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 같은 프로듀서는 없었다-242화 (242/273)

242화

무대 곳곳에 흩어져 각자 팬들에게 인사를 하던 BTG 멤버들.

이들 모두 성현이 있는 곳으로 서서히 모여들었다.

다 같이 한곳에 모여 텅 빈 객석을 함께 바라보았다.

꿈만 같았다.

불과 몇 분 전만 해도 이곳의 풍경이 달랐다.

목이 터져라 응원하던 팬들이 있었고.

뜨거운 함성 소리가 있었다.

그랬던 지금 이곳에는 완벽한 적막만이 남아있었다.

‘적막과 공허함. 아티스트한테 그것만큼 힘든 것도 없겠지.’

그 적막함을 보고 있자니 성현은 BTG가 느낄 수 있는 두려움을 어렴풋이 알 것 같았다.

같은 풍경을 바라보고 서 있자니, 간접적으로나마 느낄 수 있었다.

곁에 있는 BTG 멤버들 역시 모두가 말이 없었다.

성현은 그들이 하고 있는 생각도 크게 다르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

당연히 성현은 그들만큼 위로 올라간 적은 없었다.

언젠가는 현재의 위치에서 조금씩 내려오게 될 때가 있을 것이다.

그것이 얼마나 두렵고 무서울지.

상상만으로도 가슴이 죄어왔다.

이런 압박감을 숨 쉬듯이 느끼고 있을 BTG.

그들이 매 순간 그런 두려움을 없애기 위해 얼마나 노력하고 있는지도, 알 수 있었다.

‘잘 온 것 같아. 정말.’

성현은 무대 위 BTG의 모습을 보아두길 정말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들이 무대에서 보여주는 모습도 진짜 모습 중 하나였다.

무대 위 그들의 모습을 가식이라고는 절대 치부할 수 없었다.

그들이 흘리고 있는 땀과 쉴새 없이 짓고 있는 미소와 팬들을 향한 진심.

‘이것 역시 BTG의 솔직한 모습이겠지.’

이번 곡의 콘셉트에서 빠뜨릴 수 없는 면면이었다.

무대 위의 모습 역시 곡을 만드는 데 상당한 도움이 될 수 있었으니까.

***

BTG의 콘서트가 끝난 이후 성현과 BTG는 본격적으로 곡 작업에 돌입했다.

하루도 빼놓지 않고 이들은 매일 얼굴을 마주했다.

곡을 만들기 전 1주일.

이 기간 동안에는 곡에 담고 싶은 메시지나 원하는 그림에 대해 소통하는 작업이 계속 이어졌다.

1주일 가량이 흘렀을 때, BTG 멤버들은 스케줄을 비웠다.

성현이 다른 곳으로 호출한 것이다.

BTG 멤버들의 성현의 연락을 받고 어딘가로 향했다.

“B&V는 클래식 기획사 아닌가?”

“맞아. 나도 그렇게 알고 있는데.”

성현의 연락을 받고 정훈과 준기가 고개를 갸웃하며 말했다.

그러자 성현과 가장 긴 시간 동안 대화를 나눠본 RN이 당당하게 답했다.

“아버지가 B&V 대표님이라 건물같이 쓴대.”

BTG 멤버들이 향한 곳은 바로 이주성과 성현의 기획사 사옥이었다.

RN이 먼저 B&V 스튜디오 문을 열고 들어갔다.

멤버들도 RN의 뒤를 따랐다.

기획사 로비에는 성현과 심훈영이 미리 나와 있었다.

심훈영은 활짝 웃으며 BTG 멤버들을 맞이했다.

“영광이에요. 한국 가요계의 보배들을 다 만나고.”

전설의 작곡가 심훈영이 자신들을 맞이하자 BTG 멤버들이 놀라 뛰듯이 걸어왔다.

“은퇴하셨다 들었는데 갑자기 기획사 차리셨다 해서 깜짝 놀랐어요.”

“차린 건 저 녀석이고 나는 뭐 바지사장이지.”

RN의 말에 심훈영은 성현을 가리키며 농담조로 말했다.

그 뒤로 BTG 멤버들과 하나하나 인사를 나눴다.

“선배님 노래 듣고 영감 많이 받았습니다.”

“저랑 제 아버지가 정말 팬입니다. 싸인을 좀 받을 수 있을까요?”

정훈은 미리 준비해 둔 쇼핑백을 부스럭거렸다.

그 안에 있던 LP판과 펜을 꺼내 보이며 말하자, 심훈영이 쑥스럽다는 듯 웃으며 싸인을 해주었다.

“이거 오래 살고 볼 일이네요. 글로벌 스타한테 싸인을 다하고.”

“저, 선배님 저도 싸인을 좀......”

항상 자신감 넘치던 서진이 떨리는 손으로 앨범을 내밀었다.

그 역시 대선배 앞에서는 떨면서 말을 꺼냈다.

심훈영은 흔쾌히 싸인을 해줬다.

1층 안내 데스크에 있는 직원들은 자신들의 눈앞에 보이는 진풍경에 눈을 못 뗐다.

그래미에서 상까지 받은 대스타들이 서로 싸인을 해달라며 기다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제 없지?”

“선배님 저 남았습니다!”

기다리고 있던 제이가 손을 번쩍 들며 말했다.

그렇게 마지막으로 제이의 싸인까지 마친 후에야 움직일 수 있었다.

성현은 BTG 멤버들을 데리고 3층 스튜디오로 이동했다.

***

BTG 멤버들은 평소와 달리 장난기를 거둔 채 긴장한 표정으로 성현을 봤다.

“어제 완성하자마자 가이드 녹음만 따둔 상태예요. 일단 들어보고 더 얘기를 나눠보도록 하죠.”

성현의 말에 BTG 멤버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성현은 미디를 만지더니 만들어둔 곡을 재생했다.

바로 어제 완성하고 녹음한 따끈한 가이드 녹음본이었다.

아직까지 멤버들 중에는 노래를 들어본 사람이 없었다.

그들 모두가 집중하고 귀를 기울였다.

스튜디오에 조금 차분하면서 우울한 분위기의 비트가 흘러나왔다.

“난 항상 높이 날고 싶었어. 더 높이 더 높이 정상에 오르고 싶었어.”

그 위로 가이드 녹음을 맡은 요하의 목소리가 얹어졌다.

보컬이 얹어지며 멜로디 라인은 살짝 경쾌한 음계가 얹어졌다.

우울한 비트와 섞여 오묘한 느낌이 살아났다.

“그리고 정상에 오른 지금 솔직히 난 무서워. 올라온 만큼 떨어질 곳이 있다는 것을 이제야 깨달은 거야. 우리의 도약은 추락이 될 수 있단 걸 너무 늦게 깨달은 거야.”

요하의 미성이 섞인 허스키한 목소리가 무거운 비트 위에 얹어지며 A파트가 시작됐다.

힘을 주지 않고 말하듯 가사를 내뱉었다.

노래를 잘 부르기보다는 메시지 전달에 힘쓴 가이드 녹음.

덕분에 가사가 잘 살아나서 귀에 박혔다.

BTG 멤버들은 모두 가사에 온 신경을 곤두세우며 들었다.

“그냥 도망가고 싶어. 밑바닥에 있는 날 마주하는 순간이 솔직히 두려워.”

성현은 BTG 멤버들과 주고받은 이야기를 가사에 녹였다.

1절에는 성공에 대한 열망과 함께, 막상 높은 곳에 올랐을 때 추락에 대한 두려움을.

“음, 으으음. 음.”

간주 부분에 요하가 자신의 음색을 살린 애드립을 넣어두었다.

씩씩한 소년이라고만 생각했던 요하의 특색 있는 음색.

BTG 멤버들 중 보컬 라인을 맡은 멤버들의 눈이 빛났다.

그렇게 C 파트가 끝이 나고 2절이 시작되려는 순간.

갑자기 어두웠던 분위기의 비트가 밝은 분위기의 비트로 전환되기 시작했다.

멜로디 라인은 크게 변하지 않았다.

밝은 비트와 경쾌한 멜로디 라인의 만남.

전체적인 멜로디 라인이 변하지 않았기에 분위기만 전환되고 곡의 주제는 일관적이었다.

“언젠가 내려가야 할 날이 오겠지만 그 밑에서 우릴 응원하며 기다려줄 사람들. 우린 그들을 위해 노래할 거야.”

밝은 분위기의 2절.

2절의 가사는 두려움을 극복할 순 없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릴 사랑해주고 응원해주는 사람들을 위해 우리들만의 음악을 하자는, BTG 멤버들의 마음가짐이 담겨있었다.

성현은 한 곡에 두 개의 분위기를 녹여냈다.

이로써 BTG의 양가적인 모습 모두를 보여준 것이다.

무대 위 빛나는 글로벌 스타 BTG와,

무대 밑 추락에 대한 두려움을 안고 있는 인간 BTG의 모습.

‘무대 위와 무대 밑의 BTG 모두 진짜 BTG의 모습이니까.’

성현은 BTG 만의 두려움과 긍정적인 에너지 모두를 완벽하게 표현해냈다.

일부러 1절은 어두운 분위기로, 2절은 밝은 분위기를 배치했다.

BTG 멤버들의 약속을 기반으로 만들어지는 긍정적인 에너지로 하여금, 이들이 가지고 있는 두려움을 극복해냈다는 메시지를 담기 위해서.

곡이 다 끝났을 때, 멤버들의 반응은 생각보다 차분했다.

‘별로인 건가.’

성현은 생각보다 조용한 BTG 멤버들의 반응을 보며 조마조마했다.

마침내 RN이 침묵을 깨고 입을 열었다.

“노래가 너무...... 지금의 저희 같아서 마음이 어지럽네요.”

RN은 여러 생각에 잠긴 탓에 뒤늦게 입을 연 것이다.

데뷔 이후 글로벌스타가 되기까지.

한 번도 돌아보지 못했던 자신들의 이야기를 성현이 완벽하게 구현해 낸 것.

단 한 곡.

한 곡이 흘러나오는 시간 동안 RN은 자신들의 길었던 이야기를 돌아볼 수 있었다.

그리고 이는 RN뿐만이 아니었다.

이번에는 노래를 들은 뒤, 잠시 팔짱을 낀 채 눈을 감고 생각에 잠겨있던 B가 입을 뗐다.

“나 이 곡 진짜 잘하고 싶다. 가식 없이 진심으로.”

B가 선언하듯 말했다.

다른 멤버들 역시 고개를 끄덕이며 동조했다.

평소 이들의 모습을 생각한다면 상상도 할 수 없을 정도로 모두가 진지하게 곡을 음미하고 있었다.

“이보다 더 지금의 우릴 표현하는 곡은 없을 것 같아요.”

“고마워요, 정말. 지금의 저희한테 정말 필요했던 곡 같습니다.”

제이는 진지하게 성현에게 고마움을 표현했다.

음악을 들으면서 이런 감정에 휩싸인 것은 실로 오랜만이었다.

누군가가 자신들에게 위로의 손길을 내민 느낌.

그 손길은 다름 아닌 자신들이 쌓아온 이야기가 뻗어온 것이었다.

“진짜...... 고맙습니다. 프로듀서님.”

바쁘게 달려온 그들인 만큼 각자 자신들의 마음을 돌아볼 시간이 없었다.

성현과의 작업을 통해 지금까지 외면해왔던 자신들의 내면을 들여다볼 기회가 생겼다.

두서없이 뱉어내서 스스로도 정리가 되지 않았다.

그 헝클어진 마음을 성현이 완벽하게 곡으로 재현해준 것.

솔직히 BTG 멤버들 중, 성현의 콘셉트를 듣고 다소 뻔하다고 생각하기도 했다.

자신들이 시도해 본 적은 없지만, 많은 가수들이 시도해본 길.

과연 지금 BTG에게 필요할까 자문해봤던 콘셉트이었다.

그런데 곡을 들은 다음에서야 당당하게 말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이 곡이라면.

팬들에게 진짜 그들의 모습을 보여줄 수 있을 것 같은 확신이 들었다.

“전 원래 천재라 그러면 의심부터 하고 보는데 PD님은 인정할 수밖에 없네요. 방PD님 못지않은 천재예요.”

정훈은 성현에게 엄지를 들어 보이며 극찬했다.

성현이 쑥스럽게 웃으며 고맙다고 말하려던 순간이었다.

멤버들이 경악에 차서 정훈과 성현을 번갈아 보는 것.

놀라서 눈이 휘둥그레진 멤버들이 동시에 성현에게 박수를 보냈다.

“정훈이 쟤가 진짜 칭찬을 소금처럼 짜게 하는 앤데 천재 칭호 받은 건 방PD님 이후로 성현씨가 두 번째예요.”

창민이 정말 놀라운 일을 해낸 거라며 성현을 추켜세웠다.

성현은 이어지는 칭찬에 미소 지으며 말했다.

“사실 제가 여러분들 생각과 마음을 온전히 알기 힘들어서 최대한 이해한 만큼 표현한 건데 진심이 전달됐다니 다행이에요.”

“100프로, 아니 200프로 전달됐습니다.”

서진이 무슨 소리냐는 듯이 단언했다.

나머지 멤버들도 맞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며 성현을 바라봤다.

마치 자신들의 말을 믿으라는 듯이.

성현은 만족스러워하는 멤버들을 보며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티는 안내도 혹시나 BTG 멤버들이 마음에 들어 하지 않을까 조마조마했기 때문이다.

‘이제 남은 건 녹음이랑 무대 구상인가.’

신이 나서 이 가이드 녹음본은 누가 했냐는 질문부터.

어디 파트를 누구에게 맡길 건지 생각해 놓았냐는 질문까지.

마구잡이로 쏟아내는 BTG 멤버들을 바라보며 성현은 빙긋이 웃었다.

일단, 1차 관문은 무사히 통과한 듯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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