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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같은 프로듀서는 없었다-237화 (237/273)

237화

“......이게 다 뭐예요?”

성현은 옥상에 차려진 화려한 상차림에 두 눈을 껌뻑거렸다.

BTG들은 제대로 놀란 성현의 반응에 신이 났다.

“성현씨 웰컴 파티 겸 우리의 파트너쉽 체결 축하파티?”

“방대표님 사무실에서 제일 비싼 술도 빼 왔으니까 놀다 가요.”

제이가 장난스럽게 웃으며 등 뒤에 숨겼던 위스키 잔을 들어 보였다.

그 말에 성현은 상에 놓인 술 종류를 확인하고는 눈이 휘둥그레졌다.

세계 3대 명품 위스키 중 하나인 그랜피딕인데 연도가 무려 30년이었다.

그 라벨을 확인한 성현이 표정을 굳히며 물었다.

“30년이면 천은 넘을 텐데. 이거 먹어도 돼요?”

제이는 마치 자기 술인 것마냥 으스댔다.

“에이, 우리 방대표님 재력을 뭐로 보시고.”

벌써 멤버 대부분인 테이블에 앉아서 성현만을 바라보고 있었다.

성현은 멤버들의 성화에 못 이겨 테이블에 따라 앉았다.

“형한테 들었는데 음악에 대한 조예가 엄청나시다고.”

아무래도 전세기에서 RN과 나눈 대화를 멤버들 모두가 들은 모양이었다.

B의 말에 나머지 멤버들의 눈도 반짝였다.

성현은 아무래도 오늘 집에 못 들어갈 것 같다고 생각하며 어색하게 웃었다.

“엄청난 건 아니고 그냥 남들보다 조금 많이 아는 것뿐입니다.”

“아니야. 진짜 모르는 아티스트가 없어.”

겸양을 떠는 성현의 말에 RN이 불쑥 끼어들어 말했다.

이대로 넘어가기는 힘들 것 같았다.

“음악 몇 년 하셨는데요?”

“음악은 걷기 시작하면서부터 했어요.”

성현의 대답에 RN을 제외한 멤버들의 눈이 크게 뜨였다.

RN의 말이 허풍이라고만 생각했는데, 아닌가?

“그때부터 프로듀싱을 배웠다고요?!”

“아니. 원래 클래식 전공하셨대. 프로듀싱 배운 건 군대 제대하고 나서부터고.”

RN은 성현 대신 대답해준 뒤, 뿌듯한 마음에 성현을 쳐다봤다.

“네. RN씨가 정확히 말씀해줬어요.”

성현이 칭찬하듯 말하자, RN이 그제야 만족스럽다는 듯 웃었다.

그러자 다른 멤버들의 질문이 이어졌다.

“지금 몇 살이신데요?”

“24살이요.”

“군대는 언제 가셨는데요?”

“스무 살이요.”

성현의 대답에 정훈은 충격을 받은 듯 성현을 물끄러미 쳐다볼 뿐이었다.

성현은 자기가 뭘 잘못 말한 건가 싶어 다른 멤버들을 쳐다봤다.

그런데 그동안 대화를 나누던 멤버들 역시 모두 입을 다물고 성현을 쳐다보고 있었다.

왁자지껄한 BTG의 조용한 모습에 불안함을 느낀 성현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제가 뭐 말실수했나요?”

성현은 자신도 모르게 실수한 게 있나 싶어 물었다.

그 질문에 아무런 대답 없이 서진이 박수를 쳤다.

“와 지니어스시네. 지니어스. 리스펙! 역시 잘생긴 사람들은 뭘 해도 잘해.”

서진이 성현에게 쌍따봉을 들어 보이며 말했다.

곧, B도 박수에 동참했다.

멤버들이 모두가 팀 내 작곡과 프로듀싱을 종종 맡고 있는 RN을 쳐다봤다.

“형. 잘하자?”

“뭘 잘해, 인마. 지금도 잘하고 있는데.”

RN이 애써 괜찮은 척 술을 마시는데 그의 손끝이 떨리고 있었다.

멤버들은 그 모습을 발견하고 이때다 싶어 득달같이 달려들었다.

그 모습이 마치 승냥이 떼 같았다.

“야야. 괜찮아. 수재가 천재를 이기면 그게 더 이상한 거지. 애들아 뭐 하냐. 우리 RN이 술 좀 따라드려라.”

“예. 술 대령하겠습니다요.”

“형, 너무 슬퍼하진 마. 우린 그래도 형이 작곡한 거 다 좋았어.”

멤버들은 모두 장난 반으로 RN을 위로하려 들었다.

묵묵히 술을 마시던 RN이 결국 터져서 크게 외쳤다.

“그만해라? 나 진짜 괜찮다고. 나도 인정해. 성현씨 나보다 재능 있고 능력 있는 사람인 거. 그래서 그게 뭐? 세상에 천재들만 음악 해야 되는 법 있어?”

RN은 오히려 당당하게 말했다.

하지만 그의 말이 길어질수록 멤버들은 하나같이 안쓰러운 표정이 되었다.

그 반응에 멤버들은 더욱 자신들의 리더를 놀려 댔다.

물 만난 고기들처럼 휘몰아치는 장난에 RN은 결국 포기하고 한숨을 내쉬었다.

“하아.”

“미안해요. 괜히 나 때문에.”

성현은 의도치 않게 RN이 놀림거리가 되자 미안해서 말했다.

그런데 RN은 전혀 개의치 않다는 듯 성현에게만은 미소를 잃지 않았다.

오히려 그의 두 눈이 이 순간을 노린 것처럼 반짝였다.

“미안하면 나중에 저 작곡하는 것 좀 알려줘요.”

네? 하고 당황한 성현이 얼떨떨하게 말했다.

“RN씨도 작곡은 곧잘 하시잖아요.”

“저보다 잘하는 사람한테 배우면 더 잘할 수 있잖아요. 저 재능 없다고 기죽고 그런 스타일 아니니까 진짜 부족하거나 고칠 점 있으면 따끔하게 말해주셔도 돼요.”

RN은 전혀 기죽지 않아 보였다.

그 모습에 성현은 왜 방시훈 대표가 맏형인 서진이 아니라 RN에게 리더 자리를 줬는지 알 것 같았다.

‘속이 단단한 사람이구나, RN씨는.’

흔히 그룹 내에서 리더 역할이라면 권력을 잡는 것으로 오해하는 사람들이 있다.

실제로 큰 권력을 틀어쥐게 되는 것이 리더는 아니었다.

반대로, 더 큰 희생을 감내해야 하는 자리이기도 했다.

그래도 이 리더 자리를 누굴 주느냐에 따라 그룹 내 분위기가 달라졌다.

혈기왕성한 멤버들이 모인 그룹 내에서 분위기는 중요했다.

분위기라는 것이 사소해 보일지라도 어떻게 형성되느냐로 그룹이 달라졌다.

어떤 그룹이 불화설로 사이가 틀어졌다느니.

그룹 내 왕따를 당하는 멤버가 있는 것 같다느니.

등등 큰 문제로 번지게 되는 것을 분위기가 좌우하게 되는 것.

큰 문제로 번질 경우, 결국 이것이 음악에도 영향을 끼치게 되는 것이 그룹 활동이었다.

그만큼 어떤 리더에게 그룹을 맡기느냐는 상당히 중요한 문제였다.

‘이런 사소한 것 하나까지 신경을 써야 하는 게 프로듀서로서의 일인 거고.’

이들을 보고 있자니 자연히 떠오르는 생각이 있었다.

앞으로 자신이 만들게 될 그룹에 대한 생각.

오디션을 거치면서 기쁠 때나 슬플 때나 함께 했던 동료들의 데뷔.

다른 사람들도 아니고, 동료들의 데뷔인 만큼 허투루 생각하고 싶지 않았다.

‘지금쯤 연습실에 있겠지.’

성현이 회사에 있을 멤버들을 떠올리는데, 막내인 정훈이 성현을 불렀다.

“저 궁금한 게 있는데.”

정훈은 낯을 많이 가리는 성격 탓에 멤버들 중 유일하게 성현에게 따로 말을 걸지 않았다.

그런데 그가 먼저 궁금한 게 있다고 하니 성현으로서는 신기했다.

“뭔데요?”

성현은 뭐든 대답해줄 요량으로 정훈을 응시했다.

작곡하신 놀이터 있잖아요, 로 시작된 정훈의 질문.

“천소울씨 곡 처음에 나오는 신현식 선배님 목소리요. 그거 AI로 복원한 거 아니죠?”

“아, 녹음기로 녹음한 거 말씀하시는 거예요?”

정훈의 말에 성현이 잠시 생각하다가 대답했다.

그 대답에 정훈이 흥미를 느꼈는지 바짝 당겨 앉으며 물었다.

“네. 녹음기로 직접 녹음한 거였구나. 그거 어디서 구하신 거예요?”

“심훈영 작곡가님 알아요?”

“네. 당연히 알죠. 거기서 신현식 선배님이랑 대화하던 사람이 심훈영 작곡가님이잖아요.”

정훈은 어린 나이에도 두 사람을 알고 있는지 대번에 고개를 끄덕였다.

심훈영 작곡가를 알고 있다니, 성현은 이야기가 빠르겠다고 생각하며 말해주었다.

“그분이 직접 줬어요.”

“진짜요?! 그럼 녹음 파일 원본도 가지고 계시겠네요?!”

종훈이 깜짝 놀라 물었다.

성현은 방금 전까지만 해도 조용하던 정훈이 큰소리를 내자 오히려 더 놀라 당황했다.

“저 녀석 신현식 선배님 왕팬이거든요.”

그 모습에 RN이 대신 성현에게 설명해주었다.

성현은 그제야 정훈이 왜 대화 내내 눈을 반짝거렸는지 알 수 있었다.

나중에 그 원본 들어볼 수 있느냐는 정훈의 요청에 성현은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심훈영에게도 한 번 더 물어봐야겠지만, BTG가 듣고 싶어 한다는 말 한마디면 그도 바로 허락해 줄 것이 뻔했다.

“나도 궁금한 거 있는데. 버스킹 편에 나오는 곡 편곡 다 성현씨가 직접 한 거예요?”

“네. 대부분 제가 했죠.”

다음은 준기의 차례였다.

그는 특히 해외 버스킹 공연이 인상 깊었던 모양.

영국에서의 버스킹 공연지 하나하나를 언급하며 감상을 늘어놓았다.

“준비 기간은 얼마나 줘요? 너무 빡셀 거 같은데.”

“이봐. 천재한테 준비 기간이 의미가 있을 것 같나?”

준기의 걱정스러운 물음에 서진이 끼어들었다.

“아 참. 성현씨는 일반인인 나와 다르게 천재였지. 제가 그만 깜빡했군요. 미안합니다.”

준기는 짐짓 정말인 것처럼 고개 숙여 사죄했다.

서진과 준기의 이번 타깃은 성현이었다.

성현은 자신이 직접 당해보고 나서야 RN의 기분을 이해할 수 있었다.

“이런 기분이었군요.”

성현이 말없이 RN을 보며 말하자, RN은 다 이해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잔을 건넸다.

두 사람은 조용히 잔을 부딪쳤다.

그렇게 술자리 무르익어 가고 밤도 깊어졌다.

옥상 가득히 설치한 무드등이 점점 더 빛을 발해갔다.

성현은 BTG를 만난 김에 그들에게 궁금했던 것을 물어보고 싶었다.

궁금한 건 많았지만, 그중 가장 궁금한 걸 하나 뽑으라면 단연,

“아시아 최초 그래미에 입성했을 때 기분이 어땠어요?”

아시아 최초 그래미에 입성한 것도 모자라 단독 공연까지.

노미네이트에다가 상까지 탄 BTG인 만큼 성현은 그들의 생생한 후기가 궁금했다.

성현의 말에 BTG 멤버들은 잠시 서로를 쳐다보다가 폭포수처럼 말을 쏟아냈다.

“진짜 꿈만 같은-”

“아 그때 회사로 무슨 전화 한 통이 왔었는데-”

“갔는데 내 바로 뒤에 애드 샤련이-”

“대기실에 카드비 찾아와서 같이 사진-”

“와 진짜. 제이손 므라즈 라이브를 코앞에서 보는데-”

성현의 질문이 끝나기 무섭게 멤버들은 동시에 떠들기 시작했다.

모두 술자리에서 하나씩 가지고 있는 군대 관련된 썰을 이야기하는 모양새였다.

서로 이야기를 하겠다고 나서는 바람에 오디오가 물렸다.

그 바람에 누가 무슨 말을 하는지 알아들을 수 없을 지경이었다.

괜한 이야기를 꺼낸 건가 성현이 난감해하던 찰나.

“야! 다 비켜. 맏형인 나부터 얘기한다.”

서진이 장난스럽게 군기를 잡으며 말했다.

그 말에 멤버들은 궁시렁거리면서도 말을 멈췄다.

“일단 이 상을 준 우리 BTG 팬들 여러분께 다시 한번 감사드린다는 말씀 전하고.”

서진은 우선 바로 앞에 카메라가 있는 것처럼 치명적인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멤버들은 그 모습을 보고 키득거리며 웃었다.

성현은 서진의 텐션을 아직 따라가기 힘들어 어색하게 지켜볼 뿐 함께 웃지는 못했다.

“이 상을 주신 그래미 어워즈 관계자 여러분 정말 감사드립니다. 하지만,”

서진이 순간 눈빛을 매섭게 바꾸며 일갈했다.

“다음 번엔 메인상을 주십쇼. 이상입니다.”

서진의 말에 멤버들 모두 메인상! 을 외치며 박수쳤다.

성현도 이제 슬슬 적응 안 될 것 같았던 텐션에 익숙해졌는지 함께 박수를 쳐주었다.

“그럼 BTG의 최종 목표는 역시 그래미 메인상을 타는 거네요?”

“아무래도 그렇죠? 그래미가 워낙 보수적이라 타는 게 쉽진 않겠지만 노력은 해보는 거죠.”

성현의 물음에 리더인 RN이 진지하게 답했다.

‘결국 음악을 하는 사람이라면 최종 목표는 그래미일 수밖에 없는 건가.’

성현 역시 프로듀서로서 그래미에서 메인 상을 수상하는 것이 목표였다.

당연히 그때 성현과 함께 그래미를 점령할 가수는 당연히 ‘그’일 것이다.

‘잘하고 있으려나.’

성현은 먼 이국땅에서 작업을 이어나가고 있을 ‘그’ 가수를 떠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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