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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같은 프로듀서는 없었다-212화 (212/273)

212화

“메튜, 계속 거기 있을 거야?”

미국팀의 무대가 끝난 후 백스테이지에는 때아닌 소란이 일었다.

메튜가 자신은 대기실로 돌아가지 않겠다고 선언한 것이다.

레베카는 골치가 아프다는 듯 한 손으로 머리를 짚었다.

“응. 라이브로 듣고 싶어.”

음악밖에 모르는 바보.

레베카와 사이먼이 지금까지 메튜와 지내보고 내린 결론이었다.

그리고 이 바보가 무엇 하나에 꽂히면 죽어라 그것만 판다는 것도 알았다.

사이먼은 웃으면서 메튜에게 물었다.

“그렇게 그 아시안 남자가 좋아?”

“응. 언젠가 꼭 작업해 보고 싶을 만큼.”

물어보기 무섭게 돌아오는 메튜의 대답.

이글이글 불타는 눈으로 한국팀이 나오기를 기다리는 메튜를 보고 레베카는 고개를 저었다.

사이먼 역시 어깨를 으쓱이며 등을 돌렸다.

“못 말린다니까. 알았어. 그럼 우리 먼저 대기실 간다.”

레베카를 비롯한 메튜의 일행들은 벡스테이지에 있는 메튜를 두고 떠났다.

일행들이 먼저 대기실로 내려가는 데도 메튜는 관심이 없는지 돌아보지 않았다.

메튜는 백스테이지를 지나가던 여자 스탭 한 명을 붙잡았다.

“미안한데 공연을 앞에서 볼 수 있나요?”

“심사위원석이요?”

“방해 안 되게 뒤로 가서 들을게요.”

메튜는 그의 잘생긴 얼굴로 간절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자 여자 스탭의 눈빛이 흔들리더니 주변을 둘러보다 작게 말했다.

“진짜 조용히 들으셔야 해요.”

“네. 약속할게요. 정말 고마워요.”

메튜는 해맑게 웃어 보이며 기뻐하고, 여자 스탭은 얼굴이 빨개진 채로 사라졌다.

이 선한 미국 청년의 마지막 특징.

자신의 목표를 이루기 위해서는 수단과 방법을 안 가린다는 점이었다.

***

성현과 천소울, 임하나가 함께 무대에 오르자 무대 앞 심사위원석에 앉는 영화감독, 음악감독들과 숀의 모습이 보였다.

‘생각보다 가깝구나.’

무대에 서니 심사위원석은 화면에 보이는 것보다 더욱 가깝게 느껴졌다.

성현은 막상 세계적인 감독들 앞에 서자 조금 긴장이 되어 짧게 심호흡을 했다.

그때 심사위원석 가운데 앉아있는 봉준오와 눈이 마주쳤다.

‘응?’

봉준오는 성현과 마주치자 환하게 미소를 짓더니 이내 입 모양으로 뭔가를 말했다.

성현은 곧 그가 뭐라고 하는지 알 수 있었다.

“파이팅......”

“네? 성현씨 뭐라 했어요?”

어느 때보다 바짝 얼어 있던 임하나가 고개도 돌리지 못하고 물었다.

성현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이 말했다.

“파이팅. 우리 파이팅하자구요. 겁먹지 말고.”

“메튜 페리 정도는 완전 지워 버릴 수 있는 무대 하겠습니다.”

천소울은 같은 가수 참가자인 메튜 페리가 신경 쓰였는지 경쟁심을 드러냈다.

그러느라 긴장은 어느새 날려버린 것 같았으니 오히려 다행이었다.

그 사이 리키가 성현의 일행에 대한 짧은 소개를 끝냈다.

기대에 찬 심사위원들의 박수소리가 뒤따랐다.

“프로듀싱을 맡은 이성현씨는 무대에서 내려가 기다려주시면 됩니다.”

리키의 말에 성현은 심사위원들에게 인사를 꾸벅하고 내려갔다.

무대에서 내려오는데, 객석 끝에서 자신을 향해 웃고 있는 한 남자를 발견했다.

‘......메튜 페리?’

성현은 그가 왜 객석 끝 구석에 서 있는 건가 의아했지만, 일단은 무대에서 내려왔다.

무대가 암전되고, 임하나가 움직였다.

잠깐의 정적 후에 임하나와 천소울의 무대가 시작되었다.

천소울과 임하나는 각각 무대 오른쪽과 왼쪽에 서 있었다.

암전 되어 있던 무대 조명이 서서히 밝아오며 천소울 쪽을 비췄다.

“앞만 보고 살아간 당신 한평생 자식들 밥그릇에 청춘을 다 바친 당신 낯선 이국땅에서 아파서 쓰러지지 못한 당신 혼자 먼 길 갔던 우리 아버지.”

오로지 천소울의 목소리만 넓은 공연장을 울렸다.

천소울은 어떤 반주도 없이 노래를 불렀다.

조용한 공연장에 천소울의 미성이 비어있는 객석 끝까지 울려 퍼졌다.

이전 미국팀의 무대는 미국 그 자체를 표현한 파워풀한 무대였다.

일본은 고즈넉한 분위기 속 벚꽃의 화려함, 브라질은 쌈바의 열정을 정열적으로 표현했다.

그에 비해서 성현 팀의 무대는 지금까지 다른 모든 참가자들의 무대를 통틀어서 가장 비어있는 무대였다.

그저 텅 빈 무대 뒤로 흰색 한지로 만들어진 무대 스크린만 보일 뿐이었다.

그 덕에 모든 심사위원들이 조용히 천소울에게 집중했다.

천소울은 잠시간의 텀을 둔 다음, 다시 마이크를 들어 올렸다.

“가족들 보내고 혼자 남아 이리저리 치이면서도 건강하기만 하라는 당신의 말이 주는 무게를 이제야 알 것 같아요.”

천소울은 기교를 부리지 않았다.

그저 덤덤하게 자신이 주고 싶은 메시지 자체, 가사 전달에만 집중했다.

두 소절이 끝이 나자, 울리는 피아노 반주 위로 한국의 전통 악기 피리가 더해졌다.

삐, 삐이이.

피이.

구슬프게 깔리는 피리 소리와 함께 한지 스크린이 밝아졌다.

스크린 위로 미국에 이민을 간 한인타운의 모습과 일하는 한국인들의 모습이 보여졌다.

천소울은 오랜 기러기 생활을 했던 자신의 아버지에게, 그리고 가족들을 위해 살아 온 대한민국의 모든 아버지들을 위해 목소리를 냈다.

그의 진심이 담긴 노래는 한국어로 불리고 있었지만, 모두가 숨죽이고 그의 무대를 지켜봤다.

여태까지 다른 팀들이 보여준 화려한 무대 연출이나 보컬 스킬은 찾을 수 없었다.

그럼에도 심사위원 모두 지루한 얼굴이 아니었다.

오히려 언어의 장벽이 있음에도 그들의 눈시울이 붉어지고 있었다.

“아버지 나의 아버지 당신이 사랑을 이젠 제가 돌려줄게요. 내 온몸 다해 당신을 지켜드릴게요.”

노래는 클라이막스 부분으로 치달았다.

천소울은 지금까지 참고, 참았던 모든 감정을 표현했다.

엄청난 고음을 뽑아내며, 진심을 다해 노래를 열창했다.

그리고 그 진심이 전해졌을까.

심사위원석에 있던 영화 감독들과 숀은 천소울이 내지르는 서글픈 소리에 자신들도 모르게 감정이 복받쳐 올라 눈이 조금 촉촉해졌다.

“......이거 안 좋은데.”

객석 끄트머리에 앉아있던 메튜는 굳은 얼굴로 무대 위 천소울을 지켜봤다.

성현에게로 시선을 돌리자 천소울에게 모든 시선이 빼앗긴 성현의 모습이 보였다.

메튜는 한숨을 삼키며 유려한 고음을 뽑아내는 천소울을 지켜봤다.

천소울은 자신조차도 노래에 너무 집중한 나머지 눈에 고인 눈물을 살짝 훔쳐냈다.

어마어마한 고음의 행렬이 끝이 나자 함께 뒤잇던 전주가 차츰 그 힘을 잃고 사그라들었다.

고즈넉한 피리 소리만 남아 천소울을 위로하듯 음률을 짚어나갔다.

그때, 피리 반주 위로 꽹과리와 가야금 소리가 더해졌다.

그러면서 한국인이라면 누구에게나 익숙할 멜로디가 흘러나오고 임하나에게 조명이 켜졌다.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를 넘어간다”

임하나는 기다렸다는 듯이 엄청난 성량으로 찍어 누르듯 아리랑을 열창했다.

천소울의 노래를 이어받아 아리랑을 부르는 임하나의 뒤로, 한지로 만들어진 스크린 위에 50년대 한국 전쟁 당시 한국의 모습이 보였다.

총을 들고 있는 미국인, 한국인들의 모습과 삐쩍 마른 어린아이들의 모습까지.

“나를 버리고 가시는 임은 십 리도 못 가서 발병 난다.”

전쟁이 주는 그 처참한 모습에 심사위원들 모두 고개를 저으며 안타까워했다.

그러면서 찢어질 듯한 일렉 기타 반주가 치고 들어왔다.

분위기가 변하기 시작하며 빠른 비트가 더해졌다.

“남들보다 힘든 하루 그 끝에 주저앉고 싶겠지만 내가 네 앞에 서있을 게 내가 너의 따뜻한 이불이 되어줄게.”

임하나는 그 반주에 올라타듯이 자연스럽게 빠른 템포의 노래를 이어나갔다.

힘든 순간이 있을지라도 절대 포기하지 않고 극복해내겠다는 긍정적인 마음.

그녀가 주는 긍정적인 에너지가 보답하듯 환하게 웃으며 태극기들 들고 거리를 달리는 사람들의 모습이 흘러나왔다.

그 뒤로 한국전쟁에 참가했던 수많은 참전 용사들의 사진들이 하나씩 나오기 시작했다.

그중에 프리먼 할아버지의 모습도 비쳤다.

임하나는 그들에 대한 경외심을 노래로 표현했다.

그녀가 가지고 있는 디바로서의 면모를 확실히 보여주며 파워풀한 보컬 스킬을 뽐냈다.

심사위원들 모두 그녀가 보여주는 그루브와 여유에 만족한 듯 리듬을 탔다.

촉촉이 눈가를 적시던 심사위원들은 언제 그랬냐는 듯이 자리에 일어나 환호를 지르기까지 했다.

그렇게 임하나의 클라이맥스가 끝나가자, 이번에는 바이올린 연주가 더해졌다.

현악기 하나로 곡은 다시 구슬픈 가락의 반주로 변주했다.

“저 멀리 동해바다 외로운 섬 오늘도 거센 바람 불어오겠지 조그만 얼굴로 바람맞으니 독도야 간밤에 잘 잤느냐.”

그리고 이어지는 천소울의 노래.

이번엔 조금 밝은 분위기의 홀로 아리랑이 나왔다.

임하나와 천소울은 서로를 마주한 채로, 번갈아 가며 한 소절씩을 부르기 시작했다.

“금강산 맑은 물은 동해로 흐르고 설악산 맑은 물로 동해 가는데 우리네 마음들은 어디로 가는가 언제쯤 우리는 하나가 될까.”

어느덧 뒤로 보이는 스크린에는 과거에 비해 말도 안 되게 발전한 한국의 모습이 빠르게 스쳐 지나갔다.

그와 함께 점점 고조되는 반주는 여러 악기가 어우러져 숨 가쁘게 전개됐다.

심사위원들 50년대부터 현재 이르러 발달한 한국의 모습을 보고도 웃을 수 없었다.

“아리랑 아리랑 홀로 아리랑 아리랑 고개를 넘어가 보자.”

그것들을 만들고 지켜내기까지 한국인들이 겪었던 상처와 눈물, 슬픔.

두 사람이 쏟아내는 한이 담긴 노래로 이 모든 걸 오롯이 느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임하나, 천소울은 서로 시선을 맞추며 듀엣을 이어갔다.

“가다가 힘들면 쉬어가더라도 손잡고 가보자 같이 가보자.”

마지막으로 함께 가자는 메시지를 남기며 노래를 마무리 됐다.

두 사람의 무대가 끝이 났다.

심사위원석에 있던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이 벌떡 일어나 박수를 쳤다.

이어서 뤽 베송, 고레에다 히로카즈, 제리 길리엄 등 모든 나라의 감독들이 일어나 박수 세례를 이어갔다.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팔짱을 끼고 보고 있던 숀까지 일어나 두 사람에게 박수를 보냈다.

각국의 대기실도 난리가 났다.

무대를 끝마친 팀도, 아직 무대를 하지 않은 팀도.

지금 이 순간만큼은 오디션을 잊고 순수하게 환호를 보냈다.

방금 무대를 끝내고 마음 편하게 앉아있던 레베카와 사이먼은 서로를 쳐다보며 웃음을 터뜨렸다.

분한 마음도 들지 않는 무대였다.

이쯤 되니 이 무대를 보겠다고 객석에 남은 메튜가 선견지명이 있어 보였다.

9명의 영화감독, 10명의 음악 감독, 1명의 드라마 총괄 책임자가 일어나 박수를 보냈다.

그중에서 유일하게 박수를 보내지 못한 사람이 있었다.

바로 한국의 봉준오 감독이었다.

“이봐, 봉감독. 괜찮아?”

정신없이 박수를 치던 숀은 옆이 허전한 것을 느끼고 고개를 돌렸다.

자신의 옆 자리인 봉준오가 고개를 푹 숙이고 있었다.

대번에 걱정이 되어서 물어도 봉준오는 대답이 없었다.

좀처럼 고개를 들지 못하고 있던 봉 감독은 안경을 벗으며 얼굴을 들더니 다급하게 손으로 눈물을 훔쳤다.

“브라보!”

공연장 가득 봉준오의 외침이 쩌렁쩌렁하게 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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