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1화
마이클 키튼의 커다란 외침.
첫 번째로 도착한 세계적인 스타의 제안서였다.
컨퍼런스 룸에 모여 있던 참가자들은 모두 관심을 보였다.
나라에 상관없이 모두가 마이클이 있는 테이블로 몰려들었다.
그 모습을 본 리키가 고개를 저으며 한숨을 쉬었다.
“이제부터 전쟁 시작이겠군.”
제안서가 얼마나 들어오느냐에 따라 인지도를 가늠할 수 있게 된다.
거기에 누가 더 얼마나 유명하고 실력 있는 가수 혹은 아티스트에게 제안서를 받느냐.
이에 따라 참가자들의 값어치가 정해진다.
‘자유 선택이라고 해도 경쟁 한가운데 있는 건 변함이 없지.’
리키는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제안서가 들어오기 시작한 이후부터 참가자들은 마음을 놓을 수가 없을 것이다.
서로 어떤 가수와 프로듀서에게 제안을 받았는지.
누가 어떤 아티스트를 선택했는지.
한바탕 신경전이 벌어질 것이다.
이건 단순히 더 좋은 음원의 문제가 아니라 자존심 싸움으로 번질 가능성이 농후했다.
“그럼 여러분의 행운을 빌죠.”
큰소리로 외친 리키는 고개를 저으며 컨퍼런스 룸을 나갔다.
남아있는 참가자들은 그가 나간 줄도 모르고 그가 받은 제안서를 구경하기에 바빴다.
첫 번째로 날아온 제안서에 적힌 이름은 그야말로 어마무시했다.
“이, 이거 진짜 제임스 모리슨 맞아? 영국 싱어송라이터 제임스 모리슨 맞는 거지?”
“그렇다니까. 레이블 이름을 봐봐. 솔리드 레코드잖아.”
마이클의 확답에 참가자 하나가 숨넘어갈 듯 외쳤다.
“진짜 제임스 모리슨 맞나봐!”
한 참가자의 말은 훌륭한 기폭제가 되었다.
머뭇거리던 다른 참가자들까지 마이클의 테이블로 모여들었다.
영국의 테이블은 제안서를 구경하는 참가자들로 북적거렸다.
단 한 테이블은 제외하고.
“우리 테이블만 얌전하네. 다들 안 궁금한가 봐요?”
임하나는 웃으며 말했다.
그런 그녀도 영국의 테이블로 구경을 하러 갈 생각은 없는 듯했다.
“우리도 곧 오지 않을까요?”
지잉, 지잉, 지잉.
성현은 여유를 보이며 말했다.
말이 끝나기 무섭게, 성현의 휴대폰에 연속으로 진동이 울렸다.
제안서가 포함된 커넥트 메시지가 도착했다.
***
성현이 커넥트 앱을 실행하니 두 명의 가수로부터 제안서 두 개가 도착해있었다.
성현은 당장 가수가 누구인지만 확인하기로 했다.
차례로 제안서를 눌러보는데, 이름을 확인한 성현의 눈이 조금 커졌다.
‘벌써 컨택이 왔다고?’
성현에게 제안서를 보낸 건 두 명의 여자 가수.
그것도 엄청난 글로벌 슈퍼스타였다.
성현의 생각보다 훨씬 이른 시기에 글로벌 슈퍼스타에게서 제안서를 받게 된 것.
두 눈으로 보면서도 믿기지 않았다.
이 정도 레벨의 스타들은 처음부터 제안서를 보내지 않는다.
게임을 통해 잘 알고 있었기에 성현은 더욱 놀라웠다.
한동안 눈을 떼지 못한 채 휴대폰을 보는데, 성현이 이상하다는 것을 눈치챈 임하나가 호기심을 보였다.
“뭔데 그래요? 설마 제안서 받았어요?!”
임하나는 농담 반 진담 반으로 성현의 휴대폰을 확인했다.
화면을 확인한 임하나는 성현과 같이 말이 없어졌다.
“뭔데 그럽니까.”
그리고 그 모습을 본 천소울 마저 성현의 휴대폰을 봤다.
봤으면 얘기를 해주지 않고 왜 그러나 싶었던 천소울 역시.
두 사람과 마찬가지로 말이 없어졌다.
성현에게 보낸 제안서에 적혀 있는 가수의 이름.
아리하나 그란데.
제니 제이.
전 세계 통틀어 여자 아티스트 중에선 가장 많은 별스타그램 팔로우 수를 보유한 아리하나 그란데.
요즘 엄청난 인기를 끌고 있는 팝스타였다.
그와 함께 엄청난 가창력의 소유자, 영국 싱어송라이터인 제니 제이에게서 제안서가 온 것이다.
임하나는 눈을 몇 번이나 비비며 두 사람에게 물었다.
“......제가 영어를 잘못 읽은 건 아니겠죠?”
“이번엔 제대로 읽은 것 맞습니다.”
천소울의 말에 임하나는 자신의 핸드폰을 들어 확인했다.
시간, 날짜.
아직 하루가 지나지 않았는데?
“우리 방금 앨런쇼 끝난 거 맞죠? 혹시 나만 모르게 하루가 지난 건 아니죠?”
앨런쇼에서 실시간 라이브로 미션을 공개한 지 몇 시간도 채 되지 않았다.
그런데 성현은 동시에 두 개의 제안서를 받았다.
이렇게 빠르게 도착한 것도 모자라, 둘 모두 최정상급 가수들에게 제안서.
임하나는 아무래도 이 상황이 믿기지 않았다.
“근데 둘 다 디바 계열이네요.”
천소울는 자기도 모르게 임하나를 쳐다보며 말했다.
이건 말도 안 된다며 자신의 휴대폰을 노려보던 임하나와 눈이 마주쳤다.
“왜 절 봐요?”
임하나는 신경이 곤두서서 예민하게 되물었다.
천소울은 직감했다.
지금은 건드리면 안 되겠구나.
그는 조용히 다시 고개를 앞으로 돌렸다.
“그냥 봤습니다.”
천소울은 부러 별일 아니라는 듯 말했다.
임하나는 전보다 표정이 조금 어두워졌다.
아무래도 임하나 역시 신경 쓰였다.
같은 디바 계열인 두 최정상급 가수와 성현이 콜라보를 할 수도 있다는 현실에 묘하게 속이 뒤틀렸다.
이러면 안 되는데.
성현을 축하해줘야 하는데, 그게 쉽지가 않았다.
“어떻게 할 생각입니까? 저라면 바로 둘 중 한 명이랑 작업할 거 같은데.”
천소울 말처럼 다른 제안서를 기다릴 필요가 없을 정도였다.
성현이 생각했던 것보다 최고인 스타들에게 제안이 왔기 때문.
다른 이가 보기에는 고민할 필요도 없는 제안서였다.
그러나 성현은 서두르고 싶지 않았다.
‘조금 더 기다린다 해도 손해 볼 건 없으니까.’
선택을 내린 성현은 계속 내려다보던 휴대폰을 주머니에 집어넣었다.
“조금만 더 즐길래요. 슈퍼스타들이 저 때문에 안달하는 모습을 또 언제 보겠어요.”
성현은 농담 반 진담 반으로 툭 말했다.
천소울은 쉽게 볼 수 없는 성현의 건방진 태도에 피식 웃음이 새어 나왔다.
하긴, 이게 이번 라운드의 묘미라고 볼 수 있었다.
지금껏 오디션에 시달려온 참가자들이 느낄 수 있는 재미 중 하나였으니까.
슈퍼스타들과의 콜라보를 내 손으로 직접 선택할 수 있는 기회.
이건 아무 때나 주어지는 기회가 아니었다.
물론 이 또한 성현처럼 실력이 있어야 가능한 일이었지만 말이다.
***
엘런 쇼에서 ‘더 넥스트 슈퍼스타’ 본선 8라운드의 깜짝 발표가 있고 나서, 바로 다음 날.
‘더 넥스트 슈퍼스타’ 참가자들은 기쁨의 비명을 지르고 있었다.
모두가 전 세계 유명 가수 및 프로듀서들로부터 제안을 받기 시작한 것.
그중에는 벌써 콜라보 파트너를 결정한 참가자도 둘이나 됐다.
미국 참가자 가수 참가자 존 리차드슨.
그리고 영국 프로듀서 참가자 마이클 키튼이었다.
존 리차드슨은 프로듀서 퍼렐 윌리엄스와, 마이클 키튼은 가장 처음 제안서를 보내온 제임스 모리슨과 각각 콜라보 계약을 했다.
특히 퍼렐 윌리엄스라는 올해로 딱 데뷔 20년 차인 베테랑 가수다.
그 기간 동안 최정상의 프로듀서이자 솔로 가수로서도 꾸준히 자리매김하고 있는 그야말로 천재라는 수식어가 아깝지 않은 아티스트.
이름 들어도 떨리는 그와 파트너를 이루었다는 소식은 다른 참가자들에게 큰 화젯거리가 됐다.
“아직도 다들 퍼렐 윌리엄스 때문에 난리네요.”
아침 조식 시간, 호텔의 레스토랑.
접시에 과일을 담아 온 임하나가 다른 존 리차드슨이 있는 테이블을 힐끗 쳐다보며 말했다.
성현은 임하나에게 웃으며 말했다.
어젯밤 흥분한 채로 자신에게 전화한 임하나가 떠오른 탓이었다.
“하나씨도 그 엄청난 프로듀서한테 제안서 받은 거 말하면 더 난리 날걸요?”
“누구한테 제안받았는데요?”
천소울은 자신이 처음 듣는 얘기에 궁금해하며 물었다.
임하나는 조금 망설이더니 휴대폰을 꺼내 자신이 받은 제안서를 보여줬다.
제안서를 켜자마자 보이는 이름에 천소울의 눈이 살짝 커졌다.
“......살면서 임하나씨 보고 부럽다고 느끼는 것도 쉽지 않을 텐데 이번 건 좀 부럽네요.”
천소울은 임하나가 받은 제안서를 인정하며 말했다.
미묘한 천소울의 말에 임하나는 푸핫, 하고 웃음을 터뜨렸다.
“칭찬으로 들을게요.”
묘하게 기분 나쁘지만 칭찬으로 받아들이기로 했다.
“수락할 건가요?”
“네. 오늘 저녁까지 고민하긴 할 건데 거의 마음 굳혔어요.”
성현은 예상했다는 듯이 별말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천소울 역시 괜찮은 생각이라고 말했다.
“천소울씨는요? 제안서 괜찮은 거 받은 거 있나요?”
성현의 물음에 천소울은 잠시 생각에 잠기더니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아직 고민 중입니다.”
천소울은 그 정도로만 대답한 뒤, 주스를 마시고 일어났다.
성현과 임하나도 따라 일어났다.
“전 산책 좀 하다 들어갈게요.”
“전 들어가서 다시 한숨 자야겠어요.”
1층 로비. 임하나는 다시 엘리베이터로 향하고 성현은 호텔 밖에 조성된 공원으로 향했다.
뒤에서 천소울이 성현을 불렀다.
“같이 걸어도 돼요?”
“당연히 되죠.”
성현이 싱긋 웃으며 말했다.
천소울은 말없이 그런 성현의 곁에 서서 걸었다.
두 사람은 함께 산책로를 걸었다.
어느새 계절은 다시 쌀쌀해지고 있었다.
이대로 다시 추워지는 계절이 돌아오면 이 오디션도 막을 내릴 것이다.
그때가 된다면......
두 사람은 각자 생각에 잠겨 기계적으로 다리를 움직였다.
그렇게 얼마 동안 아무런 말도 없이 나란히 걷는 두 사람.
“서울에서 저희 집 공원 걸었던 거 이후로 처음이죠? 단둘이 산책하는 거?”
“네. 아마 그런 것 같네요.”
“이번엔 또 무슨 할 말이 있어서 따라왔어요?”
성현은 대충 눈치를 채고 있었다.
그러고보면 은근히 단순한 구석이 있었다.
그냥 얘기 좀 들어달라고 하지 않고 이렇게 사람을 따라다니다니.
천소울은 피식 웃었다.
자신이 생각해도 너무 티를 냈나 싶었다.
“눈치챘군요.”
“딱 보면 척이죠. 내 가순데.”
자신만만한 성현의 입에서 나온 내 가수라는 말.
천소울은 그 말에 멈칫하며 입을 다물고, 한참을 망설이다가 입을 뗐다.
“유명 프로듀서들한테 제안을 많이 받았습니다.”
천소울의 말에 성현은 잠시 멈칫하지만 이미 예상했던 일이기에 환하게 웃었다.
“축하해요. 천소울씨 실력 있으니까 당연히 좋은 제안 많이 갔을 거라고 예상했어요.”
성현은 진심으로 천소울에게 축하를 건넸다.
그런데 막상 천소울의 표정은 마냥 기쁜 것 같지는 않았다.
“표정이 왜 그래요. 인기 많은 거 싫어요?”
성현은 정말 이해할 수 없다는 듯이 천소울을 살폈다.
설마, 아직도 트라우마 극복이 안 되었나?
성현은 자신 말고는 다른 프로듀서를 받아들일 수 없는 건가 싶어 긴장했다.
아니, 속으로는 좀 안도감이 드는 것도 같기도 하고......
“좋았죠. 전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프로듀서들한테 먼저 작업 제의받은 거니까.”
이어지는 천소울의 말은 조금 이상했다.
트라우마가 남아있는 것 같지는 않은데.
성현은 고개를 갸웃하다가 조금 더 캐묻기로 했다.
“좋았다는 건 지금은 별로라는 거예요?”
“별로라기보다는 확신이 안 들어서요.”
천소울은 그 말을 하며 걸음을 멈췄다.
성현 역시 천소울을 따라 산책로 한가운데에 멈춰 섰다.
“실은,”
고개를 숙인 채로 주저하던 천소울이 이내 결심했다는 듯이 성현을 똑바로 보며 말했다.
“마음속에 이미 함께하고 싶은 프로듀서가 있거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