랑이 담긴 노래라.’

성현은 마치 정답을 찾은 듯 기쁜 얼굴로 멤버들을 바라봤다.

그러자 서지현을 비롯한 몇몇 멤버들은 자기들끼리 눈빛을 주고받고 있었다.

그들은 하나같이 묘한 웃음을 짓고 있었다.

“다들 저랑 같은 생각인 거예요?”

성현은 멤버들을 향해 해맑게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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