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 같은 프로듀서는 없었다-244화 (244/273)

244화

“중간 평가 심사위원으로 오신만큼 공정한 평가 부탁드리겠습니다.”

리키가 회의실에 모인 ‘더 넥스트 슈퍼스타’ 관계자들에게 말했다.

중간 평가 심사를 맡은 이들은 대부분 프로듀서들이었다.

이곳에 모인 프로듀서들은 이번 미션에서 참가자들에게 파트너 제안을 하지 않은 사람들이었다.

개인적으로 스폰하는 참가자가 없는 프로듀서들만 모였다.

즉, 결과와 무관한 프로듀서들이었다.

그러나 글로벌 오디션이니만큼 참가자들의 국적이 모두 달랐다.

자연히 그들의 국적과 같은 국적의 참가자들도 있었다.

그만큼 이번 심사에서 공정한 평가는 그들 각자 양심에 맡길 수밖에는 없었다.

“물론 제가 이런 말씀 드리지 않아도 다들 음악에 있어서 권위자들인 만큼 자신들의 명예에 욕보이는 일은 하지 않겠지만요.”

리키의 말에 프로듀서들 모두 고개를 끄덕이며 동조했다.

수년간 음악만 해온 이들이고 자신들의 분야에서 모두 최고의 자리에 올랐다.

당연히 자신들의 음악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했다.

이 중에서 정에 휘둘려 평가를 할 사람들은 없었다.

리키는 그 반응에 만족스럽다는 듯이 웃었다.

“그럼 본격적인 평가 전 프로듀서분들간 간단한 자기소개가 있겠습니다.”

리키의 말에 각국 프로듀서들이 인사를 나누었다.

마지막으로 한국에서 온 JYC 엔터 최진영 차례가 돌아왔다.

“한국 대표 JYC 수장 최진영입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최진영의 소개가 끝나자 한바탕 소란이 일었다.

미국 측의 프로듀서가 등장했을 때와 비슷한 반응이었다.

그중 한 심사위원이 최진영에게 말했다.

“한국이라면 이성현 참가자 나라죠? 기대가 크겠어요. 어쩌면 그 참가자 우승까지도 가능할 거 같은데.”

“같은 한국인으로서 기대는 크지만, 평가는 공정하게 해야겠죠.”

최진영은 여유롭게 웃으며 그 말을 받아넘겼다.

기분이 나쁘지만은 않았다.

현재 제일 많은 생존자를 내고 있는 것이 다름 아닌 한국이었으니까.

스탭들이 각국 프로듀서 대표들에게 노트북을 한 대씩 나눠주었다.

“지금 드리는 노트북에는 가수 참가자들의 곡 10개와, 프로듀서 참가자들이 작업한 8개의 곡이 있습니다. 100점을 기준으로 점수를 평가해주시면 되며, 합산 점수가 가장 높은 참가자들이 각각 1위를 차지하게 될 겁니다.”

프로듀서들이 리키의 말을 들으며 노트북에 저장되어 있는 곡들을 확인했다.

곡의 제목은 번호로만 적혀 있을 뿐 참가자와 관련된 어떤 정보도 적혀 있지 않았다.

블라인드 테스트로 진행되는 이번 중간 평가.

최대한 공정한 평가를 하기 위해서였다.

다만, 가수 참가자들은 목소리를 통해 구분이 가능할 것이다.

프로듀서 참가자들 역시 어떤 가수와 작업을 하는지 소문이 났기 때문에, 어느 정도 추측이 가능했다.

“가수 참가자들과 프로듀서 참가자들 중 1등을 한 참가자들의 국가에서 이번 라운드 경연이 치러지게 됩니다.”

파일을 확인하는 프로듀서들에게 리키의 설명이 이어졌다.

“예를 들어 브라질의 가수 참가자가 1위를 하고, 프랑스의 프로듀서 참가자가 1위를 할 경우 가수 참가자들의 무대는 브라질에서, 프로듀서 참가자들의 무대는 프랑스에서 진행되는 방식입니다.”

오늘 중간 평가 결과로 본 무대가 어디서 열릴지 결정된다.

참가자들은 아무래도 자신의 나라에서 호응을 얻기 쉬웠다.

그렇기 때문에 장소가 결정되는 오늘 평가가 본 무대 결과에 주요하게 작용하게 되는 것.

“가수와 프로듀서 참가자들의 공연은 같은 날 동시에 진행되는 겁니까?”

다른 심사위원의 질문에 리키가 대답했다.

“공연은 1주일 간격으로 진행될 것이며 가수 참가자들의 무대가 먼저 이뤄질 겁니다. 더 질문 있으신가요?”

리키의 물음에 프로듀서들 모두 고개를 저었다.

이를 확인한 리키는 다시 진행을 시작했다.

“그럼 우선 가수 참가자들의 곡 심사를 먼저 시작하겠습니다. 심사위원 모두 10개의 곡을 들으신 후 100점 만점 중 몇 점에 해당하는지 점수를 내주시면 됩니다.”

리키의 말에 프로듀서 참가자들 모두 각자 앞에 놓인 헤드셋을 썼다.

회의실이 적막에 휩싸이고, 곧 평가가 시작됐다.

각 프로듀서들은 모두 진지한 표정으로 노래를 들었다.

몇몇 프로듀서는 노래를 다 듣고 나서도 특정 노래를 반복하여 다시 들어보기도 했다.

그리고 그중 한국에서 온 JYC 최진영 프로듀서는 유독 한 노래만 계속 반복하여 들었다.

그의 미간이 고민으로 인해 찌푸려져 있었다.

이는 어찌 보면 스스로의 양심 때문이기도 했다.

‘이거 최대한 객관적으로 들으려 해도 너무 압도적인 거 아닌가...... 단점을 찾으래도 찾을 수가 없네.’

최진영은 계속 반복하여 노래를 들었다.

노래에 아쉬운 점을 찾으려고 노력해도 이 곡은 너무나 완벽했다.

당장 이대로 무대에 세워도 손색이 없을 만큼.

최진영은 고민이 되는지 쉽사리 선택하지 못했다.

다른 나라 프로듀서들은 이미 점수를 낸 후였다.

모두 헤드셋을 벗은 채 최진영을 기다리고 있었다.

고민 끝에 최진영은 앞에 놓인 태블릿 PC에 점수를 입력했다.

100점.

‘이것보다 낫게 주면 그것대로 역차별인 거겠지.’

최진영이 헤드셋을 벗었다.

그를 마지막으로 가수 참가자들의 점수 평가는 끝이 났다.

“30분만 쉬었다가 이어서 프로듀서 참가자들의 점수 평가가 있겠습니다.”

리키의 말에 앉아있던 프로듀서들이 모두 기지개를 켜며 일어났다.

각자 스트레칭을 하거나 물을 마시며 휴식을 취했다.

너무 많은 곡을 짧은 시간에 집중해서 들었기 때문에 최대한 릴렉스하는 시간이 필요했다.

그때, 한 프로듀서가 최진영에게 다가왔다.

“진영, 왜 그렇게 오래 걸린 거야?”

이전에 작업을 같이 한 적이 있어서 서로 아는 사이인 프랑스 프로듀서였다.

그가 최진영에게 궁금한 듯 물었다.

“가재는 게 편이란 말 듣기 싫어서.”

최진영의 말에 프랑스 프로듀서는 대번에 알아듣고 웃음을 터뜨렸다.

프로듀서는 이해한다는 듯 웃으며 말했다.

“하하. 나한텐 1위를 뽑는 게 가장 쉬웠는데 진영 당신한텐 어려웠을 수도 있겠네.”

두 사람은 최근 근황에 대한 얘기를 주고받았다.

어느덧 리키 헨더슨이 다시 대기실로 들어오는 모습이 보였다.

그를 발견한 프랑스 프로듀서는 자신의 자리로 돌아갔다.

30분의 쉬는 시간이 끝났다.

이제 마지막으로 프로듀서 참가자들의 곡 평가가 시작될 것이다.

“그럼 아까와 같은 방식으로 심사 시작하여 주시길 바랍니다.”

리키의 말에 프로듀서들 모두 다시 헤드셋을 꼈다.

일제히 프로듀서 참가자들의 곡을 듣기 시작했다.

진지한 표정의 프로듀서들.

그들은 노래를 들으며 이것저것 메모를 하기도 했고, 눈을 감고 생각에 잠기기도 했다.

귀에 들리는 것은 유명 가수들의 목소리뿐이었다.

가수들의 실력차로 곡을 판가름하는 것은 어려웠다.

게다가, 오늘 심사를 하는 심사위원들은 모두 프로듀서들.

자신의 후배 격인 프로듀서 참가자들의 의중을 파악하기 위해 집중했다.

그리고 최진영은 한 노래를 듣는 순간 온몸에 소름이 돋는 걸 느꼈다.

‘정말 이게 갓 데뷔를 한 프로듀서의 실력이라고? 하...... 지금까지 음악 해온 세월이 허무해지네.’

최진영은 저도 모르게 한숨을 푹 내쉬었다.

국내에서도 탑 프로듀서인 그였다.

최진영조차 지금 이 노래를 만든 프로듀서의 재능 앞에서 허무함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곡 자체가 좋은 것도 있었지만 무엇보다 곡이 주는 메시지와.....

‘거물급 가수를 이렇게 여유롭게 프로듀싱 할 수 있다니.’

최진영은 헛웃음이 나왔다.

프로듀서 참가자들의 파트너는 하나같이 전 세계적으로 유명한 슈퍼스타들.

자신보다 훨씬 네임벨류가 있는 가수와 작업을 할 경우, 가수에게 끌려가는 경우가 많았다.

그런데 지금 들은 곡은 프로듀서가 전적으로 노래를 설계하고 지배하고 있다는 것이 느껴졌다.

‘문제는...... 너무 완벽하다는 거야.’

이번에도 최진영 프로듀서는 난감함을 느꼈다.

헤드셋을 들리는 가수의 목소리로 최진영은 이 곡의 프로듀서 역시 누구인지 바로 알 수 있었다.

아까와 비슷한 고민이 그를 찾아왔다.

‘이거 진짜 난감하게 됐는데......’

가수 참가자의 노래에 이어 프로듀서 참가자의 심사도 만만치 않았다.

그는 쉽게 점수를 낼 수가 없었다.

이유는 가수 참가자와 같은 이유였다.

눈을 감은 채로 생각에 잠겨 있던 최진영은 노래를 다시 플레이했다.

‘마지막으로 한 번만 더 들어보자.’

최진영은 이번에도 쉽게 심사를 내리지 못했다.

곳곳에서 심사를 마친 심사위원들이 헤드셋을 벗고 있었다.

최진영은 이 순간 진심으로 그들이 부러웠다.

저들은 자신만큼 갈등을 하면서 심사를 하지 않았을 테니까.

아까처럼 한 곡만 반복하여 노래를 들어보았다.

그리고, 결과는 똑같았다.

최진영은 고심하다가 태블릿 PC에 점수를 입력했다.

이게 자신의 솔직한 심정이라고 생각하면서.

다른 방법이 없었다.

‘이제 내 손을 떠났으니까.’

최진영은 어서 빨리 결과 발표를 보고 싶었다.

그 후, 다른 프로듀서들과 함께 오늘 들은 미션곡들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다.

자신이 느꼈던 그 전율을 똑같이 느낀 것인지.

자신의 귀가 아직 녹슨 것은 아닌지 확인받고 싶었다.

그만큼 오늘 들은 신인 가수, 프로듀서들의 노래는 놀라웠다.

이번에도 그를 마지막으로 프로듀서 참가자들에 대한 점수 평가 또한 마무리가 됐다.

헤드셋을 벗은 프로듀서들은 서로를 묘한 눈으로 쳐다볼 뿐, 아무도 입을 열지 않았다.

리키 헨더슨이 스탭들과 함께 회의실을 잠시 나섰다.

잠시 후.

점수 합산을 마친 리키 헨더슨이 알 수 없는 미소를 지으며 각 프로듀서들을 응시했다.

모두가 그에게 주목한 순간, 리키의 입이 천천히 열렸다.

“아무래도 이번 미션 공연 장소는 한 곳이 될 곳 같군요.”

***

츄리닝을 입고 있는 BTG 멤버들과 성현이 연습실에 모여 있었다.

투히트 엔터테인먼트 사옥 안에 있는 연습실이었다.

곡이 완성된 후, 본격적으로 무대를 준비하는 중이었다.

“1절과 2절이 주는 메시지와 곡 분위기가 다른 만큼 안무에서도 이러한 표현이 드러나면 좋겠어요. 정훈씨, 아까 췄던 거 다시 보여주시겠어요?”

성현은 안무가와 BTG 멤버들과 모여서 곡의 메시지를 담을 수 있는 안무를 연구했다.

성현과 BTG는 요즘 숙식을 함께하며 밤낮없이 무대에 관한 회의를 이어나가는 중이었다.

정훈은 멤버들 중에서도 춤을 잘 추고 안무도 곧잘 짰다.

스스로가 원해서 이번 곡의 1절 안무를 맡았다.

이번 무대만큼은 자신이 보여주고 싶은 모든 것을 보여주고 싶다는 정훈의 바람이 반영된 것.

성현의 말에 정훈은 고개를 끄덕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곧장 거울 앞으로 가서 섰다.

하도 많이 반복해서 듣는 바람에 이제는 익숙한 곡의 전주가 흘러나왔다.

정훈은 자신이 짜놓은 안무의 디테일을 살려가며 성현에게 보여주었다.

“스톱. 잠시만요.”

성현은 뒤에서 정훈의 춤을 지켜보다가 갑자기 멈추라고 외쳤다.

뚝, 음악이 끊기고 정훈과 나머지 멤버들이 긴장되는 표정으로 성현을 응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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