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 같은 프로듀서는 없었다-211화 (211/273)

211화

본선 7라운드 첫 번째 무대는 한국팀이 아니었다.

한국 대기실에 있는 성현과 일행들은 긴장한 채로 대기실에 설치된 화면을 바라봤다.

스크린 속 무대가 암전되었다.

잠시 뒤, 서서히 무대가 밝아지더니 벚꽃이 휘날리며 기모노를 입은 2명의 여자가 등장했다.

첫 번째 무대를 준비하는 나라는 일본.

구로사와 슌지가 프로듀서를 맡았고, 사토미와 나나라는 보컬리스트 둘이 함께 노래를 준비했다.

벚꽃이 날리는 연출답게 그들은 일본을 상징하는 벚꽃과 첫사랑에 관한 노래를 선보였다.

중간중간 부채를 꺼내 일본의 전통춤을 가미하기도 했다.

가녀린 음율과 두 여자 가수의 보컬이 훌륭하게 맞아들었다.

“노래도 노랜데 무대가 진짜 예쁘네요.”

“구로사와 슌지 강점이 무대 연출이니까요.”

“그렇구나......”

성현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던 임하나가 고개를 들었다.

“근데 성현씨는 그걸 어떻게 알았어요?”

“......너튜브 영상만 봐도 알겠던데요? 무대를 잘하더라고요.”

여러 번 경쟁을 해봐서 안다고 대답할 수는 없었다.

성현은 대충 둘러대고 공연에 집중했다.

곧 노래가 끝나고 심사위원들의 투표수가 공개됐다.

6표.

일본팀 세 명이 올라선 무대 뒤로 커다랗게 득표수가 떠올랐다.

“나쁘진 않지만 그렇다고 안정적인 투표수는 아닌 것 같네요.”

각국은 하나의 투표권을 갖는다.

그리고 드라마를 총괄제작하는 숀의 투표권 하나를 더해 11표.

하지만, 해당 참가자의 나라는 투표를 할 수 없기에 참가자들이 받을 수 있는 최대 득표수는 10표.

앞으로 남은 9개국이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달라지겠지만 6표는 조금 부족했다.

다음 라운드를 확정 지었다고 말할 수 있을 정도로 높은 투표수는 아니었다.

“벚꽃과 첫사랑을 표현한 무대는 좋았지만 노래 자체가 돋보이는 무대는 아니었던 것 같네요.”

냉정한 성현의 평가에 임하나와 천소울은 방금 전 무대를 떠올렸다.

‘생각보다......’

성현은 잠자코 심사평을 기다렸다.

심사위원석에 있는 영화, 음악 감독들 모두 비슷한 의견을 내놓았다.

일본인 참가자들은 아쉬운 표정으로 무대에서 내려갔다.

이어지는 두 번째 무대.

매년 2~3월의 열리는 브라질의 리우 카니발을 연상시키는 듯한 무대가 세팅되었다.

그 무대만으로 두 번째 무대를 꾸미는 나라가 어디인지 눈치챌 수 있었다.

화려한 쌈바 옷을 입은 여자와 남자가 무대에 뛰어오르듯 등장하더니, 스탭을 밟기 시작했다.

스탭을 본 임하나는 곧장 그들이 추는 춤을 보고 말했다.

“쌈바네.”

조용한 무대 위 두 사람의 구두굽 소리만 울려 퍼지더니 점차 선율이 하나씩 추가되며 무대가 밝아졌다.

브라질 참가자들이 자신들의 나라를 표현하는 것으로 선택한 무대는 바로 쌈바였다.

여자와 남자 가수 참가자들은 환상의 호흡을 보여주었다.

단시간에 익혔다고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수준급의 쌈바를 선보였다.

거기다 격하게 춤을 추면서도 음정의 흔들림 하나 없이 완벽한 가창력을 보여주었다.

무엇보다 그들이 가지고 있는 여유로운 미소와 관객을 휘어잡는 무대 매너.

그 환한 얼굴에 굳은 표정의 감독들 역시 따라서 얼굴에 미소를 지을 수밖에 없었다.

쌈바 하나로 공연장의 분위기를 뜨겁게 달궈졌다.

곧이어 80세가 다 된 브라질의 명장 제리 길리엄조차 자리에서 일어나 리듬에 맞춰 몸을 흔들게 했다.

“오, 예스!”

브라질 참가자들의 열정적인 무대가 끝났을 때, 긍정적인 평가가 이어졌다.

그들은 일본보다 한 표가 더 많은 7표를 얻을 수 있었다.

10개 중 7표를 받은 건 나쁘지 않은 결과였다.

‘확실히 각 나라를 대표하는 참가자들이라 다들 실력이 비등비등하네.’

성현은 긴장의 끈을 놓으면 안 되겠다고 생각했다.

옆을 돌아보니, 이는 성현만의 생각이 아니었는지 임하나와 천소울의 표정 또한 처음보다 조금 결연하게 바뀌어 있었다.

성현은 둘의 표정을 보더니 맥이 탁 풀렸다.

“벌써 겁먹으면 어떡해요. 진짜 강한 놈은 등장도 안 했는데.”

자신보다 더 긴장한 두 사람을 풀어줘야겠다고 생각한 성현이 장난스럽게 말했다.

하지만 그 말에 임하나의 얼굴이 더 굳어지고 말았다.

“이다음 무대죠? 그 사람들?”

“네. 세 번째 무대.”

성현과 임하나, 천소울은 모두 긴장한 표정으로 세 번째 무대를 기다렸다.

곧, 암전된 무대에 한 남자가 맨발로 등장했다.

성현의 일행들은 남자의 동작 하나하나에 시선을 곤두세웠다.

‘메튜 페리. 과연 이번엔 뭘 보여줄까.’

세 번째 무대의 나라는 바로 미국이었다.

그리고 그 전면에 선 건 당연히 메튜 페리.

메튜는 진중한 표정으로 홀로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무대 한가운데에 서 있었다.

곧이어 흘러나오는 전주.

메튜 페리는 현대 무용으로 미국의 자유를 표현하며 춤을 췄다.

무대 전체를 아우르는 춤사위가 멈추자, 곧 무대 위로 여자 하나와 남자 하나가 더 올라왔다.

둘의 등장과 함께 공연장에 미국의 국가가 울려 퍼졌다.

“O say can you see, by the dawn's early light,”

“What so proudly we hailed at the twilight's last gleaming.”

“Whose broad stripes and bright stars through the perilous fight.”

메튜와 그의 일행들 서로 주고받듯 한마디씩 노래를 이어나갔다.

그러다 중반부터 노래가 컨트리 음악으로 바뀌었다.

“Maybe I didn't love you Quite as often as I could have And maybe I didn't treat you.”

메튜의 선창으로 시작된 윌리 넬슨의 Always On My Mind.

미국을 대표하는 컨트리 음악 중 하나였다.

컨트리는 어떤 의미로 보면 가장 미국다운 음악이라도 할 수 있는 장르였다.

‘흑인에게 블루스가 있었다면 백인들에겐 컨트리 음악이 있었으니까.’

메튜와 그의 일행은 다양한 인종으로 구성되어 있었지만, 메튜는 백인이었다.

몇 마디의 컨트리 노래를 부르던 메튜가 마이크를 내렸다.

간주와 함께 자연스럽게 코드가 바뀌면서 노래가 포크송으로 전환되었다.

“How many roads must a man walk down Before you call him a man?”

미국팀이 다음으로 택한 곡은 미국 대표 가수 밥 딜런의 Blowin' In The Wind.

성현은 그제야 메튜의 팀이 이번 무대에서 보여주려는 것이 무엇인지 알 수 있었다.

‘미국이란 국가 그 자체를 보여주려는 거구나.’

미국에는 인종만큼이나 다양한 음악이 존재했다.

당연히 그 음악들의 탄생은 미국 사회와 깊은 연관이 있었다.

컨트리 음악은 미국이라는 국가의 탄생과 관련이 있다.

컨트리는 미국인들이 가장 사랑하는 음악 장르인 만큼 미국인의 트로트였다.

그리고 그다음 노래인 밥 딜런의 Blowin' In The Wind.

밥 딜런은 미국을 대표하는 시인이자 포크송 가수.

그는 늘 자신이 규정지어지길 거절하며 사회적 이슈를 다뤘다.

누군가 자신을 저항운동가라고 칭하자 다시 이를 깨부수기 다음 앨범엔 그와 관련된 노래를 단 한 곡도 포함시키지 않았다.

그는 항상 자신이 어떤 것으로 규정지어지길 거부하며 자유롭게 음악을 했다.

그것 자체가 미국의 정신이기도 했다.

여러 인종이 함께 살면서 한마디로 정의가 불가능한 나라, 정의 내려지길 거부하는 나라.

이후로도 밥 딜런의 록 노래인 like a rolling stone, 힙합, 팝까지 다양한 가수들의 노래를 하나의 짧은 영화처럼 보여주었다.

그가 부르는 원곡 가수들의 존재만으로 음악의 역사에서 미국이란 나라가 가지고 위상을 느낄 수 있었다.

한 무대에서 펼쳐지는 미국 그 자체의 음악.

‘컨셉도 좋고 곡도 완벽하고 인정할 수밖에 없는 무대야.’

성현은 메튜 팀의 공연이 끝났을 때 박수를 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리고 이는 다른 나라 참가자들 또한 마찬가지였는지 메튜 팀의 노래가 끝났을 때, 옆에 있는 대기실에서도 박수 소리가 들려왔다.

“말이 안 나와요. 미국이란 나라에 압도 당하는 기분이 이런 걸까요?”

“확실히 이전 참가자들 무대와 클라스가 다르긴 하군요.”

임하나와 천소울 역시 그들의 무대를 보고 크게 감동받았다.

쉴새 없이 몰아친 명곡들의 향연.

그러면서 한순간도 지루하지도, 정신없지도 않았다.

곡 하나하나가 떠오르면서, 모든 곡이 완벽히 메튜의 곡인 것처럼 소화되었다.

단 하나, 걸리는 점이 있다면.

‘게임과 똑같아.’

메튜는 다른 참가자들과 융화되지 못했다.

지금 다른 가수들을 떠올려보라고 한다면 인상 깊은 구절이 몇 없었다.

퍼내도 줄지 않는 재능을 가졌다는 메튜의 독무대였다.

이를 알고 있다는 듯이 거의 모든 곡의 시작은 메튜의 선창으로 시작되었다.

무대의 시작 역시 그의 재능을 뽐내듯 메튜의 춤으로 시작한 것처럼.

하지만 이는 아주 작은 티끌 같은 흠집에 불과했다.

전체적인 무대를 봤을 때 완벽하다는 수식어 말고는 다른 말이 나오지 않는 무대였으니까.

게임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메튜는 어떤 미국의 참가자들과도 융화되지 못했다.

다만, 뛰어난 실력으로 절대 떨어지지 않았다.

지금 메튜의 무대를 보고 성현이 이런 생각을 할 수 있는 것은 게임을 통해 메튜의 특성을 잘 파악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아마 지금 이 미미한 지점을 문제 삼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 분명했다.

당장 옆을 돌아보아도 임하나와 천소울이 말을 잃고 있었으니까.

지금 이들에게 메튜는 혼자만 잘났으니 신경 쓰지 않아도 됩니다.

라는 말을 건네봤자 역효과가 날 것이 뻔했다.

‘정신 똑바로 차리자.’

성현은 더욱 긴장할 수밖에 없었다.

결국 결점이 없어 보이는 저 팀을 뛰어넘어야 우승을 할 수 있었으니까.

득표수가 공개되기 전, 미국 팀은 무사히 공연을 끝마친 것에 있어 후련한 표정으로 무대에 섰다.

뒤이어 차례차례 심사평이 발표되었다.

“밥 딜런의 뒤를 이을 수 있는 새로운 음유시인들의 탄생을 보는 것 같았습니다.”

프랑스 영화감독 뤽 베송의 극찬이 나왔다.

뤽 베송의 심사평에 임하나는 공감한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다가 탄식했다.

저들이 자신의 경쟁자가 아니라면 얼마나 좋을까.

뒤이어 다른 심사위원들 역시 엄청난 극찬을 쏟아냈다.

리키는 흡족한 미소를 짓고 있다가 스탭의 신호를 받고 마이크를 들었다.

“미국 팀 투표수 공개하겠습니다.”

모두가 숨을 죽이고 그들의 투표수를 지켜보는 가운데, 스크린에 숫자가 떠올랐다.

9표.

미국 팀은 받을 수 있는 10표 중 총 9표를 받았다.

단 한 군데를 제외한 모든 곳에서 미국의 팀을 인정한 것이다.

“…….”

“…….”

그리고 득표수를 확인한 성현의 대기실은 침묵에 휩싸였다.

9표를 과연 자신들이 넘을 수 있을까?

라는 생각을 하는데 곧 대기실 문이 열리고 스탭이 들어왔다.

“다음 팀 준비해주세요.”

가차 없이 내려진 선고와 같은 말.

성현의 팀이 무대를 보여줄 차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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