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 같은 프로듀서는 없었다-236화 (236/273)

236화

BTG는 빠르게 성장했다.

누군가는 그것을 신화라고 부를 만큼.

그러나 밝은 면 뒤에는 늘 어두운 면도 존재하기 마련이었다.

그리고 밝은 면이 더욱 밝아질수록 함께하는 어두운 면은 더 짙어졌다.

그들의 인기가 국내를 넘어 해외로, 해외에서도 점점 높아져 갔다.

그럴수록 사람들이 그들에게 거는 기대감도 높아졌다.

퍼포먼스와 음악성에 대한 기대감.

BTG 멤버들은 자면서도 스스로에 대한 발전에 대해 고민해야 했다.

한국과 외국 언론들 또한 어마어마한 관심으로 부담감을 더했다.

[BTG, 그래미 어워즈 메인 상 수상은 이번에도 실패.]

[BTG, 다음 앨범도 빌보드 핫 100 1위 가능할까?]

[BTG는 과연 비틀즈를 뛰어넘을 보이그룹인가?]

[미국 AAC: KPOP 신화를 새로 쓴 한국의 BTG. 그들의 인기는 언제까지 갈까?]

국내외에 상관없이 BTG에 대한 기사들이 물밀 듯이 쏟아져 나왔다.

행보에 대한 기사.

이들의 방향성에 기사.

추측성 기사.

공격적인 분석을 가미한 기사까지.

거기다 기사마다 가지각색의 댓글도 수도 없이 달렸다.

그들의 성공을 찬양하는 사람들 못지않게, 그들의 실패를 궁금해하는 사람들도 많았다.

많은 사람들이 그 모든 것을 관심이라고 말했다.

인기를 몰고 다니는 슈퍼스타는 당연히 감내해야 한다는 관심.

성현의 말에 BTG 멤버들의 표정이 굳은 것은 이 모든 관심을 떠올려봤기 때문이었다.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기 때문에 말이 없는 건가요. 아니면,”

성현은 BTG 멤버 중 특히 리더인 RN을 보며 물었다.

“너무 많은 생각을 했기 때문에 더는 말하고 싶지 않은 건가요.”

진지한 눈빛으로 솔직해지자고 재촉하는 성현.

그 모습에 RN은 결국 가장 먼저 입을 열었다.

“솔직히 두려운 순간 많아요. 인기라는 건 평생 갈 수 없는 거니까요.”

리더 RN의 솔직한 인정에 멤버들의 눈이 커졌다.

항상 듬직하게 멤버들을 이끌어주던 RN였다.

그런데 그조차 실패에 대한 두려움을 안고 있었다니.

“저희는 그대론데 저희를 보는 사람들의 기대치가 달라졌어요. 사람들은 작년에 냈던 앨범보다 더 좋은 앨범, 더 좋은 성적, 더 많은 수상을 바라요.”

어느 순간 앨범을 준비하면서 즐거운 감정과 함께 불안함이 밀려들었다.

양가적인 감정을 가지고 앨범 준비를 하는 것이 맞나 하는 생각을 수도 없이 했다.

“그리고 그들의 기대치를 채우지 못하면 실패라고 단정 짓고 BTG는 한물갔다고 말하겠죠.”

남들이 제멋대로 말하는 자신들의 추락.

그 이야기를 신경 쓰지 않는다고 할지라도 결국 자신들은 대중의 관심을 받고 사는 아이돌이었다.

그네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지 않는다면 과연 어떻게 될까.

RN은 성현에게 자신의 생각을 솔직하게 털어놓았다.

성현은 이를 하나도 빠짐없이 받아 적었다.

“처음엔 그런 기대치와 상관없이 BTG만의 길을 걷자고 다짐했어요. 그랬는데, 어느 순간 저도 그들과 다를 바 없이 BTG를 보고 있는 거예요. 여기서 추락하면 안 된다고 더 올라가야 한다고...... 그때부터 사실 앨범 작업하는 게 조금 두려워졌어요. 사람들의 기대치에 미치지 못할까 봐.”

성현, 어느 순간부터 RN의 말을 받아적길 멈췄다.

대신, 진지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성현은 그의 말에 공감하고 있었다.

RN이 말하는 두려움과 무서움.

자신도 어렴풋이 알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성현 역시 근래에 조금씩 느끼고 있었기 때문이다.

‘한국을 대표하는 참가자란 타이틀과 반드시 우승해야 한다는 언론의 압박. 무시한다 해도 무시할 수 없는 부담감이니까.’

길고 길었던 오디션이 거의 끝나가는 시점.

이제 정말 바로 코앞이 우승으로 향하는 길목이었다.

한국의 언론에서도 성현과 임하나, 천소울에게 거는 기대가 엄청났다.

전 세계에서 한국만큼 최종 TOP 8에 많은 인원을 올린 나라가 없었다.

개중에 서구권이 아닌 나라는 한국이 유일하기도 했다.

당장 인터넷에 ‘더 넥스트 슈퍼스타’만 검색해도 그 인기를 알 수 있었다.

세 사람과 관련된 기사가 하루에만 몇천 건이 올라올 정도였으니까.

[아시아에서 유일하게 살아남은 한국 참가자들. 과연 그들 중에 우승자가 나올 수 있을까?]

[프로듀서 이성현, 우승할 확률은 얼마나 될까?]

[한국이 믿을 건 이성현뿐? 미국 팀 가수 참가자 메튜 페리, 언론에서 주목하는 가장 강력한 가수 우승 후보]

성현은 부정적인 기사들을 애써 무시하려고 했다.

그렇다 해도 쏟아지는 기사들 전부를 걸러낼 수는 없었다.

한국에 도착한 이후에는 마주치는 사람들마다 우승 얘기를 꺼냈다.

그런 얘기를 들을 때마다 성현의 머릿속에는 단 한 가지 생각이 들었다.

만약 내가 우승을 못 한다면?

우승을 못 했을 시 그들에게 안겨줄 실망감.

그것만 생각하자면 성현도 마음이 무거워졌다.

“사실 그런 두려움이라면 저도 가지고 있어요.”

성현은 이 자리를 빌려 자신 또한 BTG에게 솔직해지기로 했다.

서로에게 신뢰를 얻는 것.

오디션을 통해 많은 일을 겪으면서 성현이 배운 소중한 철칙이었다.

그것도 프로듀싱의 과정 중 하나였다.

“물론 제가 느끼는 부담감이 BTG 여러분들이 느끼는 부담감의 크기와는 다를지도 모르겠네요. 저 또한 항상 실패에 대한 두려움, 팀원들을 책임지고 데려가야 한다는 부담감을 느끼고 있어요.”

성현의 갑작스러운 고백에 BTG 멤버들은 조금 놀란 표정을 지었다.

항상 여유롭게 모든 것을 척척 실행하던 성현인 줄만 알았는데.

그에게도 이러한 불안이 있을 거라고는 예상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하긴, 자신들도 미디어와 대중들 앞에서 이런 걱정을 표현하지 못한다.

성현 역시 비슷한 처지일 것이다.

옆에 앉은 RN은 말없이 성현의 손 위에 자신의 손을 겹쳐 쥐어 주었다.

서로가 가지고 있는 비슷한 고충에 대한 이해.

전세기에서부터 피어난 유대가 그들 사이에 싹트고 있었다.

“근데 사실 나도 그런 거 많이 느껴.”

맏형인 서진이 동생들에게 용기를 내서 말했다.

“난 여기서 나이도 제일 많고 맏형인데 사실 노래나 보컬 뭐 하나 딱히 특출난 게 없잖아.”

서진, 그는 반듯하게 잘생긴, 미남의 정석이란 소릴 듣는 남자였다.

다만, BTG 멤버 내에서의 존재감이 강한 편은 아니었다.

스스로도 항상 그 지점을 염려할 수밖에 없었다.

정훈이 메인 보컬로서 파워풀한 가창력을 보여주고.

창민이 메인댄서와 리드보컬로서 춤과 노래에 재능을 모두 가지고 있고.

나머지 멤버들 또한 각자 자신들의 특색을 가지고 있었다.

그에 반해 서진의 춤 실력은 오히려 멤버들보다 평균 이하.

게다가 노래 실력 또한 뛰어난 게 아니었다.

“나도 그거 알고 진짜 열심히 노력하고 있는데 성적 안 나오거나 하면 너희들한테 미안할 때가 있어. 괜히 나 때문인가 싶어서.”

맏형인 서진의 고백에 멤버들은 깜짝 놀랐다.

옆에 있던 B가 나서서 서진을 위로했다.

“형, 왜 그런 소릴 해요. 그렇게 치면 나도 노래 못해.”

서브 보컬인 B가 서진을 위로하며 말하자, 다른 멤버들 역시 동조했다.

서진이 느끼고 있을 부담감에 대해 공감하는지, 모두 그에게 한 마디씩 위로의 말을 건넸다.

“난 다들 아무도 말 안 하길래 나만 그런 건가 했는데 아니네. 다들 똑같은 생각이었네.”

서진이 먼저 스타트를 끊자, 그 뒤로 제이도 자신의 속내를 술술 털어놓았다.

“솔직히 우리 위치에서 실패에 대한 두려움 없는 게 이상한 거 아닌가. 이걸 견뎌내느냐 못하느냐 차이인 거지. 그게 위닝 멘탈리티고.”

그중에 창민은 우리의 인기를 감안하면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덧붙이기도 했다.

물론 그것도 맞는 말이었다.

성공에 뒤따르는 불안감은 누구에게나 있을 것이다.

이걸 견뎌내느냐, 어떻게 견뎌내느냐의 문제일 수 있었다.

“난 음원 성적도 그렇지만 내 노래가 더 이상 사람들에게 감동이나 떨림을 주지 못하게 됐을 때 아티스트로서 엄청 괴로울 거 같아.”

“나도 그 생각 자주 해. 언제 한 번 공연 끝나고 무대 조명을 올려다보는데 갑자기 머리가 핑 돌면서 심장이 빨리 뛰는 거야. 저 불빛도 언젠가 꺼지겠지, 라는 생각 들면서 그냥 도망치고 싶었어.”

BTG 멤버들은 스스럼없이 자신들이 실제 겪었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두려웠던 순간, 도망치고 싶었던 순간들.

정상을 찍은 아이돌이 가질 법한 걱정.

더 이상 아티스트로 불리지 않을 순간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까지.

성현은 이들이 들려주는 이야기를 하나도 놓치지 않고 기록해 나갔다.

“결국, 아까 창민이가 얘기했던 것처럼 이런 압박을 이겨내기 위해선 음악 하나만 생각하는 것 말곤 답이 없는 거 같아. 좋은 음악, 좋은 무대가 어떤 거고 그걸 만들어내기 위해선 우리가 뭘 어떻게 해야 하는 건지. 그것만 생각하자.”

리더인 RN이 멤버들을 다독이며 말했다.

멤버들은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RN이 시작한 일이라고 작게 궁시렁거리기도 했다.

그때 연습실 문이 열리더니 방시훈 PD가 들어왔다.

“준비 다 됐는데 아직도 미팅 중인가?”

“아니요. 이제 여기도 슬슬 마무리됐어요.”

“그래. 그럼 정리하고 나와.”

방시훈은 그 말을 끝으로 연습실을 나갔다.

성현은 어디를 가야 하는 건가 싶어 멀뚱히 멤버들을 쳐다봤다.

“뒤에 스케줄 있었어요? 말씀하시지. 그럼 더 일찍 끝냈을 텐데.”

성현이 급하게 짐을 정리하며 일어나며 말했다.

멤버들 성현을 올려다보며 의뭉스럽게 웃었다.

장난기가 그득 담긴 BTG 멤버들의 눈을 마주한 성현은 순간 불안감이 엄습했다.

“이거 좀 설레발인데 사실 오늘 뭔가 성현씨랑 파트너쉽 맺을 것 같아서 저희끼리 뭘 준비했거든요.”

“뭘 준비해요?”

성현의 말과 동시에 막대 정훈이 벌떡 일어났다.

성현이 마지막으로 본 것은 그 모습이었다.

정훈이 성현의 눈을 안대로 가려버린 것이다.

“뭐, 뭐 하는 겁니까?”

“따라오면 알아요.”

성현은 갑자기 눈에 가려지자 당황해서 높아진 목소리로 물었다.

BTG 멤버들은 앞이 안 보이는 성현을 데리고 연습실을 나갔다.

멤버들은 성현을 둘러싸고 웃기만 할 뿐, 제대로 된 설명은 해주지 않았다.

성현은 앞이 가려진 채 어딘지도 모르는 곳을 걸어갔다.

“빨리 타!”

“성현씨, 발 조심하세요.”

멤버들의 말과 함께, 엘리베이터에도 오른 것 같았다.

엘리베이터에서 내리고 얼마간 또 앞으로 걸어 나갔다.

끼익, 문이 열리는 소리와 함께 시원한 바깥 공기가 성현의 얼굴을 스쳤다.

‘야외인 건가?’

때마침 성현의 안대가 벗겨지더니 야외 옥상이 눈에 들어왔다.

갑자기 들이닥친 밝은 빛에 성현이 인상을 찌푸렸다.

서서히 밝은 빛에 눈이 적응되자 보이는 건,

“짜잔!”

“어때요? 저희가 준비한 거예요!”

백열등으로 분위기를 낸 야외 옥상.

정면에 [WELCOME 성현]이라고 적힌 작은 현수막이 걸려 있었다.

옥상 한 켠에는 테이블엔 술과 음식도 세팅되어 있었다.

그리고 BTG 멤버들은 기대에 가득 찬 눈으로 성현을 바라보고 있었다.

BTG의 깜짝 환영파티였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