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 같은 프로듀서는 없었다-213화 (213/273)

213화

“괜찮은 거 맞지?”

“괜찮습니다. 그냥 같은 한국인으로서 조금 먹먹하네요.”

숀은 옆에 앉은 봉준오 감독이 아무래도 걱정되는지 재차 물었다.

심사위원석에서 눈물을 흘린 것이 머쓱한지 봉준오는 손을 내저었다.

“대충 무슨 메시지인 건 알겠지만 내가 한국말을 몰라서 말이야. 이따가 무대에 대한 설명을 좀 들을 수 있을까?”

숀은 천하의 봉준오를 울릴 수 있는 무대라는 생각에 방금 본 한국 팀의 무대에 더 흥미가 생겼다.

반짝이는 눈으로 자신을 응시하는 숀의 말에 봉준오는 무대를 가리켰다.

“저보단 저 친구들이 더 잘 설명할 수 있을 것 같은데.”

봉준오가 손수건을 꺼내 코를 풀며 말했다.

숀은 그 말에 이마를 탁 쳤다.

바로 지척에 있는 길을 두고 빙 둘러 가려고 했던 자신이 한심했다.

숀은 곧 리키를 부르더니 이내 두 사람 잠시 대화를 나누었다.

리키는 의미심장한 미소를 짓고는 알겠다며 무대로 올라갔다.

“지금까지 무대를 준비한 프로듀서 참가자들한테 따로 무대에 대한 설명을 듣진 않았지만, 이번엔 특별히 무대 설명을 듣고 싶다는 요청이 들어왔습니다.”

“내가 부탁했어요. 궁금해서 미치겠더라고.”

리키의 말에 숀은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

숀의 너스레에 다른 감독들이 엄지를 들어 올렸다.

리키는 무대 밑에 있던 성현을 불렀다.

무사히 무대를 마친 것에 대해 안도하던 성현은 얼떨결에 무대 위로 올라갔다.

“이번 무대를 프로듀싱 하셨으니 누구보다 더 잘 설명할 수 있을 것 같아 불렀습니다. 이번 무대에서 한국의 어떤 점을 보여주고 싶었던 건가요?”

숀은 리키가 설명하는 짧은 시간도 기다릴 수 없다는 듯 자신이 직접 마이크를 들고 질문했다.

스탭이 성현에게 급하게 마이크 가져다주었다.

성현은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설명을 시작했다.

“천소울씨 무대 먼저 설명 드리겠습니다.”

성현은 그렇게 말하며 무대에 올라있는 천소울과 눈을 맞췄다.

“다른 나라들 역시 마찬가지겠지만 한국에서 가족은 그 의미가 무척 특별합니다.”

가족, 이라는 말에 센스 있는 스탭 하나가 한지 스크린 위로 아까 흘려보냈던 사진 중 하나를 띄웠다.

흑백사진인데, 거기에는 꾀죄죄한 아이를 안은 한국 부모의 초상이 찍혀 있었다.

“이번 곡에선 그중 가족을 지키기 위해 해외에 떨어져 일을 하는 기러기 아버지들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고 싶었습니다.”

성현의 설명 도중, 기러기 아빠가 뭐냐는 감독의 말에 봉준오가 손수 설명을 덧붙였다.

“한국은 과거에 가족 단위로 선진국으로 이민을 가거나 혼자 외국으로 돈을 벌러 떠난 아버지들이 많았거든요. 저희는 이번 곡에선 아버지라면 겪어야 하는 외로움과 고독, 상처와 같은 것들을 이야기하면서 감정과 위로의 메시지를 전달해주고 싶었습니다.”

성현의 말에 심사위원석에 있는 감독들 모두 고개를 끄덕이며 생각에 잠겼다.

그들 또한 감독이기 이전에 아버지였고, 어머니였기 때문이다.

“저 아가씨가 부른 곡은요? 한국의 전통 민요 아리랑이 섞여 있었던 것 같은데.”

일본 감독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질문.

그는 같은 동아시아인 한국 문화에 대해 어느 정도 알고 있었다.

임하나와 천소울의 노래를 듣고 아리랑이란 걸 단번에 눈치챌 수 있었다.

성현은 희미한 미소를 띤 채로 설명을 이어나갔다.

“맞습니다. 아리랑과 홀로 아리랑, 총 두 개의 아리랑이 사용됐으며 한국의 한을 표현하기에 아리랑만 한 곡이 없다고 생각하여 무대 처음과 끝에 아리랑을 넣었습니다.”

한국의 한.

숀은 한은 또 뭐냐며 봉준오의 옆구리를 찔렀다.

봉준오는 나중에 말해주겠다며 성현이 서 있는 무대를 가리켰다.

“처음 나온 아리랑과 마지막에 나온 아리랑이 느낌이 조금 다르던데 뭐가 다른 거죠?”

뒤이어 나온 숀의 날카로운 질문.

성현은 역시 이들의 귀는 못 속이겠다고 생각했다.

“처음 나온 아리랑이 한국 전통의 민요라면 두 번째 나온 홀로 아리랑은 이와 비슷한 선율로 만든 자작곡이며 전쟁의 아픔을 딛고 나아가자는 좀 더 희망적인 메시지를 담고 있습니다.”

다음으로 손을 든 것은 놀란 감독.

성현은 쟁쟁한 거장들의 줄줄이 이어지는 질문에 작게 심호흡을 해야 했다.

게임에서도 이런 전개가 펼쳐진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물론, 성현이 예상 질문을 연습할 시간도 없었다는 말이었다.

“제가 봉준오 감독 영화를 좋아해서 한국 문화에 대한 공부를 좀 했거든요. 한국에는 한이라는 개념이 있다고 하던데 이번 무대에서 그 한이 뭔지 조금 알 것 같았습니다. 제가 제대로 느낀 게 맞나요?”

숀은 또 나온 한국의 한이라는 말에 머리를 부여잡았다.

놀란은 어떻게 저런 개념을 알고 있는가.

설마 자신이 시대에 뒤처지고 있는 것인가 하는 생각에 숀은 뒤이은 성현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네. 맞습니다. 한국은 과거부터 많은 시련을 겪었지만 지금의 한국이 있을 수 있었던 건 결코 한국인이 강해서가 아닙니다.”

심사위원석에서 장난스럽게 김치의 민족은 강하다는 말이 튀어나왔다.

성현은 웃으면서 설명을 이어나갔다.

“지켜야 하는 가족과 조국이 있었기 때문이고 이는 천소울씨 무대에서 보여주려 했던 가장의 무게와도 같습니다. 한국인은 자신이 희생하더라도 가족과 조국을 위해서는 참고 견디는 민족입니다. 그래서 그럴까, 아픔이 많고 한이 많습니다. 그리고 전 그 한이야말로 한국이 버틸 수 있는 원동력이며 가장 한국적인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성현의 긴 설명이 끝이 났다.

심사위원석에 있던 사람들은 성현을 향해 감사의 박수를 보냈다.

“봉준오 감독은 뭐 궁금한 거 없어요?”

“저분들의 진심이 눈과 귀로 충분히 전달됐습니다.”

봉준오 감독의 말에 숀은 아쉽다는 듯이 입맛을 다셨다.

그 순간, 의외의 인물이 손을 들고 나섰다.

“제가 한마디 하겠습니다. ”

지금까지 조용히 있던 독일의 영화 감독 볼프캉 펜테젠이 마이크를 잡았다.

백발의 중후한 분위기의 남자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전 영화를 만들기 전에 항상 생각합니다. 내 영화는 관객들이 돈을 주고 볼 가치가 있을까. 돈을 많이 벌고 싶어서가 아닙니다. 돈을 받아도 전혀 미안하지 않을 만큼 좋은 작품을 만들고 싶은 겁니다. 오늘 이 무대를 스크린에서 돈을 주고 봐야 한다면 전 돈을 지불했을 겁니다.”

볼프캉의 극찬에 임하나는 놀라서 입을 막았다.

성현과 천소울은 허리를 숙여 감사 인사를 전했다.

“감사합니다.”

“모든 감독이 독일 또한 서독과 동독이 나뉘는 아픔을 겪었습니다. 한국이 언젠가 통일하는 날이 오길 진심으로 바랍니다.”

볼프캉은 마지막 말을 끝으로 마이크 내려놓았다.

곧 브라질의 명감독 제리 길리엄이 마이크를 잡았다.

“개인적으로 하나의 장면을 찍을 수 있는 방법은 단 하나라고 생각해요. 그 장면은 그렇게밖에 찍힐 수밖에 없는 것, 그거야말로 완벽한 연출이거든. 제게 오늘 이 무대는 이 무대 말고는 다른 무대를 상상할 수 없게 만든 무대였습니다.”

제리 또한 극찬을 이어갔다.

다른 심사위원들 역시 성현의 팀에게 모두 극찬을 보냈다.

하나하나가 예술같은 표현의 심사평.

성현은 다른 팀과는 프로듀서까지 무대에 올라 같이 심사평을 받을 수 있다는 것에 가슴이 벅차올랐다.

“칭찬은 이쯤 하도록 하고 결과 확인을 하겠습니다. 생각보다 녹화 시간이 너무 길어져서요.”

리키는 감독들이 칭찬을 멈출 기미를 보이지 않자 중간에 끼어들었다.

감독들은 아쉬운 듯 입맛을 다시며 쥐고 있던 마이크를 내려놓았다.

그들은 리키의 인도에 따라 투표를 시작했다.

“긴장하세요. 말만 이렇게 하고 뒤통수 칠 능구렁이들 많아요 저기.”

결과를 기다리는 사이.

리키는 조금 긴장한 듯 보이는 성현의 일행을 놀리듯 말했다.

그러거나 말거나 당장 닥친 긴장감 때문에 성현뿐만 아니라 그 누구도 대답을 하지 못했다.

‘최선을 다했으니까 그거면 된 거야.’

성현은 확실히 이전 라운드보다 더 몸이 떨리는 것을 느끼며 간신히 서 있었다.

뜨거운 조명 아래, 요동치는 자신의 심장 박동을 듣고 시간을 견뎠다.

그 사이, 심사위원석에 있던 봉준오와 다시 눈이 마주쳤다.

봉준오는 이번에도 성현에게 입 모양으로 뭔가를 말했다.

성현은 눈을 가늘게 뜨고 그것을 자세히 보는데.

“......축하해요?”

성현은 준오가 무슨 말을 한 건가 싶어 고개를 갸웃했다.

때마침 결과가 나왔다는 스탭의 말이 들려오고 리키는 스크린에 결과를 발표했다.

“과연 극찬을 연이어 받은 한국 팀의 운명은?”

10표.

“축하드립니다. 한국 봉준오 감독의 투표를 제외하고 모든 감독님들의 선택을 받았습니다!”

리키는 성현의 일행에게 박수를 보냈다.

봉준오 역시 자리에서 일어나 그 누구보다 기쁜 미소를 지으며 박수를 쳤다.

10표면 전체 1위.

메튜의 팀보다도 훨씬 높은 점수였다.

“훠우!”

그리고 객석에서 심사위원 말고도 박수를 보내는 한 사람.

메튜는 그의 무대를 보고 진심으로 감동을 받은 듯 눈을 빛내며 박수를 보내왔다.

‘언젠가 꼭 작업하고 말 거야.’

메튜의 시선은 성현에게서 떨어질 줄 몰랐다.

성현은 흠칫 몸을 떨었다.

알 수 없는 한기가......

“왜 그래요?”

“어...... 아니에요.”

“긴장 풀려서 그런 거 아니에요?”

성현의 모습에 임하나가 작게 웃었다.

임하나는 온갖 국가의 억양이 묻은 영어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

그런데 다행히 숀이 성현을 무대 위로 불러온 덕분에 편하게 성현의 통역을 들을 수 있었다.

“그럼 한국 팀 세 분은 대기실로 가서 편안하게 쉬고 계시면 되겠습니다.”

리키의 말에 세 사람은 심사위원들에게 꾸벅 인사를 한 뒤, 대기실로 향했다.

***

마지막 중국 참가자들의 무대를 끝으로 모든 무대가 종료됐다.

리키 헨더슨의 안내에 따라 10개국의 모든 참가자들이 무대 위로 모였다.

“축하해요.”

성현의 팀을 지나치는 사람들 중에는 미리 축하를 건네는 이들도 있었다.

이번 라운드는 무대가 끝날 때마다 투표 결과가 공개됐다.

그렇기 때문에 사실상 등락의 여부는 이미 결정된 것과 다름없었다.

무대 위는 분위기가 극명하게 나뉘어 있었다.

이미 결과를 알고 기뻐하는 참가자들과 탈락한 사실을 받아들이느라 숙연한 참가자들.

“마지막으로 감독님들의 총평을 듣고 본선 7라운드 미션 마무리하겠습니다.”

리키의 말에 심사위원석에 있는 심사위원들이 돌아가며 마이크를 잡았다.

“오늘 너무 좋은 공연 함께할 수 있어서 좋았고 음악으로 올림픽을 하는 기분이라 짜릿하더군요. 다음에 또 불러주면 그땐 튕기지 않고 바로 오겠습니다.”

“여러 나라의 음악과 문화를 접할 수 있는 기회였고 저도 많은 영감 받고 갑니다.”

감독들의 소감이 차례로 이어졌다.

참가자들은 상기된 표정으로 감독들을 바라보았다.

이곳에서 탈락을 하게 되지만, 오늘 이 자리에서 거장들을 만난 것만으로도 충분하다고 여기는 참가자들도 있었다.

“다음으로는 한국에서 온 봉준오 감독님.”

시간이 흘러 마지막으로 봉준오 차례가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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