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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같은 프로듀서는 없었다-233화 (233/273)

233화

택시에서 내린 성현이 건물을 올려다보니 TWO HIT라고 적힌 로고가 눈에 들어왔다.

TWO HIT.

현재 대한민국에서 가장 핫한, 아니 글로벌적으로도 가장 핫한 아티스트인 BTG를 품고 있는 기획사.

‘난 아직 갈 길이 멀구나.’

그 으리으리한 위용에 성현은 할 말을 잃었다.

제대로 된 감탄사조차 나오질 않았다.

성현이 오디션에서는 강력한 우승 후보일지라도 현실은 냉혹했다.

진짜 프로듀서로서의 성현의 커리어는 아직 시작 단계에 불과했다.

글로벌 스타를 배출해 낸 방시훈 PD에 비하면 아직 데뷔시킨 아티스트도 없었으니까.

‘나도 언젠가는 꼭......’

이제 성현의 꿈은 천소울과 최고의 무대에 서는 것으로 끝나지 않았다.

그것을 넘어 최고의 글로벌 스타를 만드는 최고의 프로듀서가 되고 싶었다.

성현이 주먹을 불끈 쥐고 투히트 엔터테인먼트 건물로 들어갔다.

들어가자마자 안내 데스크에서 직원과 얘기를 나누고 있는 RN의 모습이 눈에 띄었다.

지난번 만났을 때와 다르게 캐쥬얼한 청바지 차림에 맨투맨을 입고 있었다.

‘설마 마중 나온 건가.’

성현은 글로벌 톱스타가 1층까지 자신을 마중 나오진 않았겠지, 라는 생각이 들어 고개를 저었다.

그러다 그가 미국 LA까지 날아왔던 것이 생각나 정말로 그럴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 성현을 발견한 안내데스크 직원이 RN에게 눈짓을 했다.

RN이 뒤돌아 성현을 발견하고는 활짝 웃었다.

“집엔 잘 다녀왔어요?”

“네. 덕분에. 태워다 주셔서 고마워요.”

RN은 별거 아니라 말하며 성현을 직접 엘리베이터로 안내했다.

“저 때문에 나와계셨던 건 아니죠?”

성현은 설마 하는 마음에 물었다.

“맞는데. 성현씨 모시러 온 거예요. 비행기 타고 LA까지 다녀온 마당에 엘리베이터 타고 1층 로비라고는 못 가겠어요?”

RN이 장난스럽게 웃으며 엘리베이터에 올라타고 5층 눌렀다.

그리고 성현을 돌아보며 조금 아쉽다는 표정을 지었다.

“이건 좀 아쉽네요.”

“뭐가요?”

“5초면 음악 얘기 나누긴 너무 짧잖아. 이럴 거면 다시 LA 가서 미팅할 거 그랬어요.”

성현은 그게 무슨 말인가 싶어 생각에 잠기다 이내 RN의 말을 이해하고는 피식 웃었다.

미국에서 한국에서 오는 동안 그와 나누었던 음악 이야기들.

그는 전세기에서 성현과 나누었던 대화를 나누지 못하게 된 걸 아쉬워하는 중이었다.

“앞으로 또 기회가 있을지도 모르죠.”

성현의 말에 RN은 그게 언제냐는 듯 쳐다보는데, 엘리베이터가 5층에 도착해 문이 열렸다.

성현은 엘리베이터에서 먼저 내리면서 답했다.

“우리가 이번 라운드 파트너가 될 수도 있는 거잖아요.”

끝까지 여지를 남기는 성현의 말.

성현의 말에 잠시 벙쪄있던 RN은 이내 재밌다는 듯 웃으며 성현을 쫓았다.

“이성현씨 연애 고수예요? 밀당을 참 잘하시네.”

“밀당한 적 없어요. 항상 진심을 담아 말하는 겁니다.”

“그럼 타고난 카사노바네. 맞죠?”

RN은 믿기지 않는다는 듯이 끈질기게 물었다.

성현은 난감함을 느끼며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어디로 가면 되는 돼요? 미팅룸?”

성현이 화제를 돌리며 묻는데, RN이 성현의 팔을 붙잡고 정반대 방향으로 향했다.

널찍하게 떨어져 있는 미팅룸들을 지나 구석으로 들어가는 RN.

“어? 여긴......”

RN을 따라가던 성현이 의아함에 혼잣말을 했다.

그리고 성현의 얼굴이 점점 굳어갔다.

설마, 설마......?

RN은 맞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요. 방 PD님 사무실.”

“…….”

RN은 그 말을 끝으로 노크를 하더니 문을 열고 들어갔다.

그뒤를 따르는 성현에게 방PD 대표의 사무실 내부가 보였다.

성현은 순식간에 벌어진 일에 반쯤 끌려가다시피 방 안으로 들어갔다.

그곳에는 볼펜을 들고 뭔가를 설명 중이던 방시훈 PD가 말을 멈추고 성현을 쳐다봤다.

성현은 순간 시간이 멈춘 듯한 기분을 느꼈다.

‘실물이다.’

성현은 뻣뻣해진 목을 돌려 천천히 사무실을 둘러봤다.

소파에는 방시훈PD와 대화 중이던 BTG의 메인 댄서이자 리드보컬인 창민의 모습이 보였다.

그의 옆에 앉아있는 서브 보컬 B와 메인 보컬 정훈도 앉아있었다.

그리고 그들의 맞은편에는 서브보컬 서진과 리드 래퍼 준기, 메인 댄서 제이와 자신의 옆에 서 있는 BTG의 리더 RN까지.

방시훈 프로듀서와 함께 BTG 완전체가 성현을 맞이했다.

‘진짜 BTG 구나.’

성현은 RN 혼자 만났을 땐 느끼지 못했던 무언가를 느꼈다.

BTG라는 글로벌 스타가 가지고 있는 힘과 아우라.

서로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는데도 성현은 압도당하는 느낌이었다.

‘이거 진짠가. 이 상황 진짜 맞지.’

자신의 눈앞에 빌보드를 호령하는 슈퍼스타 BTG의 멤버들이 있다.

그리고 그러한 슈퍼스타를 탄생시킨 대한민국 최고의 프로듀서 방시훈 PD까지.

그 사실에 굉장히 여러 가지 감정이 빠르게 스쳐 지나갔다.

놀랍기도 하고.

신기하기도 하고.

좋기도 하고.

재밌기도 하고.

어색하기도 하고.

분명 투히트 사옥에 도착해서 RN을 만나 엘리베이터를 탈 때까지 느끼지 못했던 감정이었다.

그새 RN에게는 익숙해진 탓일까?

그게 아니라면......

‘사무실을 넘어가는 순간 다른 차원으로 넘어간 게 아닐까. 공기부터가 다른 느낌이야.’

BTG라는 글로벌 스타가 가지고 있는 아우라도 어마어마했다.

그런데 그것보다 더 한 압박감이 있었다.

BTG 멤버들과 함께 자신의 앞에 앉아있는 방시훈 PD의 존재감.

그의 안경 너머로 보이는 날카로운 눈빛은 제아무리 성현이라도 긴장할 수밖에 없었다.

그 눈빛은 어쩌면 그가 자신의 생각과 마음을 꿰뚫어 보는 것이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강렬했다.

“성현씨? 괜찮아요?”

RN은 성현이 사무실에 들어간 이후 한마디도 하지 않고 서 있기만 하자, 어깨를 흔들어 불렀다.

성현은 그제야 자신이 너무 오랜 시간 말을 하지 않고 있었다는 걸 깨달았다.

이제는 꿈에서 깰 시간이었다.

지금 눈앞에 펼쳐진 상황은 순도 100퍼센트 현실이었으니까.

“인사가 좀 늦었네요. 프로듀서 이성현입니다.”

성현은 애써 침착함을 유지하며 인사를 했다.

RN은 방시훈 PD와 멤버들에게 인사를 하는 성현의 얼굴을 살피며 괜찮나 확인했다.

그뒤에 방 PD와 BTG 멤버들을 성현에게 소개시켜 주었다.

차례로 소개를 해주는 RN을 따라 성현도 멤버 한 사람, 한 사람과 정식으로 인사를 했다.

다들 성현의 팬이라는 것이 사실인 듯했다.

초롱초롱한 눈으로 묻고 싶은 게 한가득인 얼굴부터.

탐난다는 듯이 있는 힘껏 악수를 하며 성현의 손을 놓지 않는 멤버들까지.

“마지막으로 이쪽이 우리 막내이자 메인보컬 정훈.”

“김정훈입니다.”

귀를 넘길 정도로 살짝 긴 머리를 파마한 막내 정훈이 쑥스러운 듯 짧게 인사를 했다.

낯을 가리는 듯 성현과 제대로 눈을 마주치지도 않았다.

그의 인사를 끝으로 성현과 BTG와 방시훈 대표와의 통성명도 끝이 났다.

“성현씨, 여기로 앉으세요.”

모든 인사가 끝나자 RN의 인도로 성현은 방시훈 대표 옆자리에 자리 잡았다.

RN까지 자리를 잡고 앉자 방시훈 대표가 입을 열었다.

“아침에 도착했다 들었는데 너무 무리하게 약속을 잡았나 싶어 미안하네요.”

표정은 무표정이었지만 걱정스러운 어조로 말하는 방시훈 PD의 말에 성현이 손을 내저었다.

다들 시간이 돈인 사람들이었다.

돈으로 시간을 사기 위해 전세기를 띄우는 사람들.

그것만으로도 이들이 얼마나 성현을 배려해줬는지는 충분히 알 수 있었다.

게다가 덕분에 RN과 전세기를 타보기도 하지 않았는가.

어디서도 이런 경험은 해보지 못할 것이 분명했다.

“아닙니다. 전세기까지 보내주셔서 편하게 한국 와서 피곤한 건 전혀 없습니다.”

성현의 말에 제이가 불쑥 끼어들었다.

전세기 이야기라면 또 멤버들이 빠질 수 없었다.

한쪽으로는 RN을 힐긋거리면서.

“부담스럽진 않았어요? 우리가 부담스러울 거라고 끝까지 말렸는데 RN 쟤가 직접 데리러 가야 된다고 우겼거든요.”

멤버들 모두가 RN을 돌아보며 한 마디씩 던졌다.

나서서 만들어주는 편한 분위기에 성현은 미소 지었다.

그 가운데에서 RN은 뭐가 문제냐며 어깨를 으쓱할 뿐이었다.

“네, 말씀 들었습니다. 부담스럽기보단 오히려 제안서에 대한 진정성이 느껴져서 좋았습니다.”

성현의 말에 창민이 반색하며 탄식했다.

안 그래도 RN이 성현과 오는 내내 잠도 안 자고 음악 이야기를 나눴다고 해서 멤버들 모두 부러워 죽으려고 하고 있었다.

성현이 오기 전까지 멤버들은 돌아가면서 RN에게 둘이 무슨 이야기를 했냐고 캐묻기까지 했다.

“아, 그럴 거면 내가 갈 걸 그랬네. 나도 진짜 이성현씨 팬이거든요. 너튜브에 올라온 공연 영상도 다 찾아보고.”

창민의 말에 옆에 있던 B도 거들었다.

“우리 중에 팬 아닌 사람이 있나. 대표님도 팬인데.”

B의 말에 성현이 놀라 방시훈 PD와 눈을 마주쳤다.

지금까지 가만히 얘기를 듣고 있던 방시훈 PD가 입을 뗐다.

“RN이 뭐라고 말했을 지는 모르겠지만 우리가 아무리 이성현씨 팬이더라도 단순히 팬심 때문에 전세기까지 띄워준 건 아닙니다.”

방시훈의 본격적인 말에 조금 들떠있던 분위기가 가라앉았다.

멤버들 몇몇은 조금 아쉽다는 얼굴이었지만, 방시훈 대표는 가차 없었다.

성현은 말없이 방시훈 대표의 뒷말을 기다렸다.

“듣긴 조금 그렇더라도 노골적으로 말하자면 전세기는 일종의 접대입니다. 비즈니스를 함께하고 싶은 파트너에게 보여주는 호의인 동시에 뇌물.”

‘호락호락한 사람은 아니구나.’

성현은 진중하게 그의 말을 들었다.

방시훈, 그는 프로듀서이면서 회사를 이끄는 대표였다.

즉 음악을 사업으로 삼는 사람.

단순히 장난으로 음악을 대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20년 넘게 히트곡 제조기로 한국 음악계를 떠들썩하게 했던 작곡가.

수많은 오디션 프로에서 독설로 유명세를 떨친 심사위원.

독립적인 기획사를 차린 후에는 글로벌 대스타 BTG를 런칭한 사업가이기도 했다.

그가 어떤 행동을 할 때 그것은 음악적인 것과 동시에 사업적인 거였다.

그리고 그가 전세기를 띄워서 미국으로 보냈다는 건 시사하는 바가 컸다.

RN이 말한 것처럼 단순히 BTG 멤버들이 원했다는 것만으로 전세기를 띄우지는 못했을 것이다.

전세기는, 단순히 성현이 가지고 있는 음악성과 재능에 대한 찬양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와 함께 사업을 하고 싶다는 제스처였다.

성현 역시, 그 부분을 인지하고 있었다.

‘이제 시작이다.’

하지만 성현이 굽히고 들어갈 필요는 없었다.

이 자리에서 성현은 글로버 스타인 이들에게 제안서를 받은 프로듀서.

칼자루를 쥐고 있는 건 성현이었으니까.

“서로에 대한 칭찬은 이쯤 하기로 하고 본격적으로 콜라보에 대한 얘기를 나누도록 하죠.”

방시훈 프로듀서의 말에 멤버들도 긴장과 기대를 담은 눈으로 성현을 쳐다봤다.

“프로 대 프로로서.”

방시훈의 말에 성현은 살며시 미소 지었다.

그건 성현 역시 바라던 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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