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0화
갑자기 발걸음을 멈춘 주선아.
성현 다음으로 따라가고 있었기에 그 뒤를 따르던 일행들도 모두 멈춰 섰다.
“선아야, 괜찮아?”
“선아씨, 왜 그래요?”
일행들 모두 사색이 된 그녀의 표정을 살폈다.
앞서 가던 성현도 놀라서 주선아를 바라보았다.
주선아는 진지한 그들을 보며 굳은 표정으로 말했다.
“저 진짜 기절할 거 같아요. 긴장해서 숨 막혀.”
성현의 일행들만을 위한 특별 게이트에, 매니저의 마중까지.
견딜 수 없는 일들의 연속이었다.
게다가 이제 곧 BTG의 실물을 영접하게 된다니.
주선아는 이러다가 숨이 멎을 것 같다고 느꼈다.
숨이 턱하고 차오르자 더 이상 발걸음을 뗄 수가 없었던 것.
“…….”
성현은 뭐라 해줄 말이 없어서 침묵할 수밖에 없었다.
“선아야 집중해. 죽어도 오빠들 얼굴은 보고 죽어야지.”
문희진이 주선아보다 더욱 진지해져서 주선아의 어깨를 붙잡고 흔들었다.
“알겠어요, 언니. 노력해볼게요.”
주선아는 놀랍게도 문희진의 말에 괜찮아진 모양이었다.
천천히 심호흡을 하는 주선아의 모습.
곁에서 다른 멤버들이 그런 주선아를 응원해줬다.
“선아 네가 그러니까 나까지 숨이 안 쉬어지는 거 같잖아.”
“나도. 나도 숨 안 쉬어지는 거 같아요.”
주선아를 시작으로 다른 멤버들 모두 BTG를 만나는 것이 목전으로 다가오자 긴장하기 시작했다.
다들 숨이 안 쉬어진다며 복식호흡을 하질 않나, 서로를 격려해주고 있었다.
이 모습을 본 BTG 매니저는 일행이 귀엽다는 듯 웃으며 다시 걸음을 옮겼다.
매니저 일을 하면서 심심찮게 목격할 수 있는 일이었다.
성현과 일행은 서둘러 매니저의 뒤를 쫓아갔다.
“BTG도 같은 사람인데 뭘 그렇게 긴장해요.”
성현은 발걸음을 옮기며 너무 긴장한 듯한 멤버들에게 웃으며 말했다.
“성현씨. 아까도 말했지만 BTG는 신계에 있어요. 우리 같은 미천한 인간들과는 종부터가 다르다구요.”
그 말에 문희진이 정색하며 대답했다.
말도 안 되는 소리라는 듯이.
“......”
성현은 문희진의 이런 모습이 도무지 적응되지 않았다.
그냥 조용히 걸어가기로 했다.
이내 매니저가 한 방문 앞에 멈추더니 성현과 일행을 돌아봤다.
“숨 쉬는 거 잊으면 안 돼요.”
장난스럽게 말한 매니저는 그 말을 끝으로 똑똑, 노크를 했다.
“들어오세요!”
안에서 들어오는 익숙한 목소리.
그 한 마디에 일행들이 헉, 하고 숨을 집어삼켰다.
대기실 문을 열고 서지현을 비롯한 일행들 모두가 숨을 죽이고 대기실로 들어갔다.
넓은 대기실 안은 여러 스탭들로 정신이 없었다.
일행들은 조심히 그 안으로 들어갔다.
BTG 멤버들은 각각 의자에 앉아 메이크업을 받고 있었다.
멤버들은 거울 너머 성현의 일행을 보고는 환하게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미안해요. 지금 메이크업 중이라.”
RN은 자리에 앉아 인사하는 것이 미안하다는 듯이 말했다.
성현은 괜찮다며 몸을 틀었다.
그러고선 말없이 자신의 뒤로 주르륵 서 있는 멤버들을 인사시켰다.
“다들 초대권 주셔서 고맙다고 감사 인사드리고 싶다 해서요.”
성현의 말에도 일행들은 꿀 먹은 벙어리가 된 듯이 말이 없었다.
굳어버린 멤버들에게 어서 인사하라며 눈빛을 보내도 요지부동이었다.
BTG를 볼 생각에 흥분해있던 멤버들은 모두 그대로 얼어버린 채였다.
“인사 안 해요?”
성현은 멤버들이 입을 뗄 생각조차 안 하자 조금 당황해서 물었다.
그 말에 지금까지 누나들 뒤로 밀려나 있던 요하가 앞으로 튀어나왔다.
아무래도 자신 말고는 여기서 입을 열 사람이 없어 보였다.
“안녕하십니까. 가수 지망생 김요하입니다!”
요하는 씩씩하게 말하며 BTG 멤버들에게 허리를 숙여 인사했다.
BTG 멤버들은 요하가 귀여워 웃음을 터뜨렸다.
“야 정훈아. 네 어릴 때 생각난다. 너 딱 저만했을 때 회사 오지 않았나.”
B가 아련하다는 듯이 허공을 보며 말했다.
그 말에 BTG 멤버들은 하나, 둘씩 요하에게 흥미가 생겼는지 말을 걸었다.
“그러네. 요하 학생 몇 살이에요?”
“저 올해 17살입니다!”
“나이도 똑같네. 보니까 생긴 것도 비슷하고. 이거 완전 정훈이 동생 아니냐?”
서진이 거울을 통해 요하의 얼굴을 기웃거리며 외쳤다.
그 말에 건수를 잡았다는 듯 멤버들이 달려들었다.
“야 진정훈. 솔직히 말해. 쟤 너 숨겨진 동생이지?”
“아 뭔 소리야, 또.”
정훈은 언제나처럼 형들이 놀리자 귀찮다는 듯 대답했다.
그 소란에 주선아가 용기를 내서 말을 꺼냈다.
“만, 만나 뵙게 돼서 정말 영광입니다! 오늘 초대해주셔서 정말 너무너무 감사합니다!”
주선아는 순간 긴장해서 대기실이 떠나갈 듯 소리를 지르고 말았다.
그 엄청난 성량에 멤버들 모두 깜짝 놀라 거울 너머 그녀에게 주목했다.
그 시선에 주선아는 순식간에 얼굴이 빨개졌다.
“죄송합니다!”
주선아는 허리를 90도로 숙이고 사과한 뒤 곧장 대기실 나가버렸다.
대기실에 한동안 정적이 나돌았다.
그리고 제이를 시작으로 멤버들 모두 배를 잡고 웃기 시작했다.
가끔 팬미팅에서 저런 팬들이 있었다.
그럼에도 대기실에서 이런 반응은 꽤 신선했던 터라 멤버들은 간만에 제대로 웃음을 터뜨리는 중이었다.
“너무 긴장해서 그런가 봐요. 엄청 팬이라 했거든요.”
서지현이 사색이 되어서 주선아를 잡으러 대기실을 떠났다.
성현이 주선아를 대신해서 BTG 멤버들에게 그녀의 속마음을 대신 전했다.
한참 웃던 멤버들 중에 리더인 RN이 알겠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럴 수도 있죠. 아무래도 인사는 콘서트 끝나고 제대로 다시 하는 게 좋겠네요.”
“그래도 될까요?”
그 말에 성현이 반색했다.
아무래도 석상처럼 굳어진 문희진이나, 마치 노려볼 듯이 멤버들을 보고 있는 릴리를 보고 있자니 멀쩡하게 인사를 할 수 없을 것 같았다.
“매니저 형한테 말해 놓을 테니까 그때 다시 인사시켜 줘요. 우리도 지금은 정신이 없어서.”
창민의 말대로 5만 명이 넘는 관객이 이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 앞에서 3시간 가까운 공연을 준비해야 했다.
그 세 시간의 공연 직전이었다.
스탭을 비롯해 멤버들 모두 정신이 없었다.
‘그럼에도 전혀 긴장하지 않은 모습 같긴 하지만.’
성현은 정신이 없다는 창민의 말과 다르게 여유로운 미소를 짓고 있는 멤버들을 살폈다.
저쪽 한 편에서는 아직도 주선아의 엄청난 성량을 가지고 이야기를 하고 있었으니까.
역시 프로는 프로다, 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장난스러운 모습의 BTG 멤버들이지만, 이 모습에 속을 수 없었다.
곧 무대에 올라 놀랍도록 프로페셔널한 가수의 면모를 보여줄 것이라는 걸 성현은 알았다.
“그럼 공연 끝나고 다시 인사드릴게요.”
“네. 친구분들도 잘 가요.”
창민이 그렇게 말하며 릴리, 문희진을 향해 눈웃음을 치며 웃었다.
두 여자는 모두 얼굴이 빨개져서는 서둘러 대기실에서 벗어났다.
***
성현과 일행은 초대받은 좌석에 앉았다.
초대석답게 무대가 정면으로 보이는 꽤 좋은 자리였다.
그들 주변으로 응원 봉을 든 팬들이 BTG의 노래를 부르며 분위기를 띄우고 있었다.
“어서 와! BTG는 처음이지! 준비가 됐다면 널 부를게!”
서지현을 비롯한 멤버들은 모두 일어나 BTG의 노래를 따라부르며 분위기를 띄웠다.
주선아뿐만이 아니라 다른 멤버들까지 응원봉을 들고 있었다.
팟.
공연장에 모든 조명이 꺼졌다.
그 신호에 객석에 있는 사람들 모두 공연장이 떠나가도록 고함을 질렀다.
마침내 BTG의 콘서트가 시작된 것이다.
‘어떤 무대를 준비했을까.’
성현 역시 BTG의 무대는 영상으로 많이 접해 왔다.
하지만 콘서트에 온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BTG 정도 되는 글로벌 스타들은 무대를 어떻게 꾸밀지가 궁금했다.
‘하나도 빠짐없이 눈에 담아 와야 합니다?’
‘이번에 저희 빼놓은 몫은 나중에 톡톡히 치르게 해드리죠.’
순간, 오늘 공연에 스케줄 상 못 온 서자명과 주영준이 했던 말이 떠올랐다.
글로벌 스타의 한국 최대 규모 콘서트 무대 구성을 보지 못하게 된 서자명은 이를 갈았다.
주영준 역시 빽빽한 스케줄 때문에 간만의 휴가를 즐기지 못하게 되어서 많이 아쉬워했다.
두 사람은 네 멤버의 걸그룹 데뷔가 임박해 있어서 많이 바빴다.
BTG 콘서트가 있는 오늘은 조은별 소속사에 가서 하루종일 미팅이 있다고 했다.
‘최대한 이야기해줘야겠지.’
성현은 서서히 밝아지는 중앙 메인 무대를 보면서 생각했다.
어두운 공연장.
보랏빛의 조명만 별처럼 빛나고 있었다.
이내 강력한 드럼 비트와 함께 흰 망토를 두른 백댄서들이 점프하듯 무대에 등장했다.
폭죽과 연기가 동시에 터지며 무대를 채웠다.
백댄서들이 드럼 비트에 맞춰 무대 사이드로 빠졌다.
그러자 그들 뒤로 테이블에 걸터앉아있는 BTS 멤버들이 보였다.
검은 양복을 입고 지팡이를 든 RN.
그가 테이블에서 일어나 바닥에 지팡이를 내려치자, 반주가 시작됐다.
“한잔 들이켜. 그냥 마시고 취해. 마치 디오니소스처럼.”
RN의 첫소절을 시작으로 첫 곡이 시작됐다.
팬들은 환호성을 지르고 분위기는 뜨거워졌다.
“쭉 마셔 마셔! 술에 취해 예술에 취해 노래 불러 에헤야!”
준기의 랩으로 첫 곡이 끝났다.
멤버들은 모두 동시에 의자에 앉으며 퍼포먼스를 마무리했다.
“춤을 저렇게 추면서 라이브가 저렇게 탄탄할 수도 있구나......”
서지현을 비롯한 멤버들 BTG의 팬인 동시에 가수를 꿈꾸는 사람들이었다.
그러다보니 자연스럽게 그들의 퍼포먼스와 보컬이 눈에 들어오는 듯했다.
그리고 이는 성현 역시 마찬가지.
성현은 BTG의 무대를 즐기면서도 그들의 퍼포먼스와 무대 연출들을 놓치지 않고 체크 했다.
‘역시 서자명씨도 데려올 걸 그랬나.’
무대 연출만큼은 그 누구한테 뒤지지 않는 사람.
서자명 자신도 무대를 꾸미는 것에 열정을 지니고 있기도 했다.
성현은 그가 이 자리에 없는 것이 조금 아쉽게 느껴졌다.
그리고 이어지는 두 번째 무대.
의자에 앉아있던 BTG 멤버들 모두 동시에 뛰어내렸다.
그들은 서 있었던 원형 무대 반대편에 위치한 사각형 무대로 걸어갔다.
사각형 무대로 이어지는 좁은 통로를 지나자, 통로 근처에 있던 팬들의 환호성이 커졌다.
“not tomorrow 언젠가 꽃도 지지만 그날은 내일이 아니지.”
B의 중저음 랩을 시작으로 BTG의 두 번째 곡이 시작됐다.
기다렸던 노래가 시작되자 팬들은 격한 환호성으로 그들을 맞이했다.
그리고 마침내 두 번째 곡이 끝났을 때, BTG 멤버들이 숨을 고르며 물을 마셨다.
막간의 쉬는 시간, 멤버들은 콘서트장에 모인 팬들과 인사를 나눴다.
“우리 신나게 소리 질러볼까요?!”
RN의 말에 팬들 모두 미친 듯이 환호를 질렀다.
“둘, 셋 하나!”
“안녕하세요 BTG입니다!”
BTG 멤버들 단체 인사를 시작으로 각자 개인의 인사가 이어졌다.
모든 인사가 끝나자 멤버들의 입으로 콘서트의 시작을 알렸다.
이후로도 팬들의 열광적인 분위기 속, 열정적으로 준비한 무대를 선보였다.
‘압도적인 퍼포먼스와 라이브야.’
왜 다들 BTG에 열광하는 건지.
왜 평론가들이 그들을 향한 찬사를 끊임없이 하는지.
성현은 두 눈으로 직접 확인할 수 있었다.
‘이 무대야말로 화려함의 끝판왕이 아닐까.’
이번 BTG의 무대를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화려함, 그 자체였다.
멤버 한 명 한 명이 다채로운 색깔의 한 부분을 담당했고, 모든 멤버들이 하나의 커다란 명화를 그리는 느낌.
모든 무대 하나하나가 화사한 한 폭의 그림이 되었다.
어느 무대 하나도 색깔을 아낌없이 쏟아붓고 있었다.
이는 BTG와도 너무나 잘 어울렸다.
그리고 성현은 자연스럽게 누군가의 무대가 머릿속에 그려졌다.
그 생각에 자신도 모르게 주먹을 불끈 쥐었다.
놀라움, 감탄.
이런 대단한 무대를 직시한 성현에게 자연스럽게 찾아온 감정.
하지만, 성현에게만은 그보다 앞선 감정이 있었다.
‘천소울씨의 무대도 이렇게 화려하면 어떨까. 우리가 함께 그 무대에 선다면 그때 난 이보다 더 좋은 무대를 만들 수 있을까.’
부러움. 그리고 승부욕.
성현은 얼마 안 남은 오디션의 엔딩을 떠올렸다.
‘오디션이 끝나기 전, 꼭 만들고 싶어. 이것보다 더 좋은 무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