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 같은 프로듀서는 없었다-239화 (239/273)

239화

연습실에서 나온 성현은 곧장 자신의 사무실로 향했다.

뒤에서는 아직 BTG 콘서트에 가게 된 멤버들의 비명이 들려오고 있었다.

사무실로 향하는 길에 영상통화 어플을 켜고는 어디론가 전화를 걸었다.

통화음이 조금 이어지다 이내 화면에 천소울과 임하나의 모습이 떴다.

“너무해! 나만 빼놓고 BTG 콘서트 데려가고!!”

통화가 연결되자마자 임하나는 성현에게 따지듯 소리를 질렀다.

성현은 그 엄청난 성량에 자신도 모르게 귀를 막았다.

“하나씨는 성량이 더 좋아졌네요. 제이지가 제대로 트레이닝 시켜줬나 봐요.”

성현의 농담에 임하나는 씩씩거리던 표정을 풀었다.

“그, 그래요? 흠. 실력이 좀 늘긴 했죠.”

천소울이 그 모습을 보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성현은 미국에서도 여전한 두 사람의 모습을 보며 흐뭇하게 웃었다.

성현은 짧게 두 사람에게 보고를 마쳤다.

BTG와 정식으로 파트너쉽을 맺어 공연을 준비하게 되었다고.

두 사람은 RN이 전세기를 끌고 미국에 왔을 때부터 짐작하고 있었다.

별다른 말 없이 고개를 끄덕일 뿐이었다.

성현은 자신의 근황 얘기를 마치고 천소울에게 물었다.

“천소울씨는 연습 잘하고 있어요? 아직도 음악 듣기 중?”

“그건 진작 끝났고 어제 리안나 공연 다녀왔습니다.”

천소울은 담담히 자신의 근황을 전했다.

그 말에 반응한 것은 임하나였다.

“뭐라구요? 리안나 공연 뉴욕에서 했잖아요.”

“네. 근데요?”

“나 뉴욕에 있잖아.”

“그게 왜요?”

태연한 천소울의 말에 임하나는 말을 잃었다.

몇 번 더 뻐끔거리면서 무언가 말을 하려고 했던 임하나는 체념했다는 듯이 말했다.

“......아니다. 됐어요.”

임하나는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천소울은 그런 임하나 모습을 보며 자기가 뭔가를 잘못한 건가 싶어 성현을 봤다.

작은 화면 속 성현은 자신 역시 모르겠다는 듯 어깨를 으쓱했다.

“임하나씨는 제이지랑 연습 잘돼갑니까?”

천소울은 뭔가 문제인지 모르지만, 일단 임하나에게 먼저 말을 걸어보기로 했다.

그런데 임하나의 반응이 이상했다.

“네.”

단답형으로 말하고 입을 다물어버리는 임하나.

임하나의 성격상 제이지랑 어떤 연습을 어떻게 하는지 늘어놓아야 할 터였다.

그런데 오늘따라 임하나의 반응이 평소와 달랐다.

천소울이 다시 성현을 바라봤다.

이게 대체 무슨 일이냐는 듯이.

성현은 자신도 모르겠다는 듯 또 어깨를 으쓱할 뿐이었다.

“무슨 연습하는데요?”

“보컬이랑 춤이요.”

임하나는 다시 또 단답형으로 대답했다.

천소울은 애써 붙인 말에도 퉁명스러운 대답이 돌아오자 입을 다물었다.

이쯤 되니 그 역시 기분이 상한 눈치였다.

그도 더는 묻지 않고 팔짱을 낀 채 모니터에서 몸을 멀찍이 떨어뜨렸다.

모니터상으로 두 사람의 모습을 지켜보던 성현이 생각에 잠겼다.

‘역시. 경쟁상대로 보고 서로 경계하는 건가. 하긴...... 이번엔 팀이 아니라 개인으로 등락이 결정되니까.’

둘은 이제 단 10명만이 남은 가수 참가자였다.

이제는 팀이 아니었다.

서로가 서로의 경쟁상대가 된 것.

이전 같았으면 보러 간 공연이나 하고 있는 연습에 대한 이야기가 자유롭게 오고 갔을 것이다.

자신들의 행적을 함구하는 두 사람을 보며 오디션의 살벌함을 다시금 느낄 수 있었다.

그 뒤로도 묵묵히 입을 다물고 있는 두 사람.

성현이 둘의 눈치를 보다가 말했다.

“통화는 이쯤 할까요? 다들 연습 때문에 바쁘실 거 같은데.”

성현은 여기서 더 얘길 해봤자 득이 될 것이 없다고 판단했다.

서로 연습에 대한 이야기는 하지 않을 것 같았으니까.

이만 통화를 마무리 지으려는데 두 사람 다 말이 없었다.

임하나와 천소울은 말없이 서로 고개만 끄덕였다.

“그럼 또 연락해요. 성.현.씨.”

임하나는 천소울에게는 인사조차 하지 않고 통화를 종료해버렸다.

이에 천소울 역시 불쾌한 표정으로 통화를 끊어 버렸다.

‘같은 가수 참가자라 그런가. 경계가 좀 심하네.’

미국에 있을 때와는 완전히 상반된 둘의 분위기에 괜찮을지 염려가 될 지경이었다.

고민하던 순간, 성현의 방으로 직원 하나가 들어왔다.

“피디님. 대표님께서 앨범 컨셉 회의 들어가자고 하십니다.”

그 말에 성현이 놀라서 시계를 확인했다.

“벌써 시간이 그렇게 됐어요? 지금 갈게요.”

어느새 점심 시간이 훌쩍 지나 있었다.

성현은 손짓으로 직원을 내보내고, 회의 때 필요한 서류철을 챙겼다.

‘아직 BTG 곡 작업도 시작 못 했는데. 오늘은 밤을 새워야 하나.’

머릿속으로 스케줄을 정리하는 성현은 당장 있을 컨셉 회의안을 떠올렸다.

오래 걸리지는 않을 듯싶었다.

성현은 휴대폰을 챙겨 급하게 사무실을 나갔다.

***

BTG의 콘서트 당일이 되었다.

서울 시내 버스와 지하철이 사람들로 북적거렸다.

이들이 하나같이 향하는 곳은 모두 같았다.

바로 BTG의 콘서트가 열리는 잠실종합운동장 주 경기장이었다.

실로 어마어마한 행렬이었다.

“진짜 꽉 막혔네. 이럴 줄 알고 여유 있게 출발한다고 했는데 벌써 막힐 줄이야.”

릴리가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차창 밖으로 움직일 생각이 없는 차들이 도로를 가득 메우고 있었다.

성현을 비롯한 멤버들은 다 같이 대형 벤을 타고 이동 중이었다.

‘더 넥스트 슈퍼스타’ 오디션을 통해 대중들에게 얼굴이 너무 많이 알려진 탓이었다.

일반 대중교통을 이용하면, 콘서트를 보러 가는 사람들 사이에 소요가 일까 봐 이 방법을 택했다.

그런데 예상보다 더욱 차가 막히고 있었다.

“아직 공연 시작하려면 한참 남지 않았어요?”

요하는 벌써부터 이렇게 차가 막히는 것을 신기해했다.

다시 한번 티켓에 적힌 공연 시간을 확인해봐도 정확히 6:30 p.m이라고 적혀 있었다.

지금 시각은 오후 두 시.

아직 공연 시작 전까지는 네 시간이 넘게 남았다.

그런데도 벌써부터 차가 이렇게나 막히고 있었다.

도로교통상황을 들어봐도, 이 일대가 정체 구간이라는 것은 변하지 않았다.

“원래 이 정도로 막히진 않는데. BTG라서 더 막히는 것 같아.”

성현 역시 대비를 한다고 했는데도 막히는 도로에 답답해하며 말했다.

“나중에 저도 콘서트 열면 차 이렇게 막히면 좋겠어요.”

“그래. 그땐 서울 전체를 꽉 막히게 만들어야지.”

발칙한 요하의 말에 멤버들 사이에 흐르던 지루함이 조금 가셨다.

성현은 할 수 있을 거라며 요하의 머리를 헝클였다.

성현의 말에 요하는 상상만 해도 즐거운 듯 웃었다.

옆에 앉아있던 주선아는 그 모습을 보며 혀를 찼다.

“김요하. 넌 네가 BTG 오빠들을 이길 수 있을 거라고 보니?”

“왜 못 이겨? 성현이 형이 할 수 있대잖아.”

요하에게 성현의 말은 곧 법이었다.

성현의 말대로 이루어지지 않은 것이 없었기에 더욱 그랬다.

“요하야. 원래 팔은 안으로 굽는 거야. BTG는 범접할 수 없는 신계에 있는 분들이고 요하 넌 인간계에 있잖아. 어떻게 인간이 신계로 넘어가겠어?”

그런데 주선아뿐만이 아니었다.

평소에 별다른 말이 없는 문희진까지 주선아를 거들고 나섰다.

마치 선생님이 자신의 학생을 타이르는 듯한 말투였다.

“맞아. 네가 무슨 수로?”

문희진의 말을 등에 업고 의기양양해진 주선아가 콧방귀를 끼면서 말했다.

그렇게 말하는 주선아의 품 안에는 겨우겨우 구매했다는 응원봉이 고이 안겨 있었다.

요하는 문희진의 차분한 말투에 뭐라 말도 못 하고 성현을 쳐다봤다.

도와달라는 그 눈빛에도 성현은 재밌다는 듯 웃어 보일 뿐이었다.

아직 성현의 귀에는 그날의 비명 소리가 생생했다.

BTG 콘서트 티켓을 전달한 날, 연습실이 떠나가도록 소리 지르고 울부짖었던 네 사람이었다.

성현은 도저히 저 열정을 이길 자신은 없었다.

“지현이 누나. 누가 뭐라 말 좀 해줘요.”

요하는 이번에는 서지현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서지현은 휴대폰으로 뭔가를 읽느라 정신이 없었다.

“뭘 그렇게 봐요?”

“BTG 콘서트 관련 기사요.”

서지현이 기사 내용을 성현에게 보여주며 말했다.

한없이 진지한 얼굴의 서지현은 기사 내용을 외울 듯이 들여다보는 중이었다.

[BTG 콘서트를 보기 위해 한국에 방문한 외국인만 18만 7천 명 넘어]

[BTG로 인한 경제효과만 수조 원. 문화에 이어 경제에서도 효자 아이돌!]

“유입된 외국인 방문객들이 항공, 교통, 숙박, 외식에만 또 엄청난 돈을 쓰고 간대요. BTG 투어가 있을 정도로 BTG와 관련된 명소들에 들렀다 가는 건 덤이고.”

서지현은 마치 브리핑을 하듯이 정확한 발음으로 그렇게 말했다.

실제로 BTG로 인한 경제 효과는 엄청나다고 들었다.

한국 여행을 결심하거나 한국에 대한 이미지가 좋아진 외국인들의 수가 상당했다.

그 일례로 대학들에서 한국어를 가르치는 강의도 늘고 있었고, 한국에서 직업을 갖길 원하는 외국인 수도 점차 늘어나는 추세였다.

‘이 모든 게 한 그룹이 해낸 일이라니.’

성현은 새삼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BTG가 가지고 있는 위상과 그들이 한국에 미치는 영향.

한국 내 BTG는 역사에 남을 기록들을 세우고 있는 중이었다.

심지어는 한국을 넘어 세계에서조차, 그 누구도 넘볼 수 없는 1인자의 자리에 올라 있었다.

“요하 열심히 해야겠다. BTG 넘으려면.”

성현의 말에 요하는 진지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다른 사람들도 아니고 음악밖에 모르던 멤버들이 하나같이 저러니 실감이 날 수밖에 없었다.

요하 또한 BTG가 가지고 있는 한국 내 위상, 한국을 넘어선 국제적인 위상을 다시금 느낄 수 있었다.

“오늘 콘서트 잘 보고, 배울 수 있는 점이 있다면 다 배울 거예요.”

요하의 진지한 말에 멤버들은 모두 숙연해졌다.

그저 팬으로서가 아니라 가수 대 가수로서 보는 공연.

이미 전 세계적으로 어마어마한 성공을 거둔 선배 가수 BTG의 모습을 면밀하게 보는 것만으로도 이들에게 큰 공부가 될 것이다.

‘두 달 후엔 이곳 서울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모일 수 있을까.’

창밖을 보던 성현은 가만히 그려봤다.

앞으로 두 달 후, 한국에서 열릴 수 있는 더 큰 규모의 무대를.

***

잠실종합운동장 주 경기장.

성현 일행이 이곳 주차장에 무사히 도착했을 때는 이미 팬들이 입장을 시작한 시간이었다.

“미리 본인확인 마치신 분들부터 입장 가능합니다!”

“네 분씩 열을 이뤄서 차례대로 입장해주세요!”

잠실종합운동장 앞은 콘서트를 보러 온 팬들.

아쉽게도 티켓팅에 실패해서 굿즈를 사러 온 팬들.

그리고 아쉬운 마음에 구경하러 온 팬들까지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었다.

성현의 팀은 벤에서 내려 최대한 얼굴을 가린 채로 VIP 출입구 쪽으로 향했다.

어젯밤에 RN이 성현에게 연락해 그쪽으로 입장하라고 미리 일러두었다.

출입구로 향하며 요하가 고개를 두리번거렸다.

“여기가 한국인지 외국인지 헷갈릴 정도로 외국인이 엄청 많아요.”

“K-POP의 한국화는 한국인들이 제일 모른다더니. 그 말이 사실이었어.”

요하와 서지현은 연신 감탄사를 뱉었다.

종합운동장 주경기장 앞에 모인 다양한 인종과 연령대의 사람들.

이들 모두가 한국의 아이돌 BTG를 보러 온 것이다.

RN이 일러준 게이트 쪽으로 가자, 미리 기다리고 있던 BTG의 매니저가 성현의 일행을 반겼다.

“반가워요. BTG 매니저 김수환입니다.”

매니저는 성현을 비롯한 멤버들에게 자신의 명함을 하나씩 건네며 인사했다.

이내 그들을 관계자들만 들어가는 곳으로 안내했다.

“들어가면 정신없으니까 저 잘 따라오셔야 해요.”

매니저는 몇 번이고 일행들에게 당부를 하더니 출입문을 열었다.

문을 열자마자 왁자한 소리가 흘러나왔다.

매니저의 뒤를 쫓아가는데 복도 전체가 시장판인 것 같았다.

여기저기 고함을 지르며 뛰어다니는 스탭들.

장비를 옮기며 마지막 점검을 하는 스탭들.

그 사이, 매니저를 따라가느라 일행들은 정신이 없었다.

그러다 갑자기 잘 따라오던 주선아가 얼굴이 하얗게 질려 발걸음을 멈췄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