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 같은 프로듀서는 없었다-210화 (210/273)

210화

참가자들은 마른침을 삼켰다.

그들도 이미 이 사실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막상 총괄 책임자인 리키 헨더슨의 입에서 그 얘기를 듣자 긴장감이 밀려들었다.

“미리 공지했다시피 여러분들의 무대는 특별 심사위원들이 평가하게 될 겁니다. 다들 스페셜 심사위원이 누구냐는 문의가 많았는데 모두가 궁금해하던 심사위원들의 모습을 지금 공개하겠습니다.”

리키의 말에 참가자들 모두 몸을 들썩이며 몸을 바짝 당겨 앉았다.

성현 역시 특별 심사위원이 이미 누군지 알고 있음에도 얼굴이 조금 상기됐다.

미국에 출발할 때부터 기다리던 순간.

‘드디어 만날 수 있는 건가.’

성현은 게임에서만 만날 수 있었던 그 사람이 실제로 등장한다는 생각에 손바닥에 땀이 솟았다.

지금까지 성현이 알던 게임대로 진행되어 왔다.

이대로라면 ‘그 사람’ 역시 이번 라운드의 특별 심사위원으로 등장해야 했다.

처음 더 넥스트 슈퍼스타가 현실이 됐다는 걸 알았던 그 순간.

성현의 머릿속을 스쳐 지나간 인물 중 하나.

막연히 그를 정말 만날 수 있을까? 정도로 그치고 말았었다.

“시작하자고.”

리키의 손짓에 공연장의 무대를 가리고 있던 휘장이 천천히 올라갔다.

드러난 것은 고급스러운 빈 의자들.

열을 맞춰 도열한 의자는 비어 있었고, 그 뒤로 참가자들이 들어온 문과 다른 출입문의 모습이 보였다.

‘드디어.’

한국 본선을 뚫고 미국 본선까지 와서 마침내 그를 만나볼 수 있게 된 것.

성현은 설레는 마음으로 무대를 바라봤다.

스탭들은 분주하게 움직이더니 이내 리키에게 준비됐다는 사인을 보내왔다.

“특별 심사위원분들 나와주세요!”

리키의 말에 곧 무대에 심사위원들이 차례로 등장했다.

이를 본 참가자들, 너무 놀라서 입이 벌어졌다.

“맙소사!”

“이거 진짜야? 저들이 우리 심사위원이라고?”

이미 누가 나올지 알고 있던 성현조차도 실제 눈앞에 그들이 등장하자 어이가 없어서 웃음이 나왔다.

아예 몰랐던 참가자들이 받을 충격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터였다.

무대에 등장한 사람들은 바로 크리스토퍼 놀란, 뤽 베송, 고레에다 히로카즈 등등.

세계적인 영화 거장들이었던 것.

등장하는 것은 그들만이 아니었다.

모두들 최고의 파트너라고 여기는 영화 음악 감독과 한 쌍을 이뤄 입장하고 있었다.

“설마 저분들......?”

“누군데 그럽니까? 음악 하는 사람들은 아닌 거 같은데.”

평소 영화를 좋아하는 임하나는 단번에 그들을 알아보고 눈을 크게 뜬 채 굳어버렸다.

천소울은 그들의 얼굴을 보고도 누군지 알아보지 못했다.

그러다 마지막으로 등장한 남자를 보고 이내 그들의 직업을 눈치챌 수 있었다.

“어? 저 사람 영화 인섹트 감독 아닌가. 한국인 최초 오스카에서 상 탄 감독.”

“네. 맞아요. 봉준오 감독.”

마지막으로 등장한 감독은 한국의 대표 감독 봉준오였다.

***

공연장 무대에 뜬금없이 등장한 전 세계를 주름잡는 20명의 영화감독과 음악 감독들.

그들은 나란히 무대에 서서 돌아가며 간단히 자기소개를 했다.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영화 감독 봉준오입니다.”

“함께 영화 음악을 작업한 정재인입니다.”

봉준오와 정재인은 전 세계의 많은 거장들이 영어 인사를 한 것과 달리 혼자 꿋꿋하게 한국말로 인사를 했다.

참가자들의 옆에 있는 통역사가 영어로 이를 번역해 주었다.

통역이 필요 없는 세 사람은 감격한 표정이 되었다.

“크. 국뽕 차오른다. 그죠?”

“가슴이 웅장해지는 것 같은 기분이긴 합니다.”

봉준오의 마지막 인사를 끝으로 모든 감독들의 인사가 마무리됐다.

잠시 무대를 내려가 스텝들과 얘기를 나누던 리키 헨더슨은 조금 어두운 표정으로 돌아왔다.

참가자들과 심사위원을 향해 죄송하다는 말을 꺼낸 리키가 말했다.

“심사위원 한 분이 조금 늦어질 것 같다는 연락을 받았습니다. 30분 안에는 도착할 것 같으니 참가자들은 잠시만 기다려주시길 바랍니다.”

리키는 그 말을 끝으로 20명의 감독들에게도 죄송하다며 사과를 건넸다.

그들은 오히려 기뻐하며 오랜만에 친구들을 만난 것처럼 서로 대화를 나눴다.

“후, 숨을 돌릴 수 있겠구만.”

“우리는 무대 체질이 아닌데 말이야.”

“여기 자리 좀 바뀐 거 같지 않아? 요즘 제일 잘 나가는 분들 앞에서 이게 뭐야!”

거장들은 스탭들을 향해 농담 섞인 말을 건네며 긴장을 푼 채로 무대 위에 앉았다.

10명의 거장 감독들은 서로 친분이 있는지 편한 모습이었다.

그와 함께 자리한 음악 감독들 역시 서로의 음악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며 편안하게 자리했다.

자기들끼리 대화를 이어가는 모습에 참가자들은 그 누구도 자리를 뜨지 못하고 그들의 모습을 지켜봤다.

“내 눈으로 봐도 믿기지 않는다.”

“한 대 때려줄까?”

“워워, 그건 아니지.”

칸 영화제에서나 볼 수 있는 세계 거장들.

이들이 ‘더 넥스트 슈퍼스타’ 심사위원으로 왔다는 사실에 공연장에 모인 참가자들 모두 볼을 꼬집으며 현실을 믿지 못했다.

게다가 하나같이 유명한 20명의 감독들이 모인 모습을 볼 수 있는 건 흔한 일이 아니었다.

반대로 그들의 모습을 보면서 한 편의 영화를 보는 것 같은 기분이었다.

참가자들은 이게 현실이라는 것을 서서히 인식하고 나자 황홀한 표정으로 무대를 올려다봤다.

“여기 지금 베니스 영화제나 칸 영화제 아니지?”

“특별심사위원이라길래 기껏해야 톱스타들 데리고 올 줄 알았는데 이건 진짜 미쳤어.”

참가자들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주머니를 더듬거렸다.

어쩐지 오늘은 공연장에 들어오면서 참가자들의 휴대폰을 수거해가더니만.

이런 서프라이즈가 있었던 모양이었다.

주최 측은 특별 심사위원의 신상이 새어나가지 못하도록 이 자리에서 어떠한 촬영도 용납할 수 없다는 강경한 태도를 취했다.

그만큼 지금 눈앞에 앉아있는 거장들의 위치가 어느 정도인지 모두가 은연중에 느끼고 있었다.

“나 지금 기절할 거 같아. 진짜 저 감독 팬이란 말이야 얼마 전에 나온 인섹트랑 더 몬스터랑 작품들 다 찾아봤어.”

“저도요! 나도 봉준오 팬인데!”

참가자의 말을 듣던 임하나는 처음 보는 프랑스 참가자에게 먼저 말을 걸었다.

이내 두 사람 눈을 반짝이며 영화 이야기를 이어갔다.

“전 살인자의 추억 제일 좋아해요. 그 장면에서 마지막에 송강우 배우가 카메라를 막 응시하잖아요. 그때 진짜 온몸에 소름이 돋는데, 와 진짜.”

“저도 그 장면 좋아해요. 마치 자신이 놓친 범인을 응시하는 것 같기도 하고.”

임하나와 참가자는 봉준오 감독 작품을 얘기하느라 흥분해서 떠들었다.

그러자 그들 주변에 있던 사람들도 하나둘 이야기에 끼어들기 시작했다.

어느새 공연장은 봉준오 감독에 대한 이야기로 한 마음이 되어 있었다.

‘역시 거장은 거장이네.’

성현은 한국인 감독이 외국에서 이 정도로 인정을 받고 인기라는 것을 확인하고 신기한 마음이 들었다.

시선을 돌려 무대 위 봉준오를 보자 푸근한 풍채에 곱슬머리 반 뿔테 안경이 눈에 들어왔다.

길에서 보면 그냥 옆집 아저씨라는 생각이 들 것 같은 외모.

오스카상을 휩쓸고 칸에서 황금 종려상을 수상한 세계적인 거장이라는 본모습이 언뜻 상상이 안 가는 모습이었다.

‘진짜 만나 뵙게 될 거라곤 상상도 못 했어.’

성현은 아직도 자신의 눈앞에 봉준오가 있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이는 천소울 역시 마찬가지였다.

“저분들이 우리 노랠 평가한다니 믿기지 않습니다. 이번 무대만큼은 정말 잘하고 싶습니다.”

멍하니 다른 감독과 이야기를 나누는 봉준오 감독을 보고 있는 성현의 곁에서 천소울이 말했다.

성현은 봉준오 감독에게서 시선을 떼지 못한 채 대꾸했다.

“저도 그래요. 봉준오 감독님 덕분에 한국인으로서 뿌듯했던 것처럼 이번엔 우리가 감독님이 우리 때문에 뿌듯할 수 있도록 최고의 무대 준비해 봐요.”

***

20분 정도가 흘렀을까, 공연장에 급하게 한 남자가 들어왔다.

“숀 대니얼!”

리키는 그를 발견하고 벼락처럼 소리쳤다.

양손을 벌려 인사하는 리키에게 숀이 날 듯이 달려갔다.

두 사람은 서로 포옹을 하며 가볍게 인사를 나눴다.

“미안. 차가 좀 막혀서. 미안해요. 귀하신 분들을 모시고 기다리게 했네요.”

숀은 리키뿐만 아니라 무대에 있던 감독들에게도 죄송하다며 인사를 했다.

그들 모두 서로 아는 사이인지 괜찮다며 농담을 건넸다.

그러던 숀이 제일 끝에 있는 의자에 시선을 멈추고 눈을 동그랗게 떴다.

숀은 오, 마이 갓, 이라고 중얼거리며 재빠르게 그 앞으로 향했다.

“봉 감독님은 갑자기 마음 바꾼 이유가 뭐예요? 그렇게 사정해도 오디션 심사위원은 못 하겠다더니.”

숀이 그렇게 말을 하며 손을 내민 것은 다름 아닌 봉준오 감독.

“왜겠어요. 저깄는 친구들 때문이지.”

봉준오는 객석에 앉아있는 참가자들을 쳐다보며 말했다.

숀이 시선을 돌려보니 거기에는 성현과 임하나, 천소울이 있었다.

“같은 한국인으로서 응원이라도 해줘야죠.”

봉준오의 말에 숀은 재밌다는 듯 웃었다.

리키는 핸더슨 숀을 무대 가운데로 끌다시피 데려갔다.

“오늘의 마지막 특별 심사위원을 소개해드리겠습니다. 이번 드라마의 책임 프로듀서 숀 대니얼입니다.”

숀은 리키의 소개에 과장된 몸집으로 깊이 허리를 숙이며 말했다.

“늦어서 죄송합니다. 우리 드라마에 쓰일 노래인 만큼 이번 무대도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숀의 인사에 객석에 있던 참가자들 박수를 보냈다.

리키 헨더슨은 한번 헛기침을 하더니 다시 오디션을 진행했다.

“21분의 특별 심사위원들이 모두 모였으니 무대 평가 방법을 설명하겠습니다.”

리키의 말에 서로 농담을 주고받던 감독들이 숙연해졌다.

참가자들 역시 진지한 눈빛으로 리키를 응시했다.

“지금 이 자리엔 10개국에서 온 각각 다른 국적의 영화, 음악 감독님이 계십니다. 심사위원들은 참가자들의 무대를 보고 마음에 드는 무대에 투표할 수 있으며 자신의 국적에 속하는 나라엔 투표가 불가능합니다.”

“몰래 하는 것도 안 되나요?”

봉준오의 농담에 리키가 웃으며 고개를 저으며 단호하게 안 된다고 말했다.

그때, 숀이 무대 앞으로 나오더니 리키에게서 자연스럽게 마이크를 가져갔다.

“참고로 전 미국 국적이지만 드라마 총괄 책임자로서 모든 참가자들의 무대에 투표가 가능합니다.”

“이거 차별 아닙니까?”

“권력의 힘이라고 해두죠.”

숀의 말에 봉준오는 어이없다는 듯 웃었다.

다른 감독들도 이를 재밌다는 듯이 쳐다봤다.

“농담이고 제가 이번 드라마의 총괄 책임자인 만큼 드라마에 쓰일 곡은 직접 고를 필요가 있다 판단했고.”

숀은 리키에게 시선을 건네며 마저 말했다.

“주최 측에 먼저 심사위원을 하고 싶다고 제안을 했습니다. 어떤 색안경도 없이 정당한 기준을 가지고 평가할 것이니 여러분들은 최고의 무대만 보여주시면 됩니다.”

숀은 그 말을 끝으로 다시 리키에게 마이크를 넘겼다.

리키는 룰을 마저 설명했다.

“가장 많은 표를 많은 상위 5개의 팀이 이번 라운드에서 합격하게 될 것이며, 그 아래로는 전원 탈락입니다. 그럼 시간이 조금 늦춰진 관계로 곧바로 무대 시작하겠습니다.”

리키는 그 멘트를 마지막으로 무대에서 내려갔다.

곧 감독들도 무대에서 내려가 심사위원석으로 이동했다.

스탭들은 객석에 앉아있던 참가자들을 데리고 무대 뒤 백스테이지로 안내했다.

참가자들은 각 나라의 대기실로 이동했다.

대기실마다 달려 있는 커다란 스크린.

그곳에는 빈 무대와 저 멀리 심사위원의 모습들이 비췄다.

성현과 임하나, 천소울은 긴장으로 솟은 땀을 닦으며 자신들이 서게 될 무대를 지켜봤다.

0