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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같은 프로듀서는 없었다-217화 (217/273)

217화

“메튜. 오늘 내가 왜 참가자들을 모두 모이게 했을까?”

“다음 라운드 미션 공지를 하려구요.”

리키에게 지목당한 메튜는 생각할 필요도 없다는 듯 바로 대답했다.

메튜의 대답에 리키는 씩 웃더니 고개를 저었다.

“틀렸어. 다음 라운드 미션 공지는 오늘 없을 겁니다.”

리키의 말에 참가자들은 하나같이 그게 무슨 소리냐는 듯 술렁거렸다.

게임을 통해 앞으로 일어날 일을 미리 알고 있는 성현만 제외하고.

성현은 저도 모르게 입가에 미소가 피어났다.

‘미국 토크쇼 출연이 진짜로 이루어질 줄이야.’

리키는 영문을 몰라 하는 참가자들을 휘 둘러본 다음 입을 열었다.

“엘렌 쇼 PD한테 연락이 왔습니다. 당신들을 출연시키고 싶다고.”

리키의 말에 참가자들은 모두 못 믿겠다는 듯 입을 떡 벌렸다.

순간, 거대한 컨퍼런스 룸에 정적만이 가득 찼다.

엘렌 쇼라고 하면 2003년도부터 미국 NBC 채널에서 방영하는 유명 토크쇼.

미국 인기 코미디언 엘렌 드제너러스가 진행하는 이 토크쇼는 수많은 스타들과 유명인들이 다녀간 영향력을 가진 프로였다.

그런 TV쇼에 출연을 한다고 하니, 참가자들이 놀라는 것은 당연했다.

“너무 놀랐나요? 편안한 분위기에서 진행되는 토크쇼니까 너무 긴장할 거 없어요.”

방금 전까지 자신 역시 엘렌 쇼 측에서 날아온 희소식에 놀랐음에도 참가자들에게는 능청스럽게 말했다.

“18명 전원이 출연하는 건가요?”

한 참가자가 말도 안 된다는 표정으로 외쳤다.

“네. 스튜디오에 바짝 붙어 앉아야겠지만. 그래도 미국 지상파 간판 프로에 나오는 게 어딘가요? 나라면 메튜 무릎 위에라도 앉겠어요.”

리키의 말에 메튜는 자신 쪽에서 거절한다며 엑스자를 들어 보였다.

그 모습에 긴장감이 돌았던 분위기가 서서히 풀렸다.

“녹화는 이틀 후에 진행될 것이며 이틀 동안은 각자 휴식을 취하면 될 것 같습니다. 그럼 지금 이 순간부터 남은 자유를 만끽하시길 바랍니다.”

리키의 말에 각 나라 참가자들은 일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틀이라는 시간 동안 무엇을 뭘 할지 이야기를 나누며 컨퍼런스룸을 벗어났다.

“다들 뭐 하고 보낼 생각이에요?”

엘렌 쇼는 엘렌 쇼고, 지금은 우선 주어진 휴가에 집중하기로 했다.

임하나는 기대에 찬 눈으로 일행들을 돌아봤다.

“딱히 생각해둔 건 없습니다.”

그렇게 대꾸하는 천소울은 연습실에 갈 생각이었다.

“계속 호텔이랑 연습실만 왔다갔다 했으니까 밖에 나가보는 건 어때요?”

천소울을 뻔히 아는 성현이 먼저 제안했다.

이럴 때일수록 확실히 몸에서 긴장감을 빼놓는 것은 나쁘지 않았다.

봉준오 감독을 만난 후, 성현은 자신과 일행들에게 여유가 부족하다는 생각을 했다.

“전 빠지겠습니다. 조금 피곤해서.”

밖이라는 말에 천소울을 바로 고개를 저었다.

기회를 노리던 메튜가 성현의 옆에서 튀어나온 건 그때였다.

“성현. 그럼 나랑 놀아요. 내가 좋은 곳으로 안내할게요.”

“생각해 보니 미션 전에 팀워크를 다지는 것도 좋을 것 같네요. 우리 ‘셋’이 어딜 가는 걸로 하죠.”

메튜의 말에 천소울을 메튜를 제치며 성현을 향해 말했다.

셋이라는 걸 강조하며 메튜를 보며 말하는 천소울.

메튜는 이글거리는 그의 눈을 보고는 성현에게 결정하라는 듯 쳐다봤다.

천소울 역시 그를 따라서 성현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어......?”

순식간에 두 사람의 시선을 받게 된 성현.

조금 고민하다 이내 미안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성현의 시선이 향한 곳은,

“아무래도 멤버들이랑 시간을 보내야겠네요. 미안해요.”

선한 얼굴에 웃음을 지우지 않고 있던 메튜였다.

성현의 거절 의사에 메튜는 어깨를 한번 으쓱하며 의자에서 일어났다.

“어쩔 수 없죠. 다음 기회에 놀아요, 그럼.”

“미안해요.”

메튜는 신경쓰지 말라고 손을 저으며 테이블을 떠났다.

임하나는 천소울을 한심하듯 쳐다보며 말했다.

“천소울씨, 원래 이렇게 애 같았어요?”

밖에 돌아다니는 거 그렇게 좋아하지도 않으면서.

중얼거리는 임하나의 말에 천소울은 자신도 딱히 할 말이 없는 듯 입을 꾹 다물었다.

그러다 결국 두 사람의 시선을 받아낼 수 없는지 자리에서 일어났다.

“먼저 일어나겠습니다. 어디 갈지 두 분이서 정하고 연락 주세요.”

“저 어디 갈지 정했는데 듣고 가요.”

임하나는 천소울을 다급히 말리며 말했다.

그 모양새가 딱 애 달래는 친척 누나 같았지만, 천소울에게는 또 통했다.

천소울이 그게 뭐냐는 듯 임하나를 보는데, 임하나가 씨익 웃었다.

“애 데리고 가기 딱 좋은 곳이 있거든요.”

***

해가 저물어 가는 저녁, 멀리 조명이 켜진 디즈니 성이 보이는 곳.

성으로 향하는 길목에는 미키 마우스 머리띠를 한 어린이들이 부모님의 손을 잡고 걸어가고 있었다.

그렇다. 임하나가 천소울과 성현을 데리고 간 곳은, LA 시내에서 1시간 정도 떨어진 애너하임 오렌지 카운티에 위치한 디즈니랜드였다.

“다 큰 어른이 이런 덴 왜 옵니까?”

“천소울씨는 애니까 이런 데 와야죠.”

제법 맛 들렸는지 임하나는 음률까지 붙여가며 천소울을 향해 애라고 놀렸다.

천소울은 발걸음을 옮기다가 도저히 안 되겠는지, 딱 멈춰서서 임하나를 내려다보았다.

“한 번만 더 애라고 해요. 진짜 가만 안 둡니다.”

그 모습에 임하나는 과장되게 두 손으로 입을 가리며 외쳤다.

“설마 삐졌어요? 애라고 불러서? 으이구. 팝콘 사줄 테니까 풀어요. 알았죠?”

임하나는 그렇게 말하며 재빠르게 멀리 도망쳤다.

여전히 천소울을 놀리며 말하는 모습에 천소울은 대꾸하기를 포기했다.

“우리 온 김에 사진 찍고 가요. 저기 디즈니 성 보이게.”

“폰 주세요. 제가 찍어드릴게요.”

임하나의 말에 성현이 얼른 손을 내밀었다.

그러자 임하나가 정색을 하면서 휴대폰을 자신 쪽으로 당겼다.

“무슨 소리. 여기까지 왔으면 다 같이 찍어야지.”

“우린 됐으니까 그냥 임하나씨 혼자 찍어요.”

천소울 역시 조금 귀찮아서 거절의 말을 건넸다.

임하나는 그 말이 들리지 않는지 저쪽에 가 있었다.

어느새 인형탈을 쓴 직원에게 사진을 찍어 달라고 부탁하더니 다시 돌아온 임하나.

그녀는 천소울과 성현의 팔짱을 끼고 끌어당겼다.

“이제 안 놀릴 테니까 표정 풀어요. 온 김에 예쁜 사진 찍고 가야죠.”

임하나의 말에 천소울은 억지 웃음을 지었다.

성현은 그런 천소울 표정을 보고 피식 웃었다.

인형탈을 쓴 직원은 그 순간을 놓치지 않고 사진으로 남겼다.

“......혹시 연예인이세요? 어디서 본 것 같기도 한데.”

휴대폰을 돌려주던 직원은 어디서 본 것 같은 얼굴에 긴가민가하며 물었다.

감사 인사를 하며 휴대폰을 건네받은 성현이 웃으며 대답했다.

“더 넥스트 슈퍼스타라고 오디션 프로그램 나왔어요.”

그 말에 알겠다는 듯이 인형탈 직원이 두 팔을 활짝 펼쳐 반가움을 표시했다.

“아! 어쩐지. 저 그 프로 애청자예요. 한국인 참가자들이죠?”

“네. 앞으로 더 재밌는 라운드 많이 남아있으니까 많은 관심 부탁드려요.”

성현은 반쯤 연예인이 된 것 같았다.

자연스럽게 홍보 문구를 줄줄 읊는데 직원이 감동했다는 듯이 세 사람을 둘러보며 말했다.

“얼마 전에 친한 친구를 잃어서 크게 상심에 빠졌는데 노래 듣고 많은 위로를 받았습니다.”

“아......”

예상치 못한 사연에 성현이 잠시 할 말을 잃었다.

“저희 노래가 힘이 됐다면 다행이에요. 힘드시겠지만, 파이팅이에요!”

대신 웃으면서 대답한 것은 임하나였다.

그 말에 천소울과 성현도 미소로 화답했다.

“항상 응원할게요. 앞으로도 좋은 곡 부탁드려요!”

직원이 성현의 일행을 향해 진심 어린 응원을 하고 떠났다.

성현과 일행들은 그 직원에게 손을 흔들어 주며 다들 잠시 말이 없었다.

“여기까지 오게 돼서 다행이네요.”

성현의 말에 다들 고개를 끄덕였다.

단 한 사람이라도 누군가에게 위로를 줄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음악을 하는 이유는 충분했다.

“고마우면서도 마음이 무거워지는 순간이네요.”

임하나가 감성에 젖어 말하는데 그 감동은 오래가지 않았다.

삐리리리릭!

그녀의 휴대폰에서 요란스러운 알람이 울린 탓이었다.

갑자기 난 큰소리에 그게 뭐냐고 물으려는 성현과 천소울에게 임하나가 선수 치듯 외쳤다.

“불꽃놀이! 우리 불꽃놀이 보러 가야 돼요!”

임하나는 성현과 천소울의 팔짱을 끼고 곧장 메인 스트릿으로 향했다.

***

디즈니랜드에 갔으면 꼭 봐야 하는 불꽃놀이.

임하나는 광장으로 향하면서 이 불꽃놀이가 디즈니랜드의 꽃이며, 하이라이트라고 입에 침이 마르도록 열변을 토했다.

성현의 일행이 갔을 때는 이미 자리를 예약해 둔 사람들이 앞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임하나와 성현, 천소울은 뒤에 자리를 잡았다.

불꽃이 터지길 기다리는데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점점 많아지는 인파에 성현의 일행은 좁은 공간에 겨우 중심을 잡으며 서야 했다.

“아홉 시 시작 아닌가요? 벌써부터 사람이 이렇게 많으면......”

“이런 걸 꼭 봐야 합니까?”

사람 많은 곳을 좋아하지 않는 성현과 천소울은 시작하기도 전에 질려버렸다.

불꽃놀이를 보기 위해 몰린 인파들은 둘의 생각보다 더 엄청났다.

그 틈에 끼어있는 임하나의 대답은 확고했다.

“안 돼요. 디즈니랜드에 왔는데 불꽃놀이를 안 보고 간다? 그건 범죄라구요.”

임하나의 말에 천소울은 고개를 절레 저으면서도 함께 불꽃놀이를 기다렸다.

드디어 기다리던 9시가 되었다.

시간에 맞춰 커다란 불꽃 하나가 하늘로 쏘아 올라가며 본격적으로 불꽃놀이가 시작됐다.

퍼엉! 펑!

화려한 불꽃들이 어두운 밤하늘을 환하게 밝혔다.

사람들은 모두 휴대폰을 들어 불꽃놀이를 찍기 바빴다.

알록달록한 디즈니랜드의 지붕을 배경으로 형형색색의 불꽃이 하늘을 수놓았다.

“와...... 디즈니 영화 시작할 때 나오는 그 장면 알죠? 디즈니 성에서 폭죽 터지는 거. 그거랑 진짜 똑같아요. 영화 보는 거 같아.”

임하나는 넋이 나가 말했다.

사람이 많다며 투덜거리던 천소울 역시 그 광경에 말을 잃었는지 조용하기만 했다.

그건 성현 역시 마찬가지였다.

‘피곤해도 오길 잘했어.’

임하나의 말이 맞았다.

성현은 하늘 위 수놓아지는 화려한 폭죽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별로 멀지 않은 밤하늘을 가득 메운 불꽃은 바로 눈앞에서 밝게 타오르다가 사그라들었다.

그리고 곧이어 수없이 많은 작은 불꽃이 뒤따랐다.

쉼없이 터지는 불꽃으로 수놓아진 하늘, 그와 함께 뭉게뭉게 피어오른 연기가 장관을 이루고 있었다.

“너무 예쁘다!”

불꽃놀이가 끝난 뒤에는 눈처럼 거품이 뿌려지더니 노래가 흘러나왔다.

갑자기 현실에서 환상 속에 놓인 것 같은 배경이 펼쳐졌다.

주변 사람들 역시 탄성을 지르며 하늘로 손을 뻗었다.

흘러나오는 흥겨운 노래에 맞춰 아이들과 춤을 추는 사람들도 눈에 들어왔다.

“구름 같다. 너무 예뻐요.”

임하나 역시 신이 나서 발을 동동 구르며 말했다.

잔뜩 신이 나서 밤하늘을 바라보던 임하나는, 무언가를 발견하고 갑자기 표정이 시무룩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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