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 같은 프로듀서는 없었다-235화 (235/273)

235화

성현은 긴장한 채 BTG 멤버들의 대답을 기다렸다.

짝짝!

이때 누군가 정적을 깨고 크게 박수를 쳤다.

BTG의 서브보컬 B였다.

“솔직한 이야기라. 난 좋아. 어두운 면이든 뭐든 이야기할 준비 됐어. 안 그래도 요즘 솔직함에 대해 생각이 많았다고.”

B는 마음을 먹었다는 듯 고개를 크게 끄덕이며 말했다.

“어디까지 솔직해야 할까?”

그와 동갑내기 멤버인 창민은 아직 조금 걱정스러운 모양이다.

멤버들에게, 그리고 성현에게 솔직한 이야기를 하기 꺼려지는 것은 아니었다.

“애써 어두운 곡을 꺼냈는데, 그게 다른 사람들 귀에 들리지 않으면 어떡하지? 배부른 소리로 들리지 않을까.”

당연한, 그렇기에 슬픈 고민이었다.

힘든 것조차 쉽게 털어놓지 못하는 위치. 세계적인 스타가 견뎌야 할 무게였다.

“그건 우리가 고민하지 말자.”

창민의 솔직한 고민에 묵직하게 내려앉은 침묵을 다잡은 것은 리더 RN이었다.

“우리는 이야기를 뱉고, 곡은 성현 씨가 만드는 거야. 우리가 믿기로 한 프로듀서를 처음부터 의심하는 건 실례지.”

RN이 왜 리더인지 새삼 깨달을 수 있었다.

성현의 기분이 조금이라도 상할까 최대한 조심스럽게 멤버들을 다잡았다.

“그래. 워낙 실력 있는 분이니까 알아서 잘해주시겠지.”

가라앉은 분위기를 띄우는 건 서진의 몫이었다.

“우리 무대도 다른 무대처럼 1등으로 만들어주시겠지. 안 그래요?”

서진의 말에 이어 준기까지 농담을 던지며 말했다.

성현은 그들의 장난스러운 어조와는 다른 표정을 보며 느낄 수 있었다.

그들의 말이 100프로 농담은 아니란 걸.

성현은 그 모습에 자신을 향한 기대, 그리고 믿음이 생각보다 큰 것을 느끼며 씨익 웃었다.

고마웠다.

그리고 그 믿음을 흔들리게 만들고 싶지 않았다.

“그래요. 무대랑 곡은 최고로 준비해드릴 테니 보컬과 퍼포먼스는 BTG 여러분들한테 맡길게요. 워낙 실력 있는 분들이니까 이번 곡도 빌보드 차트 1위 하겠죠.”

예상보다 확신에 찬 어조로 말한 성현의 태도에 BTG 멤버들은 잠시 벙찐 표정을 짓더니, 이내 큰 소리로 파이팅을 외쳤다.

“그래. 다 씹어 먹어버리자고요! 빌보드고 오디션이고!”

“아자, 아자!”

제이와 B를 시작으로 멤버들 모두 한가운데로 손을 모았다.

그들 사이에서는 아주 자연스러운 일인 듯했다.

모두가 기대에 가득 찬 표정으로 성현을 바라보고 있었다.

성현은 갑자기 파이팅을 외치며 의지를 다잡는 멤버들의 에너지에 적응이 안 되었다.

애써 침착함을 유지하며 마지막으로 포개진 손들 위에 자신의 손을 올려놓는다.

이내 손을 한데 모은 BTG와 성현은 파이팅을 외치며 흩어졌다.

‘멤버 수가 많아서 그런가.’

성현은 성탄 엔터의 동료들을 떠올리며 어지러운 머리를 부여잡았다.

공연 전까지 이들의 텐션에 맞출 수 있을까 불안하기는 했지만 나쁘지 않은 기분이었다.

“그럼, 이제 본격적으로 이야기 좀 나눠볼까요?”

인사는 여기까지.

이제 본격적인 음악 이야기를 시작할 때였다.

***

양쪽 벽면이 모두 거울로 된 대형 연습실.

어떤 노래조차 흘러나오지 않는 상태로 멤버들과 성현이 바닥에 둥글게 둘러앉았다.

솔직한 멤버들의 이야기를 들려달라는 성현의 요청.

그 말에 제일 먼저 입을 연 것은 리더인 RN이었다.

“사실 저희가 지금 이렇게 좋은 사옥에서 연습하지만. 처음부터 이런 건 아니거든요.”

RN의 말에 멤버들 몇몇이 고개를 끄덕이는 것이 보였다.

“아마 서진이 형이랑 제이 형은 알 텐데 회사 사정이 어려워서 몇 번 데뷔가 무산됐을 때, 그때 대표님께서 이번이 진짜 마지막이라고 말씀하시면서 새롭게 시작한 곳이 망원동에 있는 사옥이었어요.”

데뷔가 여러번 무산되면서 멤버 교체도 빈번하게 벌어졌다.

막말로 중소아이돌로 시작한 BTG는 멍석만 깔아주면 할 말이 무궁무진했다.

멤버들은 너도나도 입을 열고 싶어서 엉덩이를 들썩이고 있었다.

다음으로 발언권을 얻은 건, B였다.

“그때 저랑 창민이가 연습생으로 들어가고 그다음이 정훈이었나?”

“아니, 나. 그때 내가 다른 회사에서 데뷔 엎어지고 여기 왔었지.”

준기가 손을 들고 말했다.

B가 맞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아, 그렇네. 정훈이 쟤가 젤 늦게 들어왔지.”

“전 형들에 비해선 고생 안 한 거죠.”

아직 성현에게 낯을 가리는지 제일 조용히 있던 정훈이 조용히 덧붙였다.

“근데 쟨 또 너무 어릴 때부터 연습생 생활을 해서 진짜 많이 울었어요. 힘들다고.”

“아 왜 또 그 얘긴 꺼내고 그래요.”

아련하게 추억에 잠겨 말을 꺼내는 형들의 모습에 막내인 정훈이 질색했다.

항상 똑같은 레퍼토리였다.

그러자 형들은 더 신이 나서 말을 꺼내기 시작했다.

“아, 훈이 애기 때 귀여웠는데. 쟤 우리들 앞에선 옷도 안 갈아입은 거 알아요? 화장실 들어가서 혼자 탈의하고 오고.”

성현은 그 말을 듣고 저도 모르게 정훈을 쳐다보고 말았다.

정훈은 이미 형들의 놀림감이 되었다는 것을 알았는지 체념한 채로 앉아있었다.

“난 처음에 쟤 여잔가? 했다니까. 생긴 것도 예쁘장해서.”

잠자코 듣고 있던 정훈이 반격한 것은 그때였다.

“창민이 형도 제가 흑역사 얘기해 봐요? 우리 음방 1위한 날 형 기분 좋다고 술 취해서, 어? 남의 차 앞에다가 어?”

“야, 야. 그만. 미안해. 안 할게. 응?”

반격을 준비하는 정훈의 말.

그 말에 창민이 사색이 되어 정훈의 입을 막으며 말렸다.

성현은 그런 멤버들의 사소한 모습과 대화까지 모두 세심하게 관찰했다.

성현은 지금까지 들은 이야기를 정리해가며 인터뷰를 진행했다.

“그럼 망원동 사옥 다음에 지금 여기 삼성동 사옥인 건가요?”

“네. 망원동 사옥에서 데뷔하고 처음 2년간은 거의 뜨지를 못하고 있다가 2집 앨범이 갑자기 너튜브에서 유명해지면서 그때 1집 앨범도 역주행하고 대중들한테 이름이 좀 알려졌었죠.”

별다른 마케팅 수단이 요원했던 BTG를 뜨게 만들어준 것은 너튜브의 역할이 컸다.

성현 역시 그 이야기를 알고 있었다.

“그때 역주행한 앨범이 DARK NIGHT?”

알고 있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며 묻는 성현의 말에 RN이 대답했다.

“네. 그 후로 3집 앨범이 제대로 히트하면서 그때 처음 음원 1위도 해보고 MNA 어워즈에서 상도 받았어요.”

그때 진짜 행복했다며 웃는 RN의 뒤로, 다른 멤버들 역시 그때의 일이 생각나는지 하나같이 추억에 잠긴 얼굴로 바닥이나 천장을 보고 있었다.

“어떻게 보면 회사 재정이 어려운 상황에서 좋은 음악을 만들고 싶다는 열정만으로 버티기 힘들었을 텐데 흔들렸던 적은 없나요?”

특히 연습생 생활을 오래 견뎌온 멤버들의 생각이 궁금했다.

그중 너무 힘들어서 눈물까지 흘렸다는 막내 정훈이 나섰다.

“있었죠. 저희도 사람인데. 그냥 우리도 하고 싶은 음악만 하지 말고 다른 아이돌들처럼 유행 타는 노래 만들고 하면 안 되나? 이 생각 되게 많이 했어요.”

“그때마다 흔들리지 않고 버틸 수 있었던 계기나 이유가 있나요?”

성현의 물음에 바로 대답한 것은 준기였다.

“멤버들 간 했던 약속 때문이에요.”

“약속이요?”

“네. BTG 처음 만들었을 때 멤버들끼리 하늘이 두 쪽 나도 이것만은 꼭 지키자고 했던 약속이 있거든요.”

성현이 그게 뭐냐는 듯 쳐다보자, 준기는 대신 말하라는 듯이 리더인 RN을 바라봤다.

“손 놓지 말기요. 그것만큼은 서로 꼭 지키자고 했어요.”

RN의 말과 동시에 멤버들은 각자 손을 들어 서로 하이파이브를 했다.

그새를 못 참고 서로 장난을 치는 멤버들.

RN은 멤버들이 그러거나 말거나 성현에게 집중했다.

이미 이런 상황 쯤은 익숙하다는 듯이 아주 태연한 모습이었다.

“우린 BTG가 개개인이 만나 이뤄진 팀이 아니라 그 자체로 하나의 음악을 하는, 이 세상에 단 하나뿐인 유기체라고 생각을 했거든요. 그러니까 우리 멤버들 전부가 하나의 세포 같은 거예요. BTG라는 생명체를 이루는. 우린 그 안에서 각자 역할을 맡아 음악을 하면서 우리만의 우주를 구축하는 거예요.”

RN의 말에 성현은 한 방 먹은 듯한 표정을 지었다.

하나의 유기체이기에 한 명이라도 빠지면 BTG는 BTG가 될 수 없다.

한 명 한 명의 역할을 존중하고, 인정하는 그룹.

그렇기에 이들은 끈끈한 신뢰를 바탕으로 이어져 있을 수밖에 없었다.

확신에 차서 하는 RN의 말에 주변에서 자기 혼자 멋있는 말을 한다고 멤버들이 장난스레 야유를 보냈다.

리더는 이런 말을 해줘서 리더인 거라고 받아친 RN은 꿋꿋했다.

확실히 BTG라는 그룹은 다른 일반 아이돌 그룹과는 생각하는 것부터가 달랐다.

그들이 추구하는 목표 또한 단순히 가수로서의 성공이 아니었다.

자신만의 음악, 자신만의 세계를 만드는 걸 목표로 하고 있었다.

이 자리를 통해 이를 알게 된 성현은 BTG를 다시 보게 됐다.

‘배울 게 정말 많은 사람들이구나.’

성현은 BTG가 그저그런 아이돌 그룹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들에게서 단순히 음악적인 재능 말고도, 그들이 삶을 대하는 태도나 가치관이 다르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자체적으로 뿜어내는 긍정적인 에너지.

음악적인 열정과 합쳐져 이들을 정상의 자리에 오를 수 있게 한 원동력이지 않을까 싶었다.

“그래서 우리 약속은 딱 하나였어요. 손 놓지 말기. 누구 하나라도 손을 놓아버리면 그 순간 BTG라는 유기체도 우리가 만든 우주도 모두 소멸되는 거니까요.”

RN은 꿋꿋하게 자신이 하고자 하는 말을 마쳤다.

“호우!”

“멋있다!”

리더의 짧은 연설이 끝나자 나머지 멤버들이 작게 환호하며 박수를 쳤다.

이 모습만 봐도 이들의 약속이 얼마나 잘 지켜지고 있는지 알 수 있었다.

훈훈한 분위기 속에서 조용히 있던 정훈이 입을 열었다.

“솔직히 저 혼자라면 그냥 포기하고 메인스트림에 있는 음악 위주로 했을 거예요. 그런데 형들 때문에 버텼던 거죠. 제가 흔들려서 다른 음악을 해버리면 BTG라는 세계가 무너지는 거니까요.”

막내 정훈의 말에 그동안 장난을 치던 형들도 순간 말이 없어졌다.

그중에 B가 말없이 막내 정훈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고생했다.”

B의 말 한마디에 정훈은 눈시울 붉어지며 애써 눈물을 참는 게 티가 났다.

그런 막내의 모습에 분위기가 숙연해졌다.

그러나 성현은 아직 인터뷰를 멈출 수 없었다.

‘진짜 BTG의 모습 아직은 찾아내지 못했어. 여기서 한 꺼풀만 더 벗으면 뭔가 더 나올 것 같은데.’

항상 에너지와 장난기가 넘치는 BTG.

하지만, 방금 정훈의 고백처럼 그들도 사람인 만큼 감추고 싶은 어떤 것이 있을 것이다.

성현은 그것을 찾아내고 싶었다.

사람이 정말 감추고 싶은 어떤 지점.

그거야 말로 어쩌면 가장 그 사람을 잘 표현하는 것이 될 수 있기 때문.

‘세계적인 글로벌 스타 반열에 오른 BTG. 과연 그들이 두려울 게 있을까.’

당장 2년 후의 콘서트 계획까지 잡혀 있을 정도로 인기가 하늘을 찌르는 BTG였다.

일각에선 그들이 비틀즈의 뒤를 이를 보이그룹이란 소리도 하고 있을 정도였다.

‘그럼 이들이 가장 두려워할 건 뭘까?’

그렇게 생각에 잠겨있던 성현의 머릿속에 갑자기 어떤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최단기간에 최정상에 오른 보이그룹. 그 말은 즉,’

성현은 생각을 정리하고, BTG 멤버들을 바라봤다.

“추락하는 것에 대한 두려움은 없나요?”

성현의 물음에 BTG 멤버들 순간 당황해서 서로의 얼굴을 바라봤다.

늘상 장난기 넘치던 그들의 표정에 금이 가는 순간이었다.

“BTG 말이에요. 짧은 시간 안에 말도 안 되는 인기를 얻었잖아요. 잃을 게 없을 신인 때와는 다르죠. 이제 슬슬 무너지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생기진 않나요?”

날카로운 성현의 말에 멤버들의 눈동자가 잘게 흔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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