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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같은 프로듀서는 없었다-218화 (218/273)

218화

임하나는 방금까지 들떠있다가 갑자기 굳은 표정으로 불꽃놀이를 지켜봤다.

성현은 이를 눈치채고는 조심스럽게 물었다.

“갑자기 왜 그래요?”

성현의 물음에 임하나는 몇 번 입을 달싹이다가 작게 말했다.

“그냥요. 조금 무섭네요. 불꽃처럼 반짝였다 연기처럼 사라질까.”

주어 없는 말이었지만 성현과 천소울은 알아들었다.

임하나가 무슨 얘기를 하고 있는 것인지.

“걱정 마요. 불꽃이 아니라 영원히 빛나는 별로 만들어 줄 테니까.”

성현의 자신감 넘치는 말에 천소울과 임하나가 동시에 성현을 쳐다봤다.

성현은 여전히 시선을 하늘에 고정한 채 말을 이었다.

“오디션은 끝이 아니라 시작이니까요.”

봉준오의 격려를 들은 다음 계속해서 생각한 성현이 내린 결론이었다.

이 답이 정답이 아닐 수도 있었다.

그리고 계속해서 답을 내야만 하는 상황이 올 것이다.

다만, 지금 임하나와 천소울에게 성현이 해줄 수 있는 말의 전부이기도 했다.

“오디션 끝나고도 두 사람 평생 쫓아다니면서 프로듀싱 해줄 거고 꼭 최고의 스타로 만들어줄 거니까 그런 걱정 하지 마요.”

성현의 말에 오랜만에 진지한 얼굴로 하늘을 보고 있던 임하나가 웃음을 터뜨렸다.

“성현씨는 우리 아빠 다음으로 든든한 사람이에요.”

“너무 과찬인데.”

임하나의 시원한 웃음소리 뒤로 이어진 말에 성현이 난감한 기색을 내비쳤다.

성현의 말에 아니라는 듯이 고개를 내저은 임하나가 소곤거렸다.

“사실 아빠보다 든든해요”

“네?!”

“그렇게 말하면 아빠 서운해하니까 이 정도로 참는 거예요. 항상 고마워요.”

깜짝 놀란 성현을 툭 친 임하나가 작은 인사를 건넸다.

“고마운데 이성현씨 혼자 짐 짊어지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영원히 빛나지 않더라도, 잠깐 타오르다 말 불꽃이라도 이 정도 불꽃이면 한 번쯤 태워볼 만하잖아요.”

임하나에 이어 천소울도 성현의 어깨를 툭툭 두드리며 말했다.

마치 성현이 짊어지고 있는 어깨의 짐을 덜어내듯이.

그 말에 임하나와 성현은 동시에 피식 웃었다.

“그러네요. 저 정도 불꽃이면 한 번쯤 태워볼 만하네요.”

마지막으로 쏘아 올린 불꽃의 잔해가 하늘에 짙은 연기로 궤적을 남기고 있었다.

“그래요. 이왕 태울 거 진짜 화려하게 제대로 태워봐요.”

***

리키가 발표한 엘런쇼의 녹화 날.

참가자들은 주최 측이 대여해준 차량을 타고 더 프렌즈 스테이지에 도착했다.

먼저 와 있던 리키 핸더슨이 그들을 대기실로 안내했다.

이동하던 중, 복도에 여기저기 정신없이 뛰어다니는 스탭들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데이빗! 카메라 감독님이 와보래. 조명에 문제 생겼나 봐.”

“또? 아, 나 지금 바쁜데 리디아 당신이 가면 안 돼?”

“여기 지금 안 바쁜 사람 있어? 아무튼, 난 분명 전달했다.”

“알았어! 간다 가!”

스탭들은 방송에 문외한인 사람이 봐도 정신없이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평소 엘렌쇼 소수의 셀러브리티들이 게스트로 참석하는 토크쇼였다.

그런데 이번에는 무려 18명의 참가자가 출연하게 된 것이다.

그것도 모자라 평소 녹화 방송과는 다르게 너튜브 생방송으로도 방송이 진행되어야 했다.

“게스트 18명은 이쪽도 처음이라 더 정신없을걸.”

리키는 이해해달라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총괄 메인PD인 자신도 급하게 받은 연락이었다.

주최 측이 언제부터 토크쇼 스케줄을 염두에 뒀는지는 모르겠지만.

이쪽에도, 그리고 엘렌쇼에게도 친절한 스케줄은 아니었다.

“오늘의 주인공들은 이쪽으로.”

그가 대기실 문을 열어주자 18명이 들어가고도 충분한, 넓은 공간이 나왔다.

뒤이어 스탭들이 안으로 들어왔다.

메이크업 박스, 협찬 의상이 가득 걸린 행거, 미리 숙지해야 할 짧은 대본, 간단한 요깃거리와 음료수까지.

그들은 분주하게 짐을 늘어놓더니 출연자 명단을 확인하고 외쳤다.

“한국팀이랑 미국팀 먼저 메이크업 시작할게요.”

그 말에 나선 것은 리키였다.

“아니야. 두 팀을 제일 마지막으로 해줘요. 양 팀은 나 따라오고.”

리키는 스탭에게 괜찮다고 손짓한 뒤, 성현의 팀과 메튜의 팀을 따로 불러내 대기실을 나갔다.

성현과 메튜의 팀 모두 어리둥절 해하며 리키를 따라갔다.

리키는 아무런 설명 없이 스탭들이 정신없이 오고 가는 복도를 지나 한적한 안쪽으로 계속해서 들어갔다.

그는 복도 끝 방문 앞에서 멈췄다.

리키는 잠시 한국팀과 미국팀을 돌아보며 의뭉스런 미소를 짓더니 방문에다 노크했다.

똑똑.

“들어갈게요.”

리키가 문을 열고 들어가는데 짧은 머리의 한 여성이 의자에서 일어났다.

“이게 누구야. 리키 핸더슨!”

“엘런! 잘 지냈죠?”

“나야 잘 지냈지. 딸이 뉴욕대 붙었다며? 축하해.”

바로 엘렌쇼의 호스트인 엘런 드제너러스였다.

엘런과 리키는 서로 친분이 있는지 악수를 하며 인사했다.

이를 지켜보던 임하나는 성현과 천소울만 알아들을 수 있도록 한국말로 말했다.

“진짜 동안이시다. 아직도 사십 대 같아요.”

60세가 넘은 엘런은 아직도 40대 같은 외모를 자랑하고 있었기 때문.

그리고 자신을 향한 시선을 눈치챘는지 엘런이 고개를 들었다.

그녀는 바로 임하나 쪽으로 고개를 돌리더니 이내 싱긋 웃으며 악수를 건넸다.

“한국의 임하나 참가자 맞죠? 반가워요. 제가 정말 팬이에요.”

“저, 저요?”

팬이라고? 봉준오 감독에 뒤이어 이번에는 엘렌쇼의 엘렌이 자신보고 팬이란다.

임하나는 기절할 거 같은 마음을 다잡으며 엘렌과 악수를 했다.

어쩜 손도 맨들맨들해...... 이게 스타의 손인가.

“네. 아델이 올린 영상보고 푹 빠졌어요. 하나씨 말고도 다들 너무 팬이에요. 제가 요즘 너튜브로 더 넥스트 슈퍼스타 보는 맛에 산다니까요.”

엘렌은 흥분한 얼굴로 두 팀을 돌아보며 말했다.

숨기지 않고 드러내는 팬심에 한국팀과 미국팀은 믿기지 않는 듯 엘렌을 바라볼 뿐이었다.

얼떨떨한 참가자들의 모습에 리키가 말을 보탰다.

“빈말이 아니야. 얼마나 팬이면 나한테 한국이랑 미국팀은 떨어뜨리면 집에 찾아가 가만 안 둘 거라고 농담을 다 하더라니까.”

“리키 과연 그게 농담일까? 잘 생각해 봐.”

엘런이 진지한 표정으로 리키에게 충고했다.

그러자 리키는 그녀의 농담에 졌다는 듯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농담으로 식으로 말하긴 했지만 양 팀은 더 넥스트 슈퍼스타에서도 우승자를 기대하는 가장 기대가 큰 참가자들이 대거 포진해 있습니다. 이번 촬영에서도 7라운드에서 1, 2위를 차지한 두 팀에 관한 인터뷰가 주가 될 거고요.”

리키는 그렇게 말하며 엘렌을 가리켰다.

“엘런에게 가장 많은 질문을 받아야 하는 참가자들인 만큼 미리 소개해주는 것이 좋을 것 같아 데려온 거니까 편하게 말씀 나누다 가시면 됩니다. 그럼 엘렌, 잘 좀 부탁드릴게요.”

리키의 말에 엘렌은 자신 없다는 듯이 이마를 짚었다.

“글쎄. 이 친구들이 문제가 아니라 내가 방송사고 내는 거 아닌가 몰라. 생방송은 나도 오랜만인 데다가 너무 엄청난 미션을 받아서 말이야.”

엘런의 말에 성현이 피식 웃었다.

성현만이 지금 엘렌이 말한 이야기의 정체를 알고 있었다.

다른 참가자들은 사정이 달랐다.

미션? 생방송 이야기인가?

나머지 참가자들은 그게 무슨 소리냐는 듯 엘런을 쳐다봤다.

리키는 재빠르게 손을 뻗어 그녀를 저지했다.

“거기까지만. 중요한 건 방송을 위해 아껴두셔야죠.”

오랜만에 생방송이지 않냐고 덧붙이는 리키의 말에 엘렌은 바로 입을 닫고 싱긋 웃었다.

“오케이. 더 넥스트 슈퍼스타 맴버들 특집이니까 선물은 방송에서 공개하도록 하죠.”

엘런은 참가자들을 보며 알 수 없는 미소를 지을 뿐이었다.

***

엘렌쇼가 시작되었다.

언제나처럼 쇼파에 다리를 꼰 채 앉아있는 엘런을 비추며 라이브 방송이 연결됐다.

너튜브 라이브는 전 세계 팬들이 참여하는 만큼, 벌써부터 엄청난 동시 접속자 수를 기록하고 있었다.

“오늘 모실 게스트는 아마 요즘 전 세계에서 가장 핫한 사람들이 아닐까 싶습니다.”

엘런의 말에 객석에 앉아있는 방청객들은 벌써 환호를 했다.

그 모습에 엘렌은 자신 역시 설렌다는 듯 두 손을 가슴에 얹더니 심호흡을 한 번 하고 게스트를 소개했다.

“총상금 2천만 달러가 걸린 화제의 서바이벌 오디션. 더 넥스트 슈퍼스타의 5개국 참가자들을 모셨습니다. 박수로 환영해주세요!”

엘런의 말과 동시에 스튜디오로 한국, 미국, 영국 등 각 나라 참가자들이 손을 흔들며 들어왔다.

그들의 등장에 방청객석에 있는 팬들이 환호성을 질렀다.

비명에 가까운 환호성.

그 바람에 들어오던 임하나가 긴장한 탓에 크게 놀랐는지 넘어질 뻔했다.

거기다 임하나는 세계적인 토크쇼에 나온다는 부담감에 어제 새벽까지 영어 공부를 하다가 잠들었다고 했다.

곁에 있던 성현이 재빨리 잡아주었지만, 구두 한 짝이 발에서 빠지고 말았다.

“하나씨 당신이 신데렐라만큼 예쁜 건 사실이지만 요즘 시대엔 당신을 구해줄 백마 탄 왕자님이 없어요. 신발은 스스로 잘 챙기도록 하세요.”

임하나는 얼굴이 빨개져서 구두를 챙겨 신었다.

방청객에 있는 사람들은 하나의 모습이 귀여워서 박수를 치며 웃었다.

“18명 맞나요? 전 세계에서 딱 18명이 살아남은 거죠?”

엘런의 물음에 참가자들은 고개만 끄덕일 뿐이었다.

다들 긴장했는지 누구 하나 먼저 말을 꺼내지 못했다.

천하의 메튜조차 엘렌의 앞에서는 얌전했다.

아니, 오히려 미국 출신이기에 엘렌쇼의 위상을 잘 알아서 더 긴장하고 있었다.

그 모습에 엘렌이 믿을 수 없다는 듯이 두 손을 올리며 탄식했다.

“스튜디오에 역대급 많은 게스트가 왔는데 역대급으로 조용하군요. 거기 누구 없나요? 18명의 참가자들 모두 어디로 사라진 거죠?”

엘런은 일어나서 스탭을 찾으며 물었다.

방청객들은 그런 참가자들에게 힘내라는 듯 응원의 말을 던졌다.

앉아있던 참가자들은 자신들에게 호의적인 스튜디오 분위기를 느꼈다.

그제야 긴장이 조금씩 풀리기 시작했고, 하나둘 그녀의 농담에 웃을 수 있었다.

“우선 간단하게 자기소개 먼저 하고 시작할게요. 여기 있는 분들 이름을 제가 다 외울 수 있을 지는 장담 못 하겠지만요.”

엘런은 20년 가까이 토크쇼 진행을 맡은 베테랑 MC다웠다.

특유의 친근함과 재치 넘치는 말들로 참가자들의 긴장을 풀어주었다.

그 덕에 굉장히 자연스럽게 생방송이 진행되었다.

참가자들 모두 긴장을 풀어가며 순조롭게 자기소개를 끝낼 수 있었다.

“좋아요, 좋아요. 휴, 18명이나 되니 자기소개만 해도 한나절이군요.”

자기소개가 끝난 뒤에는 더 넥스트 슈퍼스타와 관련된 인터뷰가 진행됐다.

당연히 핵심이 되는 건 본선 7라운드 1위를 차지한 한국팀과 2위인 미국팀이었다.

“한국팀한테 먼저 물을게요. 성현씨, 한국에서 우승자가 나올 거라고 생각하나요?”

엘런의 물음에 모두 성현에게로 시선이 향했다.

성현은 갑작스러운 질문에 망설임 없이 대답했다.

“자신 없습니다.”

“아 역시 우승은 쉬운 일이 아니...”

“우승하지 않을 자신이 없습니다.”

와아아아.

패기 넘치도록 단호한 성현의 대답.

장내는 흥분한 방청객들이 내뿜는 열기로 인해 뜨거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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