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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같은 프로듀서는 없었다-216화 (216/273)

216화

“당장 오디션이 얼마 안 남은 상황에서 부담감이 없을 순 없다는 거 알아요.”

봉준오는 메뉴판을 뒤적이다 직원을 호출했다.

거기서 몇 가지를 더 주문한 뒤, 세 사람을 돌아보며 말했다.

“내가 해줄 수 있는 말은 지금의 순간을 마음껏 즐기라는 거예요. 이 말 해주고 싶어서 식사하자고 했어요.”

“감독님.......”

감동한 임하나가 고개를 푹 숙였다.

“괜히 미래 걱정 미리 해서 꺾일 필요도 없어요. 지금 세 사람 모두 충분히 잘하고 있으니까. 그것만 명심해요.”

말이 너무 길었다며, 꼰대가 되기는 싫다고 중얼거리며 씁쓸해하는 봉준오 감독.

세 사람은 대번에 고개를 내저었다.

오디션이 막바지에 치달으면서 많은 경쟁자들을 탈락시키며 올라온 세 사람이었다.

은연 중에 그들 속에는 부담감과 함께 불안함이 자리 잡고 있었다.

‘마주해야겠지.’

그리고 언젠가 봉준오가 건넨 이 든든한 응원이 생각날 것이다.

“오늘 좋은 말씀 해주셔서 정말 감사드립니다. 감독님이랑 식사하는 것도 영광인데 이렇게 조언까지 받아가도 되는 건가 싶네요.”

“아니야. 정 미안하면 나중에 성공해서 빌보드 시상식 이런 데서 내 이름 한번 언급해주면 돼.”

성현의 진지한 말에 봉준오는 농담으로 받아쳤다.

하지만, 정말 그럴 생각인 성현과 천소울, 임하나는 결연한 표정이 되었다.

그 모습을 보고 술잔을 입에 가져가던 봉준오가 손사래를 쳤다.

“농담이야, 농담. 뭘 그렇게 살벌한 표정을 지어요.”

“빌보드 꼭 갈게요. 약속드리겠습니다.”

“가서 감독님 이름도 꼭 언급하겠습니다.”

“저희 진짜 열심히 할게요. 오늘 비싼 소고기도 사주셨는데 밥값은 해야죠.”

“부럽다, 청춘!”

봉준오는 의욕 넘치는 성현의 일행을 보고는 못 살겠다며 마음대로 하라고 포기했다.

봉준오는 마지막 잔을 따라 줬다.

“이것만 마시고 일어납시다. 더 마시고 싶은데 비행기 스케줄 때문에. 다음에 한국에서 만나면 그때 제대로 마십시다.”

“한국 가서 저희 모른척하시면 안 돼요, 감독님.”

“우승하고 돌아와서 당신들이 나 모른척하는 거 아니야?”

걱정이 가득 담긴 임하나의 말에 봉준오가 코웃음을 치며 받아쳤다.

“우승은 할 거지만 연락은 꼭 드리겠습니다.”

마지막 천소울의 진지한 말에 봉준오는 호탕하게 웃음을 터뜨렸다.

네 명은 마지막 잔을 부딪쳤다.

그때, 드르륵 소리를 내며 문이 열렸다.

“주문하신 디저트 나왔습니다.”

갑자기 등장한 직원의 모습에 성현의 일행은 당황했다.

“갈 때는 가더라도 입가심하고 가야지.”

봉준오는 싱글벙글 웃으며 네 명분의 디저트를 나눠주었다.

***

호텔로 돌아온 성현은 곧장 샤워부터 하고, 침대에 누워 가만히 천장을 바라봤다.

‘아직도 꿈 같아.’

봉준오 감독과 저녁 식사를 함께 했다는 것이 믿기지 않았다.

‘돈 주고도 못 살 배움도 얻었고.’

성현은 자신보다 앞서 많은 길을 걸어간 봉준오와의 대화를 통해 깨달은 것들이 많았다.

‘그걸 생각했어야 했는데.......’

무엇보다 오디션 이후의 삶.

성현은 지금 당장 봉준오만큼 이룬 것이 많지는 않았다.

아직 열정을 유지하기 위한 노력이 필요할 수준은 아니었다.

다만, 언젠가 성현에게도 그러한 순간이 찾아올 수 있었다.

‘당장 그런 순간이 오기 전에 정상에 오르는 게 먼저겠지만.’

아직 오디션도 끝나지 않았다.

한국에 차린 기획사도 이제 신생 회사였기에 갈 길이 멀었다.

그렇다고 봉준오의 말을 흘려들을 수는 없었다.

언젠가 봉준오 감독처럼 꿈꿔왔던 목표를 모두 이루기 위해서는 우선, 지금 이 순간 최선을 다하는 것이 중요했다.

‘끝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이겠지.’

더 넥스트 슈퍼스타의 끝을 마주할 시간이 가까워졌다.

우승을 하게 될 거란 보장은 없었지만, 자신은 있었다.

확실한 건 오디션이 끝난 이후부터가 모든 것이 새롭게 시작된다는 것.

이미 성현의 삶은 오디션을 보기 전과 너무나도 많이 달라져 있었다.

미리 생각해서 마음가짐을 새로이 해야겠다고 각오를 다졌다.

띠링-

그렇게 생각에 잠겨 있는데 휴대폰 메시지가 도착했다.

첨부된 것은 심훈영이 보낸 녹음파일.

성현은 곧장 일어나서 파일을 재생했다.

경쾌한 EDM 딥 하우스 기반의 세련된 멜로디.

그 위로 서지현, 주선아, 릴리, 문희진의 목소리가 얹어졌다.

성현은 보내온 음악을 주의 깊게 반복해서 들었다.

브라스 사운드에 리드미컬한 드럼 연주가 인상 깊었다.

‘코드 진행도 상당히 인상 깊고 무엇보다 가사가 좋네.’

노래를 다 들은 성현은 곧장 심훈영에게 전화를 걸었다.

“어때? 괜찮게 잘 나왔지?”

심훈영은 성현이 전화를 받자마자 자신감에 차 안부 인사도 건너뛰고 자랑스럽게 외쳤다.

“이게 저번에 말씀하신 후보곡 중 하나인 건가요?”

성현은 자신만만한 목소리만 들어도 심훈영이 팀을 잘 이끌고 나가고 있는 것 같아서 웃음이 절로 나왔다.

“어. 당장 가이드 녹음만 했는데 생각보다 괜찮게 나와서 말이야. 내 생각엔 남은 후보곡 중엔 제일 나은 것 같은데 성현이 네 생각도 중요하니까.”

심훈영은 자신 있는 목소리로 성현의 의견을 물었다.

“당장 이번 앨범에 싣지는 못하더라도 싱글로 낼 수도 있는 거니까 일단은 더 다듬어 보는 게 좋을 것 같아요.”

역시나, 바로 통과하는 법이 없는 성현다운 대답이었다.

심훈영은 어느 정도 예상했는지 실망한 기색은 없었다.

지금까지 수차례 성현과 업무 연락을 하면서 깨달은 것이 있었다.

성현은 엄청난 완벽주의자였다.

심훈영은, 프로듀서로서 성현의 이런 점이 싫지 않았다.

오히려 본받아야 한다고 여겼다.

“다듬는다는 건 뭔가 거슬리는 게 있었단 거지?”

“비트랑 멜로디도 좋았고 가사도 완벽했는데 네 사람 모두 계속 솔로로 노래를 하다 보니까 중간중간 목소리가 튀는 부분이 있더라구요. 그 부분 좀 잡아주시면 될 것 같아요.”

솔로로 활동하던 네 사람의 가장 큰 걸림돌.

바로 그룹 활동이었다.

그룹 활동을 하게 되면, 개개인의 장기도 중요하지만 네 사람의 합 역시 주요하게 작용한다.

심훈영에게 여러 차례 당부했던 요소 중 하나였다.

“오케이. 다른 건?”

네 사람의 보컬을 들으면서 자신 역시 걸리는 지점이 있었기에 심훈영은 빠르게 수긍했다.

“대표님께서 워낙 알아서 잘해주셔서 아까 말씀드린 것 빼곤 없네요.”

“말은. 기분 좋아 보인다? 봉준오 감독 만난 게 그렇게 좋아?”

심훈영의 말에 놀란 성현이 물었다.

벌써 이런 소식까지 한국 여론에 퍼진 건가 싶었다.

“어떻게 아셨어요?”

“하나가 봉준오 감독이 쓰던 냅킨이라고 사진 보내주더라.”

심훈영 말에 성현은 그제야 임하나가 밥을 먹고 나온 뒤 다시 가게로 들어간 이유를 알 수 있었다.

그가 쓰던 냅킨을 가져오려고 했던 거였다.

성현은 이제 더 이상 놀랍지도 않았다.

“몰랐는데 하나씨가 봉준오 감독님 엄청 팬이더라구요.”

심훈영 역시 요즘 임하나의 행동 스펙트럼에 놀라는 중이었다.

“하나 걔도 참 좋아하는 사람 많아. 아델도 좋고 봉준오 감독도 좋고 다 좋대, 그냥.”

심훈영의 말에 성현이 피식 웃는데, 피곤해서 그런가 하품이 절로 나왔다.

“너 피곤할 텐데 너무 붙잡았네. 한국 대표로 해외 나가서 고생이 많다. 푹 쉬어. 1등 축하하고.”

그 소리를 들은 심훈영이 얼른 통화를 마무리하려 했다.

성현 역시 시간을 확인하고 심훈영에게 인사를 건넸다.

“네. 내일 다시 연락 드릴게요.”

성현은 심훈영과의 전화 통화를 끊고 바로 잠에 빠져들었다.

***

다음날, 호텔 컨퍼런스 룸.

성현을 비롯해 합격한 18명의 참가자들이 각 국가별로 테이블에 떨어져 앉아있었다.

미국, 영국, 프랑스 테이블엔 네 명씩 앉았고, 한국과 브라질의 테이블엔 3명의 참가자들이 자리했다.

“다음 미션 공지 때문에 부른 거겠지?”

“다음 미션도 국가 대항전식으로 가는 걸까?”

“이번에도? 난 다른 나라 참가자들이랑도 작업해 보고 싶은데.”

한 참가자의 말에 호기심 어린 시선이 모여들었다.

“누구?”

“미국의 메튜 페리나 한국의 잘생긴 남자 둘.”

메튜 페리의 언급에 그를 찾던 참가자 하나가 혀를 찼다.

“메튜는 또 저기 가 있네. 누가 보면 한국 국적인 줄 알겠어.”

참가자들이 한국인이 모여있는 테이블로 시선을 돌렸다.

메튜는 자연스럽게 성현의 테이블의 비어있는 한 자리를 차지하고 앉아있었다.

“성현. 어제 봉준오 감독님이랑 창덕궁 식당에 소고기 먹으러 갔다면서요?”

그리고 메튜의 목적은 여전히 성현이었다.

성현이 컨퍼런스 룸에 등장하자마자 메튜는 성현에게 붙어서 치근덕거리는 중이었다.

“네. 어떻게 알았어요?”

“우리도 놀란 감독님이랑 밥 먹었거든요. 감독님께서 한국 참가자들은 창덕궁에 고기 먹으러 갈 거라고 말해줬어요.”

아무래도 놀란과 봉준오 감독이 상당히 친한 모양이었다.

둘 사이에 교류되는 정보에 놀란 성현이 그러냐고 웃는데 옆에서 누군가가 끼어들었다.

“메튜 당신은 한국 참가자들한테 상당히 관심이 많네요.”

두 사람의 이야기를 듣고 있던 천소울이었다.

날카롭게 말하며 끼어드는 천소울을 본 메튜가 순진하게 웃어 보였다.

“아니요. 전 성현한테만 관심이 있는데.”

당당한 메튜의 말.

천소울은 황당해서 말이 안 나왔다.

허, 참. 하는 소리만 반복하는 천소울은 보기도 싫다는 듯 고개를 반대쪽으로 돌렸다.

임하나는 그런 천소울을 보며 재밌다는 듯 웃었다.

“천소울씨 어떡해요? 강적을 만난 거 같은데. 저 표정 좀 봐봐요. 난 아무것도 몰라요 하면서 사람 속 긁는 순진무구한 표정. 저건 연기가 아니야. 찐이야, 찐.”

임하나는 메튜가 한국어를 못 알아 듣는다는 것을 이용했다.

눈앞에서 메튜를 관찰해서는 요목조목 천소울의 속을 긁는 발언을 서슴지 않고 있었다.

두 사람이 그러거나 말거나 메튜는 특유의 순진한 미소를 잃지 않으며 성현의 옆에 앉아있었다.

곧 컨퍼런스룸에 리키 핸더슨과 관계자가 등장했다.

그들은 무언가 바쁘게 상의하고 있었다.

“우리 쪽에서 거절할 이유는 없지. 이보다 더 좋은 기회가 어딨다고.”

“그렇긴 해요. 거기서 미션 공개까지 해버리면 이건 진짜 난리 나겠는데요?”

리키와 관계자, 둘은 어떤 ‘기회’에 대해 얘기하면서 들어왔다.

그들의 등장에 컨퍼런스 룸이 순식간에 조용해졌다.

그 적막에 고개를 들어 참가자들을 둘러보던 리키의 한쪽 눈썹이 올라갔다.

“메튜. 당신은 왜 한국 테이블에 있는 거지?”

“이성현씨랑 대화 중이었어요.”

거리낌없이 성현을 가리키며 말하는 메튜의 모습에 리키는 고개를 내저었다.

“여유가 넘치네. 다음 라운드가 걱정 안 되나 봐?”

“자리로 돌아가란 소린가요?”

메튜가 엉거주춤 의자에서 엉덩이를 들어올렸다.

하지만 그의 얼굴은 일어나기 싫다는 듯 아쉬움이 가득 묻어 나왔다.

놀랍게도 리키는 그를 말렸다.

“아니야, 앉아있어. 테이블 자리가 정해져 있는 것도 아니고 이왕 이렇게 된 거 나랑도 대화를 좀 하자고.”

대화를 하자는 말에 메튜는 그게 무슨 소리냐는 듯 리키를 쳐다봤다.

참가자들의 시선은 한순간에 모두 리키와 메튜에게로 쏠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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