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 같은 프로듀서는 없었다-230화 (230/273)

230화

“비행기에 침대가 있어?”

“AD님! 여기 샤워실도 있습니다!”

“샤워실까지 있다고? 그냥 인테리어 아니야? 물 나오는지 봐봐.”

김인호의 말에 스탭이 샤워기 물을 트는데 이내 물이 쏴, 하고 나오며 스탭의 머리를 적셨다.

스탭은 갑자기 눈에 물이 들어가자 손을 더듬거리며 샤워기를 끄고 소리쳤다.

“저희 집보다 잘 나옵니다!”

“오오!”

김인호 AD와 스탭들은 처음 타보는 전세기를 구경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조종사가 이륙 준비를 할 테니 안전벨트를 매달라는 안내 멘트가 나오고 나서야 자리에 앉았다.

성현과 RN은 뒤편에 나란히 앉았다.

김인호와 스탭들은 더 앞자리에 앉은 상태로 비행기가 이륙했다.

곧 승무원이 온더락 잔에 담긴 위스키를 웰컴 드링크로 서빙 하기 시작했다.

“전 됐습니다.”

성현이 승무원이 건네는 위스키를 거절하자, RN이 대신 잔을 받아들더니 성현에게 건넸다.

“긴장도 풀 겸 가볍게 한 잔 들어요. 한국까지 긴 여행이 될 텐데.”

RN이 직접 권하는 잔에 성현은 망설이다가 결국 받아들었다.

“그럼 딱 한 잔만 마시겠습니다.”

성현은 RN과 가볍게 잔을 부딪친 다음, 위스키를 한 모금 들이켰다.

“갑자기 찾아와서 많이 당황했죠?”

“아니라고 하면 거짓말이겠죠?”

“불편하게 해서 미안해요. ……사실 멤버들도 갑자기 찾아가면 성현씨가 불편해할 거라고 말렸는데 제가 우겨서 온 거거든요. 하루라도 빨리 성현씨랑 얘기 나눠보고 싶어서.”

RN은 그 말을 하고서 자기가 생각해도 겸연쩍은지 시선을 돌렸다.

그 모습에 성현이 웃으며 손을 내저었다.

“불편하진 않았어요. 오히려 직접 찾아와 주셔서 그만큼 저와 작업하고 싶은 게 진심이란 게 느껴져서 좋았습니다.”

“다행이네요. PD님이 이성현씨 설득 못 하면 한국 돌아올 생각 말라 했거든요.”

RN의 입에서 나온 PD.

그 말이 나오자 성현이 놀라서 그를 쳐다봤다.

‘설마......’

“PD님이라면 방시훈 PD님 말씀하시는 건가요?”

“네. PD님께서도 성현씨 많이 보고 싶어 하세요.”

RN의 말을 들은 성현은 순간 말문이 막혔다.

단순히 BTG뿐만 아니라 방시훈 PD까지 나섰을 줄은 몰랐다.

그들이 이번 작업에 얼마나 진심인지가 느껴졌다.

장난으로 접근하던 해외 스타들과는 달랐다.

이들은 정말 진심으로 임하고 있었다.

‘최고의 음악 만들고 싶다는 말이 진짜였구나.’

확실히 BTG는 제안서를 보내왔을 때부터 다른 가수들과는 다른 태도였다.

이렇게 전세기까지 띄울 줄은 몰랐지만 말이다.

게다가 방시훈 PD까지 나선 것을 듣자 하니 더욱 확실해졌다.

그들은 단순히 더 넥스트 슈퍼스타가 가지고 있는 화제성 때문에 제안서를 보낸 것이 아니었다.

정말로 프로듀서 이성현의 능력 자체를 높이 사서 함께 하고 싶어 하는 것이다.

‘BTG라면 함께 최고의 음악을 만드는 것도 가능하지 않을까. 어떤 음악이 좋으려나.’

저도 모르게 마음이 기울어지고 있다는 것이 느껴졌다.

아직까지 서로 곡에 대한 이야기를 구체적으로 나눠보지도 않았다.

파트너 결정이 된 것도 아니었다.

하지만 성현은 BTG와 작업을 하게 되면 그들의 말처럼 최고의 곡을 만들 수 있을 거란 생각이 스멀스멀 들었다.

자신도 모르게 BTG에게 어울릴만한 곡에 대해 생각하고 있었다.

‘재밌는 작업이 될 것 같아.’

성현은 자신도 모르게 얼굴에 미소가 피어 올랐다.

RN은 그런 성현을 신기하게 쳐다봤다.

술 한잔에 저러는 거 같지는 않았는데…….

“무슨 생각을 하길래 그렇게 웃어요?”

“음악이요.”

RN은 그게 무슨 소리냐는 듯이 성현을 쳐다봤다.

“BTG와 함께 작업하면 어떤 무대를 만들 수 있을까, 생각해 봤어요.”

“그 생각 마음에 드네요. 혼자만 하지 말고 저도 끼워줘요.”

성현의 말에 RN의 얼굴이 확 밝아졌다.

저 말은 BTG와 콜라보 공연을 하는 것을 받아들인다는 것과 다름없었으니 말이다.

“그래요. 시간도 많은데. RN씨는 주로 어떤 음악 좋아하세요?”

한국까지 비행시간은 12시간.

술 한잔과 영화 몇 편으로는 이 지루함을 견디지 못할 것이 분명했다.

“음, 시기마다 조금 다른 것 같아요. 처음 음악을 시작할 땐 힙합으로 시작했는데 최근엔 라틴 팝에 빠졌거든요.”

RN은 잠시 궁리하다가 대답했다.

성현은 그 말에 반가워하며 바로 말했다.

“전 라틴 팝 하면 가장 먼저 Macarena가 생각나요.”

“엄청난 노래죠. 빌보드 핫100 14주 연속 1위라는 대기록을 세우기도 했고.”

RN 역시 성현의 반응을 기꺼워하며 자신이 좋아하는 곡명을 주루룩 나열했다.

“라틴 팝 좋아하면 니키 마틴 좋아하겠네요?”

성현의 말에 RN은 천천히 고개를 저으며 한쪽 손바닥을 들어 올렸다.

그 모습은 본 성현은 얼떨결에 그와 하이파이브를 했다.

RN은 그러고도 흥분이 가라앉지 않았는지, 당연하다는 말과 함께 눈을 반짝이며 성현을 봤다.

“니키 마틴의 바이브는 진짜 미쳤어요. 최근 낸 앨범 들어봤어요?”

“당연히 들었죠. 개인적으론 타이틀 곡보단......”

성현과 RN은 비행기 안에서 끊임없이 음악 얘기를 나누었다.

그덕에 둘은 한국에 도착할 때까지 한숨도 자지 않았다.

둘의 대화 소리에 피곤함을 호소한 것은 김인호 AD와 스탭들이었다.

성현이라면 모를까, BTG의 RN에게 잘 거니까 조용히 좀 해달라고 말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그 정도로 두 사람은 함께 음악 얘기를 하면서 시간 가는 줄 몰랐다.

비행기가 착륙한다는 기장의 안내 멘트가 나오고 나서야 두 사람은 말을 멈췄다.

두 사람은 동시에 서로를 바라보며 웃음을 터트렸다.

밤을 새워 대화를 나눴다는 걸 알고는 헛웃음이 끊이질 않았다.

***

‘더 넥스트 슈퍼스타’ 한국 측 관계자들은 발 빠르게 움직였다.

이미 RN과 성현이 함께 한국에 귀국한다는 사실을 언론에 퍼트린 것.

화제성을 위해 그런 것이지만, 결과는 생각보다 더 엄청났다.

인천국제공항은 이미 취재진들과 팬들로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었다.

슈퍼스타인 RN은 당연하고, 이성현 역시 이미 전 세계적으로 인기를 끌고 있는 인물.

어느새 성현은 ‘더 넥스트 슈퍼스타’를 통해 한국을 대표하는 인물로 국민적인 관심을 받고 있었다.

“저기 나온다!!”

마침내 입국 심사를 마친 성현과 RN이 입국장에 나타났다.

여기저기서 플래시가 터졌고, 팬들이 달려들기 시작했다.

가이드 라인을 만들고 대기하고 있던 경호원들이 나서서 그들을 만류했다.

“밀치지 마세요!”

미리 배치된 공항 경비들과 사설 경호원들이 몸을 던졌다.

그들이 갑자기 몰려드는 팬들로부터 성현과 RN을 보호하자, 둘은 간이로 마련된 인터뷰 장소로 빠르게 이동했다.

성현은 여기저기서 터지는 플래시 때문에 정신을 못 차리며 간신히 인터뷰장으로 이동했다.

RN은 이러한 일이 익숙하다는 듯 여유로운 미소를 잃지 않았다.

‘톱스타도 아무나 하는 게 아니구나.’

스타가 되는 순간 언제 어디서 사진이 찍힐지 모른다.

항상 표정조차 함부로 지을 수가 없게 된다.

조금만 얼굴에 감정을 드러내도 그것이 어떤 식으로 왜곡될지 모르기 때문이다.

RN은 침착하게 미소를 띤 채로 자신에게 향한 카메라를 골고루 바라보고 있었다.

성현은 프로듀서인 자신이 모르는 스타들의 고충을 느낄 수 있었다.

두 사람은 겨우 인터뷰 장소에 앉을 수 있었다.

미리 기다리고 있던 기자들이 RN과 성현에게 각각 질문을 던졌다.

“두 분 함께 입국했는데 혹시 이번 라운드 곡 작업을 함께하는 건가요?”

전국민이, 아니, 전 세계인이 주목하고 있는 질문이 제일 먼저 나왔다.

“글쎄요. 그 대답은 성현씨한테 들으셔야 할 것 같은데.”

여유로운 미소를 잃지 않은 RN의 대답.

그 말에 기자는 마이크를 성현 쪽으로 돌렸다.

성현은 그 엄청난 관심에 조금 난처하게 웃었다.

제안서를 받을 때만 하더라도 설마 이 정도로 엄청난 일이 될 줄은 몰랐는데.

“아직 확정된 건 아니고 서로 긍정적인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단계입니다.”

조심스러운 성현의 대답에 만족하지 못한 기자가 재차 질문을 던졌다.

“오디션 도중 한국에 방문한 이유도 BTG와 관련된 건가요?”

“네. BTG와 이번 라운드를 함께 할 경우 세부적인 계획에 대해 얘길 나눌 필요가 있었고 아무래도 직접 얼굴을 보고 미팅을 하는 게 맞다 판단하여 오기로 결심했습니다.”

기자들은 웅성거리며 저들끼리 이야기를 나눴다.

다른 기자가 손을 들고 질문에 나섰다.

“BTG가 이번에 이성현씨와 작업을 하기로 결심하기까지 방시훈 대표의 영향도 있었나요?”

“네. 대표님께서 처음 먼저 제안을 했습니다.”

그 말에 기자들의 눈에 이채가 서렸다.

방시훈 대표마저 움직이게 한 성현에게 더욱 많은 관심이 쏠렸다.

“저와 멤버들 또한 이성현 참가자를 눈여겨보고 있었기 때문에 결심하기까지 긴 고민을 하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덧붙여진 RN의 말, 그 말은 BTG 모두가 성현에게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는 소리였다.

기자들은 연신 고개를 끄덕이며 둘의 말을 들었다.

다른 기자가 손을 들었다.

이번에는 성현을 향한 질문이었다.

“영국에 이어 미국까지 다녀오셨잖아요. 오랜만에 만나는 한국 팬들에게 한 말씀 해주신다면요?”

영국으로 떠날 때까지만 해도 한국에서 이 정도로 인지도를 쌓을 줄은 몰랐다.

성현은 다소 얼떨떨한 마음으로 침착하게 입을 열었다.

“해외에서 치열한 경쟁을 하면서 한국 팬 여러분들의 열렬한 응원이 있었기 때문에 버틸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세 사람 모두 타지에 있으면서 서로에게 많은 의지를 했다.

그래도 채워지지 않는 불안감을 극복하게 해준 것이 바로 팬들의 응원이었다.

라이브 댓글창, 업데이트 되는 너튜브 오디션 방송분의 댓글, 각종 SNS를 통해 올라오는 관심과 응원들.

특히 임하나가 나서서 틈만 나면 힘이 되는 팬들의 댓글을 두 사람에게 읽어 주었다.

“저를 포함한 천소울, 임하나씨 또한 한국 팬 여러분들에게 응원에 항상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어요. 앞으로 더 좋은 음악으로 보답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성현이 말을 마치자 옆에서 대기하고 있던 직원이 올라왔다.

“시간 관계상 인터뷰는 여기까지 하겠습니다!”

BTG 측에서 나온 관계자가 기자들의 질문을 막았다.

성현과 RN은 짧은 인터뷰를 끝낸 후 공항을 벗어났다.

그곳에 준비되어 있는 차를 타고 빠르게 공항을 빠져 나갔다.

“성현씨 오랜만에 한국 온 건데 당장 미팅 먼저 하자고 하는 건 너무 양심 없는 거겠죠?”

RN은 장난스럽게 웃으며 물었다.

말은 그렇게 하면서 지금 당장이라는 대답을 기대하는 눈치였다.

그의 모습을 보니 왜 한국에 있지 않고 LA까지 날아왔는지 알 것 같았다.

“전 상관없는데 아버지께서 많이 서운해하실 것 같네요.”

성현은 마침 이주성에게서 도착한 메시지를 보며 대답했다.

그 말에 RN은 아쉬운 듯이 입맛을 다셨다.

-이주성: 도착했어? 집에 곧장 올 거지?

-성현: 네. 이따 봬요.

“그럼 언제가 좋을까요? 저희는 오늘 내일 스케쥴 다 비워놨습니다.”

RN은 포기하지 않고 눈을 반짝이며 말했다.

성현 역시 그들과의 만남을 미루고 싶지 않기는 마찬가지였다.

“저녁이 좋을 것 같네요. 오후엔 잠깐 들를 곳도 있고 해서.”

오랜만에 도착한 한국.

성현에게는 당장 BTG와의 미팅 외에도 할 일이 산더미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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