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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같은 프로듀서는 없었다-219화 (219/273)

219화

성현의 대답에 각국의 참가자들은 과장된 리액션으로 그를 돌아봤다.

그와 함께 성현에게 작은 야유를 보냈다.

경쟁자들 속에서 한국 팀이 우승하겠다는 소리를 태연하게 한 것이다.

“우리도 우승할 자신 있다고!”

“지금 우리 선전포고 들은 건가요?”

그야말로 패기 넘치는 답변이었다.

엘런은 재밌다는 듯 이번에는 메튜를 불렀다.

“메튜. 미국팀 대표로서 당신의 생각은 어떤가요? 한국에서 우승자가 나올 것 같나요?”

메튜는 난감한 엘런의 질문에 눈썹을 축 늘어뜨리며 자신의 선한 얼굴을 더 불쌍하게 만들었다.

“엘런, 전 평화주의자고 싸우는 걸 좋아하진 않아요. 누군가 우승을 한다면 미국과 한국이 사이좋게 하나씩 나눠 가지면 되지 않나요?”

풀이 죽은 목소리로 미국과 한국이 우승할 거란 말을 하는 메튜의 말에 다른 참가자들이 들고일어났다.

“그게 왜 사이가 좋은 거죠? 영국은요? 영국에서도 우승자가 나올 수 있다고 생각 안 해요?”

발끈하는 영국 참가자의 뒤를 이어 프랑스 참가자도 말을 보탰다.

“프랑스도 무시하지 마세요. 우린 뼛속까지 혁명가들입니다. 언제라도 순위를 뒤집을 수 있어요.”

다른 나라 참가자들 모두 앞다투어 질 수 없다는 듯 말을 내뱉었다.

이쯤 되자 엘런은 과열된 분위기를 조금 진정시켜야 했다.

“워워. 다들 조금 진정할 필요가 있을 것 같습니다. 18명이 한꺼번에 떠들어대니 머리가 다 아파요. 안 그런가요, 여러분?”

엘런의 말에 방청객에 있던 사람들이 그렇다며 동조했다.

그 말에 아차 싶은 참가자들이 조금 말소리를 줄였다.

“그런데 메튜, 아까 했던 말 중에 조금 흥미로운 말이 있었는데 우승을 하나씩 나눠 갖는다는 건 가수 참가자에서 우승은 자신이 하겠단 소린가요?”

“네. 가수는 제가 프로듀서는 이성현씨가. 그럼 딱 좋지 않나요?”

메튜는 천진한 미소를 지으며 기다렸다는 듯이 말했다.

이를 들은 천소울의 표정이 밝지 못했다.

옆에서 그걸 발견한 임하나가 작게 웃으려는 찰나, 천소울이 치고 나갔다.

“복싱 선수 마이클 타이슨이 이런 말을 했죠. Everyone has a plan, until they get punched in the mouth.”

한국말로 의역하자면 누구나 다 그럴싸한 계획을 가지고 있다. X나 처맞기 전에는.

라는 뜻이었다.

천소울의 말에 메튜가 당황해서 잠시 말을 잃었다.

다른 참가자들은 모두 흥미진진하게 상황을 지켜봤다.

엘런 역시 재밌다는 듯 메튜를 보는데 처음으로 그의 천진난만했던 표정에 금이 가 있었다.

‘어라?’

엘런의 눈에 이채가 서렸다.

한눈에 지금 대결 구도가 어떻게 된 것인지 파악한 엘런이 웃으며 말했다.

“천소울씨가 크게 한 방 먹였군요. 과연 끝에 가서 누가 K.O를 당할지 흥미진진합니다.”

거기까지 말한 엘런이 자신을 원샷으로 찍고 있는 카메라를 향해 짚고 넘어갔다.

“모르시는 분들을 위해 말씀드리는데 이분들은 격투기 선수가 아니라 가수들입니다.”

엘런의 농담에 다시 과열되려는 분위기가 조금 가라앉았다.

“못 믿으시겠다구요? 그럼 직접 보여드릴 수밖에 없네요.”

엘런의 말을 신호로 카메라에 보이지 않는 곳에서 스탭들이 분주해졌다.

“메튜 페리가 여러분들을 위한 특별 공연을 준비했다고 합니다. 과연 그가 가수인지 아닌지는 여러분들 판단에 맡기도록 할게요.”

메튜는 어느새 다시 천진한 미소를 되찾아 웃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무대 준비를 하는 메튜를 위해 성현을 비롯한 다른 참가자들은 잠시 자리를 비켜주었다.

메인 무대를 남기기 위해 나머지 17명의 참가자들은 방청객석으로 이동했다.

맨 앞자리에 나란히 앉은 참가자들은 무대를 기다렸다.

무대에 남은 메튜 페리가 준비한 곡은 브루노 막스의 히트곡 Downtown Funk.

“This hit, that ice cold Michelle Pfeiffer, that gold This one for them hood girls.”

메튜는 브로나 막스 특유의 리듬감 넘치는 보컬을 살리며 노래를 시작했다.

그와 동시에 화려한 춤 솜씨를 보여주며 여유롭게 카메라와 아이컨택까지 했다.

지금 당장 TV에 출연해도 될 정도의 스타성을 뽐내는 메튜.

방금 전, 엘런쇼에 등장할 때 긴장하던 모습은 거짓말이었다고 해도 믿을 정도였다.

“Don't say me just watch.”

메튜는 스탠딩 마이크에서 마이크를 분리했다.

라이브를 유지한 채로 춤을 추며 스튜디오를 돌아다니자 관객들이 그에게 열광했다.

이내 엘런과 함께 춤을 추면서 무대를 더욱 뜨겁게 만들었다.

객석에 있던 사람들도 함께 노래를 따라 불렀다.

그렇게 메튜의 차례가 끝난 이후 무대가 이어졌다.

영국, 프랑스, 브라질 대표 참가자들의 공연으로 스튜디오의 열기는 계속해서 뜨거워졌다.

‘더 넥스트 슈퍼스타’의 팬이라는 말이 거짓말은 아니었는지 엘런 역시 다른 이들처럼 그들의 노래에 열광했다.

“제가 말씀드렸죠? 이분들 가수라니까요.”

엘런은 연이어 나오는 엄청난 무대에 정신을 차리지 못하겠다는 듯 말했다.

곧 마지막 무대만을 남겨두게 됐다.

“마지막 남은 무대는 개인적으로 가장 기대가 되는 무대입니다.”

엘런의 말에 짐작 가는 것이 있는지 참가자들 모두가 격한 환호를 내질렀다.

진정하라는 듯이 손을 들어 올린 엘런이 이어 말했다.

“노엘 겔러한테 아델보다 아델 노래를 잘 부른다는 극찬을 받은 참가자죠.”

엘런의 말에 임하나, 부끄럽다는 듯 얼굴을 가렸다.

카메라는 그런 그녀의 모습을 오롯이 담았다.

엘런은 그녀를 끌고 무대 가운데로 데리고 왔다.

“부끄러워하실 필요 없어요.”

“코리아! 임하나!”

“하나! 하나!”

임하나의 등장에 방청객들 모두가 어눌한 발음으로 그녀의 이름을 연호했다.

“제가 공연 봐서 다 봐서 알아요. 아주 성난 호랑이처럼 노래를 하시던데요?”

“네? 호랑이는 아니고...... 굳이 뽑자면 암사자?”

임하나의 농담에 엘런이 재밌다는 듯 웃었다.

무대 전 그녀와 짧은 인터뷰를 진행했다.

오늘 출연한 18명의 참가자들 중에 제일 화제인 인물이라면, 단연 임하나였다.

이런 인물을 그냥 보낼 수는 없었다.

“이 곡을 부를 때 이렇게나 화제가 될 거란 걸 알고 있었나요?”

엘런의 질문에 임하나는 어젯밤까지 영어 회화를 죽도록 연습한 자신을 칭찬하며 말했다.

“아니요. 정말 예상하지 못했어요. 그 자리에 아델님이 있는 줄도 몰랐고 정말 꿈에서조차 상상하지 못했던 일이 일어나서 아직도 이게 현실이 맞는 건지 얼떨떨할 때가 많아요.”

엘런은 완전히 공감한다는 듯이 인상을 쓰며 그녀의 말을 들었다.

“저 같아도 믿지 못할 거 같아요. 제 말은, 그냥 길 가다 노래 한 곡 불렀는데 그걸 아델이 찍어 올렸단 거잖아요!”

영국의 국민 가수 아델 이야기가 나오자 영국 참가자들 사이에서 환호가 터져 나왔다.

엘런은 경고하듯이 그쪽을 향해 눈빛을 쏴주고 다시 임하나를 봤다.

“물론 그 한 곡을 끝내주게 잘 불러야 하겠지만요. 제 생각인데 임하나씨는 운도 좋았지만 그만큼 실력이 뒷받침됐기 때문에 그 운을 살릴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아닌가요?”

“음, 실력이 없진 않은 것 같아요.”

임하나가 귀엽게 웃으며 말하자 그녀의 말에 방청객에 있는 사람들이 단체로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그들 모두 너튜브를 통해 그녀의 실력이 어느 정도인지 아는 사람들이었다.

“이건 정말 솔직하게 대답해 주셔야 해요. 예스 or 노로 대답해 줘요.”

갑자기 엘런이 짐짓 진지한 투로 임하나에게 말했다.

임하나는 순간 긴장해서 고개를 끄덕였다.

엘런은 좋다는 듯 씨익 웃더니 조금 짓궂은 질문을 던졌다.

“난 솔직히 아델 영상에 달린 댓글들을 매일 확인한다.”

엘런의 질문에 임하나는 방청객들을 향해 부끄럽다는 듯 웃으며 예스, 라고 답했다.

차마 이 앞에서는 거짓말을 할 수가 없었다.

방청객들은 크게 웃음을 터트렸다.

“알겠습니다. 정말 솔직한 답변 잘 들었고 이제 과연 아델이 극찬했던 노래를 들어보도록 하겠습니다. 세상에, 이 노래를 라이브로 듣게 되다니.”

임하나의 팬인 엘런이 호들갑을 떨며 말했다.

임하나는 심호흡을 하며 스탠딩 마이크 앞에 섰다.

그녀의 바로 뒤에는 피아노가 놓여 있었다.

성현은 직접 반주를 쳐주기 위해 피아노 앞에 앉았다.

임하나는 뒤돌아서 성현과 시선을 주고받았다.

성현의 피아노 반주를 시작으로 아델의 hello를 부르기 시작했다.

“Hello, it's me I was wondering if after all these years you'd like to come to me.”

임하나의 그루브한 중저음에 스튜디오에 있는 모두가 그녀에게 주목했다.

다른 나라의 참가자들뿐만 아니라 방청객들까지 미간을 찌푸리며 감탄했다.

너튜브 라이브 채팅창에는 말로만 들었던 임하나의 라이브에 다들 격한 반응을 보였다.

임하나는 버스킹 공연 때와 마찬가지로 곡에 완전히 빠져들어 열창했다.

성현 역시 임하나와 호흡을 맞추며 열정적으로 피아노 반주를 했다.

노래가 끝났을 때, 객석에 앉아있던 방청객들 모두 일어나서 기립박수를 보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임하나는 자신을 향해 박수를 보내주는 방청객들에게 일일이 밝은 미소와 함께 감사 인사를 전했다.

한국팀을 끝으로 어느덧 각 나라 대표들이 준비한 공연도 모두 끝이 났다.

***

“아쉽지만 오늘 준비한 공연은 모두 끝이 났습니다. 다들 즐거운 시간 보내셨기를 바랍니다.”

엘런쇼 생방송 촬영도 막바지에 이르렀다.

방청객들은 아쉬움에 여기저기서 야유를 보냈다.

엘런은 그 소리에 응답하지 않으며 참가자들에게 시선을 돌렸다.

이제 클로징 멘트만을 남겨두고 있는 상황, 엘런은 마지막 인터뷰를 속행했다.

“참가자들 또한 즐거운 시간 보내셨길 바라면서 몇 분의 출연 소감을 들어보도록 할게요. 먼저 이성현 참가자. 오늘 어땠나요?”

“미국을 대표하는 프로그램에 출연할 수 있었던 것만으로 너무 영광이었고 다음에도 찾아뵐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다음이라는 성현의 말을 들은 엘런이 놓치지 않고 물었다.

“다음에, 라면 우승하고 재출연하겠단 뜻으로 받아들여도 되는 건가요?”

“노코멘트 하겠습니다.”

성현이 이번에는 재치 있게 대답을 피해갔다.

엘런은 더 캐묻지 않고 넘어가겠다는 듯 어깨를 으쓱하더니 곧 다른 참가자들에게 출연 소감을 물었다.

몇 명의 출연 소감을 듣고 난 뒤 참가자들 모두 엘런의 클로징 멘트를 기다렸다.

그런데 무슨 일인지 엘런은 방송을 끝내지 않았다.

“잠깐만요.”

클로징 멘트를 칠 타이밍에 갑자기 엘런이 손을 들었다.

그러고는 있지도 않은 인이어가 있는 척 귀에 손을 대더니 말했다.

“제작진 말로는 끝내기 전에 여러분들에게 급하게 알릴 소식이 있다고 하네요.”

엘런은 미리 알고 있었지만, 방금 처음 들었다는 듯 능청스럽게 말을 이었다.

성현을 제외한 참가자들과 방청객들 모두 어리둥절한 표정이 되었다.

‘이것 때문에 엘런쇼에 출연한 거니까.’

성현은 여유롭게 엘런이 발표할 소식을 기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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