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8화
성현은 떠나기 전 마지막으로 임하나에게 악수를 건넸다.
“비욘세를 뛰어넘는 가수가 돼서 돌아와요.”
“노력은 해볼게요.”
“비욘세 만나면 꼭 사진 찍어서 보내줘야 합니다.”
“뭐야. 자기도 팬이면서.”
어이가 없는지 임하나는 천소울을 보며 헛웃음을 지었다.
천소울이 비욘세를 못 봐서 슬퍼하던 자신을 구박하던 때가 생각났던 것.
임하나가 퉁명스럽게 대꾸하는데, 그때 스탭이 임하나를 불렀다.
“임하나씨 이제 출발해야 돼요. 지금도 늦었어.”
다급한 표정의 스탭이 임하나를 재촉했다.
지금 가도 탑승수속에 소요되는 시간을 생각하면 넉넉지 않았다.
안 그래도 스탭들의 수가 많고 가져가는 짐이 많아서 서둘러야 했다.
스탭이 비행기 시간 때문에 임하나를 부르자 놀란 임하나가 두 사람을 향해 손을 흔들었다.
“비욘세는 못 넘더라도 꼭 더 나은 가수가 돼서 돌아올게요.”
임하나가 차에 올라타고, 그녀가 오르자마자 차는 호텔을 떠났다.
정말 모든 준비를 끝마치고 임하나가 오기를 기다린 모양이었다.
“막상 가니까 허전하네요.”
성현의 말에 천소울은 떠나가는 차를 물끄러미 보며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배웅이 끝나자 두 사람은 다시 호텔로 돌아갔다.
“내일 몇 시 비행기랬죠?”
“9시요. 이성현씨는요?”
“전 저녁 비행기니까 제가 천소울씨 배웅해주면 되겠네요.”
내일이면 정말 모두와 뿔뿔이 흩어지게 된다.
성현은 아쉬운 마음을 감추며 싱긋 웃었다.
엘리베이터에 탄 두 사람은 잠시간 말 없이 올라가는 숫자만 바라보고 있었다.
“들어가 봐요. 아침 출발이면 가서 준비할 것도 많을 텐데.”
엘리베이터에서 내려서 각자 방으로 헤어지기 직전, 성현이 인사를 건네고 돌아서는데.
천소울이 성현을 불러 세웠다.
“저녁 같이 먹죠. 당분간 못 볼 것 같은데.”
“그래요. 그럼 각자 준비 다 마치고 만나는 걸로 해요.”
성현과 천소울은 저녁 약속을 잡고 각자 방으로 들어갔다.
호텔 방으로 돌아온 성현은 곧장 가지고 왔던 캐리어를 끌고 왔다.
캐리어를 열고 짐 정리가 한창인데 노크 소리가 들렸다.
“벌써 다 정리했어요?”
성현은 당연히 천소울일 거라 생각하고 바로 문을 열었다.
뜻밖에도 문 앞에 김인호 AD가 서 있었다.
“누구 만나기로 했나 봐?”
“아, 천소울씨랑 LA에서 마지막 저녁 먹기로 해서요.”
“마지막 저녁? 아, 맞아. 천소울씨도 내일 브루클린으로 떠나지.”
김인호는 머릿속으로 세 사람의 스케줄을 떠올렸는지 고개를 주억거렸다.
“네. 근데 왜 오신 거예요?”
“왜긴. 이거 전해주러 왔지.”
김인호가 성현에게 비행기 표를 건넸다.
봉투에 들어있는 것은 한국행 퍼스트 클래스.
“참고로 내일 나도 같이 한국 가요.”
그렇게 말하며 김인호는 같은 티켓 하나를 자랑스럽게 내보였다.
‘더 넥스트 슈퍼스타’ 최후의 18인을 담당하는 AD인 만큼 김인호 역시 요즘 어마어마한 대접을 받고 있는 중이었다.
아마 이번 오디션이 끝나고 한국으로 돌아가면 메이저 방송국뿐만 아니라 여러 군데에서 러브콜이 쏟아질 터였다.
김인호는 자신에게 굴러온 복덩이를 바라보며 씩 웃었다.
그의 복덩이, 성현이 의아하게 김인호를 쳐다보았다.
김인호는 그 시선에 어깨를 으쓱하며 당연하다는 듯이 말했다.
“내가 이성현씨 담당 AD잖아. 바늘 가는 데 실 따라가는 건 당연한 거지.”
그것도 그랬다.
김인호는 예선전에서부터 성현을 지켜본 스탭이었고, 그에게는 당연히 우선권이 있었다.
이번에도 세 명의 한국 참가자들 중 성현의 담당을 자처한 것이다.
“절대 BTG 팬이라 따라가겠단 건 아니야. 오해하지 말라고.”
잔뜩 기대 어린 눈으로 그렇게 말한 김인호가 내일 보자며 몸을 돌렸다.
김인호가 성현의 방에서 나가고, 성현은 다시 짐 정리를 했다.
그때, 휴대폰 벨소리가 울렸다.
어디선가 울리는 휴대폰 벨소리에 성현은 두리번거렸다.
겨우 침대 위 옷가지들 사이에 깔려있는 휴대폰을 찾아 전화를 받는데, 상대방은 이주성이었다.
“바쁜데 전화한 거야? 다음에 다시 전화할까?”
“괜찮아요. 짐 정리하느라 늦게 받은 거예요.”
성현은 계속 괜찮다고 하며 휴대폰을 고쳐 쥐었다.
“내일 저녁 비행기랬나?”
“네.”
성현은 김인호가 준 티켓에 적힌 시간을 확인했다.
“8시 비행기네요.”
“한국엔 몇 시쯤 도착하고? 마중 나갈까?”
“주최측에서 차 보내준다니까 안 나오셔도 돼요.”
그 말에 잠시 말이 없던 이주성이 다시 물었다.
“집에 바로 올 거지?”
“네. 도착하면 연락 드릴게요.”
성현의 대답에 안심이 되었는지 이주성의 목소리가 차분해졌다.
“그래. 뭐 먹고 싶은 거 있어? 갈비찜 해놓으라 할까?”
“아무거나 집밥이면 다 좋으니까 아버지 드시고 싶은 거 먹어요.”
“알겠다. 조심히 오고.”
“네. 아버지도 식사 잘 챙겨 드시구요.”
성현은 이주성과 전화를 끊고, 곧장 심훈영에게 전화를 걸었다.
“......어, 성현아.”
심훈영은 조금 잠긴 목소리로 전화를 받았다.
성현은 그제서야 아차 싶어서 시계를 확인했다.
“죄송해요. 제가 시차 생각을 못 하고 주무시는 데 전화했네요.”
LA 시간으로 오후 5시가 넘어갔기 때문에 현재 한국은 한밤중이었다.
“아니야, 아니야. 어차피 지금 사무실이라 안 그래도 일어나려 했어. 잠깐 눈만 붙이려고 했던 거거든. 잘 깨워줬다.”
사무실이라는 말에 성현의 목소리가 심각해졌다.
“밤새 일하신 거예요?”
“한창 바쁠 때잖아.”
심훈영은 하품을 하며 별거 아니라는 듯 대답하지만, 성현은 마음이 무거워졌다.
한국에 있었으면 자신이 책임지고 했어야 하는 일이었다.
그걸 심훈영 혼자서 맡아 하고 있기 때문.
“저 내일 한국 가니까 할 수 있는 건 최대한 하고 돌아갈게요.”
“한국 온다고?”
깜짝 놀란 심훈영의 말에 성현은 간단하게 설명했다.
이번 본선 8라운드가 어떤 룰로 진행되는지.
성현이 누구를 만나러 한국에 가는 것인지.
“아니야, 안 그래도 돼. 회사 일은 나 혼자서도 충분하니까 성현이 넌 오디션에만 집중해.”
“회사일 때문에만 가는 거 아니니까 걱정 안 하셔도 돼요. 가는 김에 들르는 거니까요.”
“......진짜야?”
미심쩍다는 듯이 되묻는 심훈영의 목소리에 성현은 한국에 있을 적이 생각나서 작게 웃었다.
그리운 목소리와 그리운 말투였다.
“네. 정말이에요. 그러니까 저 한국 있는 동안엔 실컷 부려 먹으셔도 돼요.”
“오케이. 한국엔 몇 시쯤 도착하는데?”
“내일 저녁 비행기라 다음 날 아침에 도착이긴 한데, 집에 먼저 들렀다 갈 거라 오후에나 들릴 수 있을 거 같아요.”
“그래. 자세한 건 한국 와서 전화하자고.”
심훈영의 가벼워진 목소리로 전화는 끊겼다.
모든 연락을 마친 성현이 짐을 마저 챙겼다.
한국에 있는 사람들과 약속을 잡으니 이제 정말로 집에 돌아간다는 것이 실감이 났다.
‘보고 싶었는데. 이제 정말로 곧 만날 수 있겠다.’
성현은 오랜만에 보게 될 가족과 멤버들의 모습이 너무도 궁금했다.
***
성현과 천소울은 각자 흩어지기 전 마지막 식사를 하는 중이었다.
근처 한식당에 와서 순두부 찌개를 먹던 천소울이 갑자기 피식 웃었다.
밥 먹다 말고 혼자서 웃는 천소울의 모습에 성현이 의아하다는 듯이 물었다.
“왜 그래요?”
“웃겨서요.”
“뭐가요?”
성현은 저도 모르게 자신들이 먹고 있는 상차림을 살폈다.
별다를 것 없는 평범한 백반의 모습.
조금 다른 게 있다면 아무래도 한국에서 먹는 것보다 반찬과 음식들이 덜 맵다는 것 정도?
“웃기잖아요. 생긴 건 파스타만 먹을 것 같은 사람이 한국 가기 전에 마지막으로 먹고 싶은 음식이 순두부찌개인 게.”
저녁을 먹기로 한 두 사람은 만나자마자 메뉴를 정했다.
천소울은 성현에게 한국으로 가기 전 미국에서 뭘 가장 먹고 싶냐고 물었다.
이제 얼마 동안은 미국에 돌아오지 못할 테니까.
그런데 성현의 선택이 의외였다.
성현은 한국에 가서도 실컷 먹을 수 있는 순두부찌개를 택했던 것.
“순두부찌개 무시해요? 두부가 얼마나 영양가도 많고 몸에 좋은데요.”
“알았어요. 누가 뭐래요?”
천소울은 알겠다면서도 밥을 먹으면서 계속 비집고 나오는 웃음을 참아야 했다.
“그만 웃고 모건 얘기나 더 해줘요. 어때요? 같이 일 해보니까?”
성현의 물음에 천소울은 이내 웃음기를 거두고 잠시 생각에 잠겼다.
“제가 생각했던 이미지와 많이 달랐습니다.”
그 말에 성현은 찌개를 떠먹던 것을 멈추고 물었다.
“어떤 점이요?”
“일에 있어선 굉장히 완벽주의자일 거라고 생각했거든요. 그런데 하루 작업하고 나니 제 생각이 완전히 틀렸다는 걸 알게 됐습니다.”
“모건의 작업 방식은 어떤 데요?”
성현은 흥미가 일었다.
같은 프로듀서로서 자신보다 훨씬 업적이 많고 세계적인 인정을 받은 모건 프로듀서.
그의 작업 방식이 궁금해 재촉하듯 물었다.
“방식? 방식이랄 게 있나.”
천소울은 고개를 갸웃하며 망설였다.
“그러지 말고 더 자세히 얘기해 봐요.”
이미 성현의 관심사는 순두부찌개가 아니었다.
“첫날 모건이 절 자기 스튜디오로 데려가더니 가장 먼저 한 건 음악을 듣는 거였습니다.”
“무슨 음악을요?”
“그냥 모든 음악이요. 팝, 힙합, 컨트리, 재즈, 록, 장르 따지지 않고 그때그때 의식의 흐름대로 노래를 들었습니다.”
“그게 끝이에요? 노래 듣기?”
성현은 생각보다 심심한 방식에 실망한 듯 미간을 찌푸렸다.
그러자 천소울이 고개를 저었다.
“노래가 한 곡이 끝날 때마다 그 음악에 대한 제 생각을 물어봤어요.”
“예를 들어?”
“어떤 감정을 느끼는지, 왜 좋았는지, 싫으면 왜 싫은지. 미션에 집중할 생각이 없나 싶을 정도로 정말 사소한 것까지 다 물어봤어요.
성현은 천소울의 말을 들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모건이 왜 그러한 질문들을 한 건지 어렴풋이 알 것 같았다.
‘천소울씨가 어떤 가수인지 먼저 파악하고 작업을 하겠단 거겠지. 어떤 노래가 그에게 가장 잘 맞는 옷인지 찾기 위해서 반드시 필요한 작업이니까.’
프로듀서의 능력은 단순히 좋은 곡을 만든다고 좋은 것이 아니었다.
아티스트의 장점과 특색을 살릴 수 있는 능력.
그것을 찾고, 극대화시킬 수 있는 가장 최적의 노래를 만들어 주는 것.
그 모든 게 프로듀서로서의 능력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아티스트가 어떤 노래를 가장 좋아하고 어떤 스타일의 곡을 좋아하는지 아는 것이 우선이었다.
이걸 단순히 묻는 것과 함께 노래를 들으면서 알아내는 건 천지 차이였다.
‘때론 아티스트 자신도 인식하지 못하고 있는 취향과 생각이 있을 수도 있으니까.’
모건은 천소울에게 직접 묻기보다는 다양한 장르를 함께 듣는 방식을 택했다.
이 과정은 작업을 더 길고 지루하게 만들 수도 있었다.
납득을 못하는 가수들이 있을 수도 있었고.
다만, 모건은 서두르기보다는 그가 정말 무엇을 원하는지 대화를 통해 알아내기를 원하고 있었다.
‘긴장해야겠어.’
성현은 모건과 천소울이 어떤 곡을 들고나올지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렇다고 가만히 손 놓고 있을 생각은 아니었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