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5화
성현의 외침에 정훈이 춤을 추다 멈추고 성현을 돌아봤다.
정훈은 약간 놀란 눈치였다.
성현이 안무 도중 멈추게 할 거라 생각하지 못했기 때문.
성현은 그런 정훈을 보며 차근차근 말했다.
“방금 거기서부터 C파트까지 이어지는 안무들이 조금 과하다는 생각이 들어서요. 1절 곡의 분위기와 메시지를 생각했을 때 조금 더 간결하고, 간결하되 포인트를 살릴 수 있는 안무면 좋을 것 같은데 정훈씨 생각은 어때요?”
평소 춤에 대한 자부심이 엄청난 정훈이었다.
그런데 성현이 갑자기 춤을 멈추게 하다니.
멤버들은 조마조마한 표정으로 성현과 정훈을 번갈아 봤다.
‘기분 나빴으려나.’
성현도 어렴풋이 알고 있었다.
정훈이 BTG 내에서 메인 댄서 창민과 제이 못지않게 춤을 잘 춘다는 것을.
특히 직접 BTG 곡의 안무를 여러 번 짜왔을 정도로 안무가로서 재능도 있었다.
그만큼 안무에 프라이드를 가지고 있는 사람이었다.
그런 그가 이제 막 활동을 시작한 프로듀서일 뿐인 성현에게 저지당했다.
그것도 노래도 아닌 춤에 대한 지적을 받았으니.
기분이 상한다 해도 이해가 전혀 안 가는 것도 아니었다.
정훈은 성현의 말에 가만히 서서 말이 없었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성현은 결국 먼저 입을 열었다.
“기분 나쁘셨으면,”
성현이 미안하다는 말을 꺼내려는 찰나,
“성현씨 말이 맞는 것 같아요.”
“네?”
뜻밖의 대답이 들려왔다.
정훈이 진지한 표정으로 성현을 응시하며 말을 이었다.
“안무 자체에 신경을 쓰다 보니 곡이 주는 분위기와 메시지를 놓친 건 제 실수입니다.”
정훈은 쿨하게 인정했다.
그 모습에 성현을 제외한 다른 멤버들이 더 놀랍다는 반응을 보이며 눈을 크게 떴다.
성현의 주위에 있던 멤버들이 벌떡 일어나 정훈을 바라볼 정도였으니까.
그 사이에 있던 성현은 영문을 몰라 눈을 껌뻑였다.
“정훈이 저 자식 진짜 인정하다 보다. 제이 형이 안무 가지고 뭐라 하면 귓등으로도 안 듣는 놈이.”
“나쁜 자식. 너 그러는 거 아니야. 흑.”
“천재 정도는 돼야 인정한다는 거야? 그래?”
정훈에게 상처받은 멤버들이 우루루 몰려가서 정훈을 둘러쌌다.
“아, 들러붙지 좀 마요.”
제이는 정훈에게 서운한 듯 우는 연기 하며 정훈에게 매달렸다.
둘의 모습에 조금 얼어붙었던 분위기도 자연스럽게 풀렸다.
성현은 멤버들의 모습을 보며 잠시 웃다가 이내 메인 댄서 창민을 봤다.
“창민씨.”
창민이 2절 안무를 맡아 준비했기 때문이다.
창민은 성현의 부름에 무슨 의미인지 눈치챘다.
다른 멤버들은 다시 성현의 곁으로 가서 옹기종기 모여 앉았다.
창민은 그 자리에 서서 숨을 골랐다.
곧 2절 파트에 해당하는 노래가 흘러나오고 창민이 움직였다.
성현이 말하지 않아도 곧장 2절 안무를 보여줬다.
성현은 창민의 안무를 전부 보고는 생각에 잠겼다.
멤버들은 모두 말없이 성현의 대답을 기다렸다.
“지금 안무가 나쁜 건 아니지만 개인적인 바람으로는 조금 과하다 싶을 정도로 에너지가 더 들어가면 좋겠어요.”
정훈에게 한 말과는 반대되는 피드백.
창민은 성현의 말에 귀 기울였다.
“2절에서 계속 음악을 하며 앞으로 달려갈 거라는 BTG의 의지가 담긴 만큼 BTG가 가지고 있는 정체성과 함께 폭발적인 퍼포먼스가 들어갔으면 해서요.”
폭발적인 퍼포먼스.
성현의 말에 몇 번 그 말을 곱씹던 창민이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무슨 말씀인지 알 것 같아요. 안 그래도 저도 임팩트를 더 줘야 하나 고민하고 있었거든요. ”
그렇게 말하면서 창민은 벌써 생각나는 동작이 있는 듯 이리저리 몸을 뒤틀어 안무를 구상했다.
정훈 역시 어느새 일어나 가까운 곳에 있는 거울을 보면서 자신의 안무를 수정하고 있었다.
“물론 두 분 다 지금 짜온 안무가 나쁘다는 건 절대 아니에요. 시간도 별로 없었을 텐데 이 정도 퀄리티의 안무를 가져온 것도 전 엄청 대단하다 생각해요.”
성현은 서둘러서 덧붙였다.
단순한 인사치레가 아니었다.
성현의 진심을 담은 사실이었다.
성현은 멤버들에게 대충 자신이 원하는 느낌을 말했을 뿐이었다.
그것만으로도 그들은 이미 완벽에 가까운 안무를 순식간에 짜온 것이다.
성현은 BTG와 함께 하는 매일매일의 일정이 놀람의 연속이었다.
‘마음 같아선 멤버들 전부 와서 보고 배우게 하고 싶은데.’
성현은 또 떠오르는 멤버들 생각에 고개를 저었다.
한국에 돌아와서일까, 가까운 곳에 멤버들이 있다는 생각 때문일까.
요즘 부쩍 멤버들 생각이 자주 났다.
어쩌면 데뷔를 앞두고 있는 멤버들이기에 더욱 마음에 걸리는 것일 수도 있었다.
‘지금은 BTG에 집중해야 하니까.’
살짝 방심하면 자기 가수들이 생각나는 버릇을 고쳐야겠다고 고개를 저었다.
정신을 차리고 계속 안무 연습에 들어가려 했다.
지잉.
그때, 이성현에게 도착한 메시지 한 통.
커넥트 앱을 통해 온 알람이었다.
성현이 휴대폰으로 메시지를 확인했다.
중간 평가와 관련된 메시지가 경쾌한 bgm과 함께 떠올랐다.
[축하드립니다! 이성현 프로듀서 참가자가 본선 8라운드 중간 평가에서 1등을 차지했습니다. 이와 관련해 추가 캐시 보상이 주어질 것이며, 본선 8라운드 프로듀서 참가자들의 무대는 한국에서 열리게 될 겁니다.]
메시지를 확인한 성현은 자신도 모르게 얼굴에 미소가 피어올랐다.
제일 먼저 성현의 미소를 포착한 것은 준기였다.
준기의 손짓에 멤버들 모두가 성현 주위로 몰려들었다.
“뭔데 그렇게 웃어요?”
RN의 물음에 성현은 말없이 휴대폰을 내밀었다.
화면에 뜬 공지를 본 멤버들은 잠시 말이 없었다.
잠시 후, 멤버들은 소리를 지르고 하이파이브를 하면서 기뻐했다.
“우리가 누구?!”
“BTG!”
리더 RN의 선창에 BTG가 목이 터져라 외치며 기쁨을 만끽했다.
자신들과 성현의 곡이 1등을 하다니!
그래미에서도 상을 받았던 BTG였다.
어쩌면 그런 이들에겐 이번 중간 평가 결과가 별 게 아니라고 느낄 수도 있었다.
하지만 이들은 아니었다.
그들은 성현과의 작업물이 좋은 결과를 내자 그 못지않게 기뻐했다.
한참 연습실을 뛰어다니며 기뻐하던 BTG 멤버들은 서서히 정신을 차렸다.
제일 먼저 성현에게 다가온 것은 B였다.
“1등 축하드려요.”
“여러분들이랑 다 같이 이뤄낸 일인데요, 뭘. 저 혼자만 축하받을 일은 아니지 않습니까.”
성현은 이쪽에서 할 말이라며 웃었다.
제이는 B 뒤에서 폴짝 뛰며 물었다.
“그럼 더 넥스트 슈퍼스타 프로듀서 참가자들이랑 그분들이랑 작업한 가수들도 전부 한국에 오는 거예요?”
“네.”
성현의 대답에 제이를 비롯한 멤버들 모두 믿기지 못한다는 표정이었다.
‘더 넥스트 슈퍼스타’라면......
한국 말고도 미국, 영국, 브라질 참가자들이 모두 한국에 와서 공연을 한다는 뜻이었다.
“이거 실화냐? 맨날 미국에서 같이 무대 하던 사람들이 한국으로 온다고?”
글로벌 스타인 BTG는 이미 여러 해외 슈퍼스타들과 무대를 함께 선 경험이 있었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미국에서였고 미국의 무대, 미국의 방송에서였다.
그런데 그런 슈퍼스타들이 무대를 위해 한국에 온다니?
BTG로서도 믿기지 않는 일이었다.
서서히 BTG들의 얼굴에 함박웃음이 걸렸다.
먼 이국의 땅에서 외로이 한국 노래를 설파해야 했던 나날들.
이번 기회로 그들과 자신의 위치가 뒤바뀐 것이다.
‘더 넥스트 슈퍼스타가 아니면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겠지.’
성현은 새삼 더 넥스트 슈퍼스타의 위력에 놀랐다.
그들이 가지고 있는 엄청난 자금력과 영향력에 감탄하며 다시 공지사항을 확인했다.
‘프로듀서 참가자 무대는 한국에서 열리는 게 확실해 졌고 가수 참가자는 어떻게 됐으려나.’
프로듀서 참가자들의 무대가 한국으로 결정됐으니, 이제 남은 건 가수 참가자들의 무대였다.
‘결과가 아직인 건가.’
과연 가수 참가자들 중 1위는 누구일지.
성현은 초조해져서 휴대폰을 쥔 채로 기다렸다.
곧이어 커넥트 앱에 공지사항 하나가 더 떠올랐다.
[축하드립니다! 천소울 가수 참가자가 본선 8라운드 중간 평가에서 1등을 차지했습니다. 이와 관련해 추가 캐시 보상이 주어질 것이며 본선 8라운드 가수 참가자들의 무대는 한국에서 열리게 될 겁니다.]
메시지를 확인한 성현은 순간 믿을 수 없어 머리가 멍해졌다.
옆에서 활개치며 기뻐하는 BTG의 시끌벅적한 소리도 잠시 들리지 않을 정도.
프로듀서 중간 평가 1등 이성현.
가수 중간 평가 1등 천소울.
두 1등 참가자의 출신이 모두 한국인 것이다.
프로듀서 참가자에 이어 가수 참가자들의 무대까지 한국에서 열리게 되었다.
‘결국, 천소울씨도 1등 했구나.’
성현은 가수 참가자 중 메튜라는 변수가 있기에 확신할 수 없었다.
그만큼 강력한 라이벌이었으니까.
그런데, 천소울은 많은 경쟁자들을 제치고 당당하게 1위를 차지한 것이다.
“왜요? 또 뭔데요?”
RN은 다시 한번 성현의 상태가 이상해 보이자 다가왔다.
이번에는 성현이 넋이 나간 표정으로 가만히 서서 이렇다 할 반응이 없었다.
RN은 궁금한 마음의 그의 휴대폰 알람을 확인하고, 그의 입 또한 떡 벌어졌다.
“......이거 실화죠?”
RN 역시 믿을 수 없다는 반응을 보였다.
그의 반응을 본 멤버들은 다들 몰려와 성현의 휴대폰에 뜬 알람을 확인하고는 똑같이 입이 벌어졌다.
“캬. 국뽕 한 사발 들이켠다. 이번 무대 전부 한국에 진행되는 거지, 지금?!”
“듀아피파랑 모건이랑 퍼렐 윌리엄스가 한국에 온다는 거지, 지금?!”
“제이지랑 비욘세도 온다는 거지 지금?!”
‘지금’ 라임이 죽여주는 멘트의 향연이었다.
BTG 멤버들은 아까보다 더욱 흥분했다.
엄청난 프로듀서와 가수들까지.
모두 무대를 하기 위해 한국에 온다는 사실에 성현보다 더욱 흥분해 소리쳤다.
그사이 정신을 차린 성현이 박수를 치며 BTG 멤버들을 주목 시켰다.
“아직 축제는 시작도 안 했어요. 축배는 무대 끝나고 들이켜야죠.”
엄청난 글로벌 스타들과 함께 무대를 준비해야 하는 만큼, 성현은 이번 무대에 전력을 다하고 싶었다.
이는 BTG 멤버들 역시 마찬가지.
멤버들 모두 고개를 끄덕이며 대열을 맞추었다.
놀라운 소식을 듣고 힘이 난 그들의 빡센 연습이 시작됐다.
***
성현은 수정된 안무로 연습을 하는 BTG 멤버들 지켜보는 중이었다.
그때, 성현의 휴대폰에 계속해서 진동이 울렸다.
성현이 휴대폰을 확인했다.
이미 메시지가 수십 통이 쌓여있었다.
이주성을 비롯한 동료들과 주변 지인들로부터 온 축하 메시지가 대부분이었다.
그중에는 심훈영한테서 온 몇 통의 부재중 통화도 있었다.
‘급한 건 아니겠지.’
성현은 당장 하나하나 답장을 해주고 싶었지만 참았다.
당장은 BTG와의 무대를 준비하는 게 우선이었다.
성현은 휴대폰을 다시 주머니에 넣었다.
‘안무 구성은 대충 밑 작업이 끝났고.’
성현은 팔짱을 끼며 앞으로 계획을 정리했다.
대략적인 느낌을 담은 안무가 완성됐다.
이제는 전문가의 손길을 거쳐 디테일을 다듬는 수정 작업이 필요했다.
그렇게 상황을 정리 중인데 성현의 휴대폰에 전화가 왔다.
확인해보니 이번에도 역시 심훈영이었다.
‘무슨 일이 있는 건가.’
성현은 심훈영에게서 계속 전화가 오자 무슨 일인가 싶어 곧장 전화를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