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 같은 프로듀서는 없었다-224화 (224/273)

224화

“참. 하나씨는 어떻게 하기로 했어요? 그 프로듀서랑 작업할 거예요?”

“사실 어젯밤에 이미 수락해서 조만간 만나기로 했어요.”

임하나는 휴대폰을 들어 커넥트 앱을 실행했다.

곧이어 프로듀서에게 온 제안서를 보여주는데, 수락이라고 적힌 박스에 이미 체크가 되어 있었다.

[제안서]

JAY-Z

임하나, 당신과 함께하기를 원합니다. 제안서를 읽고 긍정적인 답변을 주기를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수락/거절]

제이지.

미국에서 대중적으로 가장 성공한 래퍼이자 프로듀서로 꼽히는 인물 중 하나.

무려 그래미 시상식에 74번 노미네이션 되었고, 21번 수상한 아티스트였다.

한국에서는 현시대 디바의 상징과도 같은 비욘세의 남편으로도 많이 알려진 인물.

그가 임하나에게 직접 콜라보를 제안한 것이다.

“사실 아직 보고도 안 믿겨요. 이렇게 대단한 사람이 나한테 먼저 콜라보 요청을 해준 것도 엄청난 일인데 그게 장난이 아니라 정말 진심인 게 느껴지더라고요.”

임하나의 말에 성현이 흥미를 느꼈다.

제이지와 어떤 이야기를 나눴을지 궁금한 마음도 들었다.

“어떤 지점에서 그걸 느꼈나요?”

성현은 같은 프로듀서로서 제이지가 임하나의 마음을 어떻게 돌렸는지 궁금했다.

‘분명 어제 낮까지만 해도 거절할 수도 있다고 했었으니까.’

임하나는 분명 어제는 아직 고민 중이라고 했다.

하룻밤만에 수락을 하게 만든 제이지의 비법은 뭐일지 성현은 귀를 기울였다.

“음악이요.”

임하나의 대답은 생각보다 심플했다.

“음악이요?”

임하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설명을 덧붙였다.

“그분과 앞으로 하고 싶은 음악에 대한 대화를 나누게 됐는데 저를 정말 많이 연구했고, 잘 알고 있다는 게 느껴졌어요. 전 사실 단순히 네임벨류가 있는 사람보다 정말 제 노래를 이해하고 저만의 음악을 해줄 수 있는 프로듀서를 원했거든요. 그래서 쉽게 제이지를 선택하지 못했던 것도 있어요. 음 이걸 뭐라고 말해야 될지 모르겠는데......”

임하나는 프로듀서인 성현의 앞에서 눈치를 봤다.

성현은 그 모습에 임하나가 하려던 말을 눈치챘다.

“프로듀서한테 일방적으로 휘둘릴까 봐요?”

“......네.”

임하나는 놀란 표정을 짓더니 순순히 맞다고 시인했다.

그러면서 성현에게 미안한 마음이 있는지 슬쩍 이쪽 눈치를 봤다.

성현은 그런 임하나의 마음을 알 것 같아서 괜찮다는 듯 웃었다.

아니, 아주 현명하다고 칭찬해주고 싶을 정도였다.

“제 눈치 볼 필요 없어요. 정말 좋은 프로듀서라면 네임 벨류가 아니라 음악으로 가수를 설득시키는 게 맞으니까요. 하나씨가 뭘 걱정하는 건진 알겠지만 제이지 정도 되는 프로듀서라면 단순히 자신의 음악을 강요할 정도로 아티스트에 대한 배려가 없진 않을 거예요.”

성현의 말에 임하나는 뭔가를 깨달은 듯이 끄덕였다.

제이지가 최정상의 프로듀서라고 불릴 수 있는 이유.

거기에는 실력만이 있지는 않을 것이 분명했으니까.

“맞아요. 그분이 했던 말 중에 가장 인상 깊은 말이 있었는데.”

임하나는 다시 생각해도 조금 쑥스러운 듯이 웃었다.

어제 그 멘트를 보고 혼자 얼마나 웃었는지 모른다.

“비욘세를 능가하는 무대를 만들어주겠다고 했어요. 제가 가진 재능이라면 가능할 수도 있다고.”

비욘세라면 제이지 자신의 부인.

제이지 정도 되는 거물급 스타가 아시아에서 온 소녀한테 자신의 아내를 뛰어넘을 수 있는 무대를 만들겠다 약속한 것이다.

임하나는 어제 이 상황이 믿기지가 않는 것을 넘어서 우스웠다.

자신에게 이런 일이 벌어질 줄 누가 상상이나 했을까.

“저도 알아요. 제가 진짜 비욘세를 능가할 수 있는 무대를 할 수 없단 거. 이미 비욘세는 미국을 대표하는 가수고 그 자체로 아이콘이니까요. 그래도 그 말 자체로 새로운 목표가 생긴 것처럼 가슴이 두근거렸어요.”

임하나의 말에 성현은 할 수 있다고 말하려다가 그만두었다.

아마 지금 임하나의 귀에는 제대로 들어가지 않을 테니까.

곧, 머지않아 성현이 만들어 줄 것이다.

비욘세를 뛰어넘는 디바 임하나를.

성현은 자신이 할 대사를 미리 선수 친 제이지에게 질투가 날 정도였다.

“제이지 프로듀서가 하나씨의 심장을 뛰게 한 거군요. 이건 좀 질투나는데요?”

임하나는 성현의 농담에 피식 웃더니 어딘가 아이 같은 기대감에 찬 미소를 지었다.

“전 가끔요, 연애도 좋지만, 음악보다 제 심장을 뛰게 만들 사람이 나타날까 싶기도 해요. 그 정도로 음악이 좋아요.”

“전 이미 음악이랑 결혼했어요.”

성현의 말에 임하나는 그럴 만도 하다고 생각했다.

메튜의 말을 다 믿을 수는 없지만, 미국 클럽에서 먹힐 만한 인기를 끌고 있는 성현이 거기에 있는 모든 여자를 물리쳤다고 하니 말이다.

하지만,

“전 그건 좀......”

임하나는 그건 좀 아니라며 인상을 썼다.

성현은 그런 임하나가 기특하다는 듯 웃었다.

‘걱정 안 해도 되겠다. 다들 나 없이도 알아서 잘할 거 같아.’

음악을 하는 데 있어서 심장이 뛰는 것만큼 좋은 동기부여는 없었다.

자신 역시 기계적으로 하던 클래식에서 벗어난 계기가 심장이 크게 뛰는 음악, 재즈를 만났던 거니까.

성현은 내심 걱정이 많았다.

그도 그럴 것이 해외 본선에서 처음으로 팀원과 따로 떨어져서 미션을 준비하는 거였으니.

그런데 지금 보니 그럴 필요는 없어 보였다.

“이번만큼은 프로듀서가 아니라 임하나씨 팬의 입장에서 기대하고 있을게요. 비욘세를 능가하는 무대 꼭 보여줘요.”

“노력은 해볼게요.”

임하나는 크게 웃으며 언제나처럼 자신감을 내보이며 말했다.

그리고 콜라잔을 집어 들어 성현에게 내밀었다.

“남은 오디션을 위하여?”

“위하여.”

임하나와 성현은 남은 콜라로 짠을 한 뒤, 식사를 마무리했다.

***

임하나와 식사를 마치고 호텔 방으로 돌아온 성현.

쉬지 않고 자신에게 온 제안을 계속해서 살펴보는 중이었다.

전 세계적으로 유명한 탑 아티스트들이 대거 제안서를 보내왔다.

레이디 가가.

브루노 막스.

테일러 스위프트.

켈리 클락슨.

.

.

.

해외 아티스트들 뿐만이 아니었다.

한국의 아티스트들도 수많은 제안을 보내왔다.

박재상.

더 레인.

윤도혁.

.

.

.

‘항상 꿈꿔 오던 아티스트들이 먼저 제안을 해 오다니.’

성현은 가슴이 벅차올랐다.

어젯밤부터 계속해서 훑어보고 있지만, 아직도 믿기지 않았다.

게임을 통해서만 콜라보 미션을 해보고.

현실에서는 항상 우러러만 보던 가수들.

그들이 직접 콜라보 요청을 해오고 있었다.

‘이제 슬슬 결정해야 할 텐데.’

모두 하나 같이 쟁쟁한 가수들이기에 누구를 선택할지 고르는 것도 일이었다.

성현에게 콜라보 가수를 고르는 건 그다지 어렵지 않았다.

하지만 어떻게 보면 아주 까다로운 조건이기도 했다.

성현이 보는 것은 단순히 가수가 가지고 있는 보컬 실력이나 네임벨류가 아니었다.

‘음악에 대한 태도. 무엇보다 그게 가장 중요해.’

이는 성현이 아리하나 그란데와 제니 제이를 거절한 이유기도 했다.

그들은 자신들의 음악엔 진지할지 몰라도 성현과 콜라보를 위한 음악에는 아니었다.

한순간의 이벤트를 대하듯 장난이 섞여 있었다.

그래서 성현은 그 세계적인 탑스타들을 모두 거절한 것.

성현은 제안서를 보내온 가수들과 몇 번의 메시지를 주고받는 걸 반복했다.

그들이 음악에 대해 가지고 있는 생각들을 파악하기 위해서.

더 많은 제안서가 쌓일수록 더욱 신중함을 기했다.

-레이리 가가: 나와 함께 무대를 한다면 퍼포먼스만으로 큰 점수를 받을 수 있을 거예요.

-넬리 라이언: 전 역대 최연소 그래미 어워드 올해의 앨범상을 수상했고 역대 최초로 그래미 어워드 올해의 앨범상을 세 번 수상한 여자 가수예요. 또한 빌보드 뮤직 어워드에서 가장 많은 상을 수상한 가수......

-루이스 브라운: 이봐, 당신 음악을 들어봤는데 꽤 괜찮더군. 작업 해볼래? 물론 프로듀싱은 나도 어느 정도 할 줄 아니까 너무 많은 간섭은 필요 없을 것......

성현은 주고받은 메시지를 다시 훑어보는데 한숨이 나왔다.

어젯밤부터 한참을 고민했지만, 도통 마음이 움직이질 않았다.

‘딱히 마음에 드는 사람이 없네.’

빈 수레가 요란하다는 말이 있듯.

제안서를 보내온 사람들 모두 하나 같이 글로벌 스타들이었지만, 그뿐이었다.

자기 자랑을 하기 바쁘거나, 프로듀서로서 성현을 신뢰한다기보다 그저 ‘더 넥스트 슈퍼스타’ 프로듀서 1위 참가자라는 것에 더 관심을 두는 것 같았다.

‘일단 씻고 다시 생각해 봐야겠다.’

한숨을 쉬고 몸을 일으킨 성현이 휴대폰을 내려두려는데, 커넥트 앱이 울렸다.

성현은 그대로 욕실에 갈까 하다가 몸을 돌려 휴대폰을 들었다.

[제안서가 도착했습니다.]

성현은 곧장 커넥트 앱으로 들어가 제안서를 확인했다.

가수의 이름을 확인한 성현의 얼굴에 흥미롭다는 듯 웃음이 번졌다.

이건 또 뜻밖의 인물이었다.

‘BTG가 제안서를?’

대한민국을 넘어 전 세계에 우뚝 선 BTG로부터 도착한 제안서.

성현은 샤워는 잊고 다시 침대에 누웠다.

본격적으로 자리를 잡은 성현은 곧장 BTG에게 답장을 보냈다.

-성현: 저와 콜라보를 하고 싶은 이유를 여쭤봐도 될까요?

성현은 답장을 보내고 초조하게 기다렸다.

지금까지 메시지를 주고받은 가수들 중에 이렇게 긴장한 적은 처음이었다.

얼마 안 있어 답변이 돌아왔다.

-BTG: 단순해요. 좋은 음악 만들고 싶으니까요. 성현씨와 함께라면 그게 가능할 거 같아서 제안서 보냈어요.

BTG는 다른 가수들과 비교했을 때 심플하기 그지없는 제안서였다.

자신의 자랑, 수상 내역, 조건 등 다른 제안서가 가지고 있는 불필요한 말이 하나도 없었다.

그렇지만, 그렇기에 더욱 성현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BTG: 성현씨도 우리처럼 정말 음악을 즐긴다는 게 느껴져서 좋았습니다. 우리 함께 세계를 강타할 노래 만들어 봐요. 미팅이 필요하다면 저희 쪽에서 미국으로 이동하겠습니다.

성현이 멈칫한 것은 제일 마지막 말 때문이었다.

‘직접 미국으로 온다고? 진심이구나. 함께하고 싶단 말이.’

BTG의 메시지는 짧지만, 그들의 진정성이 느껴졌다.

다른 가수 참가자들이 가지고 있는 거만함도 없었다.

이미 충분히 탑 아티스트의 길을 걷고 있는데도 말이다.

그들에게 이 무대가 단순히 ‘더 넥스트 슈퍼스타’의 유명세를 이용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성현과 작업을 하기 위한 거란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성현: 괜찮습니다. 안 그래도 한국에 한 번 들리기로 했으니 조만간 제가 연락드리겠습니다.

본선 7라운드 무대 전까지 참가자들은 완전히 자유 시간이었다.

어디를 가서 뭘 하든 상관없다는 뜻.

이참에 잘 됐다는 생각이 들었다.

안 그래도 이번 미션 기간 중, 한국에 한번 갈 생각이었다.

‘보고 싶은 사람들도 많고.’

한국에 두고 온 가족과 소속사 식구들이 눈에 밟혔기 때문.

자신이 한곳에 모아놓았기에, 오디션 중이라도 최소한의 책임을 져야 한다고 생각했다.

한동안 기다렸지만, 그 뒤로 BTG에게서 더 이상 답장이 없었다.

성현은 한국에 가기로 마음먹고, 침대에서 몸을 일으켰다.

한국에 가기 전, 준비해야 할 일이 있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