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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같은 프로듀서는 없었다-234화 (234/273)

234화

성현의 알 수 없는 미소를 본 방시훈이 의아함이 서린 눈으로 성현을 봤다.

아직 젊은 나이라고 들었는데, 자신의 말에 이렇다 할 반응이 없었다.

“기분 나쁜 건 아니죠?”

“아니요. 오히려 기쁩니다.”

의외인 성현의 말에 방시훈이 흥미롭게 성현을 쳐다봤다.

“저도 같은 한국인이란 이유나 BTG가 가진 명성 때문에 콜라보를 할 생각은 전혀 없었거든요.”

“좋네요.”

어찌 보면 건방질 수도 있는 성현의 말.

그런데 방시훈은 역시 기분 나쁘다는 반응 하나 없이 당연하다는 듯 받아쳤다.

‘프로 대 프로라.’

성현은 가슴이 뛰는 것을 느꼈다.

그만큼 성현과 장신을 평등한 관계로 보고 있다는 것이었다.

이는 오히려 이는 성현을 한몫을 하는 프로듀서로서 그만큼 존중한다는 뜻이기도 했다.

방시훈은 자신을 향해 눈빛을 쏴대고 있는 BTG를 둘러본 후 성현을 응시했다.

“우리는 제안서를 보냈고 이성현씨는 아직 그에 대한 대답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니 여기서부터 시작하도록 하죠.”

방시훈 PD의 말에 성현은 올 것이 왔다고 생각했다.

“이성현씨는 우리와 함께 할 생각이 있습니까?”

방시훈의 질문에 성현은 잠시 생각에 잠기더니 역으로 되물었다.

“그 대답에 대한 답을 하기 위해선 저에게 제안서를 보낸 이유를 PD님께 직접 듣고 싶습니다.”

성현의 말에 방시훈은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는 몸을 뒤로 빼며 소파에 파묻듯이 앉아 성현을 봤다.

‘와, 방시훈 PD님한테 안 밀리는데?’

‘저런 사람 오랜만이지 않아?’

멤버들은 성현과 방시훈의 대화가 재밌다는 듯 자기들끼리 눈빛을 주고 받으며 지켜보고 있었다.

한참 생각을 정리하던 방시훈 PD가 입을 뗐다.

“이성현씨도 알겠지만 BTG의 인기는 글로벌합니다. 당장 2년 후 콘서트 일정까지 꽉 찼을 정도니까요.”

방시훈의 말은 결코 자랑이 아니었다.

BTG는 몇 년 사이 말도 안 될 정도로 큰 인기를 얻었다.

한국을 넘어 아시아인들이 가지고 있는 모든 기록을 부수고 있었고.

매 순간 새로운 기록을 만들어 나가고 있었다.

2년 후의 일정까지 잡혀 있는 글로벌 스타의 진면목.

성현은 잠자코 방시훈의 말을 기다렸다.

“내년 초엔 미국에서 그리고 바로 다음 달엔 프랑스, 영국, 이탈리아, 브라질, 중국, 일본에 투어 일정이 잡혀 있습니다.”

그야말로 전 세계를 돌아다니는 빡빡한 스케줄.

동아시아를 넘어 서구권에서도 인기몰이를 하고 있는 BTG다운 스케줄이었다.

“BTG는 글로벌 스타가 됐습니다. 그리고 BTG가 지금의 자리까지 오를 수 있었던 건 다른 회사들보다 빵빵한 자금력도, 인맥도 아니었습니다.”

성현은 이어지는 방시훈의 말을 하나하나 마음에 새기며 경청했다.

아시아 최초로 그래미 상을 수상한 그룹을 만든 최초의 프로듀서.

그의 말 하나하나가 성현에게 소중히 다가왔다.

성현이 롤모델로 삼아야 할 사람.

아니, 언젠가는 넘어설 사람이었다.

“우리가 이 자리에 오를 수 있었던 원동력은 단 하나입니다. 더 좋은 음악을 들려주고자 하는 열정.”

그의 말을 경청하던 성현이 놀랍다는 표정이 되었다.

성현은 방시훈 정도 되는 엄청난 PD라면 그만의 성공 요소가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막상 그의 입에서 나온 얘기는 너무나 당연한 것들이었다.

방시훈의 얼굴에는 살짝 미소가 걸려 있었다.

“왜요? 너무 당연한 건가요?”

“아니요. 당연한 건데 그게 성공의 원동력이라고 하니까 재밌어서요.”

당황한 성현이 얼른 얼버무렸다.

그러자 방시훈이 날카롭게 말했다.

“그게 당연하지 않은 사람들이 그만큼 많다는 겁니다.”

방시훈의 말에 성현은 동의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성현 역시 오디션을 통해 음악을 성공의 수단으로 이용하려는 수많은 사람들을 만나왔다.

“성공에 대한 압박 속에서 자신만의 음악을 하긴 쉽지 않으니까요.”

“그 압박을 이겨내느냐 이겨내지 못하느냐의 차이가 일류와 초일류를 나누는 거라고 봅니다. BTG는 그걸 해냈고 최정상에 올랐습니다.”

방시훈의 말에 BTG 멤버들은 부끄럽다는 듯 웃었다.

그중에 RN은 성현의 앞에서 직접적으로 이런 얘기를 듣고 있으려니 몸 둘 바를 모르겠다는 듯 몸을 배배 꼬고 있었다.

“대표님 너무 저희 자랑만 하시는 거 아니에요?”

“왜. 난 좋은데. 잘났단 소리는 언제 들어도 짜릿해. 질리지 않아.”

BTG의 가장 맏형 서진은 스스로의 멋에 취해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그 모습에 멤버들은 왜 저러냐며 한바탕 웃음을 터뜨렸다.

실제로 만난 BTG 멤버들은 서로 사이가 좋은 듯 스스럼없었다.

성현은 멤버들의 모습을 유심히 관찰했다.

“아무튼 음악에 대한 열정이 우리가 이성현씨에게 제안서를 보낸 이유입니다. 우린 언제나 더 좋은 음악을 만들고 싶고 그 역할을 이성현씨가 해줄 수 있을 거라고 보거든요.”

더 좋은 음악.

그리고 사업적인 계산으로 지금 한창 인기 가도를 달리고 있는 성현에게 BTG와의 콜라보는 서로 득을 보면 봤지, 잃을 게 없을 것이다.

“이 정도면 제안서를 보낸 이유로 충분한가요?”

방시훈의 물음에 BTG 멤버들은 모두 성현의 대답을 기다렸다.

성현은 조금 생각에 빠졌다.

실제로 만나 보니 리더인 RN 말고도 다른 멤버들 역시 음악을 장난스럽게 대하는 사람이 없어 보였다.

“왜 다들 BTG, BTG 하는지 알겠네요.”

성현은 그 말을 하며 방시훈과 BTG 멤버들 모두와 눈을 맞췄다.

“이번 곡에 정말 진정성 있는 태도를 가진 아티스트를 찾고 있었는데 찾은 것 같습니다.”

성현의 말에 BTG 멤버들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저 말인 즉슨......!

“그 말은 파트너쉽을 체결하겠단 걸로 받아들여도 되나요?”

방시훈의 말에 성현은 싱긋 웃어 보였다.

“네. 대신 조건이 있어요.”

그리고 성현의 마지막을 들은 BTG와 방시훈 PD는 순간 당황했다.

설마 성현이 먼저 조건을 걸 거라고는 생각지도 못했기 때문.

“일단 말해보세요.”

방시훈이 안경을 고쳐 쓰며 성현에게 말했다.

성현은 방시훈이 아닌 BTG 멤버들을 쳐다봤다.

당연한 일이었다.

성현이 걸 조건은 BTG 멤버들과 관련된 일이었으니까.

“TV에 나오는 BTG의 모습이 아니라 진짜 BTG의 모습을 보여주세요.”

성현의 말에 BTG 멤버들 모두 어리둥절해 할 뿐이었다.

영 갈피를 잡지 못하는 멤버들의 모습에 성현이 RN을 쳐다봤다.

“전세기에서 저랑 했던 대화 기억해요? RN씨가 좋아하는 라틴 팝에서 시작해서 음악을 시작하게 된 계기, 가수 생활을 하면서 가장 힘들었던 순간, 그리고,”

성현이 말을 하려는데, 시선을 받고 있는 RN이 사색이 되어 안된다며 손을 저었다.

그 모습을 보며 성현은 짓궂게 웃었다.

“첫사랑 얘기까지 서로 솔직한 대화를 나눴잖아요.”

성현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멤버들이 RN을 놀리기 시작했다.

장난스럽게 질색팔색을 하며 RN을 향해 덤벼드는 멤버들.

“아 또 그 누나 얘기했나? 형도 진짜 엔간하다.”

“몽룡이 형. 춘향 누나 타령 좀 그만 하세요. 춘향이 누나 결혼해서 잘살고 있데요.”

RN은 결국 고개를 푹 숙이고 귀를 막아 버렸다.

온 대한민국, 세계에다가 소문낼 작정이냐고 끈질기게 물고 늘어지는 멤버들을 단속시킨 건 방시훈 PD였다.

“그만. 그만들 하고 진중하게 좀 있자.”

방시훈은 익숙하다는 듯이 그들에게 말했다.

방시훈의 한 마디에 와글와글 떠들던 BTG 멤버들이 잠잠해졌다.

아무래도 멤버수도 많다 보니 이들을 단속하는 게 쉽지만은 않아 보였다.

한시라도 장난을 못 치면 가만 못 있는 비글미 넘치는 BTG 멤버들을 보며 한숨을 쉬며 성현을 봤다.

“얘넨 온앤오프가 똑같은 놈들이라 진짜 모습이랄 것도 없을 겁니다. 찾아내면 이성현씨가 대단한 거고.”

본모습이랄 게 없다고.

저 모습이 바로 당신이 원하는 본모습이라는 듯이 가리키는 방시훈의 모습에 제이가 벌떡 일어났다.

“대표님 그렇게 말하면 제이 서운해. 완존 서운해.”

제이가 앙탈을 부려가며 방시훈 대표에게 애교를 떨었다.

멤버들은 그런 모습이 익숙한지 아무렇지도 않았다.

방시훈 역시 익숙한지 이만 물러나라는 듯 손을 저었다.

“그럼 우린 어떻게 되는 거예요? 파트너 맺는 거 맞아요?”

RN은 방시훈과 성현을 번갈아 가며 물었다.

그 뒤에서 다른 멤버들 역시 눈을 반짝이며 두 사람을 보고 있었다.

성현과 방시훈은 동시에 고개 끄덕이더니 자리에서 일어났다.

“잘해봅시다.”

“잘 부탁드려요.”

방시훈과 성현은 프로 대 프로로서 악수를 나눴다.

***

간단한 미팅이 끝난 후, 투히트의 연습실로 자리를 옮겼다.

방시훈 PD는 다른 일로 사무실에 남았고, 성현과 BTG 멤버들이 모인 자리였다.

“전 이번 곡에 BTG라는 글로벌 스타의 솔직한 이야기를 담아보고 싶습니다. 그래서 진짜 BTG의 모습을 보여달란 거였고.”

성현은 이미 곡에 관한 전반적인 컨셉과 내용을 생각해둔 것이 있었다.

그렇기에 거침없이 의견을 제시하며 빠르게 회의를 진행해 갔다.

“단순히 BTG와 관련된 TMI가 아니라 지금의 BTG가 되기 위해 겪어야 했던 힘들고 어두웠던 과거까지도 모두 솔직하게 얘기를 해주면 좋겠어요.”

아이돌은 만인의 우상이 되어야 하는 존재.

그들에게는 차마 대중들에게 오픈하지 못한 어두운 면이 있을 것이다.

성현이 파고들고자 하는 것은 이 부분이었다.

성현의 요청에 준기가 난처한 표정이 되어서 질문했다.

“반드시 어두운 과거만 얘길 해야 하나요?”

나쁘지 않은 컨셉이었지만, 아무래도 부담스러운 방향이라는 것에는 변함이 없었다.

성현은 그 말에 오해의 소지가 있다는 걸 깨닫고 재빠르게 정정했다.

“아니요. 꺼내기 힘든 부분까지 솔직하게 얘기를 해주면 좋겠단 뜻으로 말한 거였지 반드시 힘들었던 순간일 필요는 없습니다.”

“솔직한 이야기라......”

“뭐가 있을까.”

멤버들은 성현의 이야기에 각자 생각에 잠겼다.

“여러분들이 지금껏 대중들에게 보여주지 못했던, 전해주고 싶은 메시지나 무대가 있다면 그것도 자유롭게 얘기해주면 좋겠어요.”

이어진 성현의 말에 멤버들 모두 생각나는 게 있는지 입을 다물고 각자 고민하는 눈치였다.

이를 지켜보는 성현은 조금 긴장됐다.

‘지금까지 화려한 퍼포먼스 위주의 공연을 해왔으니 조금 망설여지려나.’

BTG가 톱스타 반열에 오를 수 있었던 이유.

단순히 칼군무를 잘 추는 아이돌이 아니라, 멤버들 개개인의 개성 넘치는 춤 실력과 보컬이 합쳐진 독자적인 퍼포먼스를 만들어 냈기 때문이었다.

그렇기에 당연히 그들의 무대는 대부분 화려하고 강렬한 무대가 많았다.

그에 반해 지금 성현이 제안한 컨셉은 정반대였다.

화려함보다는 멤버들의 솔직한 메시지 전달에 초점을 둔 무대.

성현은 기존의 BTG의 색깔을 똑같이 답습한 무대를 보여줄 생각이 없었다.

성현과 BTG가 만나서 할 수 있는 무대.

그들만이 할 수 있는 노래와 퍼포먼스.

성현은 BTG와 함께 단 하나의 무대를 준비해볼 생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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