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1화
“빛이 나는 별빛들 깜빡거리는 불 켜진 건물 우린 각자의 방에서 빛나고 있네.”
“이 밤이 아름다운 건 저 달빛도 별빛도 아닌 우리 때문일 거야.”
BTG의 마지막 곡 ‘대우주’로 콘서트는 마무리됐다.
이를 알리듯 하늘에서 벚꽃처럼 종이가 흩날려 내려왔다.
드넓은 잠실종합운동장 주 경기장 무대를 가득 채우는 꽃가루의 모습.
그 사이를 거닐며 팬들에게 인사를 건네는 BTG 멤버들이 메인 무대 한가운데로 모였다.
“오늘 공연도 여러분들 덕분에 잘 마칠 수 있었습니다. 하나, 둘 셋. 감사합니다.”
RN과 BTG 멤버들 모두가 서로 손을 잡고 객석에 있는 팬들을 향해 허리를 숙여 인사했다.
“감사합니다!”
마지막 인사를 끝으로 멤버들 모두 무대 끝 난간이 설치된 곳에 섰다.
그러자 BTG가 선 무대가 갈라지며 움직였다.
객석 곳곳을 누빌 수 있게 설계된 리프트에 올라탄 멤버들.
멤버들은 객석 구석구석을 오가며 마지막 인사를 건넸다.
“여러분들 덕분에 오늘 너무 행복했습니다.”
“감사합니다. 2, 3층도 저희 잘 보이시죠?”
“네!!!”
팬들의 외침과 동시에 폭죽이 화려하게 터졌다.
이를 올려다보는 성현이 잠시 추억에 잠겼다.
미국에서 천소울과 임하나와 함께 보았던 불꽃놀이가 오버랩되었다.
환하게 무대를 비추다가 사그라지는 불꽃들.
‘저 정도 불꽃이라면 정말로 불태울만하구나.’
성현과 천소울, 임하나가 생각했던 화려하게 터지는 불꽃.
BTG는 그것을 성현의 눈앞에서 몸소 보여주고 있었다.
멤버 한 명 한 명이 환하게 타오르는 불꽃이 되어 팬들에게 빛나고 있었다.
BTG라는 그룹이 언제까지 이어질지는 감히 예상할 수 없다.
내일이라도 없어질 수 있고, 혹은 멤버 누구 한 명이 100살이 될 때까지 이어질지도 모른다.
다만, 적어도 지금 이 순간만큼은 영원히 꺼지지 않을 듯 맹렬하게 타오르고 있었다.
잠실종합경기장을 가득 메운 객석을 찬란하게 빛내는 응원 봉의 행렬이 그에 화답했다.
텅 비어 있는 잠실종합경기장 위 밤하늘로 커다란 불꽃이 수놓아졌다.
그리고 그 밑에서 어떤 것보다 더 빛나는 BTG라는 스타.
추억에 잠겨 있던 성현이 옆을 돌아보는데, 서지현을 비롯한 멤버들이 모두 말없이 무대 위 BTG의 뒷모습을 쳐다보고 있었다.
가수로서 자신들이 걷고 싶은 길, 그 길을 BTG가 걸어가고 있었다.
***
모든 공연이 끝난 후의 대기실.
BTG 멤버들은 왁자지껄 떠들며 대기실로 하나둘 입성했다.
모두 옷과 머리가 흠뻑 젖은 채였다.
다들 약속한 것처럼 소파에 털썩 앉았다.
정확히는 다리가 후들거려 주저앉았다는 표현이 더 맞았다.
멤버들이 자리를 잡고 앉자 매니저가 물과 마른 수건을 가져다주었다.
“빡셌다.”
B가 머리에 두른 반다나를 벗으며 눈을 감았다.
B 말고 다른 멤버들 역시 조용히 동감했다.
항상 에너지가 넘치던 다른 때와는 달리 모두 조용히 땀을 닦거나 물을 마셨다.
그만큼 온 힘을 무대 위에서 쏟아내며 공연을 끝낸 것이다.
똑똑-
그때 대기실 문이 열리고 매니저와 함께 성현과 성현의 일행이 들어왔다.
“얘기 끝나면 전화해.”
매니저는 그 말만 남긴 채 그대로 대기실을 나갔다.
대기실에는 성현 일행과 BTG 멤버들만 남았다.
“공연 너무 잘 봤어요. 프로듀서로서 많은 자극 받고 갑니다.”
성현의 말에 소파에 널브러져 있던 RN이 간신히 몸을 일으켰다.
성현이 다가가자 두 사람은 주먹 인사를 나눴다.
다른 멤버들도 힘이 많이 빠진 목소리로 고맙다는 말을 했다.
“우리가 이런 아티스트다! 라고 보여주려고 모셨어요. 무대 밑 BTG의 모습을 보셨으면 무대 위의 모습도 봐야죠.”
RN은 씨익 웃으며 자신들의 작전이 통한 것 같다고 즐거워했다.
창민은 성현을 보면서 선전포고하듯이 말했다.
“이제 콘서트도 끝났겠다 성현씨 무대에 백 퍼센트 집중할게요.”
그 말이 끝나자마자 다른 멤버들 역시 성현의 시간은 이제 자신들 것이라며 장난을 쳤다.
“혹시 콘서트 끝나고 스케줄 있나요?”
성현은 그 말을 듣고 웃으며 물었다.
쇠뿔도 단김에 빼라는 말이 있듯, 성현 역시 더 이상 시간을 끌 생각은 없었다.
“딱히 없는데 왜요?”
원하는 멤버들끼리 모여서 뒤풀이를 하기는 하지만, 오늘은 정해진 것이 없었다.
콘서트 당일은 다들 진이 빠져서 혼자 조용히 쉬는 것을 원하기도 했고 말이다.
“그럼 지금 바로 일정 정리를 하는 게 좋을 것 같아서요.”
성현의 말에 BTG 멤버들 몇몇의 눈이 동그랗게 커졌다.
그중 맏형인 서진이 읏차, 소리를 내며 소파에 바로 앉았다.
“사아알짝 힘들긴 한데, 알겠습니다. 이런 게 바로 월드스타의 숙명이죠.”
서진의 너스레에 멤버들은 힘이 없어 피식거리며 웃었다.
성현은 BTG 멤버들을 잠시 걱정스레 둘러본 후에 살짝 비켜섰다.
“저희 멤버들이 BTG 여러분들한테 할 말이 있다고 하는데 그것만 들어주시겠어요?”
“물론이죠. 할 말이 뭔데요?”
BTG 멤버들은 그 말에 성현 뒤로 서 있는 일행들을 쳐다보았다.
서지현이 결연한 표정으로 나서서 입을 뗐다.
“오늘 선배님들 무대 보고 정말 많이 배웠습니다. 저희도 선배님들 뒤를 이어 한국을 대표하는 가수가 되기 위해 정말 정말 열심히 연습할게요.”
서지현의 말에 작은 환호가 들려왔다.
응원한다는 BTG의 말의 뒤로 릴리의 각오도 이어졌다.
“선배님들께서 이런 좋은 무대 보여주신 거 절대 후회 안 하시게 좋은 무대 좋은 곡으로 보답해서 언젠가 저희 콘서트에도 꼭 초대해드릴게요.”
“릴리! 기대할게요!”
“헉, 뭐야. 진짜 릴리였어요? 나 구독자예요!”
릴리의 모습에 BTG 멤버들은 이제야 그녀를 알아차린 듯 아는 척을 해오기도 했다.
릴리는 한차례 공연을 보고 난 뒤, 긴장이 많이 가셨는지 고맙다는 인사를 전하기도 했다.
서지현을 비롯한 멤버들은 오늘 대규모의 공연을 보고 깨달은 게 많았다.
게다가 오늘 무대는 더욱 더 특별했다.
글로벌 스타 BTG의 무대였기에 많은 자극을 받을 수 있었다.
공연 내내 일행들은 팬들처럼 함께 웃고, 울면서 BTG가 전하는 감동을 몸소 느꼈다.
5만명 이상을 수용하는 잠실종합운동장 주경기장 무대.
그 위에서 BTG가 어떤 식으로 공연하고 팬들과 소통하는지 눈으로 직접 확인할 수도 있었다.
“저도 무대 하나하나에 최선을 다하시고 진심을 다하시는 모습 보고 정말 많이 반성했고 자극 많이 받았어요. 앞으로 더욱 노력하는 가수가 되겠습니다.”
문희진은 본래의 페이스를 되찾아 차분하게 오늘 초대에 대한 고마움을 전했다.
그리고 주선아가 나섰다.
대기실에 들어오기 전까지 BTG 멤버들의 얼굴을 못 볼 거 같다던 사람치고는 멀쩡한 모습.
물론 양볼이 조금 붉어져 있었다.
“앞으로 잘 부탁드립니다!”
서지현을 비롯한 멤버들은 처음 대기실에 들렀을 때와는 사뭇 달랐다.
아까와는 다르게 결연한 표정을 지으며 가수로서 마음을 다잡았다.
이를 지켜보는 성현은 뿌듯함을 느꼈다.
단순히 좋은 공연을 감상한 것에서 그치지 않기를 바랐다.
무언가 가수로서 뭔가를 느끼고 깨달을 수 있다면 더할 나위가 없었다.
그런데 지금 이들의 모습을 보고 있자니 알 수 있었다.
성현이 말하지 않아도 그들 스스로가 자극을 받고 더욱 의지를 다잡았다는 것을.
‘확실히 자신보다 월등한 실력의 사람을 직접 보는 것만큼 큰 자극이 되는 건 없지.’
그리고 갑자기 요하가 튀어나와 작게 덧붙였다.
“저도 조만간 더비기너 형들이 피처링한 음원 나오는데 진짜 진짜 한가할 때 한 번만 들어봐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깨알같이 자기 음원 홍보를 하는 요하.
BTG의 멤버들은 그런 요하가 귀여워서 웃었다.
“저도 더 비기너 팬이에요! 꼭 들을게요!”
“와, 감사합니다!”
요하는 천군만마를 얻은 표정으로 꾸벅 허리를 숙였다.
“앞으로 가수 생활하면서 힘든 일도 많을 거고 포기하고 싶을 때도 있겠지만 혼자 안고 갈 생각 말고 힘들면 성현씨나 저희한테 언제든 연락해요.”
성현의 일행들이 건넨 인사에 대한 RN의 대답에 주선아의 입꼬리가 귀에 걸렸다.
“정말요?! 연락드려도 될까요?”
“서진이 형 관종이라 연락 오고 관심 가져주면 좋아하니까 저 형한텐 시도 때도 없이 연락해도 돼.”
그 반응에 옆에 있던 제이가 얼른 서진을 팔아넘겼다.
“부정 안 한다. 난 쿨하니까.”
서진의 농담에 어느덧 대기실의 분위기가 풀어졌다.
일행들은 조금 편안해진 마음으로 BTG 멤버들과 인사를 나누었다.
“그럼 먼저 들어가 보세요.”
성현이 자신의 일행들을 먼저 대기실에서 보냈다.
일행들은 아쉬워서 미련이 뚝뚝 떨어지는 눈으로 BTG 멤버들을 돌아보며 사라졌다.
대기실에 남은 BTG 멤버들은 모두 기진맥진한 표정이었다.
“진짜 괜찮겠어요? 다들 몸살이라도 걸릴 거 같은데.”
10분이면 끝날 것 같았지만, 그마저도 이들에게 무리가 아닐까.
괜히 분위기를 타고 오늘 일정 정리를 하자고 한 건 아닐까.
성현이 조심스럽게 물었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오히려 활기찼다.
“몸살 나면 기어서라도 해야죠. 하루빨리 천재 프로듀서님 곡 듣고 싶어요.”
제이는 힘든 와중에도 장난기를 버리지 못하고 말했다.
그때 눈을 감고 있던 B가 잠깐! 이라고 외치며 벌떡 일어났다.
“생각해보니 우리 그거 깜빡했다.”
그거?
성현이 의아해하는데.
B의 말에 앉아있던 멤버들이 아차 싶어서 벌떡 일어났다.
“저희 얘기는 그거 끝나고 하죠.”
창민은 후들거리는 다리를 이끌고 일어나며 성현에게 말했다.
“그게 뭔데 그래요?”
성현은 멤버들이 호들갑을 떨자 무슨 일인가 싶었다.
RN은 일단 따라오라며 성현을 데리고 나갔다.
그렇게 BTG 멤버들이 성현을 데리고 간 곳은 다시 무대였다.
은은한 조명 몇 개만 켜진 텅 빈 무대.
그 앞으로는 광할한 빈 객석이 펼쳐져 있었다.
“여긴 갑자기 왜요?”
이미 공연이 끝난 후, 객석에 있는 사람들까지 다 빠져나가고 없는 무대로 다시 오다니.
성현이 의아해서 묻는데, 멤버들은 아무 말도 해주지 않았다.
대신, 성현을 끌고 무대 가운데로 향했다.
성현은 멤버들을 따라 무대에 섰다.
아까와 달리 텅텅 비어있는 객석이 어둠 속에 끝 모르게 배치되어 있었다.
BTG 멤버들은 한 번 숨을 크게 들이마신 뒤에 쩌렁쩌렁하게 외쳤다.
“오늘도 우리 공연을 와주신 팬 여러분들 모두 감사드립니다.”
“사랑해요!! 집에 조심히 돌아가세요!”
“다음번에 더 좋은 무대로 찾아뵙겠습니다!”
“다음 생엔 제가 더 많이 사랑할게요!”
멤버들은 마이크도 없이 객석을 향해 외쳤다.
각자 팬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에 진심을 담아서.
성현은 곁에 서서 이 모습을 말없이 지켜보았다.
RN이 어느새 성현 옆으로 다가와 있었다.
“의식 같은 거예요. 항상 공연이 끝나면 이렇게 텅 빈 객석에 고맙다고 또 보자고 외쳐요.”
옆에서는 아직 못다 한 말이 많은 듯 멤버들이 함께 객석을 향해 뭐라고 외치고 있었다.
“이유가 있나요?”
“객석이 가득 차 있을 땐 그게 당연해 보이지만 이렇게 텅 빈 객석을 보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우릴 보러 왔는지, 이곳을 가득 메우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더 와닿거든요.”
성현의 물음에 RN이 깜깜한 객석을 가리키며 말했다.
“익숙함에 속아 소중함을 잃지 말라는 말이 있잖아요. 저희한테 가장 소중한 건 팬들이고 팬들의 사랑에 익숙해지지 말자는 의미로 매번 이런 의식을 하는 거예요.”
창민 역시 성현의 옆에 서서 말해주었다.
“언젠가 이곳을 가득 메울 수 없는 날이 올 수도 있겠지만 그래서 조금 두렵지만. 그날이 온다 해도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팬들의 사랑에 항상 감사해하고 더 멋진 무대를 보여주기 위해 노력하는 수밖에 없죠.”
‘저 높은 곳에 있으면서도 이렇게 노력하는구나.’
성현은 조용히 생각에 잠겼다.
글로벌 탑스타가 됐음에도 초심을 잃지 않기 위해 노력하는 방식.
그들의 시선 끝에는 항상 팬들이 있었다.
아직도 목이 터져라 객석을 향해 외치는 BTG의 모습을 성현은 말없이 지켜보았다.
하나도 빼놓지 않을 것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