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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같은 프로듀서는 없었다-229화 (229/273)

229화

“아마 당분간은 그런 작업을 계속 진행할 것 같습니다.”

“재밌겠네요. 모건 정도로 음악적 깊이가 있는 사람과 음악에 관한 얘기를 나누는 건 얻기 힘든 기회잖아요.”

성현은 아주 잠깐, 아주 잠깐이지만, 천소울이 자신과 함께 브루클린에 가지 않겠냐고 제안했던 것을 떠올렸다.

셋이서 함께 음악 얘기를 하면 얼마나 좋을까.

“네. 단순히 대화를 나누는 거지만 그 안에서 배우는 게 많습니다. 따지고 보면 주로 질문을 하는 건 모건이고 대답은 제가 하는데 말이에요.”

천소울이 이렇게 신이 나서 이야기하는 것은 드문 일이었다.

성현은 슬그머니 올라오는 부러움과 질투심을 눌러 삼켰다.

“그만큼 모건이 질문을 잘한다는 뜻이겠죠. 좋은 기회인 만큼 많이 성장해서 오세요.”

성현의 말에 천소울은 그렇게 말한 걸 후회하게 만들어 주겠다고 으름장을 놓았다.

성현은 한국에서 돌아와서 브루클린부터 찾아가겠다고 응수했다.

둘이 화기애애한 식사 시간을 보내고 있는데, 성현의 휴대폰으로 전화가 걸려왔다.

발신인은 이대훈 PD였다.

“네, PD님.”

“어디예요 지금?”

별일이었다.

이대훈의 목소리가 상당히 다급해 보였다.

어딘가 격양된 것도 같고......?

성현은 영문을 몰라 하며 대답했다.

“근처 식당에 밥 먹으러 왔는데, 왜요?”

“지금 밥이 중요한 게 아니니까 최대한 빨리 호텔로 와요!”

“네? 갑자기 왜요?”

성현은 갑작스러운 호출의 의미를 알 수 없어서 되묻기만 했다.

“이성현씨 만나겠다고 호텔까지 직접 찾아왔어요, 지금!”

“누가요?”

이 시간에? 나를?

한국도 아니고 미국에서 자신을 찾아올 사람이 누가 있을까 생각에 잠기는데, 이대훈이 수화기 건너편에서 대답했다.

“……!”

이대훈이 누군가의 이름을 말해줬다.

성현은 예상치 못한 이름을 듣고 깜짝 놀라 되물었다.

“진짜 그 사람이 직접 찾아왔다구요?”

“그렇다니까! 최대한 빨리 와요!”

이대훈이 다급하게 외치자 성현은 정신이 번쩍 들어서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밥을 먹다 말고 성현이 벌떡 일어나자, 천소울은 무슨 일인가 싶어 그를 쳐다봤다.

성현은 천소울에게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가면서 설명해 줄 테니까 일단 따라와요.”

“네? 저기, 이성현씨! 야!”

성현은 천소울의 외침을 뒤로하고 계산을 한 뒤 빠르게 식당을 빠져나갔다.

천소울은 반 이상 남은 저녁밥과 성현을 번갈아 보더니 따라 일어났다.

“아, 뭐야.”

천소울은 영문도 모른 채 성현을 쫓아갔다.

***

이성현과 천소울이 숨을 몰아쉬며 호텔 로비로 들어갔다.

아니, 들어가려고 했다.

호텔 로비는 사람들도 가득 차서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그래서, 저기로 들어가야 한다고요?”

사람이 많은 곳은 질색인 천소울이 인상을 찌푸리며 호텔을 가리켰다.

“.......”

그건 성현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들어가야 했다.

저 사달이 난 것은 어떻게 보면 자신 때문이었으니까.

더 넥스트 슈퍼스타 관계자와 참가자들까지 로비에 모여 누군가를 둘러싸고 있었다.

그리고 엄청난 인파가 그들을 또 바깥에서 둘러싸고 있었다.

로비 여기저기서 한 아티스트의 이름이 들려왔다.

“RN! 사진 좀 찍어주세요!”

“RN!”

BTG의 멤버 중, 리더이자 프로듀서의 역할까지 맡고 있는 RN.

그가 이성현을 만나겠다고 한국에서 미국까지 날아온 것이다.

성현에게서 대충 상황 설명을 들은 천소울은 진짜 그 사람을 실제로 만나자 믿을 수 없어 벙쪄 서 있었다.

“농담인 줄 알았는데.”

“저도 그런 줄 알았습니다.”

여기로 달려오면서도 긴가민가할 정도였으니까.

두 사람은 황망히 그 엄청난 사람들의 무리를 쳐다보고 있었다.

성현 역시 한국에 있을 BTG 리더 RN이 직접 LA 호텔로 자신을 찾아올 줄은 몰랐다.

눈앞에 펼쳐진 현실을 믿을 수 없어 가만히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다.

그러다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있던 RN이 먼저 성현을 발견하고는 손을 흔들었다.

“이성현씨!”

자신을 둘러싼 사람들에게 싸인을 해주던 RN은 사람들에게 양해를 구하며 이쪽으로 오고 있었다.

그럼에도 사람들이 졸졸 RN을 따라오고 있어서 별 소용은 없어 보였다.

RN은 딱 봐도 비싸 보이는 고급 양복을 입고 있었다.

역시 연예인은 연예인.

티비로 보다 실제로 보니 RN은 생각보다 키가 컸다.

생각보다 비율이 좋았으며, 생각 이상으로 잘생겼다.

성현과 천소울은 진짜 찐 연예인의 등장에 입을 벌리고 그 현실감 없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다.

“갑자기 찾아와서 미안해요. 하루라도 빨리 만나 뵙고 싶어서.”

“여기까지 굳이 안 찾아오셔도 되는데. 저 때문에 괜히 고생시킨 것 같아 미안하네요.”

성현은 아직도 초롱초롱한 눈으로 RN을 둘러싸고 있는 수많은 팬들을 보고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말했다.

자신이 이런 슈퍼스타를 직접 발걸음하게 만들었으니.

이건 황송함을 넘어 송구스러울 지경이었다.

“이 정도는 해야 레이디 가가를 이길 거 같아서요.”

RN은 농담을 던지며 활짝 웃는데, 순간 천소울과 눈이 마주쳤다.

그러자 RN의 눈이 크게 뜨이더니 덥썩 천소울의 손을 부여잡았다.

“어, 천소울씨 맞죠? 저 진짜 팬인데. 더 넥스트 슈퍼스타에서 했던 공연은 다 찾아봤어요.”

“아직 부족한 게 많습니다.”

천소울은 아직 현실감각이 돌아오지 않았는지 얼떨떨하게 대답했다가 정신을 차리고 RN의 손을 꽉 잡았다.

“만나 뵙게 돼서 정말 영광입니다. 이번에 그래미 수상하신 거 축하드려요.”

천소울은 한국을 대표하는 글로벌 그룹 BTG의 리더 RN에게 깍듯하게 인사를 했다.

“아, 감사합니다. 저야말로 만나 뵙게 되어서 영광이에요.”

세 사람이 악수를 나누고 있는데, 그들 주위로 점차 더 많은 사람들이 몰려들기 시작했다.

여기저기서 사진을 찍겠다는 사람과 싸인을 해달라는 투숙객들이 몰려든 것이다.

호텔 경비와 관리자들이 막아서도 소용이 없었다.

그 수가 점차 늘어나 감당하기 힘들 정도가 되어 버린 것이다.

“아무래도 자리를 옮기는 게 좋겠네요.”

RN이 싱긋 웃으며 말했다.

세 사람은 호텔 경비의 경호를 받으며 엘리베이터로 이동했다.

***

천소울은 아쉽다는 듯 이쪽을 바라봤지만 별수 없었다.

그는 내일 아침 비행기로 브루클린에 가야 했다.

성현은 그에게 이만 들어가서 쉬라고 당부했고, 천소울은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였다.

“나중에 둘이 무슨 얘기했는지 다 말해줘야 합니다.”

성현은 그 박력에 저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천소울은 그제야 만족하고 자신의 방으로 돌아갔다.

‘BTG의 팬인 건 또 몰랐네.......’

성현의 방으로 들어온 두 사람.

성현은 올라오는 내내 고민했던 대로 바로 냉장고로 향했다.

슈퍼스타에게 뭐라도 대접을 해야 마음이 편할 것 같았다.

“탄산수밖에 없는데 괜찮아요?”

“탄산수 좋죠.”

성현이 냉장고 문을 열고 탄산수 꺼냈다.

그동안 RN은 창가 앞에 마련된 테이블에 앉아 창밖 너머 LA의 화려한 야경을 구경했다.

“LA 야경은 언제봐도 좋네요.”

RN는 추억에 잠긴 듯 한참을 더 창밖을 바라보고 있었다.

성현은 탄산수와 잔을 내려놓고 맞은편 의자에 앉으며 웃었다.

“저 만나러 온단 건 핑계고 야경 보러 오신 거 아니에요?”

성현은 RN이 한참을 창밖만 보자 농담을 건넸다.

그 말에 RN이 창밖에서 시선을 떼고 성현을 돌아봤다.

“옛날 생각이 조금 나서요. 맨 처음 미국 와서 공연했던 곳이 LA 스테이플 센터기도 하고.”

“어땠나요? 처음 미국에서 콘서트가 잡혔단 얘길 들었을 때.”

성현은 들뜬 마음으로 물었다.

직접 그의 입으로 미국행 공연의 감상을 듣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안 믿겼죠. 표 전석이 매진됐단 소릴 들었을 땐 멤버들끼리 혹시 우릴 다른 아티스트로 착각한 게 아니냐는 우스갯소리도 했어요.”

“내년 초에 LA 스타디움에서 공연이 있는 걸로 알고 있는데 그때 가면 더 감회가 새롭겠어요.”

성현의 말에 RN은 선선히 고개를 끄덕이며 창밖을 다시 봤다.

“그렇죠. 스테이플 센터보단 두 배 정도 더 큰 공연장인 데다 비틀즈 같은 유명 아티스트가 아니면 공연할 수 없는 곳이니까요. 그런데 스타디움에서 공연한다는 건 어떻게 알았어요?”

RN은 놀라서 물었다.

너무 자연스러운 성현의 말에 그만 넘어갈 뻔했다.

“저도 BTG 팬이니까요.”

“듣던 중 반가운 소린데요? 팬이면 작업하자고 꼬시기 더 쉬울 거 아니야.”

RN이 장난스럽게 웃으며 말하자, 성현 역시 함께 웃었다.

그러다 성현이 진지한 표정으로 물었다.

“진짜 여긴 왜 오신 거예요? 저 하나 만나자고 오신 건 아닐 거고.”

“솔직히 말하면 이성현씨를 보기만 하려고 온 건 아니에요.”

RN의 말에 성현이 궁금하단 표정으로 그를 쳐다보는데 RN이 의자에서 일어났다.

“성현씨 직접 모시러 왔어요. 한국까지.”

“.......네?”

성현이 황당해서 되묻는데, RN이 성현의 호텔 방을 둘러봤다.

“짐은 다 싸신 거죠?”

“그렇긴 한데. 내일 저녁 비행기라 지금은 못 갑니다.”

RN은 알겠다며, 성현의 말을 듣고도 아무렇지 않게 성현의 캐리어를 꺼내 직접 들었다.

성현은 이게 대체 무슨 상황인지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아 엉거주춤하게 일어서서 RN을 쳐다봤다.

“아직 비행기 시간 안 됐다니까요?”

성현의 만류에도 RN은 태연하게 캐리어를 끌고 가더니 호텔 방문을 열었다.

“시간은 만들면 되는 거예요.”

“비행기 시간을 무슨 수로,”

“전용기 타고 왔어요.”

성현은 RN의 말에 쩌적 하고 그 자리에 굳어버렸다.

아무 말도 못 하는 성현을 본 RN은 성현에게 빨리 가자며 손짓했다.

“설마 저녁에 따로 스캐쥴 있는 건 아니죠?”

“없긴 한데 갑자기 이게 무슨......”

“그럼 뭘 망설여요. 같이 가요. 공항에 대기시켜 놨으니까.”

어차피 내일이 출국이었잖아요?

그 말에 성현은 자신도 모르게 헛웃음이 나왔다.

‘이런 게 슈퍼스타의 클라스인가.’

***

공항으로 향하는 차 안, 성현은 여기저기 연락을 하느라 바빴다.

갑자기 변경된 스케줄에 제일 먼저 임하나와 천소울에게 메시지를 보내는 중이었다.

성현과 동승한 김인호 AD 또한 한국에 있는 PD에게 연락 중이었다.

그들의 예상보다 빨라진 스케줄을 보고하느라 둘 다 한동안 정신이 없었다.

“저 때문에 다들 정신이 없네요.”

“아닙니다. 덕분에 전용기도 다 타보고 저희야 영광이죠. 안 그러냐?”

김인호는 막내 스탭 둘의 어깨를 치며 물었다.

스탭들도 BTG의 전용기를 탈 생각에 신이나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 타고 있는 리무진 뺨치는 벤도 탈 때 무릎이 후들거릴 정도였다.

그런데 전용기는 또 얼마나 대단할지......

성현은 한국에서 기다리고 있을 아버지 이주성과 심훈영에게도 메시지를 보냈다.

김인호 AD가 그 모습을 물끄러미 보며 웃었다.

복덩이, 복덩이 말로만 했는데 가면 갈수록 큰 복을 물어오는 게 아주 황금알 저리가라였다.

‘이성현씨 덕분에 RN씨를 다 만나고. 아무튼 내가 사람 보는 눈 하난 정확하다니까.’

김인호는 성현 때문에 앞길이 트인 것에 만족하며 실실 웃었다.

한국에 가서 자기가 무려 BTG 전용기를 타고 RN과 같은 차를 탔다고 동네방네 자랑할 생각에 입꼬리가 내려갈 생각을 안 했다.

게다가 이 촬영을 자신이 진두지휘한다?

앞으로 김인호의 인생은 탄탄대로가 될 것이 분명했다.

그러던 중 성현과 눈이 마주쳤다.

“왜 그러고 웃어요?”

“왜긴. 좋아서 웃지.”

성현은 김인호의 기분 나쁜 웃음을 애써 무시하며 다시 메시지를 보내는 데 열중했다.

“다 왔네요.”

RN의 말에 성현이 고개를 들었다.

어느덧 차가 LA 국제공항에 도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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