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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같은 프로듀서는 없었다-238화 (238/273)

238화

술자리는 어느덧 더욱 무르익었다.

꽤나 시간이 지난 터라, 성현을 비롯해 BTG 멤버들의 얼굴에 취기가 돌았다.

테이블에 놓여 있던 술병들에 술이 많이 사라져 있었다.

친해지는 데에는 역시 술이 최고인 듯, 어색함이 맴돌던 것과 다르게 어느새 성현에게도 마음껏 장난치고 치댈 정도로 친해진 BTG 멤버들이었다.

“아버지가 한국대 교수님이셨구나. 그럼 지금은 아버지랑 화해하신 거예요?”

“네. ‘더 넥스트 슈퍼스타’ 하면서,”

지잉-

BTG와 이야기를 나누던 성현의 휴대폰에 문자가 왔다.

“잠시만요.”

성현이 휴대폰을 확인하는데 발신인은 이주성이었다.

성현은 얼른 문자를 확인했다.

-이주성: 미팅 아직 안 끝났어?

‘아버지도 양반은 못 되시네.’

성현은 때맞춰 이주성에게서 온 문자를 보며 피식 웃었다.

몇 시나 되었나 싶어서 휴대폰 시간을 확인하는데 어느덧 12시가 넘어가고 있었다.

성현은 곧장 답장을 입력했다.

-성현: 곧 가요.

메시지를 보낸 성현은 휴대폰을 넣고 고개를 들었다.

앞에 둘러 앉아있는 BTG 멤버들을 살펴보았다.

피곤한 기색 하나 없이 아직도 팔팔하게 얘기를 나누고 있는 멤버들의 모습.

다들 파티를 끝낼 생각이 없어 보였다.

성현은 자신을 위해 만들어 준 파티에서 먼저 가는 것이 미안했다.

하지만, 다음 날 스케줄 때문에라도 슬슬 자리를 떠야 했다.

“미안해요. 시간도 너무 늦었고 이제 슬슬 들어가 봐야 할 것 같아요.”

성현의 말에 멤버들은 모두 시간을 확인하고 놀랐다.

이렇게 시간이 많이 흘렀을지 몰랐기 때문.

“시간이 벌써 이렇게 됐어? 미안해요. 피곤하실 텐데 너무 오래 붙잡았네요.”

맏형인 서진이 놀라서 미안하다는 어조로 말했다.

“우린 더 놀다 가자. 나 아직 쌩쌩한데.”

“아직 술도 많이 남았는데 그렇게 하세요. 전 다음 날 스케줄도 있고 해서 먼저 가보겠습니다.”

성현이 일어나며 말하자 BTG 멤버들 모두 아쉽다며 성현을 붙잡고 싶어 했다.

“우리도 이만 파하자. 콘서트 코앞이잖아. 연습해야지.”

RN이 성현을 따라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그 말에 멤버들은 모두 아쉬워하면서도 그를 따라서 모두 자리에서 일어났다.

역시 리더는 아무나 하는 게 아닌 듯했다.

기가 막힌 통솔력으로 멤버들 모두를 일으킨 RN은 솔선수범해서 주변을 대충 정리했다.

“오늘 즐거웠어요. 간만에 원 없이 음악 얘기했네요.”

“RN 형 말대로 진짜 음악에 조예가 엄청 깊네요. 많이 배워갑니다.”

창민과 정훈이 성현에게 아쉬움 가득한 작별 인사를 건넸다.

성현은 그들에게 웃어주며 화답했다.

“저야말로 여러분들 얘기 들으면서 정말 많이 배웠어요. 역시 글로벌 스타들은 마인드부터가 다르다는 걸 느꼈습니다.”

정말이었다.

성현은 BTG 멤버들이 가지고 있는 긍정적인 에너지를 몸소 느낄 수 있었다.

게다가 오늘 술자리를 통해 멤버들의 이야기를 많이 들을 수 있어서 좋았다.

그들이 가지고 있는 가치관을 통해서 음악 외적인 것들을 많이 배울 수 있었으니까.

BTG의 사옥 앞까지 따라 나온 BTG 멤버들과 성현이 마주 보고 섰다.

성현은 택시를 부른 뒤 BTG 멤버들과 마지막 인사를 나눴다.

“당분간은 아시아 투어에 올인해야 하니까 본격적인 연습은 다음 주부터 하는 걸로 알고 있을게요.”

성현의 말에 멤버들 모두 고개를 끄덕였다.

“후딱 완벽하게 마치고 돌아올게요.”

“저희 많이 그리워하시면 안 돼요!”

BTG는 일주일 후 아시아 투어 대장정을 마무리하는 콘서트가 있었다.

당분간은 스케줄 상 그들과 연습을 하는 건 불가능에 가까웠다.

성현이 오늘 커넥트 앱에 들어가 제안서를 수락할 때 적혀 있던 내용이기도 했다.

‘어떻게 보면 나한테도 필요한 시간이기도 하고.’

당연히 연습을 빨리 들어가는 것이 좋긴 했다.

이번 라운드는 공연 전까지 두 달이라는 시간이 주어진다.

다만, 이 두 달이라는 시간이 제안서를 수락한 다음부터 주어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참가자들 간의 준비 기간 편차가 생기게 되어 버리니까 말이다.

하지만 성현에게도 얼마간 시간이 필요했다.

한국에 들어온 이상, 웬만큼은 직접 회사 일을 마무리 짓고 싶었다.

그리고 성현도 BTG 멤버들과 함께 할 곡을 준비하는 데 시간이 걸렸다.

1주일이란 시간이 그렇게 길게 느껴지진 않았다.

‘일단 집 가면 오늘 들었던 이야기를 먼저 정리해야겠다.’

이번 곡은 진짜 BTG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컨셉이었다.

오늘 술자리와 미팅에서 그들이 했던 이야기를 정리하는 것.

이 과정은 본격적인 곡 작업에 들어가기 전에 반드시 필요한 작업이었다.

성현이 계획을 정리하는데 예약했던 택시가 사옥 앞으로 도착했다.

“그럼 들어가 볼게요. 오늘 고마웠어요.”

성현이 택시에 올라타려는데, 갑자기 가만히 있던 정훈이 성현을 붙잡았다.

“잠깐! 가면 안 돼요!”

“네?”

성현은 정훈의 갑작스러운 돌발행동에 혹시 그가 취한 건가 싶었다.

이를 어떻게 떼어내나 고민하던 찰나였다.

정훈이 다급하게 RN을 보고 소리쳤다.

“우리 그거 안 줬잖아!”

정훈의 말에 RN뿐만 아니라 나머지 멤버들도 모두 아차 싶은 표정이 되었다.

제일 먼저 정신을 차린 것은 리더인 RN이었다.

RN은 재빠르게 몸을 돌렸다.

“내가 갖고 올게. 성현씨, 미안한데 여기서 잠시만 기다려주세요!”

“네? 아니 갑자기 왜.....”

성현이 영문을 몰라 어정쩡하게 서 있자, 택시 기사가 출발 안 할 거냐고 짜증을 냈다.

성현은 문을 닫지도 열지도 못하고 서 있었다.

“사람 불러놓고 뭐 하는 거야. 출발 안 해?!”

“5분이면 되니까 잠시만 기다려 주시겠어요?”

“5분이면 손님이 몇 명인데! 당신이 보상해줄 거야!”

“죄송해요.”

결국, 성현이 지갑에서 오만짜리 지폐 한 장을 건네며 말했다.

택시 기사는 돈을 받더니 헛기침을 하며 잠잠해졌다.

잠시 뒤, 사옥에서 뭔가를 든 RN이 나타났다.

급하게 뛰어왔는지 그의 숨이 거칠었다.

“미안해요. 아까 드린다는 걸.”

RN이 숨을 헐떡이며 성현에게 뭔가를 건넸다.

“어, 이건......”

“올해 마지막 콘서트니까 꼭 보러 와주셔야 해요.”

그랬다.

RN이 건넨 건 BTG의 콘서트 티켓이었다.

그것도 한 장이 아니라 여러 장의 티켓.

봉투 다발이 성현의 두 손에 들렸다.

성현은 얼떨떨해서 티켓과 BTG 멤버들을 번갈아 보았다.

이 티켓을 구하기가 이렇게 쉽지 않다는 것을 잘 알기에 더욱 그랬다.

멤버들은 다들 웃으면서 꼭 와야 한다고 합창하고 있었다.

“친구분들도 같이 오시라고 넉넉하게 드렸어요. 남으면 가족들이나 지인들 주셔도 되고.”

그 말처럼 초대권은 정말 많았다.

성현은 티켓을 줄 사람들을 떠올렸다.

그러자 흥분해서 소리 지를 서지현을 비롯한 걸그룹 데뷔 조 팀원들 생각이 나서 피식 웃었다.

릴리와 문희진은 어떨지 잘 모르겠지만.

아마, 한 사람은 분명했다.

‘선아씨는 기절하는 거 아닌가 몰라.’

멤버 중에 특히 주선아.

그녀는 BTG를 자신의 롤모델로 삼고 있었다.

BTG에 대한 그녀의 관심은 팬심을 넘어선 지 오래였다.

일종의 종교처럼 섬기는 사람 중 한 명이었다.

그녀가 BTG에게 얼마만큼 관심이 있는지 확인하게 된 계기가 있었다.

아이돌 그룹 데뷔 이야기가 확정되고 나서, 주선아는 BTG랑 같은 시기에 활동하고 싶다는 얘기까지 했다.

대기실에 오고 가다가 마주치고 싶다고.

BTG를 만나기 위해서라면 뭐든 할 기세였다.

그녀의 말대로 BTG와 활동 시기가 겹치면, 음원 음반 수익이 저조할 거라는 생각은 그녀에게 없었다.

“정말 고마워요. 다들 좋아할 거예요.”

“성현씨도 물론 오셔야 해요?”

“당연하죠. 기대할게요.”

성현은 콘서트 초대권까지 받고 택시에 올라탔다.

차창 너머로 성현이 사라질 때까지 손을 흔드는 BTG 멤버들에게 마주 손을 흔들어 주었다.

BTG와의 미팅도 순조롭게 마무리되었다.

***

사무실에서 성현은 걸그룹 데뷔 조 멤버들을 불러 모았다.

“깜짝 선물이 뭐길래 그렇게 뜸을 들여요.”

연습실에 모여 있는 서지현과 주선아, 릴리 그리고 문희진.

선물을 주겠다고 불러놓고 가만히 웃고 있는 성현을 의아하게 쳐다봤다.

성현은 미소를 숨기지 않고, 가만히 네 사람을 바라볼 뿐 이렇다 할 말이 없었다.

“선물 주기 전에 확실하게 하고 싶은 게 있어서요. 특히 선아씨가 지켜줘야 해요.”

드디어 입을 연 성현의 말에 주선아가 빠르게 되물었다.

“뭔데요? 빨리 좀 말해주면 안 돼요? 답답해 죽겠어요.”

“소리 지르기 금지. 뛰어다니기 금지. 기절하기 금지.”

성현의 말에 주선아는 기분이 나빴는지 미간을 찌푸렸다.

도대체 얼마나 대단한 것을 주길래 저런 이상한 당부를 하는지 모르겠다.

“제가 무슨 산타한테 크리스마스 선물 받았다고 미쳐 날뛰는 앤 줄 알아요? 저 이제 19살이거든요?”

주선아는 코웃음 치며 말했다.

그 말에 성현은 말없이 BTG의 티켓이 들어 있는 봉투를 건네고 잠깐의 정적 후.

“꺄아아악!!”

주선아는 정확히 성현이 말한 대로 소리 지르며 뛰어다니기 시작했다.

기절하지만 않았을 뿐 성현의 예상대로였다.

같이 봉투를 받은 나머지 멤버들 역시 마찬가지.

“이거 어떻게 구했어요?! 나 티켓팅 실패해서 맨날 팬카페 들락날락거리고 있었는데!”

릴리 역시 BTG의 팬이었기 때문에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평소 차분한 서지현 역시 마찬가지였다.

“하나 언니! 저 BTG 콘서트 보러 가요! 짱 부럽죠?”

서지현은 미국에 있는 임하나에게까지 전화를 걸어 자랑했다.

그녀의 수화기 너머에서는 부럽다며 흥분해서 소리치는 임하나의 목소리가 들렸다.

중간중간에 비속어가 들리는 것도 같았다.

그런데 흥분해서 날뛰는 멤버들 사이 유일하게 조용한 한 사람이 있었다.

문희진은 미쳐 날뛰는 멤버들 사이에서 혼자 유일하게 티켓을 내려다보며 고개를 푹 숙이고 있었다.

성현은 그 모습을 보고 놀라서 물었다.

“희진씨, BTG 콘서트 별로예요?”

성현의 물음에도 문희진은 대답이 없었다.

그저 계속 고개를 푹 숙이고 있을 뿐이었다.

“희진씨......?”

성현은 혹시 문희진이 어딘가 아픈가 싶어 가까이 다가갔다.

성현이 가까이 다가가자, 문희진은 입을 틀어막았다.

“....진... 빠......”

“네?”

성현은 문희진이 무슨 말을 하는 건가 싶어 더욱 가까이 얼굴을 가져다 대는데,

“서진 오빠......”

성현은 자신이 잘못 들은 건가 싶어 문희진의 얼굴을 살폈다.

그러자 문희진이 기쁨에 겨워 눈물까지 흘리며 입을 틀어막고 있었다.

그 모습을 확인한 성현이 놀라서 굳어버렸다.

“감히 내가 서진 오빠 실물을 영접하다니......”

“......”

평소 과묵한 성격의 문희진이었다.

딱히 좋은 것도 싫은 것도 잘 표현하지 않는 멤버였는데.

성현은 그녀의 이런 모습이 더욱 적응이 되지 않아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

BTG의 콘서트 초대권을 받은 멤버들은 한층 높아진 텐션으로 한참을 서로 큰 소리로 유난을 떨었다.

‘어째 오디션 다음 라운드 진출했을 때보다 좋아하는 것 같은데……?’

이렇게 좋아하는 모습을 보니 뿌듯하면서도 왠지 모를 서운함이 감돌았다.

여전히 높은 텐션의 멤버들을 뒤로 한 채, 성현은 가벼운 미소와 함께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조용히 연습실을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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